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숙한 어른이라면 갖춰야 할 언어 필터링
『이제 그런 말은 쓰지 않습니다』 유달리 저자 인터뷰
우리 사회에 만연한 40여 개의 차별 언어를 한 뼛골 때리는 만화와 저자가 직접 경험한 생생한 일화를 바탕으로 소개하는 책 『이제 그런 말은 쓰지 않습니다』는 이제 막 언어 습관을 재점검하기 시작한 이들에게 아주 좋은 입문서가 될 것이다. (2022.10.21)
언어 감수성은 성숙해진 현대 사회에서 반드시 갖춰야 할 필수 덕목이 되었다.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물론, SNS 상과 사적인 자리에서도 자신이 하는 말이 어떤 뜻을 품고 있는지, 타인에게 어떻게 들리는지 알고 책임감있게 발화하는 능력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성숙한 어른이라면 응당 함부로 누군가를 차별하거나 혐오하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안다고 해서 곧바로 실천하기란 쉽지가 않다. 그 이유는 이미 우리에게 익숙해진 수많은 일상 언어 속에 이미 차별적 인식과 편견이 스며든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40여 개의 차별 언어를 한 뼛골 때리는 만화와 저자가 직접 경험한 생생한 일화를 바탕으로 소개하는 책 『이제 그런 말은 쓰지 않습니다』는 이제 막 언어 습관을 재점검하기 시작한 이들에게 아주 좋은 입문서가 될 것이다.
이번 책은 첫 번째 책인 『나다운 건 내가 정한다』를 집필하실 때보다 더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들었습니다. 글을 쓰면서 포기하고 싶을 때도 많으셨다고요?
처음 이 책의 집필을 제안받았을 때는 꽤 흔쾌히 'YES'를 외쳤어요. 글이 정말 쓰고 싶었고 또 습관처럼 쓰는 말의 차별과 선입견을 다루는 일이 매력적인 작업이라고 느꼈거든요. 그런데 쓰면서 점점 'NO'가 입에서 나오더라고요. '내가 그렇게 완벽하지 않은 사람인데 누군가에게 그런 말을 쓰지 말라고 할 자격이 있을까?'라는 부담감이 저를 질식하게 했던 순간도 있었어요. 그렇지만 지금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이야기이자, 책이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꼭 완성해야겠다는 사명감과 이 책을 제안해준 편집자님에 대한 책임감을 동력 삼아 완주했어요.
그리고 글을 쓰지 않는 동안에 가끔 제 다음 글을 읽고 싶다는 분들의 DM을 받았어요. 그분들의 응원과 이전 책에 대한 리뷰를 읽다 보니 포기하지 않고 더 좋은 글을 보여드리고 싶다는 마음이 들더라고요. 이번 책에도 리뷰를 많이 남겨주시면 저는 그걸 다음 책을 만드는 동력으로 삼을 것 같아요. 사실 출간 이후로 열심히 검색해보고 있어요. 책이란 게 음식 리뷰처럼 간단하지 않으니까 더욱 소중하더라고요.
저자 소개에서 "동생이 장애인이라서 자기소개서에 쓸 말이 많겠다"라는 친구의 말이 깊은 상처로 남았다고 하셨어요. 친구의 말은 '장애'를 고난과 역경을 딛고 일어서는 감동 서사의 소재로 여기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싶은데요. 이러한 인식 때문에 겪었던 불쾌하고 불편한 상황이 많았을 것 같습니다.
장애인의 가족으로 살다 보니 공감과 동정을 헷갈리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몸소 느끼게 돼요. 사실 저는 동생이랑 다니면서 숨만 쉬어도 '대견하다'라는 말을 정말 많이 들었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제가 뭘 그렇게 대견했나 싶은 순간이 많았어요. 물론, 동생과 저에게 던지는 안쓰러운 시선에 담긴 선의가 아주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에요. 그런 말을 하는 사람에게 ‘장애’는 청천벽력 같은 일처럼 느껴질 테니까요.
하지만 그런 무지한 칭찬과 관심은 친절한 폭력에 가까워요. 장애를 바라보는 관점이 '대견하다'라는 감상에 그치거나 장애를 어떤 극복의 대상이나 감동 서사의 소재로 소비하는 행위에 그친다면 장애인은 비장애인에게 안쓰러운 존재로만 남을 거예요. 또한, 어떤 사회든 개인이 특별히 대견해야만 그 삶이 제대로 굴러간다면 그건 그 나라의 복지 서비스가 아주 보잘것없다는 방증 아닐까요. 정말 장애인을 위한다면, 장애인의 가족들이 특별히 대견하지 않아도 장애인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복지 서비스를 구축하기 위한 일에 목소리를 보태주세요. 장애인이 권리를 요구하는 시위는 불편해하면서 장애인을 동정의 대상으로만 보는 건, 그냥 그대로 장애인의 그런 대상으로 머물길 바라는 거 같아요.
책을 집필하면서 '나와 함께 열띤 토론을 해준 가족, 나의 사랑, 나의 친구'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셨어요. '차별 언어'에 대한 주제로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하면서 느끼게 된 긍정적인 변화가 있었을까요?
사실 책에서 언급한 대부분의 차별 언어가 주변 사람들과 의견을 나누면서 알게 된 말이에요. 서로 직접 들었던 불쾌한 단어들을 토로하면서 그 상황들에 공감도 하고, 반성도 하고, 또 다신 안 써야겠다고 다짐도 하게 되었죠. 하지만 다짐한다고 해서 사람이 하루아침에 바뀌는 건 아니니까 쓰지 말자고 약속한 말을 쓸 때도 있는데요. 그때면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본인이 화들짝 놀라서 "아, 실수!"라고 외쳐요. 저는 그게 좋은 변화라고 생각해요. 사람이 완벽할 수 없어요. 아무리 주의해도 뒷걸음질 치다가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는 거니까요. 대신 자신의 무례함을 아는 사람은 웬만해서 대형 사고를 치지 않더라고요. 사람은 완벽할 수 없으니 누구나 실수를 해요. 그럴수록 중요한 게 잘 수습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어쩌다 실수로 차별 언어를 내뱉더라도 인지만 한다면 골든타임 안에 대처하여 잘 수습할 수 있죠.
이 책을 읽고 차별 또는 차별 언어에 대해 새로운 관점을 얻게 될 독자들이 많을 텐데요. 작가님의 인식 변화에 큰 영향을 주었던 책이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저는 『장애학의 도전』이라는 책에서 '특정한 관계 속에서만 손상이 장애가 된다'라는 말이 와닿더라고요. 카를 마르크스의 '흑인은 흑인일 뿐이다. 특정한 관계 속에서만 흑인은 노예가 된다'라는 문구를 차용한 것인데 저는 이 문장이 장애에 대한 제 고정 관념을 깨줬어요. 우리가 생각하는 장애는 사실 '장애'가 아닐 수 있던 거죠. 책에서도 언급했지만, 예를 들어 다리의 '손상'은 휠체어를 이용한다면 평지에서는 장애가 아니에요. 웬만하면 어디든 갈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계단을 마주하였을 때 다리의 '손상'은 장애가 되는 거죠. 휠체어로는 탈 수 없는 버스를 마주했을 때, 키오스크에서 원하는 메뉴가 고를 수 없는 높이에 있을 때 손상은 장애가 된다는 거죠. 이 관점에서 보면 누군가 장애를 겪는 일이 그 사람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가 손상에 대응하는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일 수 있어요.
다른 차별 문제들도 마찬가지예요. 누군가 소외되어 차별로 받고 있다면 그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손상에 대응하지 못하고 있는 사회가 문제일 수 있는 거죠. 그리고 그 사회를 이루는 구성원들의 생각과 그 생각을 지배하는 차별 언어를 바꾼다면 '손상을 차별로 만드는 특정한 관계'를 해소하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 수 있지 않겠어요? 옛 속담 중에 '말이 씨가 된다'라는 옛 속담이 있잖아요. 사회에는 소외된 많은 이들을 공평하게 아우르는 넓은 그늘이 필요해요. 그런 그늘을 가진 멋진 나무를 만드는 씨앗이 바로 사려 깊은 단어, 상처 주지 않는 대화라고 믿어요.
일상에서 차별 언어를 쓰는 사람을 발견해도, 그 말을 지적하려다 보면 내가 예민한 사람이 된 것 같아 주저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요. 작가님은 이럴 때 어떻게 대처하시나요?
언어가 사고를 지배한다고 믿기 시작한 후로는 웬만해서는 다 짚고 넘어가요. 한번씩 누가 "너 요즘 되게 여자여자하게 입는다"라고 말하면, "오늘 하늘하늘하게 입긴 했지. 여자여자하다는 말보단 그냥 이렇게 말해도 되잖아?"라고 수정을 해줘요. 그럼 상대방은 너 잘났다는 식으로 짜증 내거나, 나머지 절반은 수긍하죠. 제가 콕 하고 찌른 말에 어딘가 따가웠던 이들은 그 말을 뱉을 때 신중하게 돼요. 물론 지적하는 사람 속도 편하진 않아요. 말꼬투리 잡는 사람을 얼마나 좋아하겠어요.
가끔은 이렇게 이야기를 해서 뭐하나 싶지만 차별을 인지하는 이들이 다수가 되면, 언어 또한 다수에 의해서 바뀔 거라고 믿어요. 언어는 주류가 만드니까요. 그 자리에서 직접 말하기 곤란하다면 이 책을 권해 보면 어떨까요? 저는 최대한 많은 사람이 차별 언어와 관련된 담론에 참여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이 책이 이러한 담론의 장을 열어주는 역할을 할 거라 생각해요.
혹시 이 책에 미처 담지 못해 아쉬웠던 차별의 말이나, 최근에 쓰지 않겠다고 다짐한 말이 있나요?
최근에 크로스핏을 시작했어요. 운동을 시작하고 나니 SNS나 유튜브에서 헬스 관련 게시물을 많이 보게 되는데, '헬린이'라는 단어만큼이나 '헬창'이라는 단어도 정말 많이 보이더라고요. 뭐, 헬스에 미쳐 있는 자기 자신을 자조적으로 표현할 수는 있는데, 그렇다고 패륜성 농담까지 사용할 일인가 싶어요. 명백히 나쁜 어원을 가진 말, 음지에서만 남아야 할 말이 양지에서 유명인들은 물론 주요 일간지에서도 편하게 사용하는 걸 보면서 온라인에서 역류한 또 하나의 혐오 표현이 꾸준히 유행하는구나 싶었어요. 그래도 다행인 건 요즘 몇몇 분들이 이 단어를 대체하고자 '헬짱'이라고 부르더라고요. 이 단어가 더 유행했으면 좋겠어요. '헬짱'이라는 말, 너무 귀엽지 않나요?
끝으로 이 책을 꼭 읽어주었으면 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되도록 많은 사람이 읽어주시면 좋겠죠. 그래도 꼽아 보자면 미디어나 마케팅에 종사자, 서비스 기획하시는 분들이 읽었으면 좋겠어요. 얼마 전에 어느 햄버거 프랜차이즈에서 위트랍시고 엄마의 사진을 올리는 이벤트를 기획했는데, 이벤트 이름을 '마이애미'로 해서 논란이 됐더라고요. 또 한번은 서울문화재단에서 어린이날 캠페인으로 'O린이 날·☆린이 날·△린이 날'이라는 이름의 기획을 진행했다가 질타를 받고 하루 만에 글을 내렸어요. 어린이를 위한 '어린이날'에 '첫 도전을 시작하는 우리는 모두 어린이다'라는 메시지와 함께 아동 차별 단어를 사용했다는 게 의아했어요. 이러한 캠페인이 최종 결정되기 전까지 수많은 결정권자가 있었을 텐데, 아무도 이걸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은 거겠죠. 누군가 한 명이라도 차별 단어에 대해 인지하고, 이를 막을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아쉬움이 컸죠. 좋은 아이디어를 올바른 단어로 표현하여 아무도 상처 주지 않는 기획을 하길 바랍니다. 대중을 대상으로 일할수록, 몰랐다고, 악의는 없었다는 변명은 이제 통하지 않으니까요.
*유달리 부산에서 태어나 발달 장애가 있는 동생과 같은 학교에 다녔다. 장애를 우스운 농담처럼 쓰는 이들 사이에서 억지로 웃으며 버티다가 도망치듯이 서울에 있는 대학을 갔다. 졸업 후 부산으로 돌아가 학생들을 가르쳤다. 성적이 낮다고 꼴통이라 불리고, 부모가 없다고 차별받는 아이들을 보며, 적어도 낡은 편견으로 상처 주는 어른은 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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