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혜 “성평등 교육은 우리 아이에게 정말 필요한 일”
『젠더감수성 교실』 김은혜 저자 인터뷰
성평등 교육을 하면 일단 아이들의 생각의 폭이 굉장히 넓어져요. 성평등 교육이 성별 이분법이라는 이 사회의 가장 큰 고정관념을 없애주기 때문입니다. (2021.01.13)
2020년 9월, 국가인권위원회는 전남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에서 발생한 성폭력 사건에 대해 ‘교수들에게 젠더감수성 교육을 해라’고 권고했다. 광주광역시 동구는 2020년 6월 직원들을 대상으로 성인지 역량 강화 교육을 했다. 미투 운동, N번방 사건, 버닝썬 게이트 등이 발생하면서 성평등 교육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한국 사회 전반에 확산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하지만 막상 성평등 교육을 하려고 하면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한 것이 현실이다. 『젠더감수성 교실』은 바로 이런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현직 초등학교 교사로 성평등 교육에 앞장서 온 김은혜 작가는 성평등 교육의 필요성을 느끼지만, 방법을 잘 모르는 학부모와 교사들을 위해 『젠더감수성 교실』을 썼다. 김은혜 작가를 만나 성평등 교육의 필요성과 현실, 『젠더감수성 교실』 활용 팁을 들어봤다.
작가님도 공저자로 참여하신 『학교에 페미니즘을』 등의 책이 나왔고, 성평등 교육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도 예전보다는 높아진 것 같습니다. 실제로 작가님께서 느끼시는 학교 현장의 분위기는 어떤가요?
몇 년 사이에 학교 현장의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습니다. 『젠더감수성 교실』에서도 언급한 ‘스쿨미투’의 영향력이 크다고 느껴요. 교육청마다 성인지 관련 부서가 생겼고, 학교 교사들을 컨설팅하는 성 인지 감수성 지원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학교 연수에서도 ‘학급 언어’를 성평등하게 쓰자는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작년 양성평등교육진흥원에서 전국의 학교를 대상으로 ‘디지털 성교육’ 신청을 받았는데 신청한 학교가 천 개가 넘었다고 해요. 학교의 교사들, 교육청에서 성평등 교육의 필요성을 느끼고 성평등 교육을 받아들이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교육 현장에 계신 분 중 많은 분이 성차별적인 사고방식을 고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부 남교사분들이 성평등한 관점의 성폭력 예방 교육을 하면 ‘듣기에 불편하다’며 불만을 표하시는 경우도 있고요. 그래서 ‘스쿨미투’처럼 학생들, 보호자들의 성평등 교육에 대한 열망을 나타내는 운동이 지속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학교 교육만으로 아이들의 젠더감수성을 기르는 데는 한계가 있고, 가정과의 연계 교육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으로 『젠더감수성 교실』을 쓰셨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셨던 계기가 있었나요?
교사 생활을 하면서 보호자들과 상담을 많이 하는데, 보호자의 젠더감수성을 학생이 그대로 닮아있는 경우를 많이 보았습니다. 학생들에게 똑같이 성평등 교육을 해도 보호자의 젠더감수성 수준에 따라 학생들의 변화 속도가 달랐어요. 그래서 보호자 분들에 대한 연계 교육의 필요성을 인식하기 시작했습니다.
또 젠더감수성이 높든 낮든 대부분의 보호자 분들이 성평등한 언어 교육, 성평등한 성교육의 필요성을 느끼고 계시고, 제가 상담에서 관련된 내용을 말씀드리면 ‘지금 우리 아이에게 정말 필요한 얘기’라며 열정적으로 호응해주셨습니다. 그래서 가정과의 연계 교육을 주제로 한 『젠더감수성 교실』을 쓸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앙 기모띠’라는 유행어, 카카오톡 단톡방 등 굉장히 현실적인 문제들을 다루고 있는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학부모들도 많이 고민하시는 지점일 것 같은데, 보통 학부모님들은 이런 문제에 어떻게 대응하시나요?
자녀가 이런 문제를 겪고 있는 것을 잘 모르고 계시는 분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문제를 인지하시더라도 어떻게 대응할지 고민하시는 분들도 많고요. 학생들이 집에서 보이는 모습과 학교에서 보이는 모습이 굉장히 다른 경우가 많은데 혐오 표현, 단톡방 같은 경우는 부모와 있을 때보다 친구와 있는 공간인 학교나 가정 밖의 공간에서 많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또 카카오톡 같은 개인 SNS를 부모가 보지 못하도록 핸드폰을 잠금 설정하고, 내용을 공유하기 꺼리기 때문에 부모님들이 정확하게 알기 어렵습니다.
가장 보편적인 방법은 가정에서 인터넷을 이용하는 시간과 장소, 인터넷이나 모바일을 이용한 콘텐츠의 종류나 범위를 정해놓는 것입니다. 자녀들이 사고관을 확립해가는 시기에 윤리적 제재가 없는 유튜브나 온라인 게임 채팅창에 장시간 노출되며 일어날 수 있는 위험을 줄이는 것이죠. 자녀들 역시 약속된 시간에 컴퓨터나 모바일 인터넷을 이용하면서 자제력을 갖출 수 있기도 하고요.
“성별 이분법 때문에 아이들은 자신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제대로 발현할 기회를 잃어버린다”라고 하셨습니다. 성평등 교육을 통해 아이들이 가능성과 잠재력을 마음껏 발휘했던, 기억에 남는 사례가 있으신가요?
저는 학기 초에 다양한 학생 조사와 학생 과제를 실시하고 학년말에 똑같은 활동을 다시 하는데, 거기서 드러나는 변화들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일단 아이들의 생각의 폭이 굉장히 넓어져요. 성평등 교육을 하면 아이들의 사고력이 유연해지는데, 성평등 교육이 성별 이분법이라는 이 사회의 가장 큰 고정관념을 없애주기 때문입니다.
변화된 사례들을 떠올려보자면 여학생들의 장래 희망이나 자아상이 많이 변한 게 생각납니다. 학기 초에는 주로 돌봄을 하는 직업이나 파티시에, 디자이너, 피아니스트 등에 집중되어 있다면 학년말에는 훨씬 다양해집니다. 그리고 ‘성공한’이라는 말이 앞에 붙는 경우가 많아요. 자아상 역시 ‘나는 힘이 세다’ ‘나는 능력이 많다’ ‘나도 할 수 있다’ 같은 표현으로 바뀌어요.
남학생의 경우 어휘력이 풍부해집니다. 자신의 감정을 구체적인 어휘로 표현하는 연습을 하기 때문입니다. 또, 대인 관계에서 폭력성이 줄어들고, 다른 사람의 사생활을 존중하기 시작해요. 남자 화장실에서 폭력적인 상황이 많이 발생하는데, 우리 반 남학생들이 앞서서 막거나 갈등을 중재했던 게 기억나네요.
『젠더감수성 교실』은 아이의 발달 단계에 맞춘 연령대별 학습활동, 활동 시 주의 사항과 참고할 만한 콘텐츠 등 가정에서 실천 가능한 구체적인 방법에 주안점을 두고 있어서 활용도가 높은 책입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효과가 있고, 많은 분께 권하고 싶은 교육 방법이 있다면요.
독서 교육을 추천해 드리고 싶어요. 가정에서 가장 관심이 많은 분야이고, 가장 많이 실천하고 계신 분야이기 때문입니다. 챕터마다 추천 책이나, 책을 고르는 기준을 적었는데 지금 자녀와 함께 하고 계시는 독서 교육에 적용하셔서 하시는 걸 권해드려요. 제가 추천하는 책들은 아이들에게 호응도가 높은데 여태 알고 있던 고정 관념을 벗어난 주인공들을 보는 걸 굉장히 흥미로워하기 때문입니다. 또, 서양의 그래픽 노블, 우리나라의 웹툰도 많이 포함되어 있어서 학생들이 정말 좋아해요. 재미있는 만화를 보면서 성평등도 배울 수 있으니 일석이조죠.
책을 고르는 기준을 말씀드린 데는 이유가 있는데요, 책이 정말 많다 보니 경계해야 할 책들도 많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자면 항상 남학생은 사고뭉치로 나오고, 여학생은 새침하게 나오는 이야기책이나 『선녀와 나무꾼』처럼 여성의 존중과 동의가 무시되는 전래 동화, 잘못된 성교육 지식이 실려 있거나 심지어 여성 혐오를 조장하는 책 같은 경우입니다.
작가님께서 처음으로 성평등 교육을 할 때, 실패했던 이야기도 있습니다(웃음). 그런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쌓은 노하우가 담겨있어 더욱 의미 있는 책인데요. 아이들에게 성평등 교육을 할 때, 항상 기억해야 할 원칙 같은 게 있을까요?
책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표현 중 하나인 ‘존중’과 ‘동의’입니다. 성평등을 교육하려면 교육하는 사람이 먼저 존중과 동의의 태도를 보여줘야 하거든요. 제가 ‘앙 기모띠는 나쁜 표현이니까 쓰지 마세요! 금지입니다!’라고 얘기했다가 장렬한 실패를 맞았는데(웃음) 강압적인 태도로 금지를 했기 때문이었어요. ‘그 표현은 여성을 존중하지 않는 표현이기 때문이에요’라고 학생들을 설득했을 때 비로소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죠.
그래서 저는 교실에서 학생들의 사생활을 존중하고 동의를 구하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사생활을 적어야 하는 일기 검사 대신 주제를 가지고 자기 생각을 쓰는 주제 글쓰기를 합니다. 학생들의 공간을 관리해야 할 때는 ‘선생님이 00이의 사물함 안을 봐도 괜찮을까요?’라고 동의를 미리 구하죠. 또 ‘선생님은 교실 안에서 사회적인 힘이 제일 세기 때문에 큰 소리로 위협적인 훈계를 하는 등 여러분의 인권을 무시하는 행동을 할 수 있는데 그런 행동을 하면 언제든지 지적해주세요’라고 이야기합니다.
성평등 교육을 하는 교육자가 ‘존중’과 ‘동의’를 실천하면 아이들이 스스로 존중받는 경험을 통해 남을 존중하고 동의를 구하는 행동을 하기 시작해요.
『젠더감수성 교실』을 활용해 성평등 교육을 하려는 분들께 추천하는 ‘『젠더감수성 교실』 120% 활용 팁’이 있다면요.
지금 초등학생 부모님들은 30~40대라서 젠더감수성을 많이 갖추고 계시거든요. 그래서 『젠더감수성 교실』을 아이와 함께 실천하시면서 미디어의 성차별, 책 속의 성차별, 가정과 사회에서 쓰이는 언어의 성차별 등을 빨리 자각하실 거예요. 그러다 보면 일상 속 성차별을 느끼는, 좋은 의미의 예민함도 더욱 높아질 거라 생각합니다.
성차별을 발견할 때마다 자녀에게 수시로 꾸준히 얘기해주세요. ‘방금 TV 프로그램 속 저 대사는 어떻게 생각하니?’ ‘이 책의 주인공의 행동은 ~한데 성차별적인 것 같다. ~한 행동을 해야 하지 않을까?’ 같은 방식으로요. 언어와 행동이 바뀌는 건 한 번의 교육으로 되지 않거든요. 제가 교실에서 아이들에게 짧게는 1~2분, 길게는 1~2교시 수업을 통해 일 년 내내 젠더감수성을 교육하는 이유입니다. 우리나라의 부모님들은 자녀 교육에 대한 지식수준과 학구열이 높으셔서 제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잘하실 거라는 기대가 드네요.
*김은혜 딸과 아들의 이분법을 넘어 모든 아이가 행복한 교실을 꿈꾸는 초등학교 교사. 교직 생활을 하면서 학교 현장의 성차별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2016년부터 본격적으로 성평등 교육을 연구하고 실천했다. 이 과정에서 보호자가 가정에서 함께하는 성평등 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해 이 책을 쓰게 됐다. 이 책은 5년간 교육 현장에서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발굴한 비법을 담은 ‘실전 성평등 교육 매뉴얼’이다. 성평등 교육의 필요성을 느끼지만 방법을 잘 모르는 보호자들에게 이 책이 도움이 되길 바란다. 저서로 초등성평등연구회 교사들과 함께 쓴 『학교에 페미니즘을』, 『어린이 페미니즘 학교』가 있다. ‘우리에게는 페미니스트 선생님이 필요합니다’ 해시태그 운동으로 2018년 제7회 이돈명인권상을 수상했다.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교육사이트 젠더온 교사 집필진, 경기도교육청 인권 및 성평등 현장지원단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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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