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반지하 “지금 저 같은 사람은 뭘 해야 할까요?”
『이반지하의 공간 침투』
퀴어, 예술가, 노동자 이반지하. 그가 서울시의회와 대중교통, 편의점, 웨딩홀, 호텔에 나타나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사회가 밀어낸 자리를 다시 점거하는 이반지하만의 과정. (2024.09.04)
이반지하의 첫 번째 책 제목은 『이웃집 퀴어 이반지하』다. 당신의 이웃집에도 퀴어가 살 수 있다고 말하는 듯한 제목. 두 번째 책 제목은 『나는 왜 이렇게 웃긴가』다. 당신의 이웃집에도 살 수 있는 퀴어는, 주로 남들에게 비웃음을 당하는 존재다. 어떤 퀴어는 비웃음에 대항하기 위해 스스로 웃기길 선택하기도 한다. 어떤 퀴어는 반대로 ‘정상사회’를 향해 너네가 웃긴 거라고 이야기한다. 이반지하는 이러한 유머를 ‘생존자 유머’라고 말한다.
세 번째 책 제목은 『이반지하의 공간 침투』다. 이번 책에서 그는 서울시의회와 대중교통, 편의점, 웨딩홀, 호텔을 돌아다닌다. 그는 공간에서 밀려나면서도 다시금 공간을 점거한다. 퀴어 예술가이면서 동시에 노동자로 한 공간 속에 녹아든다. 이 공간에 퀴어가, 웃기는 사람이, 노동자가, 예술가가 있다. 여기 있다.
‘집을 나선 집게’ 이야기로 책을 시작해요. 끊임없이 자기 공간을 찾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예요.
독자가 글을 읽고 나서 어떤 공간을 상상할지 많이 생각했던 것 같아요. 전작보다 힘들거나 내밀한 이야기를 많이 꺼내놨는데, 결국 이것을 꺼내놓으면서 당신들의 공간은 어떤지, 당신들도 비슷한 경험이 있는지, 그동안 유통되지 않았던 이야기를 듣고 싶었던 마음이었어요. 책을 내기 전 겁이 났어요. 트라우마의 중심을 건드리는 글도 많이 있었고요. 제 글을 교정 보면서 다시 트라우마를 자극받는 느낌? 참 나쁜 직업이죠. 이런 직업(예술가)을 가져서는 안 되겠죠.
그래서 다들 하지 말라고 하나 봐요.
그러니까요. 나도 내 아들은 안 시킬 거예요. (웃음) 글을 쓸 수는 있어요. 그런데 대중에게 퍼졌을 때 누군가 가십으로만 소비하면 제가 견딜 수 있을지 많이 고민했어요. 아직까지는 좋은 이야기를 더 많이 들었던 것 같아요.
북토크는 많이 했나요? 어떤 이야기가 나왔나요?
원가족 관계나 계급 이동의 측면에서, 자본주의 사회가 원하는 계급 이동은 가난한 사람이 부자가 되는 시나리오잖아요. 부자였던 사람이 가난해지는데, 거기에 자발성까지 있다는 이야기를 끌어다 놓으니 생각보다 자기가 경험한, 사회가 원치 않은 계급 횡단의 경험을 이야기해 주시는 분들이 꽤 있었어요. 우리가 TV에서 보는 재벌 서사를 소비하는 거 말고, 실재하는 사람들이 굴러 떨어지고 뛰쳐나오기도 하는 이야기를 듣게 됐어요.
이반지하의 캐릭터는 늘 자신감으로 똘똘 뭉쳐 있다고 생각했어요. 항상 난 최고고 너네가 이해 못 하는 거라는 느낌. 그런 모습과 다른 이야기도 책에 실린 것 같아요.
자신만만함이야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예요. 자신감이라고 일컬어지는 건 기존 사회에서 분석 틀이 없었기 때문이고요. 기존에 분석 틀이 있었다면 그걸 토대로 순위를 매기고 싶겠지만,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는 계속 빗나간 사람이 되거나 낙오자가 될 수밖에 없어요. 저는 계속 제 작품을 하고 있을 뿐이에요. 충분히 똑똑하고 재능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것을 스스로 말할 뿐이고요. 가만히 있으면 아무도 이야기해주지 않는다는 걸 경험으로 알거든요. 소수적 정체성을 가진 사람이 대중의 눈앞에 서는 방법을 사람들이 잘 몰라요. ‘괜찮아요’ ‘저는 그렇게 잘하지 못 해요’라고 하면 사람들은 한 켠도 공간을 내어주지 않아요. 이만큼 할 수 있다고 하면 매번 놀라죠. ‘이것까지 하실 수 있다고요?’ 하면서요.
‘이것까지 할 수 있다고요?’도 있고, ‘이 정도까지 한다고?’ 느낌도 있죠.
이 정도까지 요구한다고? 과한데? 하면서요.
‘이반 지하의 공간 침투’, 제목은 어떻게 나오게 됐나요?
출판사에서 여러 가지 주제를 다루는 것도 좋지만, 심지가 있는 주제 하나를 정해서 써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했어요. 에세이 작가로서 계속 글을 쓴다면 이번에는 주제를 정하는 게 저한테도 맞을 것 같았어요. 작가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글이든 그림이든 퍼포먼스든 개괄적으로 먼저 보여주고 그다음 조금 더 뾰족하게 자기 세계를 제시하는, 점점 더 대중성을 잃는 길로 가야 할 것 같거든요. 쓰다 보니 제 모든 글에서 공간이 중요한 요소이기도 했고, 어떤 경험을 할 때 공간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 보면서 자연스럽게 내용을 구성했어요.
입말이 많이 나와요. 의도된 최소의 교정으로 느껴졌는데, 자기만의 언어와 공간을 만들려는 시도일까요?
교정이 글 쓸 때마다 큰 도전이에요. 저는 제 입장에서 도전이고, 편집자님들의 도전도 있고요. 구어로만 풀어놓으면 편집자가 일을 안 했다는 오명을 쓸 수 있으니까요. 대중 독자를 염두에 두고 쓰는 것이기 때문에 항상 어느 정도 타협하거든요. 그런데 어떤 때는 퀴어 쪽을 잘 몰라서 헤테로 말로 고치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어요. 긴장하는 부분이기도 해요. 이쪽에서는 평평하게 두드려 주시려고 하고 저는 계속 뾰족하려고 하니까. 그 어디메를 서로 계속 찾았어요. 앞으로 평생 계속될 일인 것 같습니다.
전작에서 표지를 바꾼 적이 있어요.
사람들이 이미지가 저한테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모를 때가 있어요. 제가 그림도 그리는 사람이라는 걸 사람들이 쉽게 잊어요. 이전에 저 같은 작가가 없었기 때문에 겪어야 되는 일인 것 같기도 해요. 표지에 제 그림을 썼으면 좋겠다고 피력했고, 그게 과한 주장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어요. 표지는 ‘왕관을 쓴 광대’라는 그림에서 가져왔는데, 이반지하를 잘 표현하는 인물들이라고 생각했거든요.
도서가 상품이기도 하고, 협업을 통해 나오기 때문에 개인 작업과는 많이 다를 거예요.
맞아요. 그래서 매일 고민해요. 이게 지금 나다운 게 맞나? 저는 제 세계관을 제시하는 거고, 책 또한 저에게 중요한 작품인데, 협업자 역할로서도 생각해야 하는 거죠.
출판사에서는 이 작가가 왜 이럴까, 생각을 하게 되는 거죠. (웃음)
또 시작이다, 하면서. 어쩔 수 없는 긴장이 있죠. 파는 거니까. 서로 치열하게 긴장하는 게 저는 좋은 것 같아요. 언쟁까지는 아니어도 서로 계속 의견을 피력하고 대화하는 게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반지하가 노동을 힘들어하는 까닭은 결국 예술을 하기 때문일 텐데, 일하기 싫다는 일반적인 생각과, 예술인으로서 생각하는 노동의 진부함이 다른 게 있을까요?
예술인으로서의 자아를 확립하면서, 신자유주의가 요구하는 속도와 방향성을 내재한 상태에서는 내 예술 자아를 함께 키우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고 느꼈어요. 이 사회가 원하는 방향이 있어요. 속도도 빠르고요. 내가 제시하는 작품과 세계가 사회 질서와 다르다면, 그걸 제시하는 데 엄청난 시간이 필요하거든요. 너무 크게 바꿔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거기에서 오는 에너지 소모가 많고요.
작가 개인으로서요, 아니면 사회가 받아들이는데요?
개인으로서요. 내 세계를 세우려면 세울 시간이 있어야 하잖아요. 예술 할 때는 진심이어야 하고 제 내장까지 들어가서 봐야 해요. ‘나’가 누군지가 너무 중요하고요. 반면에 알바도 하고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알아야 월세를 낼 수 있는 돈이 벌려요. 제가 가진 기술 중에 가장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건 영어였거든요. 그런데 영어 학원에서 일하면 갑자기 그 모든 것을 잃고 영어를 배우면 여러분에게 많은 기회가 온다고 이야기하는 거죠. 강사로 새벽 강의를 하고 돌아와 그림을 그리고, 한편으로는 자기 자아도 세우는 게 불가능한 일이라고 느꼈어요. 그렇게 살다가 뇌가 타버리는 것 같았어요. 그게 가짜는 아닌데, 다른 방향이에요. 이 스위치는 설거지하다 청소하는 식으로 바뀌는 게 아니라 완전히 내장까지 바꿔 끼는 거라서요. 그리고 신자유주의가 원하는 노동을 하다 보면, 돈벌이 쪽에서도 끊임없이 스카우트 제의가 와요.
유능하니까요.
유능하니까 더 많은 수업을 주겠다, 더 좋은 학원으로 가자, 돈 버는 자아는 계속 발전이 보이는데 예술가 자아는 그런 게 없어요. 누구도 저한테 전시 하자고 하거나 요즘 작업이 어떠냐고 물어보지 않아요. 제 작업에 관심 있다는 사람들도 싸게 부르면 와서 공연이나 해줬으면 좋겠는 거예요. 사람들은 돈 먼저 벌고 그 다음에 예술 하라고 하지만, 예술가 자아는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쉽게 만들어지는 게 아니에요. 신자유주의 질서와 병행하기에는 부담이 크다는 거죠. 그래서 더 이상 영어 강의를 할 수 없다고 느꼈어요.
하지만 그 경험으로 인해 에세이 한 편이 나오긴 했네요.
이건 결과론이죠. 중간에 자살했으면 결과가 달랐겠죠. 살아남았으니 과정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죽은 친구, 모찌 이야기가 나옵니다. 성소수자 판에서 워낙 사람들이 많이 죽기도 하고, 사람들이 죽는 경험이 사람들한테 누적되고 있어요.
죽음이 저한테도 누적되고 있고, 이걸 기록해야 한다는 마음도 있어요. 글을 쓸 때 여러 가지 자아가 드러나는데요. 그중 하나가 기록자, 증언자, 목격자인 것 같아요. 성소수자의 역사는 너무 쉽게 지워지고, 이반지하도 굉장히 쉽게 지워져요. 우리가 했던 투쟁이나, 그 과정에서 어떤 사람이 죽었다는 이야기가 누군가한테는 별일이 아닐 수 있어요. 어떤 의미에서는 우리도 쉽게 잊죠. 둔화시키려고. 살아야 하니까. 그런데 작가로서의 저는 기록해놔야 한다고 느껴요. 제가 아는 성소수자의 죽음이 다인 것도 아니잖아요. 더 많이 있을 거예요. 나름 시대의 증언자이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어떤 일은 작정하고 기록하려고 쓰고, 그러면서도 제 느낌을 잃지 않으려고 해요.
자기 공간을 찾기 위해 계속 싸우는 과정 중에 조금씩 뭔가 가진 경험이 생겼어요. 실제 공간이 될 수도 있고, 국립현대미술관 레지던시 입주 작가로 선정되었다는, 인정으로서의 공간도 있을 거고요. 조금씩 내 공간이 넓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때는 없나요?
그런 성취감은 없었던 것 같아요. ‘그래도 여기까지 왔다’는 느낌은 아직 없어요. 과거와 비교했을 때는 나아지고 있긴 한데, 내 집 마련 이런 걸 어떻게 하는지 사실 잘 몰라요. 보통 은행 빚으로 할 텐데, 저는 은행에서 빚을 내줄 정도의 신용이 없을 거거든요. 월세는 착실하게 오르는데 인건비는 늘 제자리고요. 모든 면에서 예전보다는 더 나아졌지만 대단히 안정적이지는 않아요.
예술가로서의 인정은 어떤가요? 예전과 비교했을 때요.
분명히 있죠. 나이가 들면서 권위가 생기기도 했고 예전보다 확실히 대중 앞에 서는 일이 많아져서 더 많은 신뢰를 받아요. 그런데 예술을 계속하려면 대중의 관심은 희생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느껴지거든요. 예술가로 살려면 사생활을 팔아야 해요. 나쁘게 말해서 파는 거지, 어떤 사람의 세계관을 인식시키려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알려야 하잖아요. 하지만 많은 사람에게 시선과 관심을 받는 건 무서운 일이에요. 뜨거운 불길이 느껴져요. 지금은 나를 띄워주고 따뜻하게 해주는데 금방 어느 한순간 나를 태울 것도 알고 있어요. 매번 성공해야 한다고, 무엇이 됐든 제대로 해내지 않으면 다음에 섭외가 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위험한 놀이를 하는 느낌, 왕관을 쓴 광대 같은 느낌이죠.
하지만 사람들이 나의 예술을 인정해 줬으면 좋겠다는 욕망도 있죠.
평생 있었죠. 지금도 어떤 면에선 있죠. 받아 마땅한 대우를 받기 위해 계속 싸워나가는 과정인데, 인정하면서 동시에 소비되는 존재라는 양가성이 있는 것 같아요.
요즘 이반지하를 구성하는 요소 중 가장 큰 게 ‘감태’*일 것 같은데, 20~30대 여성, 퀴어 비율이 높은 것 같아요.
감태는 정말 재미있는 존재예요. 기존 진보 운동이나 성소수자 운동이 끌어내지 못한 개인들 같아요. 예상 외로 헤테로가 많습니다. 여러 다층적인 인물들이 섞여 있고, 활발하게 활동하는 사람들이 20~30대여서 그렇지 나이대나 덕질의 방식이 다양해요. 납작하게 어느 특성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이야기하기 힘들어요. 이반지하를 아버지라고 막 떠받든다기보다, 어떤 의미에서 위로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꽉 짜여진 세상에 저런 애도 좀 있어야 내 숨통이 트인다는 위로.
헤테로 결혼식에 사회자로 참석한 일화가 나와요.
그 친구들도 되게 퀴어가 되고 싶어해요. 퀴어 되고 싶다는 말이 다층적인데, 정말 퀴어 정체성이 되고 싶은데 못 되는 것일 수도 있고, 퀴어 문화에, 하위 문화와 주변 문화에 자기를 이입하기 쉬워서 그렇게 표현할 수도 있고요.
이반지하가 퍼포먼서로서 알려졌을 때는 이반지하가 미술가라는 사실을 몰랐고, 나중에 미술’도’ 한다고 생각했다가, 팟캐스트에 출연하고 작가가 되는 모습을 봤어요.
그만큼 보여줄 수 있던 기회가 없었던 거죠.
스스로도 이게 무슨 일이야 하는 순간이 있었겠죠.
이런 방식이 될 줄 몰랐죠.
지금 이반지하를 중간정산 한다면, 어떻게 평가하나요?
기반이 생긴 것 같긴 해요. 불안하지만 아주 굶어죽진 않을 수도 있겠다 싶어요. 한국사회에서 저 같은 사람은 본 적이 없거든요. 그러면 지금 상황에서 저 같은 사람은 뭘 해야 할지 생각하죠.
최근 넷플릭스에서 미국 퀴어 신에 관한 다큐멘터리(<아웃스탠딩: 코미디 혁명>)를 봤어요. 문득 ‘저기는 이반지하 같은 사람이 많이 있네…’라고 생각했거든요. 한국에서는 20년째 이반지하만 있는 느낌인데, 왜 그럴까요.
일단 커밍아웃을 할 환경이 안 되어 있고, 커밍아웃을 결심하는 개인도 없어요. 서로 얽혀 있기 때문에 뭐가 먼저인지 밝히는 건 큰 의미 없어요. 누가 봐도 퀴어인데 커밍아웃 안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데 큰 문제의식을 갖고 있어요.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되면 모든 게 저한테 오거든요. 제가 만나는 사람들이 저를 자신들이 만난 첫 퀴어 예술가라고 생각해 버려요. 사실 도서관** 같은 일도 다른 퀴어 작가들한테는 일어나지 않았을 거예요. 커밍아웃하지 않았으니까. 이번에 ‘이반지하의 이면지’라는 토크 인터뷰 프로그램을 유튜브에서 시작했어요. 헤테로 질서에 있는 언론인들을 만나면 제가 저항하는 말하기를 하게 돼요. 자신의 모습을 끌어내기보다는 이들에게 어떻게 보일지, 내가 성소수자를 대표하게 되지 않을지 걱정하는 거죠. 그런 긴장감이 없는 프로그램을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예전에 리키 마틴이 엘렌 드제너러스 쇼에 나와서 커밍아웃했던 모습을 기억하거든요. 한국에서는 누가 봐도 게이인 사람이 커밍아웃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없어요. <라디오 스타> 나가서 커밍아웃할 거예요? 어떻게 받아줄 건데요? 그걸 받아줄 역량이 있는 개인도 없어요. 그래서 유튜브 채널 안에서 소화할 수 있는 규모로 자리를 마련하려고 해요. ‘이면지’인 이유가, 기존 언론이 이미 다뤘던 사람을 다시 다루는 거거든요. 앞으로 누군가 커밍아웃하면 인터뷰 제안을 해볼 생각이에요. 혹시 이 프로그램이 조금 더 알려진다면, 이미 유명한 사람이 나와서 커밍아웃 하면 좋겠어요. 지금은 교두보가 되어야 한다는 책임의식이 있어서, 그걸로 제 예술 작품을 하는 것 같아요.
앞으로도 바쁘네요.
책을 많이 좀 사주셨으면 좋겠어요.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사람에게 선물도 해 주고요. 이걸 많이 해주셔야 다음 책과 다음 계약이 나올 거예요. 솜씨를 좀 발휘해 주셔라, 독자님들에게 그런 말을 하고 싶습니다.
*감태 : 이반지하 팬덤의 별칭.
**도서관 : 2023년 7월 이반지하는 울산 동구 남목도서관에서 북토크를 할 예정이었다. 언론에 퀴어, 비혼 등의 주제가 공개되자, 도서관 게시판에는 ‘동성애 옹호 강의’라며 항의 글이 올라왔다. 도서관은 민원이 계속되자 강연을 취소했고, 이번에는 ‘소수자 혐오’라며 훨씬 더 많은 항의글이 게시판을 뒤덮었다. 도서관 측은 강연 취소를 번복하며 이반지하에게 ‘퀴어, 젠더, 동성애를 언급하지 말라’는 지침을 내렸다. 이반지하는 북토크였던 강연을 ‘정상 가족 만들기’라는 퍼포먼스로 다시 만들어 강연대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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