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수 교수 “혐오표현과 차별, 범죄의 원인은 똑같다”
『말이 칼이 될 때』출간 기념 북콘서트 진짜 표현의 자유를 확대할 수 있는 길은?
당사자가 아닌 상황에서는 누구나 그 입장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거든요. 전혀 의도하지 않은 말이 차별이 되거나 편견을 드러내는 말이 되거나 심지어는 상처를 주는 말이 될 수 있어요. 그걸 반성하는 데에서부터 출발해야 된다는 생각을 늘 갖고 있죠. (2018. 02. 20)
혐오표현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결국 ‘공존의 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함이다. 제러미 월드론은 공존과 공공선을 이야기한다. 누스바움은 인간을 존중하고 “상상력을 동원해 타인의 삶에 감정적으로 참여”하는 정치적 태도인 “인류애의 정치”를 말한다. 지금 우리 현실에서 중요한 화두가 아닐 수 없다. 혐오표현은 이러한 공존의 조건을 파괴하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다.(229쪽)
한국 사회는 혐오 문제로 뜨겁다. 노키즈존 식당이 차별이라는 국가인권위의 판단과 개선 권고가 있었고, 문단과 검찰, 연극계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는 오늘도 성폭력 폭로가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그 기저에 혐오표현 문제가 있다. 혐오표현이 어떻게 차별과 범죄로 이어지는지 이해하는 일은 지금 이 사회를 사는 모두에게 아주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2월 1일, 『말이 칼이 될 때』 출간 기념 북콘서트가 진행되었다. <씨네21> 이다혜 기자와 책의 저자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가 혐오표현에 대한 정확한 의미를 짚고 혐오표현이 사회에서 작동하는 양상과 혐오표현의 규제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시대에 따라 변화하는 혐오표현
이다혜 : 교수님은 혐오표현이라는 것에 어떻게 관심을 갖게 되셨나요?
홍성수 : 박사논문을 2004년부터 2008년까지 썼는데요. 사례로 다룬 게 성희롱이었어요. 성희롱이 혐오표현이죠. 육체적인 것으로 연결이 되면 강제 추행이 되고요. 성희롱으로 포착되는 것 중 상당수가 언어적 여성 혐오표현이나 다름없어요. 그때는 혐오표현이라는 말은 몰랐지만 기본적으로 그에 대한 문제의식은 갖고 있는 상태였는데요. 처음에는 학문적 흥미에 가까웠던 것 같아요. 표현의 자유는 중요하고, 혐오표현만큼은 규제해야 하고, 너무 규제하면 표현의 자유가 제압되고, 이런 것들이 일종의 난제잖아요. 어려운 문제기 때문에 푸는 게 재미있겠다고 생각해서 시작했어요. 하는 과정에서 사회적으로 굉장히 심각한 문제라는 생각을 하게 됐죠. 특히 혐오표현 피해자들에게 공감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여기까지 오게 됐고요. 그동안 혐오표현 관련 이슈가 계속 터지면서 그 문제에 본의 아니게 전문가가 된 것 같아요.
이다혜 : 혐오표현이 무엇인가, 왜 문제인가에 대해 공부를 할수록 자기가 했던 말이나 글을 되돌아보게 되는 효과도 있는 것 같은데요. 교수님도 그런 반성의 과정을 거쳤나요?
홍성수 : 강연할 때 하는 말이 저도 실수를 한다는 말인데요. 당사자가 아닌 상황에서는 누구나 그 입장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거든요. 전혀 의도하지 않은 말이 차별이 되거나 편견을 드러내는 말이 되거나 심지어는 상처를 주는 말이 될 수 있어요. 그걸 반성하는 데에서부터 출발해야 된다는 생각을 늘 갖고 있죠.
이다혜 : 혐오표현 이야기를 하면 세대 차이를 느낄 때가 있어요. 예를 들면 한국전쟁을 겪은 세대들의 경우 인종 차별 발언에 대해서는 전혀 공감하지 않습니다. 한편 지금 10대 후반에서 20대 초중반 세대 같은 경우는 특히 남성, 여성 간 혐오표현에 대해 훨씬 더 관심을 많이 갖고요. 연구를 하시면서 세대 간 차이를 느낀 적도 있을 것 같아요.
홍성수 : 비슷한 질문으로 전보다 혐오표현이 늘었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데요. 정확하게 알 수 없어요. 성희롱도 비슷하죠. 어느 대학에서 작년에 성희롱이 몇 건 터졌다, 라고 해도 그건 터진 게 아니죠. 사건화 된 것이 몇 건이라는 것이고요. 어떤 학교는 10건 있었다, 하면 오히려 더 문제일 수 있어요. 10건밖에 못 잡아낸 거니까요. 혐오표현이 늘었느냐, 쉽게 얘기할 수 없는 부분이지만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예전보다 혐오표현이라고 인지하는 범위는 늘었다는 겁니다. 그 인지 범위에 세대 간 차이가 확실히 있고요. 예전 분들은 도저히 생각지도 못했던, 단 한 번도 지적당하지 않았던 말들이 혐오표현으로 지적 받는 거죠. 다 이해는 못해도 그런 지적을 존중한다, 정도 되면 구세대 중에서도 아주 괜찮은 분이고요. 사실 이해하는 분들도 많진 않아요. 반면 젊은 분들은 상대적으로 인지를 하고, 문제제기까지 해요. 세대 차이는 확실히 나는 부분이 있죠.
이다혜 : 어떤 게 혐오표현인지 알려주면 그것을 조심하겠다고 하시는 분들도 계실 것 같은데요. 이 이슈가 복잡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시대에 따라 변화한다는 거예요. 이전에는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들이 지금은 문제가 되고요. 지금은 괜찮다 하더라도 20-30년 뒤에 지금과 똑같은 기준으로 판단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거죠. 결국은 혐오표현에 대해 알고 있다는 것 자체가 지금, 우리 사회의 소수자와 약자에 대해 얼마나 예민하게 생각하고 있느냐를 반영하는 것 같아요.
홍성수 : 어떤 분들은 ‘맘충’이 그렇게 혐오표현이냐, 그냥 장난스럽게 하는 말이다, 라고 얘기해요. 그렇게 말할 자유도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하죠. 그러면 저는 표현의 자유를 굉장히 옹호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것 참 좋은 말씀이다, 라고 우선 말해요. 저도 그 말이 문제없이 쓰이는 날이 오면 참 좋겠다고요. 아이 엄마에 대한 어떤 차별도 없고, 차별하려는 사람이 오히려 이상한 사람 취급 받고, 그런 사회가 된다면 누가 그런 말을 해도 그냥 웃긴 말이 되는 거죠. 근데 지금은 그게 아니잖아요. 이 말을 들으면 위축이 돼요. 조금만 잘못하면 사람들의 시선이 따갑고, 다들 나를 맘충이라 하는 것 같고요. 이런 문제와 결부되어 있기 때문에 맘충이 혐오표현이 될 수 있다고 하는 건데요. 이건 말씀처럼 시대 변화에 따라 유동적인 거예요.
여성도 똑같습니다. 왜 그런 거에 민감하냐고 하는데요. 남녀가 진짜 평등한 사회가 오면 자연스럽게 넘길 수 있게 돼요. ‘김치녀’라고 해도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다 하네, 라고 할 수 있는데요. 지금은 그게 안 되는 맥락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문제제기를 하는 거거든요. 이럴 때 말할 자유를 달라고 얘기할 게 아니고요. 말할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일에 동참하는 게 진짜 표현의 자유를 확대할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다혜 : 표현의 자유를 누린다는 것은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전제한다는 것이죠. 그러니까 차별적인 말을 하지 않는 것이 그 책임에 포함된다는 거겠죠.
홍성수 : 당사자는 실제 입증 가능한 해악을 입거든요. 심리적인 상처, 정신의학적인 질병 등 피해를 입어요. 더 나아가서 차별이나 폭력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빈번하고요. 제대로 된 생활을 못하게 되죠. 공존을 완전히 깨는 거예요. 말할 자유를 누리고 싶다는 이유로 상대에게 차별과 폭력으로 이어지는 상황을 방치하면 안 되겠죠. 가능한 많은 표현의 자유를 누리면 좋겠지만 그런 해악이 있는 말은 어쩔 수 없이 규제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생각해요. 저는 절대 규제를 좋아하지 않아요. 책도 어떻게 하면 규제, 처벌을 덜 할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썼지만요. 어느 쪽이 양보해야 하느냐, 라고 한다면 말할 자유 쪽이 양보하는 게 윤리적으로 옳은 게 아닌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차원적 전략을 쓸 수밖에
이다혜 : 책에서 인상적이었던 게 사실 그대로를 이야기하는 것도 혐오표현일 수 있다는 것이었거든요. 평등한 사회라면 그 표현이 문제되지 않겠지만 특정한 혐오표현과 결부되어 그 말이 쓰이는 사회라면 혐오표현이 된다는 말이에요. 단순히 사실 그대로를 이야기하고 있다고 해서 빠져나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예를 들어, 교사가 학생을 지칭할 때, ‘파란 옷을 입은 학생’이라고 한다면 별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여학생’ 또는 ‘안경 쓴 학생’이라고 지칭했다면 어떨까? ‘휠체어 탄 학생’, ‘히잡 쓴 학생’, ‘다문화’라고 부른다면 어떨까? 누군가를 지적하여 부르기 위해 구분이 불가피한 경우가 있지만 차별받는 소수자의 속성을 언급하여 지칭할 때는 특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맥락에 따라 구분 자체가 열등하고 비정상적이고 비주류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효과를 낳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41쪽)
홍성수 : ‘십자가 목걸이를 하신 분’도 마땅히 특징 잡을 게 없어서 지칭했다고 할 수 있겠지만요. ‘히잡 쓰신 분’이라고 했을 때는 느낌이 확 달라지는 거거든요. 만약 무슬림에 대한 차별이 없는 사회라면 십자가와 똑같이 받아들여질 수 있는 건데요. 차별 있는 사회라면 그 지칭을 받은 사람은 이 말이 곱게 들리지 않아요. 안 그래도 차별 받고 있고, 신경이 쓰이는데 지칭까지 그렇게 받으면 더 위축이 되죠. 그렇다면 이것은 혐오표현이다, 과연 허용되어야 하는가, 라는 부분을 얼마든지 얘기할 수 있는 거예요.
이다혜 : 그러고 보면 교육의 문제가 중요할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모두가 소수자의 속성을 평생을 띄고 살진 않잖아요. 어떤 경우에는 다수자로 살게 된단 말이죠. 특히 한국 같은 경우는 이른바 ‘단일 민족’이라고 배우지 않습니까. 한국인, 비장애인, 이성애자, 남성 등의 과정에 있을 때는 굳이 가해한다고 생각하지 않아도 자기중심적으로 세상을 보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혐오표현을 할 수 있어요.
홍성수 : 법률적인 이야기를 하면 의도 없는 것은 처벌하기 조금 어려워요. 고의가 있거나 과실이 있어야 형사처벌이 되는데요. 혐오표현을 이야기할 때 형사처벌을 하려고만 문제제기 하는 것은 아니거든요. 혐오표현을 얘기할 때는 고의나 과실뿐 아니라 진짜 몰랐다고 해도 혐오표현 얘기를 할 수 있어요.
이다혜 : 모르는 것도 권력이다, 라는 말이 이럴 때 나오는 거죠.
홍성수 : 그렇죠, 그것이 혐오표현임을 지적하거나 어떤 조직 차원에서 경고를 준다거나 그 문제를 토론하거나 하는 방식으로 문제제기 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한 거예요. 당사자의 의도라는 것은 형사처벌에는 중요한 의미가 있지만 혐오표현 문제를 얘기할 때는 거의 의미가 없는 부분인 것 같습니다. 받아들이는 쪽의 문제죠.
이다혜 : ‘남혐’이 가능한가, ‘개독’이라는 말이 혐오표현인가 등에 관한 이야기도 이 대목에서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홍성수 : 직장에서 “집에서 애나 봐라”라고 했다고 치죠. 일단 하면 안 되죠. 좋은 말은 아니에요. 그런데 남자 직원한테 그 말을 했을 때와 여자 직원한테 했을 때는 직관적으로도 다르잖아요. 여성들에게는 실제로 집에서 애나 봐야 했던 시절이 있었어요. 지금도 사실 없어졌다고 하기 어렵고요. 그런 상황에서 이 말은 농담이 아니거든요. 그런데 남성들은 그런 역사적 경험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냥 특이한 질책이구나(웃음) 하겠죠. 내가 많이 잘못했나보다, 심하네, 정도는 느낄지언정 그 말이 실현되어서 나를 실제로 차별하는 것으로 이어진다는 상상을 하기는 어렵다는 거예요. 그런데 계속 이야기하지만 이것도 바뀔 수 있어요. 백 년 뒤에 육아는 남성이 담당하는 사회가 돼서 그 이유로 남성이 해고되는 사회라면 남성에게 그게 혐오표현이 되겠죠. 그런데 최소한 현재 수준에서 그게 남자한테도 똑같이 문제다, 혹은 남녀 누구에게나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라는 건 납득하기 어려워요.
이다혜 : 혐오표현을 경험할 일이 있을 때마다 생각하는 건데요. 어느 한쪽만 노력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일종의 벽을 느낄 때가 있거든요. 이런 북토크에 관심 갖는 분들은 이미 조심하는 분들일 테고, 나 또는 주변을 바꿀 수 없는지 고민하시는 분들일 텐데요. 전혀 바꿀 생각이 없는 굉장히 많은 분들이 이 사회에는 같이 존재하잖아요. 그러면 이런 얘기를 듣지 않으려는 사람들을 움직일 수 있는 방법은 뭐가 있을까 고민하게 돼요.
홍성수 : 다차원적 전략을 쓸 수밖에 없어요. 사람마다도 다르거든요. 학교에 있으니까 그 예를 들면요. 정확한 수치는 아니지만 7:3 정도 비율인데요. 70% 정도는 진짜 모르세요.
이다혜 : 70%가 모르시나요? 30%가 아니고요?(웃음)
홍성수 : 다 모르시죠.(웃음) 그런데 70% 정도는 얘기를 하면 수용을 해요. 요즘은 이런 것도 문제가 되는구나, 하고 스스로 수정을 하죠. 그런 분들은 실수는 하지만 정보를 드리면 바뀔 수 있는 분들이에요. 이런 분들을 위해서는 학교 차원에서 예전에 성희롱 센터도 만들고 했던 것처럼 혐오표현에 관련된 것들에 대한 교육을 해야겠죠. 그런 노력이 한편으로는 필요하고요. 나머지 30% 되는 분들은 아무리 얘기해도 몰라요. 이건 혐오표현의 문제라기보다 기본적인 인권 감수성에 관한 문제죠. 70%의 분들은 지식이 있어서가 아니라 일단 남이 하는 이야기를 존중하는 거거든요. 하지만 그렇지 않은 분들은 계속 우기고, 따지죠. 그런 분들은 어떻게 하겠어요. 징계해야죠.(웃음) 방법이 없어요. 전략적이어야 할 것 같아요. 정보를 제공해서 이해시키는 것으로 해결할 문제, 어쩔 수 없이 강압적 수단을 써야 할 문제, 심지어는 감옥에 보내야 할 문제 등으로 말이에요.
이런 것을 줄이기 위해서는 방송에서 그런 말을 못하게 한다거나 대통령이나 정치 지도자들이 계속 이 문제에 대한 메시지를 준다거나 초중고 교육부터 이런 문제를 인식하게 하는 등의 노력이 다 같이 가야 해요. 그래야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지 특정한 누구를 어떻게 설득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답은 별로 없어요. 그런 간단한 답이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쉽진 않습니다.
불편하게는 만들어야
이다혜 : 처벌 이야기를 안 할 수 없을 것 같아요. 법제화가 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는 매번 개인이 불쾌하거나 공포스러운 발언에 대해 때마다 발언하는 것이 굉장히 어렵습니다. 특히 혐오표현은 다수자와 소수자가 관련되어 있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한국이 지금 어떤 단계인지, 어떤 방향으로 갈 수 있을 것인지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홍성수 : 유럽식과 미국식이 있는데요. 미국은 표현을 했을 때보다 실제 차별을 했을 때 처벌이 어느 곳보다 강력합니다. 맘충이라는 말보다 실제 아이의 엄마를 차별했다, 혹은 그런 이유로 때렸다면 강력하게 처벌해요. 그런데 말 자체는 처벌하지 않아요. 유럽은 말로 떠들 때부터 규제해야 한다는 생각이 상대적으로 강한 분위기 같아요. 그런데 유럽식이 장점만 있는 건 아니에요. 우리나라처럼 오랫동안 표현의 자유가 규제되어 왔던 나라가 유럽식이 되면 규제의 총량 자체가 굉장히 늘어날 가능성이 있거든요. 정치적으로 악용될 수도 있고요. 조심해야 하는 부분이 있어서 선뜻 유럽식이 좋다는 말을 하지는 않습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어느 나라나 하고 있는 것부터 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미국도 혐오표현 규제를 아예 안 하는 건 아니거든요. 혐오표현을 회사나 학교에서 했을 때는 규제를 해요. 거액의 손해배상을 물거나 징계를 받죠. 직접 피해로 연결될 가능성이 크니까요. 그런데 한국은 차별이나 폭력으로 이어지는 것을 단호하게 규제하지도 않고, 직장이나 학교에서의 차별 발언을 규제하지도 않은 상황이에요. 그것부터, 누구도 동의하지 않을 수 없는 것부터 먼저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일종의 글로벌스탠다드 수준의 규제죠. 사회적 합의를 위해서 미국이나 유럽이나 다 하는 것부터 하면 어떨까 싶어요. 수세적으로 생각할 건 아닌 게, 어차피 혐오표현을 근절할 순 없거든요. 그런데 불편하게는 만들어야죠. 학교에서는 안 돼, 회사에서는 안 돼, 이 정도만 만들어도 굉장히 많은 게 바뀔 거라고 생각해요.
이다혜 : 혐오발언이 사회에 용납될 때 소수나 약자에 대한 혐오범죄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아지잖아요.
홍성수 : 원인은 똑같아요. 편견이 있는데 말로 표현하면 혐오표현이고요. 행동으로 옮기면 혐오범죄가 되는 거예요. 동일선상에 있는 거죠. 말로 하면 혐오표현, 실행하면 혐오범죄입니다. 맘충이라고 말하는 게 혐오표현, 아이를 둔 엄마의 출입을 금하는 게 차별, 그런 이유로 때린다면 범죄가 되죠. 원인은 같은 거고요. 당연히 증오범죄가 있는 나라나 지역이라면 거기에 혐오표현이 없을 수가 없어요. 최근 검찰 내 성폭력 사건이 드러났는데요. 검찰 조직에 그렇다면 혐오표현은 없었을까요? 성희롱 발언은 전혀 없고, 여성 검사에 대한 어떤 차별도 존재하지 않는데 그냥 엉덩이를 만지는 경우? 상상할 수가 없는 거예요. 어떤 범죄가 있으면 당연히 선행하는 여러 일들이 누적되어 왔다고 봐야 하죠. 반대로 혐오표현은 있지만 물리적인 사건은 발생하지 않았다고 한다면 사실 언제든지 혐오범죄가 실행될 수 있는 상황인 거예요.
말이 칼이 될 때홍성수 저 | 어크로스
혐오표현은 뿌리 깊은 편견과 차별이 감정 차원을 넘어 현실 세계로 드러난 ‘문제’이며, 사회적ㆍ법적으로 섬세하고 엄격하게 다뤄야 할 ‘과제’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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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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