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아웃] 정치는 편을 갈라서 하는 거예요 (G. 유시민 작가)
김하나의 측면돌파 (95회) 『유럽 도시 기행 1』
기본적으로 정치는 편을 갈라서 하는 거예요. 그게 우리 본성이고요. 정치인들 보고 편 가르지 말라고 하는 건 진짜 웃기는 이야기예요. 의견이 다른데 어떻게 편을 안 갈라요. (2019. 08. 08)
<인터뷰 - 유시민 작가 편>
김하나 : 어제 예고해드린 대로 유시민 작가님과 같이 더 다양하고, 깊고, 재밌는 대화를 나눠보려고 하는데요. 작가님, 저희 <측면돌파>에는 아주 뜬금없이 시작되는 코너가 있습니다. 혹시 아시나요?
유시민 : 예, 들어보니까 막 물어보시더라고요(좌중 웃음). ‘예, 아니오’로 대답하는 거죠?
김하나 : 네, 한 번 해보겠습니다. 너무 길게 생각하지 마시고 바로 바로 대답하시면 됩니다.
김하나 : 결국 역사는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간다고 믿는다.
유시민 : No
김하나 : 정치는 나를 둥글게 만들었다.
유시민 : No
김하나 : 나는 종종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으로 가고 싶다’고 생각한다.
유시민 : Yes
김하나 : 굳이 댓글을 찾아 읽지는 않는다.
유시민 : Yes
김하나 : 출판사에서 허락해준다면 평생 여행 작가로 살고 싶다.
유시민 : No
김하나 : 내가 좋아하는 여행 스타일을 하나만 고른다면? ‘1년에 한 도시’ or ‘1년간 세계일주’
유시민 : 1년간 세계일주
김하나 : 가짜 뉴스를 바로잡는 일은 솔직히 지친다.
유시민 : Yes
김하나 : 글을 쓰지 않았더라면 지금보다 ‘덜’ 괜찮은 사람이 됐을 것 같다.
유시민 : Yes
김하나 : ‘결국 역사는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간다고 믿는다’에 No라고 하셨는데, 일단 역사에 방향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유시민 : 방향은 있어요.
김하나 : 어떤 쪽일까요?
유시민 : 하나는, 사람들의 욕망을 더 많이 실현하는 방향으로 간다는 거예요. 다양한 욕망들을 실현하는. 두 번째는, 그런 욕망을 실현해나가는 기술적인 환경이 계속 발전한다는 거예요. 사람들은 의식주 같은 원시적인 욕망에서부터 인정받고 싶은 욕구, 어딘가에 속해 있고 싶은 욕구, 자신의 가치를 실현하고자 하는 욕구 쪽으로 계속 가는데요. 그걸 추구할 때 사용하는 기술적인 수단은 일직선이에요. 계속 더 높은 수준으로 발전해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갈 것 같아요. 둘 사이의 불일치 때문에, 굉장히 원시적인 욕망에 휘둘리는 사람이 높은 수준의 기술적 수단을 사용하기도 해요. 그것 때문에 굉장히 비극적인 곳으로 역사가 갈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요. 또는, 심하게 말하면, 더 좋은 세상이 되기 전에 먼저 멸종되지 않을까.
김하나 : 사피엔스가 멸종되는 건가요?
유시민 : 사피엔스 뿐만 아니라 지구의 많은 종들이 사피엔스에 의해서. 그럴 위험이 점차 높아지고 있고, 그러면 더 이상 역사라는 게 없죠. 종의 절멸이 오면 인간의 역사는 끝나는 거죠. 그런 생각을 하게 되면 역사에서 ‘발전’이라는 개념을 함부로 쓸 수 있을까, 그런 두려움도 조금 느낍니다. 요즘 제가 가장 영웅적인 모습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은 환경 운동가들이에요.
김하나 : ‘정치는 나를 둥글게 만들지 못했다’고 답하셨어요. 『어떻게 살 것인가』 에서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을 포용하라’고 쓰시고 그 아래에 ‘그런데 내가 이걸 잘 못했다’고 쓰셨더라고요. ‘나는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에게 화가 났고, 그것을 정치적으로 잘 조율하는 것에 서투른 사람이었다’고 하셨는데요.
유시민 : 표현에 약간 이견이 있는데요. 다른 의견을 포용할 수는 없어요. 의견이 다른데 어떻게 포용을 해요. 저는 정치를 할 때도 그런 요구를 많이 받았는데, 포용하라고. 어떻게 네모 안에 동그라미를 포용해요, 네모하고 동그라미는 맞출 수가 없는 거예요. 그건 경쟁해야 되는 거예요. 다만,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의 견해는 포용이 불가능한데... 그건 다퉈야죠. 지금 더불어민주당하고 자유한국당이 서로를 포용하면 뭐가 돼요?(좌중 웃음) 그 둘은 치열하게 경쟁해야 돼요. 그런데 서로 인정하면 되죠, 존재를. 상대방의 존재를 인정해주고 존중해주면 되죠.
김하나 : 포용이 아니라, 인정과 존중.
유시민 : 다른 걸 어떻게 합쳐요. 한 개는 맞고 한 개는 틀린데, 틀린 것하고 맞는 걸 어떻게 합쳐요. 그건 안 되는 거거든요. 그래서 서로 다른 견해는 경쟁해야 되고. 둘 다 틀렸을 수도 있죠. 어느 하나가 맞을 수도 있고. 어느 것이 맞느냐를 알아보는 과정 자체가 경쟁이에요. 다만, 서로를 불구대천의 원수로 여기지는 말아야 된다는 거죠. ‘쟤는 이상한 생각을 하는 애야, 그런데 쟤하고 같이 살 수밖에 없잖아, 그러니까 두드려 패거나 칼로 찌르지는 말자’ 그 정도의 태도가 필요한 거죠, 우리에게. 그러려면 ‘미워죽겠어, 때려주고 싶어’ 이런 감정은 갖지 않도록 노력을 해야 돼요. 그런데 정치가 총만 안 들었지 거의 전쟁처럼 진행되기 때문에, 하다 보면 당연히 감정이 따라 올라와요. 그걸 스스로 관리를 못하고 제어를 못하는 사람은 빨리 정치를 그만하는 게 좋아요.
김하나 : 지금 이 말씀을 하시는데, 큰 눈에 안광이 번뜩이는 느낌이 드네요.
유시민 : 퇴역 군인도 군인이거든(좌중 폭소).
김하나 : 『어떻게 살 것인가』 에 ‘나는 현실정치의 맥락에 포획당한 사람이었다’라는 표현이 있었어요. 쓰고 싶은 글을 마음대로 쓸 수가 없는 거죠. 이렇게 쓰면 ‘우리 편 공격하냐’, 저렇게 쓰면 ‘저쪽을 까내리는 거냐’ 이런 식의 것들이 많았다는. 지금은 글을 쓰실 때 자유롭고 행복하다고 느끼세요?
유시민 : 그렇죠, 퇴역 군인이기 때문에...
김하나 : 퇴역 군인도 군인이라면서요(웃음).
유시민 : 그건 진화의 흔적만 남아있는 거죠. 우리가 집에서 키우는 얌전한 개도 산책을 나가면 나무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꼭 다리를 들잖아요. 그렇다고 해서 반려견이 갑자기 야생동물이 되는 건 아니죠. 그런 것처럼, 제가 육십 먹은 남자로서 여기에 있기까지 살아온 이력들이 종의 진화의 흔적처럼 제 안에 있겠죠. 그런 것들이 어떤 때에는 불쑥불쑥 나오기는 하는데, 그래도 전체적으로는 퇴역 군인으로서 삶 민간인의 삶을 살고 있고요. 사실 현대의 대중민주주의, 정당정치, 선거, 이런 제도는 전쟁을 문명화한 거거든요. 옛날에 총칼 들고 서로를 죽이던, 승자가 패자를 완전히 죽이고 노예로 만들던 싸움을 일정 한도 안에서 문명화해서 묶어놓은 거예요. 총칼 들지 말고 말로 싸우고, 이겨도 진 사람을 죽일 수 없도록 해놓고, 이긴 자가 권력을 다 가질 수 없도록 해놓고, 이렇게 해서 문명화를 해놨지만 그래도 전쟁은 전쟁이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편을 나누죠.
제가 언론 보도를 보다 보면 가끔 편 가르기 한다고 비난하는 게 나오는데요. 그건 인간이 인간이기를 포기하라고 하는 것과 똑같아요. 기본적으로 정치는 편을 갈라서 하는 거예요. 그게 우리 본성이고요. 정치인들 보고 편 가르지 말라고 하는 건 진짜 웃기는 이야기예요. 편을 갈라야 해요. 의견이 다른데 어떻게 편을 안 갈라요. 그런데 편이라는 게 딱 두 쪽으로만 나눠지는 거 아니잖아요. 둘로 쪼개놓고 나면 그 안에서 또 다른 쟁점에 대해서 편이 나눠질 수 있어요. 그럴 때 ‘크게 봐서 한 팀이 됐는데 안에 있는 작은 다툼이나 이견들을 어디까지 노출시켜야 되냐’에 대해서 판단이 갈라질 수 있어요. 그게 참 어려운 일이에요. ‘어디까지는 노출하는 걸 인정해야 되고, 어디까지는 아닌가’ 이거에 대해서도 사람들이 의견이 달라서. 많이 노출시켜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걸 노출시키거든요.
김하나 : 지금 내부에 있는 여러 갈등이나 이런 것에 대해서.
유시민 : 그렇죠. 그러면 ‘쟤는 팀킬을 한다, X맨이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 경계선을 타고 가는 게 정치에서는 참 어려워요.
김하나 : 그렇겠네요. 한 팀이라고 해서 같이 묶여있지만 이 안에서 각자의 욕망이 다 다르게 있을 텐데, 어떤 사안에서는 팀을 우선할 것인지 각개의 의견을 우선할 것인지, 어려운 일이겠네요.
유시민 : 네. 정치에서는 그게 어려운 것 같아요.
김하나 : 그렇군요.
유시민 : 그런데 저는 조금 제 생각이 많고 주장이 분명한 편이라, 그런 사람들이 정치를 하면 되게 고달파요. 자기 자신만 고달픈 게 아니라 같이 하는 사람들도 고달프대요(좌중 웃음). 그래서 ‘나를 위해서건 그 분들을 위해서건 빠져주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고, 지나고 나서 보면 ‘아예 안 갔더라면 좋았을 걸’ 하는 생각도 하죠.
김하나 : 만약에, 정말로 안 갈 수도 있는 상황이어서 안 갔다고 한다면, 어떤 부채감 같은 건 없었을까요?
유시민 : 그런 건 없죠. 꼭 정치를 해야 세상에 대한 의무를 다할 수 있는 건 아니죠. 사람들은 각자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 자기가 하고 싶은 방식, 자기가 잘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세상과 관계를 맺어나가고. 또 세상을 이루고 있는 한 구성원으로서 해야 될 일들이 있죠. 그것도 사람들마다 각자의 방식으로 하는 거기 때문에, 정치를 하고 말고가 기준이 되어서 어떤 사람의 삶의 의미나 가치를 평가하는 잣대가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하죠.
김하나 : 『유럽 도시 기행 1』 에서 아테네, 로마, 이스탄불, 파리는 문명의 전파 과정이라든가 어떤 것이 성립되는 과정을 따라간다면, 2권에서 도시들 선별 기준은 뭐였을까요?
유시민 : 지리적 거리, 그러니까 가까이에 있는 도시들을 묶어서 한 권씩 하려고요. 임의적으로. 이 네 도시(아테네, 로마, 이스탄불, 파리)는 서구 문명의 등뼈를 이루는 도시들이기 때문에 같이 다룰 수밖에 없어요. 이 네 도시가 워낙 다른 도시에 준 영향이 커요. 2권은 중부 유럽에 해당되는 빈, 프라하, 부다페스트, 드레스덴에 대한 이야기가 될 텐데, 이 네 도시가 가깝거든요.
김하나 : 이미 다 다녀오셨고요?
유시민 : 네, 다 다녀왔고요. 지금 글을 쓰고 있죠. 3권은 아직 미정이에요. 이베리아 반도로 가볼까, 아니면 영국은 유럽 대륙이 아니지만 잉글랜드 아일랜드 쪽으로 해서 북쪽으로 가볼까, 고민 중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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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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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의 낯선 도시에게 말 걸기, 그 첫 번째 이야기. '인생은 너무 짧은 여행'이란 말에 끌려 시작한 작가의 유럽 탐사가 5년이라는 시간을 거쳐 책으로 출간되었다. 각 도시의 건축물과 거리, 광장, 박물관과 예술품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 기울일 수 있도록 역사와 문화, 그리고 그에 얽힌 지식과 정보를 유시민만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