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희 “무엇을 어떻게 기억하려 하는가”
『기억 공간을 찾아서』 안정희 저자 인터뷰
기억 공간으로의 여행은 사람을 발견하는 일입니다. 과거인 옛사람을 만나고 현재 기꺼이 길을 함께 떠난 동무를 만납니다. (2021.06.29)
사람들이 왜 기록을 하는지, 기록이 왜 중요한지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저자의 전작 『기록이 상처를 위로한다』가 출간되고 5년이 지나 『기억 공간을 찾아서』가 출간되었다. 이 책은 독일, 일본, 한국을 방문하여 소멸한 사람들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공간을 소개하는 이야기가 담겨있다. 인류의 삶은 그가 살았던 장소, 사용했던 물건, 함께했던 사람 속에 존재한다. 하지만 모든 삶이 우리에게 기억되지는 않는다. 저자는 기록으로 남아있으나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과거의 이야기를 기행문 형식으로 담담하게 풀어나가고 있다.
작가님께서 기록연구사라고 소개해 주셨는데요. 기록연구사는 어떤 일을 하는 직업인지 궁금하네요. 혹시 현재 하고 계신 활동이 있다면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기록연구사(Archivist)는 아카이브(기록저장소)서 기록을 관리하는 사람입니다. 기록연구사는 지속적으로 보존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된 기록을 평가, 수집, 정리, 분류, 기술하여 해당 기록을 보존, 관리하고 이용자들이 자료를 활용할 수 있도록 검색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을 합니다. 저는 기관에 소속된 기록연구사는 아니고요. 지금은 충청북도 증평군의 기록관에서 기록연구용역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2020년에는 [증평기록 기획수집 및 증평군 개청 운동 아카이빙] 연구용역으로 기록을 수집하였고, 올해는 [제2기 증평기록가 양성 프로그램 및 증평기록단 운영] 연구용역과 [증평 아카이빙을 위한 그림제작] 연구용역을 통해 기억과 기록수집 및 기록가 양성, 옛 공간 및 장소의 시각화 등의 일을 하는 중입니다.
이전에는 기록을 주제로 한 『기록이 상처를 위로한다』를 집필하셨는데요. 이번에 ‘기억 공간’을 주제로 책을 쓰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기록이 상처를 위로한다』는 기록을 왜 하는가? 기록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라는 물음에 답을 찾고자 하는 과정에서 쓰여진 글입니다. <기억공간을 찾아서>는 기억과 기록을 보존ㆍ전시하는 공간의 의미를 찾는 과정에서 쓰여진 글이지요. 첫 문장은 독일 뮌헨에서 썼습니다. 뮌헨 근교에 있는 독립운동가 이미륵의 묘를 찾았다가 영어를 한마디도 못함에도 불구하고 ‘닥터 리’를 알아듣고 저를 이미륵의 묘로 안내한 독일 할머니를 잊지 않으려고 여행일기를 썼습니다.
한편으로는 『기록이 상처를 위로한다』책이 출간된 후 여러 지역에서 기록에 관한 강의를 많이 했는데 당시 기록이 지니는 ‘연결’ 의미를 설명하고자 예를 들었던 오키나와의 아리랑 위령탑 등의 이야기를 들은 분들이 직접 그 장소를 가보자고 했습니다. 그들과 함께 오키나와를 여행하면서 잊지 않고 우리에게 위안부의 기억을 전달하려는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이 책은 여러 해 동안 박물관, 기록관, 문학관 등을 여행할 때 만났던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독일, 일본, 한국을 방문하시면서 이민박물관, 오키나와 슈리 성, 심도직물 굴뚝 등 다양한 장소를 책에서 소개해 주셨는데요. 혹시 책에 방문하신 곳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소는 어디였나요?
심도직물 굴뚝이 있는 강화도입니다. 그곳에서 일했던 어린 여성 노동자들의 삶이 제대로 기록되고 잘 보존되어 많은 사람들이 찾는 강화성당과 용흥궁과 나란히 기억되면 좋겠습니다.
이전에 가보지 않은 곳 중에서 앞으로 꼭 방문해보고 싶은 기억 공간이 있으신가요?
‘가보지 않은 곳 중에서 꼭 방문하고 싶은’ 곳은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 책의 목차를 잡을 때는 ‘비통한 자들을 위한 기록관’이라는 제목까지 붙여 놓고 글을 쓰지 못한 기억 공간은 있습니다. 전라남도 고흥군에 있는 소록도입니다. 여러 번 방문했지만 결국 쓰지 못했지요. 아마 ‘무엇이든 될 수 없었던 사람들’의 이야기여서 일 것입니다.
남도 여행을 갔다가 소록도의 유치원에서 근무했던 길동무가 소록도 섬이 아름답다고 들러가자 했습니다. 가을볕이 좋아 오래된 느티나무 아래에서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이 화투를 치고 있었습니다. 완치되었지만 손가락은 펼 수 없어 주먹 쥔 손으로 화투장을 들고 환하게 웃으며 반갑다고 했습니다. 그 모습을 잊을 수 없어 그들의 삶의 이야기를 채록하고자(구술 아카이브) 다음 해 여름에 다시 방문하였습니다. 국립 소록도 병원의 간호조무사가 십 대에 소록도로 들어와 60년 이상을 그곳에서 산 세 사람에게 미리 연락해 놓아 공동 주거지역에서 살고 있는 그 분들의 집을 찾아갔습니다. 환한 느티나무 아래와는 달리 집 안으로 들어가자 그들의 하루하루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침대 옆에 수북이 쌓인 약봉지 옆에 얼굴이 무너진, 눈이 보이지 않는 엄마 옆에 손가락을 쓸 수 없어도 들 수 있도록 만든 주전자를 잡고 있는 어린아이 사진이 있었지요. 저는 구술 아카이브를 하려고 준비해 간 질문지를 꺼내지 못했습니다. 그분들은 제가 누구인지 왜 왔는지 따지지도 않고 그저 이야기를 할 수 있어 좋다며 다음에 또 오라고 거듭 말했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국립 소록도 병원 한센병 박물관을 갔습니다. 일제 강점기부터 시작되어 치료약이 개발되고 더 이상 새로운 환자가 등록되지 않기까지의 역사가 글, 사진, 동영상으로 있었습니다. 그리고 유리 상자 안에 제가 며칠 전 한센인의 집에서 본 주전자처럼 손목으로 들 수 있도록 고안된 냄비가 여러 생활물건과 함께 있었습니다. 인터뷰를 했던 세 사람의 이야기보다 더 정확하게 소록도 한센인들의 삶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박물관의 이야기는 볼 수도 들을 수도 있었고 그것을 본 내 몸이 아프지도 않았습니다. 한센병 박물관에는 그들이 어떻게 살았는지에 대한 기록들이 전시되어 있지만 그들의 삶이 ‘기록으로 재현되고 있는가?’ 라고 묻는다면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그 삶이 재현될 수 있겠습니까! 그런 연유로 그 섬에 다시 가고 싶습니다.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을 기다리는 그 사람들을 다시 만나고 싶습니다.
작가님의 일생에 있어 ‘안정희’ 작가님의 정체성을 형성시킨 핵심 기억은 무엇인가요?
저를 형성하는 핵심 기억이 한두 가지는 아닐 것입니다. 그중에서 여러 번 되새김질하는 기억들은 대개 제가 꿈꾸었으나 이루지 못한 것들에 대한 기억입니다. 간절함이 부족해서 이루지 못한 꿈이거나 스스로를 믿지 못해 끝까지 하지 않아 이루지 못한 꿈이거나 또 어떤 것들은 제가 어떻게 해도 이룰 수 없었던 꿈에 대한 기억들이지요. 그 기억들을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앞으로 나아가고 싶습니다.
독일, 일본 그리고 한국을 방문하시면서 많은 에피소드가 있었을 것으로 예상되는데요. 가장 기억에 남거나 흥미로운 에피소드가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오키나와 도카시키 섬의 택시 운전사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녀는 여행 가이드도 가려 하지 않던 장소를 보여주었습니다. 일본 말을 모르는 저에게 휴대폰 번역기로 “새벽부터 밤까지 울어야 했던 조선 여자의 집에 가보시겠습니까?” 라고 말하며 전쟁이 끝난 후에도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한 위안부가 살았던 집으로 데려갔습니다.
길을 떠나면 길을 잃을 때가 많습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하고 두렵고 외롭습니다. 무력감으로 고개를 떨구고 돌아서려 할 때 꼭 이런 분을 만납니다. 자신의 어깨에 기대 조금 더 앞으로 나가보라며 저를 다독여줍니다.
마지막으로 『기억 공간을 찾아서』를 읽을 독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기억 공간으로의 여행은 사람을 발견하는 일입니다. 과거인 옛사람을 만나고 현재 기꺼이 길을 함께 떠난 동무를 만납니다. 그 여정에서 ‘우리가 잊지 않고자 꿈꾸는’ 것이 무엇인지, 어떤 기억이 공유되어 사회적 기억이 되면 좋을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면 참 좋겠습니다.
*안정희(작가) 이화여자대학교 법학과와 명지대학교 기록정보과학전문대학원을 졸업하였다. 지금은 증평기록관 아카이빙 프로젝트를 수행 중이다. 『기록이 상처를 위로한다』(이야기나무/2015), 『종이약국』(공저/북바이북/2020), 『책 읽고 싶어지는 도서관 디스플레이경기도 도서관총서13/2015), 『도서관에서 책과 연애하다』(알마/2014)를 썼으며 『나는 반대한다』(부키니스트/2021)』(, 『에이프릴 풀스데이』(섬돌출판사/2007), 『가이와 언덕지기 라이』(섬돌출판사/2006)를 번역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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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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