[신해철 인터뷰] ② 근본적인 시스템에 도전하고 싶다
참으로 멋진 남자이며, 건강한 사람, 신해철 인터뷰.
"가만히 있기는 싫었어요. 공부를 안했으면 모르겠는데 영국, 미국 양쪽 시스템을 공부하고 들어왔는데 결론은 시스템의 문제더라구요. "
①편에서 이어집니다.
옛날에는 연예인을 업신여기는 풍토였다
"음악 하시면서 후회한 적은 없으세요?"
"후회요? 근본적인 후회는 없었던 거 같아요. 짜증은 있었어요. 내가 이 짓을 왜 했을까… 잠시 그런 적은 있었는데 진짜 내가 왜 했을까, 이런 적은 한 번도 없었던 것 같고 오히려 후회나 그런 것이 닥치면 거꾸로 오기가 발동했던 것 같아요. 밴드 하려고 음악 했는데 밴드 할 환경이 안되면 음악 하는 것만으로도 감사해하며 기회를 보자, 이래서 소위 인기가수가 되었잖아요. 인기가수가 되어서 방송국에 가보니까 엿 같더라고요.."
"어떤 점이요?"
"인간을 인간으로 대우를 안해요. 특히나 신인가수 나부랭이한테는. 신인가수뿐만 아니라 방송국에서 일을 하는 피디나 스탭들이 연예인을 굉장히 업신여기고 함부로 대하는 풍토였어요. '내가 왜 이걸 시작해서 이 꼴로 있단 말인가'라는 생각을 하기보다는 '내 끝까지 살아남아서 저 사람들 무릎 꿇는 모습을 보겠다' 이런 식의 사고방식이었어요. 그런데 방송국에서 용필이 형이 지나가면 그 피디들이 다 설설 기더란 말이죠. 나도 끝까지 살아남아서 저렇게 될 거야! 그랬는데 물론 용필이 형 만큼은 아니지만 요새는 방송국 가면 국장님이 나와서 커피 타주고 그래요. 그런데 슬퍼요. 그래도 옛날이 더 좋았어요.(웃음)"
스타는 빛을 받아서 반사하는 존재에 불과
"신해철이라는 이름으로 검색하니, 참으로 다양한 자리에서 다양한 말씀을 하셨더군요. 거꾸로 생각해보면 그만큼 신해철이라는 사람을 필요로 하고 있구나, 라는 것을 생각하게 하는데요.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런 요구에 다 응대할 만큼 신해철은 마음이 좋은 건가, 하고요"
"네. 난처한 문제예요. 성격의 문제인 것 같기도 하고. 의무감 같은 것에 묶여있거든요. 기본적인 성격 자체가 손해볼지 뻔히 알면서 헬프를 치면 못 이기고 나가게 돼요. 그러다 보면 결과적으로 온갖 군데에서 떠들고 있는 모습이 되는 거예요. 그것이 우리나라에서 대중음악을 하는 사람으로서는 절대적으로 불리하다는 것 아시죠? 자기 음악을 하는 데에는 하등의 도움이 안 돼요."
"거절을 잘 못하는 성격이신가요?"
"그렇기도 하고, 스타라는 것이 스스로 빛을 내지는 않거든요. 빛을 받아서 반사하는 존재에 불과하고, 일시적인 건데… 단지 스타가 할 수 있는 일은 반사의 각도를 조절하는 것이 아닌가. 자기들이 대중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그 각도를 어느 쪽으로 반사할 것인가를 선택하고 조절하는 것이죠. 가급적이면 자기가 빛을 반사시킬 수 있는 힘이 있을 때 그것을 소수계층에 대한 발언이라든가, 그런 것에 힘을 실어주는 것도 좋고, 여러 가지로 해야 하잖아요. 그래도 자기 밥그릇에 대해서는 거의 발언 안 했어요. 음악계에 대해서는 많이 발언 안 하려고 했어요. 지난 번에 <백분 토론> 나간 것은 예외였지만요. 그때도 이동통신사에 대한 얘기할 때는 빠졌어요. 살면서 나불나불하게 되네요.(웃음)"
"뮤지션들은 어쩔 수 없이 예민해질 수 밖에 없는 존재인데, 신해철 씨는 참으로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 간극 때문에 무척 고독하시지 않을까 상상해봤어요."
"인간이야 다 외롭고 고독하겠죠. 양면성이 있는 것 같아요. 어렸을 때 대가족으로 살아서 고모, 삼촌 아홉 명이랑 살았어요 우리집에서 최고의 죄는 냉장고에 있는 콜라를 마지막 바닥이 보일 때까지 마시는 거였어요. 입에 뭐 한 모금 들어갈 때도 나 말고 다른 사람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도록 훈련을 받았죠. 그러니까 밴드로 음악을 하는 것도,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회사를 하는 것도 즐겁게 받아들여요. 그렇지만 어쩔 수 없이 딴따라라 그런지 다른 사람들이 못 들어오도록 블록 지은 곳도 분명 있구요.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전투적으로 반발하기도 합니다. 그런 부분을 유일하게 들락거리는 사람이 아내와 엄마, 두 명 정도랄까? 거기를 들락거릴 수 있었기 때문에 제 아내가 된 것일 테고. 그렇죠 뭐… . 인생살이 다 쓸쓸한 거죠."
이제는 더 이상 정치 참여하는 의리 남아 있지 않다
"지난 대선 때 선거 운동에 참여하여 중요한 역할을 하셨습니다. 필요성을 또 느끼신다면 참여할 의향이 있으신가요?"
"더 이상 필요성을 느낄 것 같지 않은데요? 그것만으로도 제 인생은 충분히 망가졌고, 더 이상 망가질 이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2002년에는 개인적으로 제가 나서지 않는 것이 결과에 영향을 미치느냐 안 미치느냐를 떠나서 나 자신의 정체성이 크게 문제가 되는 시점이었어요. 제가 87학번인데 그때는 발레 하던 애도 돌 던지고, 체육과 학생들도 데모하러 나오고 그런 시절이었잖아요. 386의 끝자락이었고 6?10 항쟁은 미완성으로 끝났고….
신해철이 좌파나 우파냐를 떠나서 그 당시에는, 지난 대통령 선거 때도 마찬가지고, 우리나라는 좌파가 좌파스럽게 행동할 수 있었던 자유를 가진 적이 한 번도 없어요. 우리는 늘 최선이 아니라 차악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그런 상황을 살아왔고 지금도 그런지도 모르고… 노무현은 제게 최선이 아니라 차악이었거든요.
그렇다고 해서 이회창이 집권했다면 나라가 망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지도 않고 보수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바뀌고 있는 부분도 있고 그만큼 진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타락해가는 속도도 빠르고… . 정치판이 이판사판인 것은 지금이나 그때나 똑같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번 대선 때에는 386의 막내 순번으로 차마 외면할 수 없었던 의리가 남아있었지만, 이번 대통령 선거부터는 제게 그런 의리가 남아있지 않아요. 제가 더 이상 움직일 이유도 없는 거고. 가뜩이나 '저 새끼 정치할 거다'라는 소리 듣고 있는데 이 정도로 의심받는 것으로 충분히 짜증나요. 그래서 그 얘기 한다니깐요 나 아침에 못 일어난다고, 어떻게 정치를 하느냐고요."
"하시면 잘할 거 같은데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정치가들은 어느 정도 권모술수를 굴릴 수 있어야 하고 그것도 능력이라고 보거든요. 어느 정도 있어야 하는데 저 같은 경우는 스트레이트해요. 될 리가 없죠.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어떻게 시작한 음악인데 정치를 하기 위해 음악을 포기해야 한다니 말도 안 되는 거잖아요. 내기 정치한다고 하면 우리 어머니도 뇌졸중으로 쓰러지실 걸요."
"이승환 씨는 얼마 전 더 이상 CD로 음반을 내지 않겠다고 하셨는데… 그 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저는 세상에 CD를 구입하는 마지막 한 사람이 남아있을 때까지 CD를 낼 거예요. 그리고 CD라기보다는 앨범이라는 문제 때문에 그런 것인데… 저는 CD가 사라진다는 위협보다는 앨범이 사라진다는 위협에 더 의미를 두거든요. 그렇다고 해서 디지털 싱글로 가볍게 한 곡씩 툭툭 내는 것도 즐겁다고 생각해요. 그래도 넥스트가 해야 할 일은 앨범 전체로 평가받는 앨범의 음악을 만드는 겁니다. 마지막 CD를 사주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다면 그 사람을 보고 음악을 만들어야죠."
"음악이라는 것을 그릇이라고 한다면 그 그릇에 무엇을 담고 싶으세요? 물론 그릇 자체가 목적이 될 수도 있겠지만요."
"옛날에는 그 그릇 안에 우리나라 현재 가요계가 아직 못하고 있는 것들을 담고 싶었어요. 너무 앞서가는 것도 아니고 현재 나와있는 것도 아닌 반 발짝씩 앞서가는 것을 하고 싶었는데 그런 것들을 하다 보니까 아무리 내가 열심히 해도 그릇 자체가 이상하단 말이에요. 내용을 아무리 열심히 담아도 그릇 때문에 안 돼요. 그릇 만드는 기술을 배우러 떠난 거죠. 지금은 그 안에 무엇을 담아야 한다는 개념이 없어져 버렸어요. 옛날에는 음악을 못하면 죽는다고 생각했고 절벽에 서 있는 심정으로 음악을 했는데 요즘에는 그게 아니라 그냥 내가 살고 밥 먹고 그러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내 안에서 뭔가 나오는 것을 기다리며… 담아내고 사람들이 좋다고 하면 다행이고, 싫다고 하면 말라고 하고, 뭐 이렇게 변했죠. 그러다 보니 이 앨범도 나온 거고요. 내가 결혼했다고 마누라랑 세탁기 광고에 같이 나가고 그러고 싶지는 않지만 내가 가정생활을 하고, 내 인생의 일정 부분 그것이 중요한 게 사실인데, 저는 제 가족이 매스미디어에 노출되는 것은 철저히 기피하잖아요. 하지만 제 팬들은 제가 어떻게 사는지도 궁금할 테고…. 그들에게는 결혼식장에 카메라가 들어오게 하고 내 집에 카메라가 들어와서 보여주는 방법이 아니라 이렇게 음악을 통해서 '저 행복하게 살아요'라고 말하는 거거든요. 그렇게 보여졌으면 좋겠어요."
"평소 여가 생활은 어떻게 보내시나요?"
"거의 없어요. 여가라면 몽땅 다 여가겠죠? 음악 하는 게 일이니까…. 음악이 일이 되지 않으려고 굉장히 노력하거든요. 회사를 만든 다음부터는 서류 결제서부터 업무 지시, 그런 것이 정말로 일이더라고요. 냉정한 부분이고…. 그런 부분에서 많이 잔인해졌어요. 옛날 같은 경우에는 같이 일하는 매니저를 해고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거였거든요. 사람을 패고 들어와도 뒷일 책임지며 끝까지 가는 거였는데 회사를 만들고 나서는 모자란다 싶으면 가차없이 그날로 모가지 날려 버려요. 그러니까 그러지 않을 수 있는 세계가 두 개가 있죠. 가정과 넥스트. 넥스트의 보컬로 들어갔을 때에는 그 세계에서 벗어나죠. 그것도 아주 웃겨요. 후배 애들이 음악 만들어오면 '너네 지금 떠야 되거든? 너 히트곡 몇 개야? 이런 식으로 해도 돼?' 이렇게 하고, 넥스트끼리 모였을 때는 '히트곡? 웃기고 있네. 십 분짜리 노래 네 개로 달려! 우린 그런 거 없어!'(웃음) 이중생활이에요."
근본적인 시스템에 도전하고 싶다
"싸이렌 엔터테인먼트는 왜 만드셨나요?"
"지금 얘기하면 너무 이른 감이 있는데…. 이 회사가 만일 열매를 맺게 된다면 근본적인 시스템에 도전해보고 싶었어요. 한 뮤지션을 프로듀스해서 성공시킨다는 것도 재미있는 작업이지만 저는 모든 것은 근본적으로 시스템에서 오고 있다고 보거든요. 방송과 매스미디어의 구조라든가, 공연장 인프라…. 우리나라 음악 전체 산업과 관련된 인프라의 문제. 이 모든 것이 통째로 뒤집어져야 하는데 그게 가만히 있다고 뒤집어지는 것도 아니고 또 뒤집어질 때까지 가만히 있으면 중간에 괜찮게 음악을 할 수 있는 싹들이 밟혀버려요. 그런 시스템이 빨리 교체가 되도록 촉진을 하는 역할을 하고 그동안에 재능 있는 뮤지션들을 인큐베이팅해서 보호해 줄 수 있는 역할을 하고…. 이런 것이 신해철 개인의 차원으로는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거죠.
자본주의 사회에서 내가 자본을 끌어들이고 매스미디어와 경쟁을 하고 이런 차원으로 들어가기 전에는 대량의 뮤지션들을 인큐베이팅할 수 없더라고요. 나는 그런 목적으로 회사를 만들지만 자본가들은 이윤의 논리로 움직이는 것인데, 그럼 나는 그 사람들에게 이윤을 만족시켜줘야 하고 뮤지션 집단에게는 자기들의 자아성취를 이뤄져야 하고, 그러면서도 한편 그 사람들의 밥줄을 만들어줘야 하고…. 아주 어려운 입장에 처한 거죠.
가만히 있기는 싫었어요. 공부를 안 했으면 모르겠는데 영국, 미국 양쪽 시스템을 공부하고 들어왔는데 결론은 시스템의 문제더라고요. 별개의 얘기긴 한데 아무도 우리나라 대중의 문제에 대해서는 지적하지 않잖아요. 토양이 엿 같은데 여기서 무슨 열매가 열리기 바라요. 매스미디어의 문제, 뮤지션의 문제 등 이게 문제라고 지적하는데 저는 우리나라 미디어에서 우리나라 대중들의 문제를 지적하고 분석하는 것을 본 적이 없어요. 사실은 제일 중요한 문제일텐데….
기본적으로 국민성이 나쁘지는 않은데, 뒤틀려 있어서…. 그렇게 얘기하면 밑도 끝도 없죠. 많은 사람들이 아쉬워하는 것이 우리나라 음악계가 괜찮은 토양으로 자라나던 70년대 시절 박통이 대마초 사건으로 우리나라 음악계를 박살낸 것. 한 번 뒤틀린 풍토는 다시 돌아오지 않고, 90년대 보이던 변화는 디지털 시대가 개막되면서 한방에 날아가고…. 음악하는 사람들은 죽겠는 거죠. 될 만하면 뽀개지고….(한숨)"
"건강하셔야 계획하는 일을 다 하실 텐데요. 건강은 어떠세요?"
"건강은 나이 먹을수록 점점 좋아지는 것 같아요. 오히려 이십 대가 약골이었고. 그 당시 넥스트 콘서트 할 때는 한 시간이 뭐야… 삼십 분 넘어가면 헐떡 댔어요. 지금은 세 시간이 넘어가도 대기실에서 신나게 뛰어다니잖아요. 나이 먹어가면서 운동하고 꾸준히 관리해서 그런지 건강은 점점 좋아져요."
"원래 타고난 몸이 좋으신 거 아닐까요?"
"제 나이 되면 점점 파워가 떨어진다고 하는데 오히려 폐활량은 늘어났어요. 이십 대 때에는 너무 막 살았던 거 같아요. 관리를 안 한 거야….(웃음)"
돌 맞을 각오로 쓰는 에필로그
신해철이 만든 회사 싸이렌 엔터테인먼트에 있는 그의 방. 책이 참 많았다. SF마니아답게 영화 <반지의 제왕>이 개봉하기 전 출간되었던 『반지의 제왕』 세트를 포함하여, 지금은 절판된 수많은 SF소설들, 만화 『캔디 캔디』 애장본을 비롯한 만화. 한국사, 서양사, 미시사, 철학서, 사회과학서를 넘나드는 인문학 서적. 그리고 일명 빨간 표지로 유명한 요한네스 힐쉬베르거의 『서양철학사』. 음악에 가사를 쓰는 시인이기도 하고, 작곡가이기도 하고, 대중들을 움직이는 웅변가이기도 하고, 밴드라는 팀을 이끌고 있는 리더이기도 하고, <고스트네이션>이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필두로 세력화하고 있는 '교주'이자 '마왕'이기도 하고. 이제는 음악 산업이 제대로 돌아가게 하고자 음악 산업 시스템 자체를 만들고자 하는 설계자의 영역까지 넘나드는 이토록 대단한 '그'이지만, 어쩌면 그렇게 질문 질문 하나에 최선을 다해 대답하는지, 어쩌면 그렇게 풍부한 비유와 예시를 곁들인 화법으로 대화 내용 자체를 격상하는지, 그리고 어쩌면 그렇게 제 가족에 대한 사랑을 당당하게 드러낼 수 있는지…. 그의 말마따나 자신감과 자기 확신 없이는 그렇게 행동할 수 없을 텐데, 그가 이뤘고 앞으로 이룰 업적과 성취를 논하기 이전에 신해철이라는 사람은 참으로 멋진 남자이며, 건강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한다. 진심으로.
신해철 인터뷰 ①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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