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대안학교 반주자가 인간답게 사는 법
『인간이라는 단 하나의 이유』 김지혜 저자 인터뷰
국경과 인종을 뛰어넘어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것, 사람이 자기 아닌 다른 사람을 동등하게 대하고 존중하는 것만이 제 유일한 관심사입니다. (2019. 07. 01)
페이스북 편지글로 한국 사회에 뼈아픈 질문을 던지며 이름을 알린 음악가 김지혜가 말하는 지극히 사적인 공존법 『인간이라는 단 하나의 이유』 . 만 15개월에 접어든 아이를 데리고 남편의 유학길에 함께 올랐던 것이 벌써 10여 년 전. 한국을 떠나 머나먼 독일에서 보낸 시간은 익숙한 것이 낯선 것이 되고, 낯선 것이 삶의 테두리 안에서 익숙해질 만큼 긴 시간이었다. 하지만 딱 한 가지 ‘인간답게 산다는 것’에 대한 해답만큼은 변하지 않고, 오히려 그 틀을 견고하게 쌓았다.
한국에서 사회학을 전공하고 노찾사(노래를 찾는 사람들) 멤버로 활동했을 만큼 저자 김지혜는 인간 사회에 끊임없이 관심을 기울여왔다. 그런 그가 펜을 들어 한국 사회를 향해 편지글로 목소리를 내고, 음악가로서 활동을 시작한 데는 독일에서의 특별한 경험이 바탕이 되었다.
한국인과 독일인 사이에서 다양한 경험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눈과 여유를 선물 받았다는 그. 그런 그가 말하는 ‘인간답게 산다’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 궁금하다. 상위 몇 퍼센트를 제외한 나머지 대다수의 보통 사람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가? 우리 사회는 다수가 아닌 소수가 행복한 사회로 나아가고 있지 않은가? 다수가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망을 우리 대한민국 사회는 갖추고 있는가?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않은 세상을 향한 음악가 김지혜의 당찬 메시지에 귀를 기울여보자.
『인간이라는 단 하나의 이유』 를 쓰기 시작한 계기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계기였는지 궁금합니다.
언어도 문화도 낯선 이국땅에서 ‘외국인’으로 살아가다 보면 익숙했던 모든 것이 새롭게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라는 동안 배웠던 것,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에 대해 “과연 이게 맞나?” “진짜 이게 당연할까?” 하고 다시 생각해보게 되는 것이지요. 한국인이지만 독일에 살고 있는 제가 평범한 시민으로서, 한 아이의 엄마로서 품게 된 질문과 생각 들을 다른 분들과 함께 나눠보고 싶었습니다.
띠지에 ‘페이스북 편지글로 한국 사회에 뼈아픈 질문을 던진 음악가 김지혜의 지극히 사적인 공존법’이라고 적혀 있더라고요. 두 가지가 궁금합니다. ‘페이스북 편지글’ 그리고 ‘음악가 김지혜’요. 간단하게 설명 부탁드립니다.
먼저 ‘페이스북 편지글’은 페이스북에 한국 사회에서 일어나는 여러 사안에 대해 느낀 것들을 편지글로 적어 올렸는데, 많은 분이 같이 공감해주셨어요. 책에서도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평범한 사람들이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같이 이야기해 나갈 때 세상을 긍정적으로 만들 힘이 생긴다고 생각하거든요. 저 개인적으로는 함께 이야기해 나갈 공간과 기회가 있다는 게 다행이다 싶어요. 같이 공감해주신 분들께도 감사하고요. 그분들의 응원이 있어서 책도 나오게 된 것입니다.
‘음악가 김지혜’는 어릴 때부터 제 머릿속에 떠오르는 멜로디를 오선지에 적는 일이 정말 재미있었는데, 어쩌다 보니 작곡 공부를 할 기회는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피아노를 치고, 곡 쓰는 일을 계속하게 되더라고요. 저는 그게 재미있거든요. 대학을 졸업하고 ‘노래를 찾는 사람들’에서도 잠깐 활동했고, 결혼하고 나서는 콘서트나 뮤지컬 공연의 반주를 하기도 했습니다. 아이를 낳고 독일에 온 뒤 아들이 자라는 모습, 친구들과 노는 모습을 표현한 피아노곡들이 한국에서 디지털 음반으로 나왔고요.
공연 리허설 중인 김지혜
많은 이가 해외에서 한 번쯤 살아보는 것을 꿈꾸고는 합니다. 그런데 책을 읽어보니 쉽게 생각하고 이야기할 게 아니더라고요. 이상과 현실의 괴리가 상당한 듯 보였어요. 이방인을 향한 그들의 경계와 인종차별... 정말 마음고생이 심하셨을 것 같아요.
어떤 명확한 계획을 세우고 독일에 온 것은 아닙니다. 남편의 유학으로 오게 되었고, 한국으로 돌아가느냐 독일에서 자리를 잡느냐…, 아무것도 정해진 게 없었죠. 남편이 이곳에서 일을 하면서 머무르게 되었는데, 의사 표현을 독일어로 해야 한다는 것부터가 난관이었습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들을 정확하게 표현할 수 없어 답답했고, 그러다 보니 움츠러들게 되더라고요.
독일에서 처음 머문 도시는 보수적이지만 타인에게 열린 곳이었어요. 운이 좋아서였는지 친절한 이웃과 좋은 친구들을 만났고, 독일에서의 첫 시간을 잘 보낼 수 있었죠. 그런데 지금 살고 있는 트리어로 이사 온 뒤부터는 새로운 분위기에 적응해야 했습니다. 독일에서 제일 오래된 이곳은 참 아름답지만 굉장히 보수적인 도시고, 또 제가 이곳에 처음 왔을 때만 해도 외국인, 특히 동양인과 아프리카인에게 닫혀 있었어요. 처음 3년 정도는 정말 잠도 제대로 잘 수가 없었습니다. “내가 이곳에서 살 수 있을까?” 고민이 되더라고요.
3~4년이 지나고 한나, 야나, 비올라 같은 친구들을 만나면서 숨을 쉴 수 있었어요. 그 친구들이 때로는 말로, 때로는 표정으로 제게 메시지를 수시로 보내줬어요. “괜찮아, 네 옆에는 우리가 있어. 네가 동양인이든 공부를 얼마나 했든 우리는 상관하지 않아. 우리는 그냥 안겔라 너를 보는 거야” 라고요. 그 친구들이 아니었다면 저는 트리어에서 계속 살 수 없었을지도 모릅니다(아, 물론 친구들 이름은 프라이버시를 위해 가명으로 썼습니다).
독일에 사신 지 10여 년 되셨지요. 오랜 시간을 타지에서 사셨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에 꽤 많은 관심을 보여 놀랐습니다. 물론 한국은 고향이지만 지금 내가 일구고 가꾸어 나가는 삶의 터전은 아니니까요.
저는 애국주의자는 아니에요. 어느 분이 제게 “조국을 사랑해줘서 고맙다”라고 하셔서 제가 바로 말씀드렸어요. 저는 “조국을 사랑한다”는 말보다 “사람을 사랑한다”는 말이 더 좋다고요. 국경과 인종을 뛰어넘어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것, 사람이 자기 아닌 다른 사람을 동등하게 대하고 존중하는 것만이 제 유일한 관심사입니다. 한국 사회뿐만이 아니라 세상 모든 일에 관심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누군가가 겪는 일은 나중에 부메랑이 되어 내게도 돌아온다는 게 제 생각이거든요. 누군가가 행복해지고, 누군가 일하는 환경이 나아지고, 누군가 겪는 부조리한 일들이 바로잡히는 일은 곧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이 안전해지고 좋아진다는 뜻이잖아요? 안전하고 좋은 세상, 누구나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에서는 저도 당연히 행복해질 수 있지 않겠습니까.
벨기에 광장에서 피아노를 치고 있는 김지혜
인간이라는 단 하나의 이유. 이 책의 제목이지요. 그런데 제목이 정해지던 날 잠이 안 오셨다고요.
제 글이 제목이 주는 무게감을 견딜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습니다. 내가 쓴 글이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가 하는 부끄러움 때문이었어요.
“매 순간 사람들은 서로 같은 점을 찾기보다는 다른 점을 찾아 분류하고, 분류되고, 차별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라는 문장이 참 가슴 아픕니다. 정말 우리는 자신이 태어난 나라에서조차 이방인으로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제가 정말 충격받았던 것 중 하나가 한국에는 아파트에도 등급이 있고, 그 등급대로 아이들이 친구를 만나게 된다는 점이었어요. 어느 분이 ‘중세의 성곽’이라는 표현을 하시더라고요. 신분별로 사는 곳이 확연하게 드러나는 중세를 연상케 한다고요. 독일도 사실 계층이 있어요. 상류층이 있고, 중산층이 있고, 극빈층이 있습니다. 집도 당연히 다르죠. 그렇지만 아이들 세상에서까지 사는 정도에 따라 친구를 구별해 사귀는 일은 상상이 잘 안 됩니다.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서로 달라도 같이 어울릴 수 있어야 한다고 이야기해줘야 할 것 같은데, 다른 점만 볼 수 있게 하는 모습이 이해되지 않습니다. 서로 차별하고, 차별받고…, 같은 언어를 쓰고 같은 나라에 사는 사람들끼리도 그런다는 게 말입니다.
프롤로그에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의 대사가 한 줄 적혀 있습니다. “꿈을 이루라는 소리가 아니야. 꾸기라도 해보라고.” 꿈을 이루는 것은커녕 꾸는 것조차 힘들다고 말하는 이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개인이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될 때는 사회 시스템을 돌아보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꿈을 가지라는 이야기를 개개인의 선택으로 돌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꿈을 갖고 그 길로 가기 위해 개인이 할 수 있는 노력은 이미 다들 하고 있지 않습니까? 청년들이 노력을 안 해서 취업이 안 되는 게 아니잖아요. 행복한 사람보다 고통받는 사람이 더 많은 사회는 정상이 아닙니다. 최소한의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일이, 최소한 인간으로서 존중받고 살아가는 일이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일처럼 불가능해 보이는 이 사회가 바뀌지 않는다면, 아름다운 꿈을 가지고 네 꿈을 펼쳐보라는 이야기는 쉽게 할 수 없을 듯합니다. ‘무엇이 우리의 행복을 가로막는가’라는 질문에 함께 답을 찾아 나가자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보는 일이 쉽지는 않겠지만, 그래야 꿈도 꿀 수 있을 테니까요.
독일에서는 안겔라(Angella, 안젤라의 독일식 발음)로 불린다. 현재 독일 서쪽에 있는 도시이자 카를 마르크스의 고향인 트리어(Trier)에 살고 있다. 대안학교인 발도르프 학교에서 피아노 반주자로 일하며 틈틈이 글을 쓰고 음악도 만든다.
어렸을 때부터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을 글이나 음악으로 표현하는 일이 재미있었다. 누군가 ‘작가’ 혹은 ‘음악가’라는 직함으로 부르는 것과 상관없이 앞으로도 계속 글을 쓰고 음악을 만들어 나갈 예정이다.
아들이 자라는 모습을 피아노곡으로 표현한 첫 정규앨범 《Playing on and on and on》과 싱글앨범 《너도 들려 바람소리?》를 발매했고, 2019년 가을에 두 번째 싱글앨범 《네가 있어서 다행이야》를 발매할 예정이다.
인간이라는 단 하나의 이유김지혜 저 | 파람북
다수가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망을 우리 대한민국 사회는 갖추고 있는가?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않은 세상을 향한 음악가 김지혜의 당찬 메시지에 귀를 기울여보자.
관련태그: 인간이라는 단 하나의 이유, 김지혜 음악가, 독일 대안학교, 존중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
<김지혜> 저13,950원(10% + 5%)
따가운 시선이 시도 때도 없이 내리꽂히던, 먼 이방의 도시에서 씩씩하고 유쾌하게 “저는 오늘 하루도 인간답게 살고 있습니다!” 한국을 떠나 머나먼 독일에서 이방인으로 산 지 벌써 10여 년. 익숙하던 것이 낯선 것이 되고, 낯선 것이 삶의 테두리 안에서 익숙해질 만큼 긴 시간이었다. 하지만 딱 한 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