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책] 아빠가 우리집 마당에 수상한 폐기물을 묻었어요
<월간 채널예스> 12월호
한국소설은 곧 우리네 삶이다. 그래서 한국소설, 한국소설을 좋아한다. 한 작가의 작품을 모두 읽는 것은 성격 때문이라기보다는 직업병인 것 같다. (2017.12.05.)
예술이 싸움 거는 상대가 상투성이고, 문학은 글로 표현하는 예술이라면 윤고은 작가는 천상 예술가다. 첫 번째 장편소설 『무중력 증후군』에서 제2의 달을 띄우더니, 단편 「1인용 식탁」에서는 혼자 밥 먹는 법을 가르치는 학원을 만들고, 두 번째 장편 『밤의 여행자들』에서는 재난 여행만 기획하는 여행사를 차렸다. 이렇듯 그녀가 쓴 이야기에는 세상에 없던 사건이 생기거나, '아니 이런 일로 먹고 사는 사람이 실제로 있단 말인가?' 하는 의문을 품을 만한 직업이 등장한다.
특이한 사건, 특별한 직업이 윤고은 작품을 관통하는 두 가지인데 여기에 한 가지를 더하자면 바로 '생존'이다. 재해 지역이자 관광지인 무이라는 가상 공간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생존 이야기를 담은 『밤의 여행자들』이나, 생존 배낭이라는 상품을 개발하는 이야기인 단편 「늙은 차와 히치하이커」가 모두 그러했다. 좀 더 멀리 가자면, 그녀의 첫 번째 작품인 『무중력 증후군』도 두 번째 달이 떴을 때 지구인들은 바뀐 하늘의 모습에 맞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다뤘다는 점에서 생존 이야기로 볼 수 있겠다. 세 번째 장편 소설 『해적판을 타고』는 전형적인 윤고은 표 소설이다. 여기서 표현하는 '전형적'이라는 의미는 상투성에 맞서 새로움을 추구하고 생존을 다뤘다는 의미다.
엄마와 아빠, 세 아이. 이렇게 다섯 가족이 사는 집이 있다. 집 안에는 마당이 있고, 마당 위로 여러 가지 풀과 꽃이 자란다. 어느 날, 자루 입은 아저씨들이 마당을 파헤치고 그 안에 뭔가를 넣고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떠난다. 그 뒤로 마을에서는 이상한 소문이 돈다. 동네 사람들은 마당 속 깊이 파묻은 게 유독성 강한 폐기물이라고 수군거린다. 소문이 아니었다. 실제로 주인공 집 마당 아래에는 정체 불명의 폐기물이 묻혀 있었다. 더 기가 막힌 건, 이를 받아들인 건 아빠였고 어느 정도는 자발적이었다는 사실.
왜 하필 우리 마당이었는지가 가장 의문이었는데, 조금 알 것도 같았던 것이다. 순하고, 약하고, 누군가를 잘 믿는 건 실험대 위에 올리기에 수월한 조건들이었다. (79~80쪽)
『해적판을 타고』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을 꼽으라면, 해명을 위해 방문한 책임자의 레인지로버를 엄마가 홧김에 들이박는 모습이었다. 결과는 처참했다. 책임자의 레인지로버는 멀쩡했고 주인공네 차가 더 크게 부숴졌다. 이렇듯 이 책은 길지 않은 이야기로 방사능, 미세먼지, 가습기 살균제, 생리대 발암물질에 맞서는 개인은 무력하고, 책임지는 사람은 없으며, 해결책을 말로만 떠들지 행동하지 않는 세계를 압축적으로 묘사한 작품이다.
이런 현실에서 주인공네 마당에서 폐기물을 꺼내는 이야기로 결말을 맺을지, 아닐지는 소설을 읽는 데 주목할 지점이긴 하나 전부는 아니다. 오히려 소설가가 이야기 처음에서부터 던지는 물음인 '당신네 집 마당에 수상한 무언가가 묻힌다면?'이 이 책을 읽어가는 내내 품어야 할 화두다. 다른 많은 위대한 소설이 그러하듯, 『해적판을 타고』도 온점이 아니라 물음표인 이야기다.
더 읽는다면…
밤의 여행자들
윤고은 저 | 민음사
재난을 여행 상품으로 개발하던 주인공이 재해 지역의 민낯을 마주하는 이야기. 쓰나미가 위험할까, 인간이 위험할까.
늙은 차와 히치하이커
윤고은 저 | 한겨레출판
많은 한국 소설가의 소설집이 어둡고, 자아에 침잠하는 편인데, 이 소설집은 전반적으로 따사하고 엉뚱하고, 재미있다. 특히 「된장이 된」을 추천한다.
무중력증후군
윤고은 저 | 한겨레출판
두 번째, 세 번째 달이 뜬다면 지구인은 어떻게 바뀔까. 10년 전에 발표된 작품이지만 지금 읽어도 '어, 이거 우리네 사는 모습이잖아!', 하고 무릎을 탁 치게 된다.
관련태그: 해적판을 타고, 무중력 증후군, 1인용 식탁, 밤의 여행자들
chyes@ye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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