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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가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소설

제13회 세계문학상 수상 작가 도선우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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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여러 가지 전언 중에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 자신도 모르고 저지르는 사소한 폭력의 확장이거든요. 자신에겐 보이지 않는 자신의 모습이란 측면이 제가 말하고자 했던 이야기 이면에 숨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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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스티스맨』은 연쇄살인을 추적하는 추리소설 기법으로 우리 사회에 만연한 폭력의 문제를 예리하게 짚어낸 소설이다. 동일한 방식으로 일곱 건의 살인이 벌어진다. 경찰 수사는 진척이 없고 국민의 불안은 극에 달해갈 때 저스티스맨이라는 자가 나타나 살인의 인과관계를 밝혀나간다. 인터넷은 누리꾼들의 논쟁으로 달아오르고, 어느 순간 저스티스맨과 연쇄살인범은 다수의 추종자를 거느리게 된다. 추리적 기법을 도입한 소설답게 연쇄살인범이 누구이며 피살자들은 왜 살해당했는가를 끝까지 궁금하게 만들지만, 『저스티스맨』이 더욱 눈여겨보는 것은 폭력에 무감해지고 있는 우리 자신의 모습이다.  

 

2017년 제13회 세계문학상 대상 수상작으로, 도선우 작가는 지난해 겨울 문학동네소설상을 수상한 데 이어 불과 몇 달 사이에 또 하나의 문학상을 거머쥐어 화제를 모았다.


먼저 문학상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네요. 2016년 겨울 문학동네소설상을 받으시고 곧바로 2017년 2월 세계문학상을 수상하셨습니다. 그리고 6개월 사이에 『스파링』『저스티스맨』 두 권의 수상작을 출간하셨지요. 감회가 남다르실 것 같습니다.

 

여전히 운이 좋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만, 솔직히 저 스스로의 비교 대상이 없어서 이게 정확히 어느 정도의 운인지는 잘 실감나지 않습니다. 다만 작가분들이 보통 등단해서 작품을 발표하고 6개월 만에 또 발표하는 경우가 흔치 않은 예라고 해서, 뭔가 엄청난 일이 저한테 벌어졌구나, 하고 상상은 하죠. 이게 왜 상상에 가까운가 하면 가령, 옆집 고양이가 점프해서 나는 새를 낚아채는 걸 본 기분하고 비슷하거든요. 두 눈으로 보고도 잘 믿기지 않는다는 점에서 유사한 느낌입니다.


『저스티스맨』은 일곱 건의 연쇄살인이 벌어진 후 살인 사건의 실체를 밝혀나가는 저스티스맨의 게시물과 이에 대한 누리꾼들의 반응을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게시물을 통해 밝혀지는 피살자들의 행위는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약자에 대한 폭력이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임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그 사건들을 놓고 누리꾼들이 벌이는 갑론을박 역시 폭력적이거나 맹목적입니다. 폭력을 고발하면서 또 다른 폭력을 낳는 누리꾼들의 모습이 바로 우리의 모습인 것 같아 씁쓸한 공감을 불러일으키는데, 특별히 인터넷상의 폭력에 주목하신 이유가 있으신지요?

 

우리 일상에서 다수의 군중 심리를 들여다볼 수 있는 방법이 흔치는 않은 것 같습니다. 그 흔치 않는 방법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인터넷이 아닐까 생각하는데요, 인간을 관찰하고 그 어떤 측면을 살펴보기에 이보다 더 좋은 공간은 없는 것 같습니다. 일단 어느 정도의 익명성이 보장된다는 측면에서 일상에서는 좀체 접하기 어려운 사람들의 민낯을 볼 수 있고 또 그만큼이나 다양한 의견들을 살펴볼 수 있으니까요.  그 가운데는 물론 보기 좋은 풍경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습니다. 전자를 더 많이 이야기하면 좋겠지만 그러는 동안 소외되는 수많은 약자가 존재하는 까닭에, 글 쓰는 사람의 입장에선 후자에 더 많은 관심을 둘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폭력을 드러내어 우리 스스로의 민낯을 확인하고, 함께 부끄러움을 느낄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남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모습을 면밀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었는데요, 『저스티스맨』을 읽는 동안 무언가 불편함이 느껴진다면 그 이면에는 어쩌면 부끄러움이 존재할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인터넷에서 벌어지는 폭력은 가감 없이 적나라하다는 측면에서, 우리 자신을 돌아보기에 아주 좋은 소재라고 생각했습니다.

 

『저스티스맨』은 추리소설 형식을 도입한 작품이고, 일종의 서술 트릭까지 구사하고 있어 마지막 장에서는 보이는 것만 믿어온 독자의 뒤통수를 때립니다. 두 번째 소설에서 첫 작품과는 완전히 다른 스타일을 선보이셨는데, 습작하실 때 이런 형식의 소설을 써보신 경험이 있으세요?

 

딱히 어떤 형식 자체를 생각하면서 쓰는 것은 아닙니다. 뼈대를 먼저 구성하고 점토를 붙이듯이 써나가는데 이게 전적으로 엉덩이 싸움이거든요. 그래서 무작정 어떤 지시가 내려올 때까지 버티는 과정이 좀 필요합니다. 지시가 내려온다는 말이 좀 이상한 얘기 같지만 실제로 느낌이 그렇거든요. 제 머릿속 어딘가에서 네가 그토록 오랫동안 궁둥이를 붙이고 버텼으니 이제 대략적인 이야기의 윤곽을 부상으로 내려주마, 그런 일들이 실제로 벌어지는 느낌이에요.


해서 마치 안개 속에서 점차 형태가 뚜렷해지는 것처럼 구조가 잡히는데, 그게 보이면 그걸 무작정 따라갑니다. 따라가서 깎고 자르고 다시 살을 붙이는 형태로 작업하죠. 그러다 보면 이야기에 걸맞은 어떤 형태가 갖추어지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최종 형식이 처음의 구상과 늘 같지는 않다는 얘기이고 결국 이런저런 일련의 과정을 통해서 이리저리 변형되며 제 몸에 맞는 형태를 찾아가는 것 같습니다.

 

『저스티스맨』의 경우 인터넷에서의 일들이 중심축으로 전개되는데요, 그러다 보니 온라인의 느낌이 전달되어야 했고 그게 결국 큰 틀로 잡힌 경우입니다. 거기에 각각의 에피소드를 퍼즐처럼 조각하는 과정이 필요했고요. 그렇게 전체의 윤곽이 모두 그려진 상태에서 서술 트릭 기법이 사용되었습니다. 이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여러 가지 전언 중에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 자신도 모르고 저지르는 사소한 폭력의 확장이거든요. 자신에겐 보이지 않는 자신의 모습이란 측면이 제가 말하고자 했던 이야기 이면에 숨어 있습니다. 잘못된 사실을 익숙한 편견 때문에 진실이라고 판단하게 되는 오류를 마치 3D 체험처럼, 읽는 이가 스스로 느끼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생각해낸 방법이 서술 트릭이고요. 그런데 재미있는 건 소설을 끝까지 읽은 제 지인 중에는 여전히 소설 속에서 자신이 가졌던 성별의 편견이 무엇이었는지 모르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한번 머릿속에 자리 잡힌 사실이 우리의 판단을 얼마나 흐리게 하는지 약간 놀라운 면이 있었어요. 인간의 고집이란 참으로 집요하구나, 그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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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 사건이나 에피소드에 청소년 문제가 여러 차례 등장합니다. 청소년 성매매, 가출 청소년, 청소년들 간의 괴롭힘과 폭력 등이 꽤 비중 있게 다뤄집니다. 평소에 청소년 문제에 관심이 많은 편이신가요?

 

비단 청소년 문제뿐만 아니라, 이 사회의 시스템 오류가 빚어내는 부조리와 차별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전방위적인 관심이 있습니다. 그중 이번 소설에서 조금 많이 다룬 부분이 청소년 문제이고요. 사실 이 청소년 문제를 더 깊이 파고들면 가슴 아픈 부분이 너무 많아서 깊게 다루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가장 먼저 사회적 장치를 만들어야 할 부분인 것만은 분명하니까, 소나기처럼 세차지는 않아도 가랑비처럼 지속적으로 언급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소설 전체에서 「불꽃(The Flame)」이라는 챕터가 무척 강렬했습니다. 인터넷상에서 벌어지는 갑론을박이 현실 세계의 복수와 폭동으로 이어져 마침내 문명이 파괴되고 국가 기능이 마비되는 디스토피아의 풍경이 아찔하게 펼쳐지는데, 그런 혼돈 속에서도 최고 성능의 개인 컴퓨터와 광케이블만은 온전히 보호된다는 게 섬뜩했어요. 사실 이 챕터는 스토리와 직접 관련이 없어서 빼도 그만일 수 있는데, 이 부분이 빠진다면 소설의 무게가 확 달라지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인상 깊었습니다.

 

사실 이 챕터는 짧지만 그 자체로 하나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4차 산업혁명이 아무런 대책 없이 더 진화하면 결국 이런 형태의 사회가 만들어질 수도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인터넷에서의 분노가 개인의 모난 성격 때문에 만들어진 게 아니라, 부조리한 사회가 빚어낸 공공의 울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잘못된 시스템 속에서 개인의 삶이 너무 불행해지다 보니 세상에 분개할 수밖에 없고, 그것을 극단적으로 표출할 수 있는 유일한 창구가 인터넷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이 울분이 점차 더 확대되고 해소되지 않는다면 결국 인터넷에서 보던 분노를 일상에서도 접하게 될 거라고 생각해요. 실제로 장기 실업이 지속되던 타국의 몇몇 도시에서는 폭동이 일어나기도 했으니까요. 어떻게든 이 시스템의 오류를 바로잡지 않으면 사람들의 분노가 더는 인터넷상에서만 공유되지는 않을 거라고 봅니다. 개인적으로 약간의 위기감을 가지고 있어요.

 

소설의 장 제목이 모두 잭슨 폴록의 작품 제목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또 소설 속 연쇄살인범은 자신의 살인 행위를 잭슨 폴록의 액션 페인팅에 빗대 인간 내면의 순수한 악을 실행하는 예술 행위로 설명합니다. 이런 구상을 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으신지요?

 

개인적으로 미술은 잘 모르지만 좋아하기는 하는 터라, 마음이 이끌리는 몇몇 작품을 하릴없이 바라볼 때가 있습니다. 잭슨 폴록의 작품도 그중 하나였던 것 같고요. 다만 그의 작품들이 마음에 이끌려서는 아니었고 저런 그림이 도대체 왜 저렇게 비싼 값에 매매되는가, 그게 궁금해서 틈틈이 찾아보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문득, 악인의 마음을 회화로 표현한다면 바로 저런 모습이겠구나 싶은 깨달음이 온 거예요.

 

피카소의 그림이 인간 내면의 여러 형태를 한 얼굴에 담아내어 예술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다면 잭슨 폴록 또한 마음이 어지러운, 즉 자신도 알 수 없는 자신의 모습을 예술로 표현하고자 했을 수 있고 그렇다면 저런 형태일 수도 있겠다.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한동안은 그런 저만의 해석을 들고 예술적 상상력에 감탄하다가 문득, 그 그림들이 제가 『저스티스맨』에서 이야기하고자 했던 메시지와 일맥상통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자신도 모르는 자신이 저지르는 일련의 혼돈, 악의. 내 안의 악마가 살아 움직인다면 저런 형태일 수도 있겠구나. 폴록 님께서 그런 의도로 작업한 게 아니라면 대단히 죄송하지만 여하튼 저는 그의 작품에서 그런 어지러운 마음을 보았고, 그게 『저스티스맨』과 일치했으므로 지나칠 수 없었습니다. 악마적 재능을 예술로 해석한다는 측면에서 우리 사회가 가진 이중성을 표현하기에도 적합했고요.


『저스티스맨』은 여러 에피소드를 통해 우리 안의 폭력을 성찰하게 하고 정의란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특히 저스티스맨과 연쇄살인범의 행위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이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혹시 독자들이 이 작품의 이런 점에 좀 더 눈길을 주면 좋겠다 하고 바라는 게 있으신지요?


사실 저스티스맨과 연쇄살인범의 행위도 트릭입니다. 우리는 그들의 행위를 보며 잘잘못과 정당성을 논의하게 되겠지만, 기실 그들의 행위 이전에 당장 눈앞의 정의도 지키지 않는 우리의 모습이 먼저 있거든요. 그들의 정의를 판단하면서 자신이 지키지 못하고 있는 정의는 깨닫지 못하는 상황들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정의란 무엇인가가 그리 어려운 명제가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아주 간단하고 직관적인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식인이나 권력자들이 말하는 복잡한 정의에 현혹되어 우리가 할 수 있는 기본적인 정의조차 지키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것을 성찰해보고 싶었습니다.

 

소설 속의 두 캐릭터는 피리 부는 사람입니다. 정의를 복잡하게 만들어서 우리를 현혹하지요. 그러나 우리가 정신을 차리고 그 행렬에서 벗어나 바라보면 곧, 정의란 아주 간단하고 일상적인 모습으로 우리 앞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소설에는 주인공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소설적 설정으로는 연쇄살인마가 주인공인 것처럼 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다수의 등장인물만이 있을 따름이지요. 소설을 읽다 보면 그 속에서 어떤 무리 안에 속해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만약 발견하셨다면 그 사람이 주인공입니다. 그래서 일부러 주인공의 자리를 비워놓았습니다.


 

 

저스티스맨도선우 저 | 나무옆의자
한국 사회에 만연한 폭력의 문제를 연쇄살인을 추적하는 추리소설 기법으로 예리하게 짚어낸 소설이다. 세계문학상 심사위원이었던 임철우 작가는 "처음 몇 쪽을 읽고 났을 때, 직감적으로 이것이 대상을 받겠구나"라고 확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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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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