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하고 있습니까? 다른 인생의 길을 간다면
‘어떻게 소설을 쓰는 거예요? 힘들지 않아요?’ 같은 말을 들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저는 ‘글을 쓸 수밖에 없어서 쓰는 거예요’ 라고 답해요.
‘그때 다른 길을 선택했다면 어땠을까?’ 누구나 한 번쯤 이런 상상을 하곤 합니다. 직장, 연애, 인간관계 등 선택하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을 가슴에 담은 채 살아가는 사람들. 그 선택과 운명에 응원과 위로를 전합니다.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천국에서 온 탐정』 이후 꼬박 2년 만의 신간인데요.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나요?
감사합니다. 재미없는 대답 같지만 글을 쓰고 있었습니다. 저는 항상 그래요. 휴식기를 가지는 작가님들도 계시지만 저는 늘 글을 쓰고 싶습니다. 좋아하는 일이니까요. 출간을 앞둔 지금도 다음에는 어떤 이야기를 쓸까 생각할 정도랍니다.
신간 『찬란한 선택』은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로 이야기를 시작하며 우리 인생에서의 선택이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어요. 어떤 계기로 이 책을 집필하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앞서 저는 글을 쓰는 것이 좋고, 그래서 항상 글을 쓰고 싶다고 말씀드렸지만 지독한 슬럼프에 빠졌던 적이 있어요. 단순히 글을 쓰기가 힘든 정도를 넘어서 작가가 되기로 했던 선택을 의심할 정도였지요. 한때는 작가가 되는 것이 저의 운명이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죠. 당시에는 아무리 걸어도 어디로도 이어지지 않는 길을 걷고 있는 기분이었어요. 모든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져서 한 걸음도 내디딜 수가 없었지요. 마음고생이 심해서인지 몸에도 문제가 생겨서 병원에 입원까지 하게 되었어요. 한창 코로나가 심각하던 때여서 저는 우선 격리병실에 입원했어요. 몸 상태도 엉망이었지만 병원 복도조차 나가지 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병원침대에 누워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저는 작가의 길을 계속 걸어갈 이유를 찾았어요. 그래서 지금까지 글을 쓰고 있지요. 당시에 제가 느꼈던 감정과 고민, 생각들을 소설의 형태로 풀어보고 싶었어요. 어두웠던 시절의 이야기지만 가볍고 경쾌하게 그려내려고 했습니다. 결국 이 소설은 크리스마스처럼 기쁜 이야기니까요.
주인공인 명운은 유명 문학상을 수상하며 등단한 남성 작가라는 설정이잖아요. 혹시 명운이 작가님의 페르소나일까요? 작가님께서도 돌아가고 싶은 선택의 순간이 있으셨나요?
사실 제가 쓴 소설의 주인공들은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저와 닮은 구석이 조금씩 있는데요. 그중에서도 명운은 저를 투영했다고 해도 될 정도로 비슷한 구석이 많습니다. 소설을 쓰다 보면 캐릭터의 감정을 쫓아가지 못해 막히는 순간이 있는데요. 명운의 감정을 풀어내는 데는 거의 막힘이 없었어요. 물론 제가 곧 명운은 아니기 때문에 고민의 순간이 없지는 않았지만요.
당연히 명운처럼 돌아가고 싶은 순간도 있었습니다. 애초에 이 이야기는 저의 고민에서 시작된 것이니까요. 하지만 고민의 결론을 내린 지금은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좀 더 부지런히 글을 쓸 것 같아요. 쓰고 싶은 글이 참 많은데 지금 페이스로는 제가 쓰고 싶은 글을 다 쓰기가 어려워서요.
그 외의 등장인물들도 무척 독특합니다. 마동석을 닮은 미지의 남성, 그리고 전작 『천국에서 온 탐정』의 등장인물들이 나와요. 최초 캐릭터를 구축하실 때 그리셨던 설정들이 있다면 자세히 듣고 싶어요.
먼저 캐릭터의 연대기를 작성한다는 작가님들도 계시는데 저는 글을 써나가면서 캐릭터를 완성해 나가는 편입니다. 처음부터 자세하게 캐릭터를 설정하기보다는 글을 써나가면서 캐릭터를 알아간다고 할까요. 제가 만든 캐릭터지만 이제 막 만난 사람처럼 처음에는 저도 잘 모르거든요. 아무리 여러 가지 설정을 짜놓아도 막상 글을 쓰다 보면 달라지는 경우가 많아서 처음부터 자세하게 정해놓지는 않습니다. 마동석을 닮은 미지의 존재도 마찬가지인데 글을 쓰면서 자연스럽게 생각해 냈어요. 마동석 배우는 카리스마 있는 액션스타이면서 친근하고 코믹한 이미지도 갖고 있어서 신 내지는 천사와 같은 미지의 존재를 그려내면서도 친밀하게 다가올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자칫 무거워질 수 있는 분위기를 적절하게 환기시켜주는 캐릭터이기도 해서 등장할 때마다 저도 즐겁게 썼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리고 『천국에서 온 탐정』의 유진신, 성요한 콤비도 잠깐씩 등장을 하는데요. 저는 제가 쓴 소설들이 다 하나의 세계관 안에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전 작품 속의 등장인물이 종종 등장하기도 합니다. 소설을 재밌게 보다 보면 캐릭터에도 애정이 생기잖아요. 저도 작가이기 전에 독자이기도 한데 오랫동안 볼 수 없는 캐릭터들은 그 후로 어떻게 지내나 궁금하기도 하거든요. 『천국에서 온 탐정』을 본 분들이라면 유진신과 성요한을 보고 반가워하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명운은 돌아가신 아버지의 시계를 통해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다른 인생을 살아 볼 수 있는 특별한 기회를 얻게 되죠. 왜 시계라는 매개체를 사용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정말로 돌아가신 아버지가 주신 시계가 있었어요. 지금은 너무 낡아서 차고 다니지는 않지만요. 아버지는 제가 작가가 되는 것을 반대하셨어요. 제가 고집을 꺾지 않자 ‘너는 반드시 후회하게 될 거야’라는 말까지 하셨지요. 그런데 한참 후에 아버지도 작가가 되고 싶어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아마도 그래서 그토록 강하게 반대를 하셨던 것 같습니다. 아쉽게도 아버지는 제 소설을 보지 못하고 돌아가셨어요. 장례를 치르고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출판사에서 제가 투고한 소설을 출간하고 싶다는 연락이 왔지요. 아버지가 제 소설을 보셨다면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 아버지가 작가가 되었다면 어떤 작품을 써냈을까. 아버지는 작가의 길을 포기한 것을 후회하지 않았을까. 이번에 『찬란한 선택』을 쓰면서 제가 품고 있던 질문들을 다시 꺼내어 보았답니다.
“널 사랑하지 않는 건 불가능해.” 작품 속에서 명운이 평행세계의 딸인 선하에게 반복해서 하는 말이 큰 울림을 줍니다. 결국 선하가 명운의 인간성을 증명하는 존재인 것 같아요. 명운과 선하의 이야기를 통해 독자들에게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가 있으실까요?
가끔 ‘어떻게 소설을 쓰는 거예요? 힘들지 않아요?’ 같은 말을 들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저는 ‘글을 쓸 수밖에 없어서 쓰는 거예요’ 라고 답합니다. 결국 제가 글을 쓰는 이유는 이 일을 사랑하기 때문이지요. 제가 만약 이 일을 그만 둔다면 그건 아마도 글쓰기보다 더 사랑하는 무언가 때문일 테고요. 명운이 보여주었던 보상 없는 노력과 헌신 역시 오로지 사랑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지요. 요즘 사랑이란 말이 너무 남용되고 왜곡되기도 해서 진부하고 유치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결국 끝까지 사랑하는 삶에는 어떤 선택에도 후회가 없다는 말을 하고 싶었어요.
앞으로 집필하고 싶은 글의 방향성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하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저는 방향보다 속도를 말씀드리고 싶어요. 나이가 들수록 자기도 모르게 보폭이 좁아진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요즘 의식적으로 보폭을 넓혀서 힘차게 걸으려고 하거든요. 제가 쓰고 싶은 글들이 많아서요. 오래오래 건강해야 쓰고 싶은 글들을 다 쓸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작가로서도 보폭을 넓혀서 힘차게 걷고 싶어요. 『찬란한 선택』을 시작으로 다양하고 좋은 작품들로 독자 여러분들 더 자주 만나 뵐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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