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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은 신화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

『처의 감각』 고연옥 작가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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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을 통해서 이것이 내 이야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면 현실 속에서 일어날 수 있는 불행을 피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소재로 선택하는 사건 역시 아무래도 나에게서 가장 가까이 있다고 느끼는 것, 그 사건 속에 내가 포함되어 있다고 느끼는 것입니다. (2018. 03. 21)

고연옥 작가 프로필 사진.jpg

 

 

인간 본성에 대한 성찰을 이끌어내는 극작과 고연옥과 텍스트를 집요하게 분석해서 연극성 넘치는 무대를 만드는 연출가 김정이 『처의 감각』 을 무대화해 <처의 감각>이라는 연극을 올린다. 고연옥 작가와 김정 연출가는 지난 해 <손님들>이라는 연극으로 유수의 연극상을 휩쓸었기에 이번에 두사람이 보여줄 무대가 더 큰 기대를 모으고 있다. 타인에 의해 부서지는 세계 속에서 끝까지 자신의 것을 지키려 몸부림치는 여자, 타인의 세계에 들어가기 위해 자신의 감각으로부터 도망치려는 남자가 등장하는 <처의 감각>은 4월 5일부터 15일까지 열흘간 남산예술센터에서 만나볼 수 있다.

 

기자 생활을 하셨기 때문인지 실제 사건에서 모티브를 많이 얻으시는 것 같습니다. <주인이 오셨다>는 버지니아공대 총기 난사 사건, <나는 형제다>는 보스턴 마라톤 테러를 모티브로 한 작품인데요. 하루에도 믿기 힘든 사건 사고가 몇 십 건씩 일어나는 현실 속에서 희곡으로 쓸 소재를 선정하는 본인만의 기준이 있으신지요?

 

사건사고를 소재로 많이 쓰는 이유는 현재 이곳의 문제가 함축되어 있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특히 강력사건들에는 인간이 자신을 신과 비슷한 위치로 끌어올리려는 욕망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와 다를 바 없는 한 평범한 인간이 어떤 과정을 통해서 자신을 심판자로 인식하는지를 지속적으로 탐구하고 싶습니다. 그것에는 인간의 알 수 없는 본성, 신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질문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대부분의 사건은 반복해서 일어나고 있는데, 그것은 우리 역시 언젠가 그 불행한 사건들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연극을 통해서 이것이 내 이야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면 현실 속에서 일어날 수 있는 불행을 피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소재로 선택하는 사건 역시 아무래도 나에게서 가장 가까이 있다고 느끼는 것, 그 사건 속에 내가 포함되어 있다고 느끼는 것입니다.  


흔히들 희곡은 공연을 위한 대본이라고 생각하곤 합니다. 그래서인지 소설이나 시에 비해 비교적 단독으로 읽히는 경우도 적고, 출판물로 발행되는 수도 많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학의 한 장르로써 희곡만이 가지고 있는 매력이 무엇이 있을까요.


한때 연극계에서조차 희곡이 문학이냐 연극의 일부이냐는 논쟁이 있었고, 여전히 희곡을 기능적으로 이해하는 동료들도 있습니다. 아직 희곡 출판이 활발하진 않지만, 예전에 비해 희곡 그 자체에 관심을 갖는 관객들도 많아졌고, 희곡을 있는 그대로 들려주는 낭독공연이 공연의 한 분야가 되기도 했습니다. 희곡읽기의 가장 큰 매력은 인물과 공간, 시간이 입체적으로 표현되기 때문에 읽는 것만으로 3차원, 4차원의 현실을 체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 좋은 희곡은 대사와 인물이 사실적이기 때문에 장면들을 상상하며 천천히 읽다보면 자신만의 연극을 만들어 가는 재미를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장르에 비해서 작가의 관념이나 의도를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인물과 사건을 통해 표현하기 때문에 독자로서 보다 자유로운 해석을 하고 질문을 던질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입니다.  


연극 제작에 작가와 연출을 겸하거나 혹은 구성원들이 공동창작을 하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계시잖아요. 다른 분야를 겸하기보다는 오롯이 극작가가 되기를 희망하는 학생들에게 좋은 롤모델이 되실 것 같아요. ‘과거 내가 극작가를 지망하던 때, 미리 알고 있었다면 좋았을 것’ 한 가지만 말씀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극작가를 지망하는 이들에게 좋은 조언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희곡은 소설이나 시에 비해서 청소년기에 충분히 경험하기 힘들기 때문에 문학을 전공하고 싶은 학생들이 선택하기가 쉽지 않은 장르입니다. 그러나 대학에 들어와서 희곡쓰기를 배우면서 희곡에 매력을 느끼는 학생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누군가와의 직접적인 소통을 전제로 하는 문학이기 때문에 고립감을 피할 수 있고, 인간과 그 인간이 경험하는 세계를 사실적으로 표현하는 것에 흥미를 느끼기 때문입니다. 신춘문예 희곡부분의 지원자가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며 좋은 작가들도 많이 탄생하고 있습니다.


반면 한편의 희곡이 무대를 만날 수 있는 기회는 쉽게 찾아오지 않습니다. 이 작품이 우리시대를 표상하는 중요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검증하는 기나긴 과정을 필요로 합니다. 또한 연극제작을 위한 제작여건, 연출 및 배우들과 스텝, 극장까지 모든 조건들이 갖춰지기 까지는 꽤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합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공연 직전까지 대본을 수정하는 고통스런 경험도 해야 합니다. 그러나 무대에서 배우들의 몸을 통해 내 이야기가 발화되고 이 세계의 중심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을 보는 경험은 작가로서 느낄 수 있는 최고의 기쁨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2016년 <곰의 아내>로 남산예술센터 무대에 올랐던 작품이 본래의 제목인 <처의 감각>으로 올해 다시 남산예술센터 무대에 오를 예정입니다. 인간 남자와의 사이에서 아이를 낳은 암컷곰이 도망간 남자를 돌아오게 하기 위해 자신의 새끼들을 차례로 물에 빠뜨리고 결국 자신도 물에 빠져 죽은 ‘충주 곰사당’ 신화를 모티프로 한 작품인데요. 첫 번째 질문과 연관하여, 이 소재를 선택하여 희곡을 집필하시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2011년, 연쇄살인 사건과 뱀신랑설화를 결합한 <지하생활자들>이란 작품을 발표했는데, 그 후 아시아와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등지의 많은 원시민족에서 뱀과 곰이 샤먼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특히 곰이 압도적으로 많았습니다. 그 다음부터 저에게 곰이란 존재는 신화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으로 보였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누군가를 ‘미련곰탱이’라고 부르는 짧은 순간에도 자신만의 동굴에서 살려고 하는 곰의 신화가 섬광처럼 지나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웅녀신화의 뿌리가 되었다고 알려진 충주곰사당 신화는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는 곰 신화 중 가장 매력적인 이야기였습니다. 동시에 현재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자기 아이를 살해하는 엄마들의 이야기와 닮았습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헌신했던 남편에게 배신당하고 아이를 죽이는 희랍신화 <메데이아>와 유사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저 자신의 이야기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두 아이를 키우며 언젠가 내가 최악의 상황이 된다면 내가 가장 사랑하는 저 아이들을 내 손으로 죽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항상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 공통적으로 가진 무의식이며 우울이고 어둠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단지 엄마들의 이야기에서 더 나아가 최악의 상황으로 내몰린 약자들의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웅녀신화 이후 역사에서 사라진 웅녀처럼 한때 최선을 다해 살았지만, 점점 사라지고 마침내 동굴 속에 숨어 살 수 밖에 없는 수많은 약자들에 대한 은유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처의 감각>에서 여자가 처음 동굴을 떠나 인간세계를 경험한 뒤, 다시 동굴로 돌아오는 모습은 마치 하나의 긴 여정으로 느껴집니다. 여자는 인간세계에서 다양한 인물들을 마주하게 되는데요. 극중에서 이러한 인물들의 역할은 무엇이고 또 이들과의 만남은 여자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요?

 

희곡 속의 인물은 한 인간을 표현하는 동시에 어떤 세계를 표상합니다. 여자는 그들의 세계를 통과하면서 조금씩 변화하게 됩니다. 그들은 동굴에서 멀어질수록 곰의 세계와는 먼 거리의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린시절 곰과 살았던 여자가 남자와 함께 곰의 세계에서 나와 인간의 세계로 들어가지만 결국 그 속에서 점점 곰이 되어 동굴로 돌아오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곰과 살면서 곰이 약자가 되어 가는 모습을 봤던 여자가 인간들의 세상에서 마침내 가장 약한 존재가 되어 돌아와 곰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처의 감각>을 통해 관객들에게 가장 하고 싶은 말씀이 무엇인지요.

 

여전히 약자들이 혐오의 대상이 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를 지나 현재 미투운동에서도 고통받은 사람들이 오히려 더 많은 비난과 모욕을 당하곤 합니다. 약자들은 강자를 시기하고 질투하는 존재라는 인식이 깔려 있기 때문입니다. 부당한 일을 당해도 감추고 사는 것이 더 현명한 것처럼 보이고, 약자에게 공감하는 일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강자만이 살아남는다는 생각은 결국 강자든 약자든 살아남을 수 없는 세상을 만들 것입니다. 그동안 우리가 감춰야만 된다고 여겼던 약자의 감각은 나 자신의 약한 부분을 돌아보고, 다른 약한 사람들에게도 공감하며 함께 아파할 수 있는 소중한 감수성입니다. 약자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살아갈 때, 우린 지금보다 조금은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마지막 질문입니다. 아직 쓰지는 않았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꼭 쓰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인류 최초의 신화라고 할 수 있는 ‘길가메시 신화’를 다시 읽으며 ‘현대적 영웅’에 대해 생각하고 있습니다. 길가메시 신화의 공간인 수메르 지역으로 IS 대원이 되기 위해 집을 떠난 자식과 그 자식을 데려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부모의 이야기를 구상중입니다. 저는 그동안 사건사고를 소재로 작품을 쓰면서 자연스럽게 그 사건의 실제 주인공이기도 한 남성 중심의 서사를 많이 써왔습니다. 그러나 요즘 수많은 남성서사들 때문에 상대적으로 왜소해진 여성서사가 결국 여성에 대한 차별과 배제를 만들었다는 자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를 비롯해 많은 여성작가들 역시 여성을 타자화 시키는 역할을 해왔던 것입니다. 그동안 우리가 여성성이라고 믿고 있던 관념들이 어쩌면 문학이나 예술이 만들어낸 허상일 뿐이며, 덕분에 지금까지 여성적인 것과 남성적인 것을 구분하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제가 지금까지 관습적으로 생각했던 여성과 남성의 차이를 의심하며 좀 더 본질적인 여성의 서사를 쓰기위해 고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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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남산예술센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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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의 감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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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제:
    • 장르: 연극
    • 장소: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
    • 등급: 만 13세 이상(중학생 이상) 관람가
    공연정보 관람후기 한줄 기대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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