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자본으로 바꾸는 장기 퀄리티 투자
『노마드 투자자 서한』 generalfox(변영진) 번역자 인터뷰
『노마드 투자자 서한』은 독립 출판물로는 이례적으로 단기간에 3천 부 이상 판매고를 올렸고, 많은 독자들의 출간 요청에 힘입어 번역과 편집, 디자인 등을 가다듬어 새롭게 정식 출간되었다. (2022.12.02)
시장의 고수도, 재야의 고수도 많은 투자계에서 오랜 기간 많은 이들이 인정하는 사람이 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또 만나고 싶어 하지만 절대 언론에 노출되는 것을 원치 않는 사람, 영국의 펀드 매니저였던 '닉 슬립'과 '콰이스 자카리아'이다. 이들이 '노마드 투자조합'이라는 이름으로 2001년까지 2013년까지 약 13년간 펀드를 운용하며 투자자들에게 보냈던 서한이 한 권의 책으로 묶어져 나왔다. 기업의 자본 배분과 비즈니스 모델, 경제적 해자 그리고 투자 심리까지 시대를 관통하는 투자의 본질을 말하는 『노마드 투자자 서한』은 독립 출판물로는 이례적으로 단기간에 3천 부 이상 판매고를 올렸고, 많은 독자들의 출간 요청에 힘입어 번역과 편집, 디자인 등을 가다듬어 새롭게 정식 출간되었다.
정말 신기한 책이 나왔습니다. 이 원고는 원래 오픈 소스였는데, 무작정 저자들에게 연락해서 번역 허락을 받았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과정을 통해 진행하게 되셨나요?
이 투자자 서한은 영국의 투자 펀드인 '노마드 투자조합'의 펀드 매니저 '닉 슬립'과 '콰이스 자카리아'가 2001~2013년까지 13년간 투자자들에게 발송했던 반기 단위 문서입니다. 펀드 투자자를 대상으로 한 비공개 문서였기에 2014년 펀드가 해산한 뒤에도 어디선가 유출된 해적판으로만 공유됐습니다. 그러던 중 닉 슬립이 투자업계 은퇴 후 세운 자선재단 홈페이지에 2021년 초 서한의 공식 버전을 공개했습니다. 저와 공동 편역자는 이를 읽고 큰 감명을 받아, 한국어 번역 의사를 밝혔습니다.
정식 출간된 원서가 아니다 보니, 정상 상황이라면 번역서가 출간될 가능성이 거의 없을 텐데, 그렇게 사장되기에는 너무나도 아까운 콘텐츠였습니다. 다행히 슬립의 승인을 얻어 저희가 번역한 내용을 먼저 웹사이트에 무료로 공개했습니다. 하지만 그 방대한 분량 때문에 가독성이 떨어지는 한계를 느껴 독립 출판물을 직접 제작, 원가 수준의 가격을 책정해 총 3,000부를 배포했습니다. 그러던 중 더퀘스트 편집자와 우연히 만나 정식 출간을 제안 받았습니다. 정식 출간이 저희 편역자의 능력 범위와 관계없이 더 많은 독자가 서한을 접할 수 있는 가장 지속 가능한 방법이라고 판단해 원저자의 승인을 거쳐 책이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닉 슬립'과 '콰이스 자카리아'라는 저자는 한국 독자들에게는 낯선 인물입니다. 이들에 대해서 좀 더 알려주세요.
두 사람이 운용한 노마드 투자조합은 약 13년간 누적 투자 수익률 921%, 연 복리 수익률 21%라는 기록을 달성한 투자 분야의 전설적인 존재입니다. 동 기간 시장(MSCI 선진국 지수)의 누적 수익률은 117%, 연 복리 수익률은 6.5%에 그쳤습니다. 슬립과 자카리아는 1990년대 후반 아시아 금융 위기 때 동남아시아 담당 펀드 매니저와 애널리스트로 만나 20년 이상 함께 투자했습니다. 투자업계 기준에서 여러모로 비주류에 가까운 철학과 배경을 지녔고, 세간의 관심에서 멀어지려는 성향의 사람들인데, 역설적으로 그 때문에 더 오랫동안 회자되는 신비로운 투자자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두 분의 역자님은 노마드 투자조합의 무엇에 가장 끌리셨을까요?
저희 편역자는 대학교 동기로, 각자 경험을 통해 훌륭한 투자자는 어떤 자질을 갖췄는지 고민하고 훌륭한 투자자들에 관한 생각을 나눠왔습니다. 저희 생각에 이들은 다수의 의견에 휘둘리지 않으며 독립적으로 사고하고 투자를 그저 돈이나 명예의 수단이 아니라, 체화한 삶의 방식으로 대합니다. 그 중에서도 슬립과 자카리아는 가장 특별한 사례였습니다.
물론, 노마드는 뛰어난 투자 실적과 올바른 투자에 대한 철학, 비즈니스 모델 등에 관한 심층 분석만으로도 특별합니다. 하지만 책의 「시작하며」와 「마치며」에서 거듭해 논하듯 올바른 투자를 올바른 삶의 방식으로 연결 지어 자선 활동에 헌신하고 있는 모습이 그 특별함을 완성해 주었습니다. 최근 스토아 철학에 관한 책을 읽고 있는데, 저에게는 이 책이 이제 스토아 철학서로도 느껴질 정도입니다.
'닉 슬립'과 '콰이스 자카리아'는 아마존과 코스트코의 가치를 일찌감치 파악했던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 내용을 짤막하게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아마존과 코스트코는 두 사람과 노마드 투자조합에 부와 명성을 안겨다 준 대표 투자 종목입니다. 노마드는 2002년부터 코스트코에 투자했는데, 코스트코가 타 할인점보다 앞서 나가고 이를 오랫동안 지속할 수 있는 성공의 원천을 간파했습니다. 코스트코의 '규모의 경제 공유' 비즈니스 모델을 규명했고, 이것이 가장 높은 가중치를 부여해야 하는 정보임을 인식했기 때문입니다. 슬립과 자카리아는 코스트코에 투자한 덕분에, 2005년경 아마존이 처음으로 아마존 프라임을 도입하며 구상한 미래의 모습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처음 투자할 때 포트폴리오 비중을 그리 크게 할애하지 않았던 코스트코 투자의 실수에서 교훈을 얻어, 아마존에 총운용자산의 30%가량을 집중투자 했습니다. 여기에 장기 투자 원칙도 지키면서 투자조합 해산 시점에 투자자의 원금을 열 배로 불리는 성과를 달성할 수 있었고, 아마존과 코스트코 투자가 그 핵심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규모의 경제 공유'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설명해주세요.
'규모의 경제'와 '공유'를 합친 개념으로 생각하면 이해가 빠를 것입니다. 책에 따르면 '비용과 이익률을 낮게 유지함으로써 성장하는 규모의 효율성을 고객과 공유할 때 형성되는 선순환의 고리'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이 비즈니스·투자 모델이 그렇게 강력한 이유는 '공유' 때문인데, 규모의 경제 효과 덕분에 고객 판매가를 더 낮추는 형태로 편익을 고객에게 돌려준 결과 고객이 더 많이 구매하는 '보답'을 장려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규모의 경제 공유' 기업과 고객 간에 유대와 신뢰가 형성된다면 타 경쟁업체가 이 관계를 뚫기 어렵고, 그래서 효과가 오래갑니다. 그 대표 사례가 바로 오프라인의 코스트코와 온라인의 아마존입니다. 노마드 투자조합이 두 기업에 높은 비중을 실어 장기 투자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심층 분석을 통해 미래의 최종 목적지를 생각하며 당장의 이익 실현을 미루었기 때문입니다.
일반 투자자가 기업의 최종 목적지를 생각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슬립과 자카리아도 처음부터 그러한 관점을 가지고 태어난 것은 아닙니다. 책에서 여러 번 언급하는 '투자자가 저지를 수 있는 가장 큰 실수', 즉 승자 주식을 너무 빨리 매도하는 실수들을 통해 교훈을 얻었습니다. 두 사람은 최초 매수 시점의 분석에 안주하거나 회계 수치나 밸류에이션 지표에 지나치게 큰 가중치를 부여해서 그 실수를 저질렀다고 솔직하게 인정했습니다. 저희를 포함하는 일반 투자자 역시 실수에서 교훈을 얻는 태도에 더해, 기업 가치의 심층 현실인 비즈니스 모델과 고객과의 관계에 집중함으로써, 승자 주식과 오랫동안 함께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현재 주식 시장이 많이 좋지 않습니다. 내년 전망도 밝지 않습니다. 힘든 시기를 지나고 있는 많은 사람에게 이 책이 어떻게 다가갔으면 하는지 들려주세요.
저희 편역자는 투자 철학이란 각 투자자의 삶과 경험, 가치관, 취향이 반영된 총체적 산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이 책의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시간이 지날수록 노마드, 곧 슬립과 자카리아의 투자 철학이 실수와 학습을 통해 진화했다는 점입니다. 투자 철학의 진화 자체나 그 궤적을 이렇게 깊이 들여다볼 수 있는 투자서는 흔치 않습니다. 나아가 시장의 부침에 대한 생생하고 솔직한 기록을 읽으면서 두 사람 같은 투자 대가도 스트레스를 받고 투자 손실을 내는 시기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들이 시간이 지나 큰 보상을 받은 것은 원칙을 고수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책을 통해 이들의 여정을 경험하고 나면, 자기 원칙을 지켜 나가는 매일의 시간이 갖는 가치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어려운 심리적·분석적 작업을 하고 미래 자본 이익으로 가득 차는 때가 바로 올해 같은 시기입니다"라는 말을 상기하며, 모두가 목적지를 향해 한걸음 내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generalfox(변영진) 서울대학교에서 경영학을 전공했고, 컨설팅, 가치 평가, 디자인 제품, 아티스트 매니지먼트, 컴퍼니 빌딩 등 다양한 분야의 회사를 창업하고 운영했다. 본격적으로 투자를 시작하면서 김태진 공동 역자와 함께 스터디를 하다 닉 슬립과 콰이스 자카리아의 투자자 서한 원문을 읽게 됐다. 그들의 철학에 크게 감명을 받아 '뭐라도 해보자'라는 마음으로 번역을 결심, 각자의 경험과 노하우를 활용해 번역부터 웹사이트(www.nomadletters.kr) 개설과 독립 출판물 제작, 배송에 이르는 모든 일을 직접 진행했다. 이 독립 출판 작업은 비영리 프로젝트로 일부 수익금을 기부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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