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지웅 “친애하는 적처럼, 거리를 두고 바라보기”
『나의 친애하는 적』 펴내 세상을 대하는 태도도 ‘친애하는 적’이 되기를
하지만 적어도 내가 잘하는 걸 하면서 누가 뭐라 해도 온전히 내 힘으로 버티겠다고, 그러니까 그걸 지켜봐 달라고 말하는 거죠.
『나의 친애하는 적』이 나왔다. 허지웅이 사랑한 다큐멘터리의 제목이자, 사람을 너무 쉽게 믿고 모든 걸 주려고 했던 자신을 돌아보면서 관계를 맺을 때는 ‘적장’처럼 예의를 갖추겠다는 의미의 제목이다. 어머니, 아버지와의 기억, 선인장의 미감, 영화, 신해철과의 우정 등 허지웅의 소소하면서도 내밀한 면이 다양하게 담겼다.
본인은 항상 글 쓰는 사람이라고 주장해 왔지만, 얼굴을 비치는 TV 프로그램이 많아질수록 사람들은 허지웅을 방송인이나 연예인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이렇게 살기 팍팍한 세상에 남의 직종을 나누는 게 그리 큰 의미는 없다. 그의 말마따나 ‘평가는 남의 몫’이다. 그러나 자신이 쓰던 샤워기 헤드가 불티나게 팔릴 정도의 유명인이면서도 겉껍데기만 대중에게 전달되는 ‘방송 건달’이 되지 않으려고 애쓰는 사람이라는 점은,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에 적어놓아야 한다.
여전히 글쓰는 사람
책이 2년 만에 나왔습니다. 소감이 있다면.
지난 책 나왔을 때 독자들에게 매년 한 번씩 내겠다고 약속했었는데, 그걸 지키지 못해서 새 책을 내면서도 게을렀다는 생각을 하네요. 가뿐한 마음이 안 들어요.
일주일에 마감이 서너 번씩 있으셨다고 들었는데, 그 정도면 최선을 다한 게 아닐까요?
편집자님이 2년 동안 계속 쪼았거든요. 매주 촬영하고 다른 스케줄 하면서도 마감을 세 번씩 했는데 자꾸 저한테 게으르다는 거예요. 이상하다 싶었는데 이번에 글을 모아보니까 거의 백과사전 수준이 됐어요. 다음에는 앞뒤가 맞는 사람이랑 작업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웃음)
백과사전만큼 쓰셨는데 이 정도 두께면 많이 추리신 거네요. 편집부랑 이견은 없으셨나요?
별로 없었어요. 제가 조금 틱틱거리는 건 있는데 마음속으로는 애정을 품고 있고, 책은 어쨌든 제 이름으로 나오잖아요. 제일 중요한 게 글쓰기이기도 하고요.
허지웅이라는 사람이 많이 녹아있는 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생활이나 개인적인 소감이 책으로 활자화돼서 나오는 게 부담스럽진 않으셨어요?
글로 쓸 때는 아닌데, 나중에 시간이 지나면 부담스럽긴 하죠. 흑역사라면서 밝혀지는 거 보면 다 예전에 인터뷰하거나 썼던 내용이더라고요. 쓸 때는 자기 상황이 반영될 수밖에 없으니 어쩔 수 없는 일 같기도 하고요. 하지만 남들보다는 비교적 제 일을 남 일처럼 바라보는 경향은 있어요.
‘글쓰기가 아니라면 건달밖에 될 수 없다’, ‘나는 글과 떼어놓을 수 없다’ 이런 이야기를 자주 하셨어요.
원래 직업이 기자였어요. 그만두고 나서 전업 작가를 했는데, 원래 직업이 있다가 방송에 출연하면서 자기 일을 안 하는 사람을 많이 봤거든요. 그 사람들 보면 다 방송 건달들이더라고요. 나는 그렇게 되지 않겠다는 다짐을 선언같이 하기도 했죠.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어렸을 때 처음 쓴 소설 이야기가 나와요.
아버지가 교수였는데, 학교에서 4절지 갱지를 늘 집에 가져왔어요. 집에 가지고 놀 게 갱지밖에 없었어요. 그걸로 어렸을 때는 그림도 그리고, 나중에 쓰고 싶은 이야기를 썼어요. 어렸을 때는 매일 괴물이나 프랑켄슈타인 이런 것만 보고 읽어서 늘 괴물 이야기였어요.
어느 장르 글을 쓸 때가 제일 편하거나, 즐거우세요?
제가 좋아하는 무언가를 남들도 보게 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쓸 때도 즐겁고, 아니면 재미있었던 경험을 쓰는 것도 즐거워요. 남들이 했다고 하면 되게 깔깔거리고 비웃을 것 같은 일을 제가 했을 때 그걸 글로 쓰면 제일 재밌어요. 제가 바보짓 한 내용을 쓰는 걸 좋아해요. 남이 한 바보짓을 쓰면 비판이 되지만, 제가 한 걸 쓰면 개그가 되거든요.
책에 일부 사회비평도 들어가 있어요.
<한겨레> 칼럼이 책에 많이 실렸는데, 아무거나 써도 된다고 해서 정치 사회 관련 이야기도 많이 썼어요. 예전 <시사인> 칼럼처럼 작정하고 비평을 쓴 건 아니고, 지금 현안을 이야기하면서 제 이야기를 섞어 쓰는 연성화된 글이죠.
방송 출연으로 유명해지고 셀럽이 된 일이 글쓰기에 영향을 주나요?
영향은 별로 없는 것 같아요. 조심해야 하다고 생각하다가도 막상 쓸 때는 조심하지 않게 돼요. 벌어져서는 안 되는 일들인데 벌어졌다거나, 제가 한 이야기 때문에 손해를 당했는데 그게 부조리하다거나 하는 순간들이 있잖아요. 사실 그건 이야기하면 안 되거든요. 소위 스타나 연예인 친구들이 자기 의견 없어서 이야기 안 하는 게 아니잖아요. 여러 사람 밥벌이를 책임지고 있기 때문에 이야기를 안 하는 거예요. 그렇게 안 하는 걸 보면, 저는 아직 어른이 아닌 것 같아요.
책임 말씀하시니 생각나는데, 이전에 아이를 키우고 싶다고 한 적도 있으셨어요.
물론 최선을 다해 살겠지만, 지금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판을 갈아야 하는데, 개인 차원에서 할 수 있는 판 갈이가 다음 세대를 잘 기르는 일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아이를 낳아서 에반게리온에 태우려고요. ‘아들아, 에바에 타라’ 하면서.
음, 굉장히 나쁜 아빠네요(웃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다
‘여러분이 나의 친애하는 적’이라고 쓰셨어요.
사람뿐 아니라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이에요. 누구를 덜컥 믿어버리는 걸 너무 잘하더라고요. 믿으면 편하고, 마음이 따뜻해지기도 하고요. 하지만 너무 뒤통수 맞는 경험이 많아서, 어느 순간부터 안 그래야겠다는 생각을 오랫동안 했어요. 그런 의미의 표현이죠.
적장처럼 대한다는 말에는 존경의 의미가 있잖아요.
전부는 아니고, 어떤 측면을 존경하는 거죠. 내가 그 사람을 존경해서라기보다, 심리적으로 거리감을 설정해 놓는 일 같아요. 완전히 까 보이지 않고 긴장하게 하는 거리감이요. 감정적인 기분의 영역인데, 그걸 문자로 표현해 놔야지 제가 가이드라인을 지키겠다 싶었어요. 하루에 20만 원 받고 시위에 나오는 사람이 아닌 이상은 대부분 ‘친애하는 적’으로 여기고 싶어요.
청소를 열심히 하는 게 공간을 이해하는 방법이라고 하셨어요. 최근 청소하는 모습이 방송에 나오면서 결벽증 아니냐는 반응이 있었죠. 공간을 이해한다는 건 무슨 뜻인가요?
사소하게는 어디에 무엇을 두면 어울린다, 이 집은 어떻게 하면 결로가 생긴다, 막으려면 이렇게 해야 한다는 집의 체계나 원리를 알 수 있게 된다는 맥락이에요. 늘 남한테만 맡기는 사람은 알 리 없는 체계요. 남한테도 중요할 필요는 없겠지만 공간은 저에게 중요한데, 왜 함부로 하는지 모르겠어요. 한국에서 집 때문에 인생에서 오랫동안 많고 큰 비용을 내는데 왜 이해를 안 하려고 할까. 제가 사는 공간 제가 깨끗하게 관리하는 걸 뭐라고 하는 건 이상한 것 같아요.
‘얼굴을 손으로 가리고 우는 자들’이 더 슬프다는 표현이 인상 깊었습니다.
정말 슬픈 상황에 놓인 사람들이 우는 모습을 보여버리면 패배자로 찍히니까, 못 울더라고요. 울더라도 숨어서 울고요. 이를 테면, ‘88만 원 세대’를 조명해요. 하지만 이 세대가 불쌍하니까 바꿔야 한다는 게 아니라 원래 불쌍한 애들로만 포장하고 끝이에요. 한 번 루저로 찍히면 영원히 못 벗어나니까 사람들이 패배자라는 말에 공포를 느끼는 것 같아요. 예전에 누가 좋다고 올린 그림을 봤는데, 못된 부모는 청소하는 아저씨를 보면서 ‘공부 안 하면 저런 사람 된다’고 하고, 좋은 부모는 ‘공부 열심히 해서 나중에 저런 분들 도와야지’ 한다는 거예요. 너무 빤하게 둘 다 문제 있잖아요. 아이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청소부는 이미 사람이 아닌 거예요. 그런데 사람들이 감동을 하더라고요. 삐딱한 건지 모르겠지만, 그런 한국이 정말 무서워요.
‘살다 보면 별일이 다 있다’, ‘이해되지 않는 상황이 있을 수 있다’ 등의 문구가 자주 나와요.
어렸을 때부터 이반(성 소수자를 통칭하는 단어) 친구들도 많았고, 가족부터가 보통 한국사회의 가족주의 테두리 안에서 이해될 수 없는 일을 많이 보고 살았어요. 그러다 보니까 시니컬해졌는데, 오히려 냉소적으로 보니까 이해할 수 없는 일이 거의 없더라고요. 엄마도 그래요. 엄마한테 ‘나 게이면 어떡할 거야?” 물어보면 ‘어쩔 수 없지 뭐.’ 하세요.
다른 표현도 눈에 들어왔어요. ‘내려놓기 위해 필요한 건 이해하는 태도다.’ 그래도 세상을 이해하려고 노력하신 것 같거든요.
노력하려는 것도 있고, 당연하게 다가오는 일도 있고요. 흔하게 하는 얘기지만 우리가 이성애자라는 걸 이야기하려고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이는 건 아니잖아요. 이반들한테만 이해를 요구하는 건 합리적이지 않다는 차원에서 다른 문제도 많이 생각한다는 거죠. 그래서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경우를 만나면 더 반응하게 되는 것 같아요. 웬만하면 별일이 다 있다고 넘어가는데 이건 아니지 않나, 생각하면 남들보다 더 센 반응을 하는 거죠.
우리에게는 이기는 경험이 필요하다
최근 최순실 사태와 관련해 광화문 시위에 참여한 내용이 있어요. 시위가 계속되고 있는데, 변화의 가능성이 있다고 보시는 편인가요?
이런 종류의 광장 시위를 효순이, 미선이 사건부터 나갔어요. 그때부터 매번 회의적이었는데, 이번에는 진영 다툼으로 가고 있지 않은 것 같아요. 피아 구별 없이 다들 잘못에 대해 발언하고 있잖아요. 한국은 이미 망했어도 여러 번 망했을 나라인데, 이번에 잘하면 어렴풋한 호감, 혹은 데이터 없는 믿음 때문에 어느 한쪽에 표를 줬던 사람들이 변하는 계기가 될 수 있겠다는 희망을 품게 돼요. 지금 상황으로는 오십 대 오십 같아요. 하지만 이 정도까지 가능성이 올라왔던 적이 한 번도 없기 때문에 고무적이죠.
집회 사회를 보시기도 했어요.
10 대 90이었어도 사회는 봤을 거예요. 지금까지 4차 시위 모두 나갔어요. 시위를 나가는 사람들과 비슷한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고, 전에 나갔던 집회랑은 분위기가 다르니까 신기해서 나가는 이유도 있어요. 지금 시위가 무조건 긍정적으로 보이지는 않아요. 예전에는 시위 나가면 막 맞다가 새벽에 택시 타고 집에 들어오는 길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평안한 게 서운했거든요? 지금은 그렇지 않잖아요. 그게 좋으면서도 백만 명이 한 곳에 모였는데 십오 분 만에 일사불란하게 사라지고 광장이 깨끗해지잖아요. 가끔은 너무 로봇 같다는 삐딱한 생각도 들어요. 그리고 저는 무엇보다 어린 친구들에게 부채감이 들어서 나가는 것 같아요.
다음 세대에게 부채 의식이 있다는 말씀이군요.
<학교 다녀오겠습니다>라는 TV 프로그램에 출연한 적이 있는데, 그때 아이들이 세월호 참사를 겪은 나이 바로 한 학년 아래였거든요. 그때도 너무 힘들었어요. 이 아이들이 와서 저를 칼로 찔러도 아무 할 말 없겠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요. 젊은 세대한테 너무 큰 죄를 지었는데, 새로 시작하는 아이들한테 도움을 줄 마음이 있는 사람들은 드물어요. 시작할 때만 도움이 필요하고 나머지는 자기 능력으로 하는 게 맞아요. 하지만 우리도 그랬으니까 너희도 공정하게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시작하라는 이상한 해병대 마인드만 있어요.
사고 맞죠. 어느 순간, 어느 시점까지는 교통사고로 볼 수 있죠. 진짜 중요한 건 그 이후였잖아요. 아무것도 작동하지 않아서 구조하지 못했잖아요. 그럼 책임을 져야 하는데 책임지는 사람도, 변한 것도 없어요. 부채 의식을 가져야 하는 게 맞고 이 이야기를 애써 안 들으려는 사람들도 부채 의식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이 세대에게 ‘이기는 경험’이 필요하다고 쓰셨는데, 세월호는 어찌 보면 가장 크게 진 경험이잖아요. 이런 상황에서 이기는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도 힘들지 않을까 싶어요.
젊으면 젊을수록 이길 기회가 없어요. 큰 대회에서 1등 하는 경험이 아니라 작은 승리의 경험조차 없어요. 자기가 지지하는 시 의원이 당선된다거나, 좋은 일에 어느 정도 기여해서 자기가 원하는 꼴로 변하는 경험이요. 저도 그랬고 요즘은 더욱 심화됐을 거예요. 그런 경험이 쌓여야만 진짜 이겨야 할 때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왜냐하면 그런 경험이 없으면 이길 기회가 왔을 때도 그걸 승리로 못 가져가요. 예전 타성대로 음모론, 가십거리, 우리 편 아니면 무조건 악마인 이분법으로 생각하는 극단이 어떻게 보면 작은 승리의 경험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하거든요. 그래서 젊을수록 이기는 기회를 더 많이 만들어줘야 해요.
남과는 다른 영화
사람을 만날 때 남들과 다른 면이 있는 사람에게 매력을 느낀다고 하셨는데, 영화는 어떠세요?
영화도 다른 느낌을 주는 영화가 좋죠. 처음에 충격적으로 다가왔던 영화들은 다 그 당시에 너무나도 다른 영화들이었어요. 주로 선댄스 영화라고 불리는 영화들이었는데, 사람을 근본부터 잡고 흔드는 영화를 대학생 때 보고 나니까 영화가 대단한 거라는 생각을 했어요.
마블 시리즈 영화나 <스타워즈>에 관한 애정도 나오는데요. 선댄스 영화 계열은 아니지 않나요?
그렇죠, 그건 덕질의 영역으로 좋아하는 영화고요. <벨벳 골드마인>이나 <록키호러 픽쳐쇼> 같이 너무 놀랍다고 여기는 영화는 거의 6, 70년대 할리우드 영화였어요. 그때 영화들이 영화로 만들 수 있는 제일 멋있는 걸 다 만든 것 같아요.
돌아가신 남자 배우에 대한 글이 몇 편 실렸어요.
크리스토퍼 리 같은 배우는 한 시대 전인 50년대부터 활동했던 분이죠. 제가 너무 좋아한 6, 70년대 배우들은 지금 다 명배우라고 불리는 분들이거든요. 이분들이 돌아갈 때가 되면 진짜 하늘이 무너질 정도로 아쉬울 것 같아요. 그 시기를 좋아하는 이유가, 한국에서 한 번도 경험해본 적 없는 시기였거든요. 그 전 시대 헐리우드는 꼰대 장사판, TV까지 나온 망해가는 사양 산업이었는데 갑자기 듣도 보도 못한 연줄 없는 젊은 미친 친구들이 나타나서 헐리우드 영화 산업을 완전히 살려놨어요. 그 분위기를 책에서 글로만 읽었는데, 나이 많은 간부들이 신입사원이 젊다는 이유만으로 굽실거리면서 각본을 보여주고 재밌는지 읽어봐 달라고 부탁하는 시대였다는 거예요. 경험해보지 못한 시대에 대한 동경이죠.
다른 장르의 글 중에 욕심나는 게 있나요? 영화 시나리오라든지요.
갱지 소설을 쓰던 어릴 때도 꼭 마지막에 제 이름 석 자를 썼어요. 제 글에 대한 권한 의식이 강해요. 그래서 수십 명이 달려들어서 제 작업을 뜯어고치는 공동작업은 못 하겠더라고요. 시나리오는 정말 남아나지가 않아서,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한 적이 없어요.
살아남아야 해서 막막하기 짝이 없는 친구들
말이 와전돼서 데인 경험이 글을 쓰거나 말을 할 때 자기검열을 일으키기도 하나요? 정치적인 검열 말고요.
어느 정도 있어요. <국제시장> 사건 이후로 크게 데여서 파장도 컸고, 이후로는 말조심한다기보다 빌미를 제공할 만한 건 조심해야겠다는 과제만 세워놨어요. 실천은 못 하고 있죠.
SNS에 글을 올리면 그대로 캡쳐해서 기사로 내기도 하잖아요. 이 문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어쩔 수 없는 시대의 조류라고 생각해요. 트럼프도 국정 방향을 트위터로 제시하더라고요. 그래서 사람들이 페이스북으로 많이 옮겨가는 것 같아요. 트위터는 너무 문맥이 잘려서 왜곡되기 쉬워요. 참 신기한 세상이에요. 제가 기자할 때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매체 환경이니까요.
SNS로 계속 글을 쓰실 텐데, 인터넷에 올리는 글도 자기검열이 있나요?
당연히 있죠. 그런 생각을 안 하다가 어느 순간 실감한 건데, 박근혜 대통령 재임 동안 내가 이런 이야기를 쓰면 뭔가 일어나겠다는 생각을 너무 자주 했어요. 저뿐만 아니라 다 그랬더라고요. 그게 진짜 무서웠어요.
실제로 방송 출연 요청이 안 들어오기도 하셨죠.
매체 블랙리스트에 올랐죠. 민주사회에서 내가 무슨 말을 하면 어떻게 되겠다는 공포는 있어서는 안 돼요. 제가 말로 성희롱 해요, 그럼 당연히 어떻게 되겠죠. 그런 거 말고, 공적으로 내가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말했는데 그것 때문에 손해를 당할 거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들어오는 게 자연스럽게 된 상황이라 다시 되돌려놓는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아요. 정신교육이라고 군대 가면 많이 읽히는 교육 책자가 있거든요. 읽으면 진짜 한심한 내용인데, 2년 동안 그걸 읽고 있다 보면 별생각 없이 읽게 돼요. 군대처럼 정신 교육을 너무 심하게 당한 것 같아요. 이걸 되돌리려면 단순히 정권 교체만으로는 안 되고 많은 시간과 노력을 수반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인터뷰는 해명이다’는 말을 하신 적이 있어요. 작가 허지웅이 해명할 게 있나요?
제 문제일 때랑 남의 문제일 때 접근하는 생각의 차이가 커요. 저에 대한 평가는 제가 어떻게 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바꾸려고 해 봤자 아무 소용 없더라고요. 신경 안 쓰고 살아야 그 시간에 다른 이야기를 한 줄이라도 쓸 수 있죠. ‘인터뷰는 해명이다’는 말은 제가 인터뷰할 때 인터뷰이들을 보면서 들었던 생각인데, 늘 할 말이 있더라고요. 그럼 저는 이 사람의 해명을 들어주자는 생각으로 인터뷰했던 것 같아요.
인터뷰어에서 인터뷰이가 되는 기분은 어때요?
양가적이에요. 하나는 진짜 하기 싫을 텐데 불쌍하다는 생각. 제가 한 인터뷰 중에 반의반도 제가 하고 싶은 사람이 아니었어요. 아무 관심 없는 회사의 부사장을 인터뷰하려니까 죽고 싶더라고요. 그런데 다른 한 편으로 기자는 궁금한 게 없는 사람을 만나는 게 밥벌이고 곤욕인 직업이잖아요. 기계적으로 인터뷰하러 오는 게 티가 많이 나는 사람이 있어요. 아마 그 부사장도 나를 보면서 그렇게 느꼈을 거예요. 그러면 또 직업윤리로 저건 아니라는 생각을 하죠.
‘스타는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말을 하신 적도 있습니다. 지금 허지웅이라는 사람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은 누군가요?
이상한 사람을 보여주겠다는 거 아닐까요. 그래서 토크쇼 진행이 차라리 마음이 편해요. 제가 피사체로 나오는 방송은 프릭쇼 같아요. 길을 다니면 할머니가 “얘, 너지, 이상한 애(웃음)”, 하고 불러세워요. 이상한 사람을 사람들은 늘 궁금해 하니까요. 하지만 말씀드렸다시피, 평가는 제 몫이 아니니까 어쩔 수 없죠.
요새 읽고 있는 책이 있나요?
돈 오버도퍼와 로버트 칼린의 『두 개의 한국』 읽고 있어요. 진짜, 너무너무 재밌어요.
다음 책 계획은요?
무조건 소설을 쓰려고 해요. 이번에 소설을 내려고 했는데, 1, 2년 전쯤에 약간 우울증세가 있어서 자기 관리를 못 했어요. 에세이는 계속 쓸 것 같고, 이야기를 쓰고 싶은 욕망이 커요.
‘읽히지 않는 글은 가치가 없다’는 말이 있었는데, 작가님 책은 얼마나 팔릴 것 같나요?
읽히지 않는 책은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팔리지 않는 책은 가치가 없다는 뜻이 아니에요. 끝까지 읽지 못하게 하는 글을 이야기한 거였어요. 그래서 글을 쓸 때 첫 문장을 읽고 나서 마지막 문장을 읽을 때까지 못 도망가게 하는 걸 제일 중요하게 생각해요. 가독성을 이야기한 거죠. 읽고 싶게 만드는 가독성이요. 판매야 많이 팔리면 좋겠지만, 그것도 바란다고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이 책을 누가 읽으면 좋겠나요?
결국에는 지금 혼자라고 느껴지고 아무 도움 없이 혼자 벌거숭이처럼 살아남아야 해서 막막하기 짝이 없는 친구들에게 말하고 싶은 거죠. 그들이 커서 된 게 저인데, 저는 다른 사람처럼 성공의 기술이나 행복해지는 방법 같은 건 알지도 못하고 말해줄 수 없어요. 툭 치면 그냥 흘러나올 거 같은 무책임한 위로나 힐링 같은 것도 절대 하고 싶지 않고요. 하지만 적어도 내가 잘하는 걸 하면서 누가 뭐라 해도 온전히 내 힘으로 버티겠다고, 그러니까 그걸 지켜봐 달라고 말하는 거죠.
나의 친애하는 적허지웅 저 | 문학동네
세상은 다양한 잣대로 허지웅이라는 사람을 기억한다. 그러나 그는 계속 살아가고 있으며, 자신이 사랑하고 미워하고 경외하는 모든 것들을, 거리를 두고 바라보고 탐구하며 스스로를 완성해가고 있다. 허지웅이 매일 쓰고 때로 신문과 잡지에 연재해온 글에 새 글들을 더하여 이 책을 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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