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아웃] 코로나 블루를 이길 수 있는 책
책읽아웃 - 오은의 옹기종기 『여름의 잠수』, 『더 셜리 클럽』, 『내 방 여행하는 법』 (152회)
‘책임’감을 가지고 ‘어떤 책’을 소개하는 시간이죠. ‘어떤,책임’ 시간입니다.(2020.09.10)
불현듯(오은): 계속 힘든 시간이 이어지고 있는데요. 어쨌든 우울감을 극복하기 위해,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애쓰고 있어요. 그래서 오늘 주제를 ‘코로나 블루를 이길 수 있는 책’으로 정했습니다.
캘리: 이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힘이 조금 날 것 같아요.
사라 스트리츠베리 글 | 사라 룬드베리 그림 | 이유진 역 | 위고
아직 9월이긴 한데요. 지금까지는 저의 ‘올해의 그림책’입니다. 그 정도로 좋았던 그림책이에요. 그림에 반해서 궁금해하며 읽었는데요. 충격적일 정도로 좋았습니다. 저는 사실 책을 읽으면서 우는 일이 거의 없지만 이 책은 눈물이 떨어질락 말락 했던 책이었어요. 스웨덴 작가님의 작품이고요. 원래 소설이 원작이라고 해요. 『베콤베리아-가족에게 띄우는 노래』는 작가 분이 유년 시절, 정신 병원에 입원한 친척을 방문했던 경험으로부터 쓴 소설이었고요. 그 작품을 바탕으로 쓴 『여름의 잠수』로 스웨덴의 대표적 문학상인 ‘아우구스트상’ 최종심에 올랐다고 합니다.
우선 저는 이 그림책에서 아이의 시선과 엄마의 시선이 마주치거나 같은 방향을 향해 있는 장면이 없다는 게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첫 페이지를 보면 소녀와 엄마가 나옵니다. 이들이 앉아 있는 식탁에 빈자리가 하나 있는데요. 아빠의 자리죠. 소녀는 그 자리를 쳐다보고 있고, 엄마는 아주 자연스럽게 신문을 보고 있어요. 그리고 이렇게 써 있어요. “어느 날 우리 아빠였던 사람이 사라졌다. 마치 누군가가 아빠를 세상에서 오려낸 것 같았다. 아침 식탁에서 아빠가 앉았던 자리에 구멍이 나 있었다.” 그리고 소녀와 엄마가 아빠가 있는 병원에 병문안을 가요. 병원에 도착했는데 좀 특이해요. 벽도, 창도, 문도 있는데 문이 모두 잠겨 있어요. 병실에는 아빠가 누워 있고요. 역시 아이는 아빠를 보는데 엄마는 아이를 보고 있죠.
이 소녀의 이름은 ‘소이’입니다. 소이와 아빠는 병원을 산책하는데요. 한 여자가 소이에게 다가와 수영을 하자고 제안해요. 이 여자가 표지에 있는 성인 여성이고요. 그의 이름은 ‘사비나’입니다. 그러다 한 번은 소이가 혼자 아빠를 보러 병원에 갔는데 사비나가 와서 알은 척을 해요. 자신이 전에 수영 선수였다는 얘기를 하면서 언젠가는 태평양을 헤엄쳐 건널 거라고 말하죠. 소이가 “정말 그렇게 할 수 있어?”라고 하니까 사비나는 “당연하지. 여자는 원하는 걸 다 할 수 있어.”라고 말해요. 멋지죠? 그렇게 둘은 친구가 되고요. 아빠의 슬픔, 아빠를 기다리는 마음 등이 펼쳐져요. 저는 이 책이 결코 정말로 행복해질 수 없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말해서 충격적이고, 좋았어요. 주변에 아주 고통스러워하는 사람이 있을 때 곁에 있는 사람이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는지 생각하게 하는 책이었어요. 너무 큰 위로가 됐습니다.
이 이야기는 모두 내가 어렸을 때의 일이다. 지금 나는 어른이다. 아빠는 결코 정말로 행복해지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삶이 꽤 괜찮아졌다. 어떤 사람들은 결코 행복하지 못하다. 어떻게 하더라도 그 사람들은 슬프다. 가끔은 너무 슬퍼서 슬픔이 지나갈 때까지 병원에 있어야 한다. 위험한 일은 아니다.
박서련 저 | 민음사
주인공은 한국인, 20대 초반의 여성이고요. 이름은 '설희'예요. 그리고 꽤 오랫동안 그냥 좋아서 정한 영어 이름이 '셜리'입니다. 이 친구가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나는데요. 연말 호주는 각종 축제가 열리는 시기라고 해요. 주인공은 새벽부터 초저녁까지 치즈공장에서 열심히 일을 하고, 쉴 때면 축제를 구경하러 다녔죠. 그러던 어느 날 한 퍼레이드 행렬을 만납니다. 이 행렬이 좀 특이해요. 참가자들이 모두 멜버른의 보통 시민들이었는데 아무 이유도 없이 취미로 가장을 하고 <해리포터>, <왕좌의 게임> 등을 코스프레 해서 지나가는 거예요. 그리고 거의 행렬이 끝나갈 무렵 등장한 것이 '더 셜리 클럽'이에요.
다름 아닌 할머니들 행렬이었는데 가슴에 저마다 단 명찰을 보니 이름이 모두 셜리였던 거예요. 그래서 주인공은 자기도 셜리 클럽이 되기로 결심합니다. 무엇보다 이 소설은 사랑 이야기예요. 주인공 셜리가 S라는 인물을 우연히 만나게 되는데 S를 만나고, 친해지고, S와 위기를 겪을 때 언제나 더 셜리 클럽이 셜리의 곁에 있습니다. 더 셜리 클럽의 모토가 Fun, Food, Friend 거든요. 너무 좋죠? 그러니 더 셜리 클럽인 이상 셜리의 일은 우리 모두의 일이다, 라면서 할머니들이 주인공을 계속 도와줘요.
제가 지금까지도 이 소설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는 이유가 있는데요. 셜리가 사랑하게 되는 S라는 인물 때문이에요. 등장인물 중에 거의 유일하게 이름이 등장하지 않는 사람이죠. 이름이 등장할 필요 없는 인물이면 모르겠는데 S는 제일 중요한 사람이잖아요. 근데 끝까지 이름이 안 나오고, 성별도 나오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남자로 생각했는데 아닐 수도 있겠다, 싶은 대목이 나오거든요.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여자로 읽었는데요. 그게 또 엄청나게 매력적으로 느껴지더라고요. 결국 제가 내린 결론은 성별은 중요하지 않다, 였어요. S는 여자일수도, 남자일수도, 혹은 논바이너리일수도 있잖아요. 어쨌든 S는 S죠. 저는 박서련 작가님이 아주 교묘한 방식으로 독자들에게 책을 여러 방식으로 읽도록 해둔 것 같아요. 그리고 이런 가능성들을 상상하니 우울감이 잠깐이나마 싹 사라졌어요.
그자비에 드 메스트르 저 / 장석훈 역 | 유유
요즘은 많은 일을 집에서 수행하는 것 같은데요. 그렇기 때문에 코로나 블루가 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집에 있는 시간, 예기치 않은 시간을 잘 못 흘려 보내면 코로나 블루가 올 것 같은 거죠. 그래서 집에 있을 때 어떤 일을 해야 우울감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를 다룬 책을 찾았어요. 이 책의 부제가 ‘세상에서 가장 값싸고 알찬 여행을 위하여’예요. 어떻게 알찰 수 있는지 얘기하는 책이죠.
저자는 18세기 작가예요. 혈기와 모험심이 강해서 직업 군인으로 살았고요. 무모하다 싶을 정도로 용기가 많아서 열기구를 발명했다는 소식에 자원해서 시범 탑승을 하겠다고도 했고요. 28살이 되던 해에는 어느 장교와 결투를 벌였대요. 그 사건 때문에 결국 법원에서 42일간의 가택연금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매일 일기를 쓰듯 기록을 남기는데 그것이 『내 방 여행하는 법』의 시작이에요.
두 번째 기록의 제목이 ‘내 방 여행의 좋은 점’인데요. 첫 문장이 이렇습니다. “무엇보다 돈이 한 푼도 들지 않는다는 점을 이 여행의 미덕으로 꼽고 싶다.” 저는 저자가 똑똑하다고 생각한 부분이 집안에 있는 사물에 대해 써나갔다는 점이에요. 우리가 일기를 써도 매일 쓰려면 쓸 게 없잖아요. 그런데 보니까 이 저자는 집에 그림도 많았더라고요.(웃음) 그림에 이야기도 하면서 집안의 사물들을 관찰하고, 그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해나갑니다. 그러다 갑자기 형이상학으로 넘어가기도 하고, 영혼으로 넘어가기도 하는데요. 이 글의 최고로 멋진 부분은 이거예요. 전날 어떤 이야기로 마무리를 지으면 다음 날 글에서 그 이야기를 잇는 점 말이에요. 가령 친구가 어떤 존재일까, 하는 식으로 마무리를 지었다면 다음 글에서 “내게도 그런 것이 있었으나 죽음이 내게서 그를 앗아갔다”라며 이어가요. 이런 식으로 어떤 키워드가 단초가 되어서 다음 글을 이끌어내는 점도 굉장히 흥미로웠어요.
이 책을 읽는 많은 분들이 내 방에 무엇이 있는지 여행을 해봤으면 해요. 그렇게 시작한 글이 전혀 다른 곳에 당도해도 멋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 오디오클립 바로 듣기 //audioclip.naver.com/channels/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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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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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자비에 드 메스트르> 저/<장석훈> 역8,400원(0% + 5%)
여행은 구경이 아닌 발견, 여행 개념을 재정의한 여행 문학의 고전 『내 방 여행하는 법』은 1763년에 태어난 그자비에 드 메스트르가 1794년에 쓴 책이다. 그 두 시점 사이에 프랑스 대혁명이라는 세계사적 사건이 있다. 이 사건은 유럽 전체를 격동의 도가니로 몰아넣었을 뿐 아니라 이 책을 쓴 저자 개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