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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범인인지 알려주고 시작하는 미스터리

decca의 미스터리 탐구 20. 『미스터 하이든』과 도서(倒敍) 미스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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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을 좋아하기 때문에 추리소설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Howmystery.com 사이트를 만든 게 1999년이다. 2,000명이라고도 하고 2,500명이라고도 하는 한국 추리소설 팬 숫자가 크게 늘길 바란 건 아니다. 다만 그들에게 일용할 읽을 거리가 있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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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인 미스터리 소설의 목적은 ‘범인 찾기’이다. 작가는 결말을 미리 준비하고, 텍스트 속에 단서를 공정하게 배치한 후, 교묘하게 구성하여 뜻밖의 결말에 무게를 담는다. 그럼, 이런 형식의 미스터리 소설을 영상으로 만든다면 어떨까. 텍스트와 달리 카메라는 공정하게 단서를 제공하고, 관객의 주의를 돌려 범인을 숨기기에 애매한 도구이다. 무엇보다 현 시점 이전에 일어난 사건을 조사하는 고전 미스터리를 고스란히 영상으로 구현하면 지나치게 단조로울 수도 있다. 텍스트의 문법과 영상의 화법은 다르다.

 

알프레드 히치콕은 전통적인 스타일의 미스터리는 영상과 거리가 멀다고 말한 바 있다. 우리가 흔히 보는 ‘미스터리’라고 이름 붙은 영상물은 대부분 스릴러의 규칙을 따르는 작품들이다. 과거에 일어난 사건을 탐정이 밝혀낸다기보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진행 중인 사건에 탐정이 얽히면서 스릴과 서스펜스가 일어나는 식이다.


전통적인 미스터리 소설을 시각적으로 구현하는 것이 아예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다만 다소 번거로운 장치들이 필요할 뿐이다. 만화 <소년탐정 김전일>에 얼굴까지 가린 시커먼 쫄쫄이를 입은 ‘범인’이 활보하거나, BBC 드라마 <셜록>에 등장하는 많은 분량의 텍스트는 ‘문법과 화법’, ‘독자와 관객’의 차이를 보정하기 위한 장치들이다.

 

고전적인 미스터리의 형식을 가져왔지만, 손댈 필요가 없을 만큼 영상과 높은 친화력을 보여주는 서브 장르도 있다. 1912년 과학 미스터리의 선구자 오스틴 프리먼은 『노래하는 백골』이라는 단편집을 발표했는데, 수록된 단편 ‘오스카 브로트스키 사건’은 기존의 작품들과는 달리 독특한 형식으로 쓰였다. 이 작품은 두 부분으로 구성돼 있는데, 1부에서는 사일러스 히클러라는 인물이 보석상 오스카 브로트스키를 살해한 후 은폐하고, 2부에서는 탐정 손다이크 박사가 그 허점을 파헤쳐 과학적으로 범죄를 증명한다.

 

범인은 누구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범죄가 파헤쳐지는가’에 중점을 둔 작품을 도서 미스터리라고 한다. ‘도서(倒敍)’란 ‘도치 서술’의 줄임으로 (영어로는 ‘the inverted mystery’라고 한다) 범인의 입장에서 쓰인 작품이다. 독자는 첫 페이지를 펼치는 순간 범죄자와 범행 방법을 모두 알게 되고, 탐정은 범인의 실수를 찾기 위해 움직인다. 독자는 탐정의 동선을 ‘알면서’ 따라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몰입할 수 있다.

 

기존의 발상을 완전히 뒤집는 이 기법은 당대 작가들이 의아하게 생각할 정도로 새로운 것이었고 독자 반응도 썩 좋지는 않았다. 하지만 굳이 범인을 숨기려고 고심할 필요가 없다는 매력이 널리 알려지면서 후대 미스터리 드라마 등에 많이 이용됐다. 도서 형식 드라마 중 최고라면 역시 <콜롬보>를 꼽을 수 있다. 허술하게 보이는 형사 콜롬보가 천재라고 자부하는 범인들에게 끈질기게 달라붙는 모습을 보면 오히려 범인에게 동정심이 생길 정도이다.

 

도서 미스터리는 초기에 교묘한 트릭을 소개하는데 효과적인 형식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범죄자에게 스토리를 부여하고 독자의 공감을 유도하는, 즉 매력적인 범죄자를 만드는 장치로서 작용한다. 수수께끼나 트릭보다 범죄의 동기가 중요해지고 있는 현대 범죄소설과 발걸음을 함께하고 있는 것이다. 2015년 독일에서 발표된 사샤 아랑고의 『미스터 하이든』은 도서 미스터리 형식을 가져온 현대 작품이 어떤 모습인지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미스터 하이든』의 화자는 헨리 하이든이라는 소설가이다. 그가 8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발표한 5편의 작품은 전 세계 20개국에 수출됐고, 모두 영화나 연극으로 만들어질 만큼 엄청난 성공을 거뒀다. 매력적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태도와 외모를 지닌 헨리 하이든은 그야말로 베스트셀러 작가의 품격이 넘치는 인물이다. 그러나 독자는 그가 담당 편집자와 내연 관계에 있었으며, 임신 소식을 듣고 좌절하는 순간을 목격하게 된다. 더 나아가 그가 발표한 모든 작품이 아내 마르타가 쓴 것임이 드러나면서 이야기는 종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튀기 시작한다.

 

고민 끝에 하이든은 실리를 선택한다. 내연녀가 탄 차를 벼랑 끝에서 밀어버리고 가식적인 눈물을 흘리려 하지만, 차에 탔던 사람이 아내임이 밝혀지고 그는 충격에 빠진다. 아내의 시체는 아직 발견되지 않은 상황, 뭔가를 알고 있는 것 같은 주변 인물들. 거짓이 거짓을 덮고 우연과 우연이 충돌하면서 서스펜스가 차오르기 시작한다. 『미스터 하이든』은 헨리 하이든의 범죄담이자, 그를 지켜보는 독자를 끊임없이 자극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왜 미스터리를 읽느냐는 질문을 자주 듣는다. 제법 오랫동안 고민했기에 스스로 만족할 만한 답을 만들어두었다. 미스터리는 인간의 욕망을 반영한다. 누구나 범죄를 저지르고 싶은 욕망이 있고, 누구나 흐트러진 질서를 되돌리고픈 욕망이 있다. 도서 미스터리는 그 중에서도 범죄를 저지르고픈 인간의 본성을 가장 솔직하게 만족시켜주는 형식이다.

 

 

 

살의
프랜시스 아일즈 저 ㅣ 동서문화사

시골 마을 의사 비클리는 권위적인 아내에 늘 주눅 들고 위축돼 있다. 그는 여러 여자들과 가벼운 관계를 맺으며 열등감을 해소하며 지낸다. 어느 날 새롭게 이사 온 한 여인을 사랑하게 되면서 부인에 대한 '살의'를 품게 된다. 치밀한 계획을 세운 비클리는 마침내 아내를 살해하는데 성공하는데… 범죄를 계획하는 한 인간의 심리적 변화를 섬세하게 묘사한 작품. 프랜시스 아일즈는 앤소니 버클리 콕스의 다른 필명이다.

 

 

크로이든발 12시 30분
F. W. 크로포츠 저 ㅣ 동서문화사

크로이든발 12시 30분 비행기에서 독살당한 노인. 범인은 그의 조카 찰스 스윈번이다. 그는 불경기로 자신의 사업과 연인마저 잃게 될 위기에 처하자, 외삼촌이 남길 유산을 당겨 받기 위해 치밀하게 독살을 준비한다. 지극히 현실적인 동기를 다루는 작품답게 촘촘하고도 세밀한 묘사가 돋보이며 사건의 뒤를 집요하게 추적하는 프렌치 경감 또한 인상적이다.

 

 

 

백모 살인 사건
리처드 헐 저 ㅣ 동서문화사

'나' 조카 에드워드는 큰어머니에게 얹혀 살고 있는 주제이지만 큰어머니가 죽을 만큼 싫다. 나는 큰어머니를 죽일 결심으로 갖가지 사고를 계획하며 실행에 옮긴다. 작품은 한심한 조카 에드워드가 큰어머니 살인을 계획하고 실행하는 전반부와 그 계획에 대항하는 큰어머니의 이야기로 구성돼 있다. 각 부분은 모두 1인칭 시점으로 쓰였으며 두 캐릭터의 공방을 보는 재미가 쏠쏠한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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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윤영천(예스24 e연재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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