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태현 “가족 몰래 여행 갔다가 쓴 소설”
『망고스퀘어에서 우리는』 펴내
일주일 뒤 여행에서 돌아왔을 때 가족들이 저를 찾기 위해 제 산책로였던 태화강변을 뒤졌다는 얘기를 들었죠. 당선 소식을 전하고 나서야 용서받았습니다. 옷 사 입어라, 구두 사 신어라 하는 격려금도 과분하게 받았습니다.
계간 『창작과비평』 창간 50주년 기념 장편소설 특별공모 당선작인 금태현 작가의 『망고스퀘어에서 우리는』이 출간되었다. 『망고스퀘어에서 우리는』은 필리핀과 일본을 배경을 넘나들며 갓 스무살이 된 코피노 주인공이 사랑과 가족을 발견하는 이야기로, “이야기를 잇고 끊는 고유한 리듬을 조성하며 담담한 듯 노련하게 서사를 이끈 점이 돋보” 인다는 평가처럼 경계 위에서의 삶을 이례 없이 담백하게 다루면서 새로운 형태의 사랑과 가족애를 우리 앞에 설득력 있게 풀어내는 소설이다. 금태현 작가는 『망고스퀘어에서 우리는』를 통해 활동을 시작한 신인 작가이지만, 오랜 시간 홀로 소설쓰기에 몰두해 온 베테랑이다. 긴 습작기간으로 단단히 다져온 서사의 역량에서 그가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의 깊이를 느낄 수 있어, 앞으로의 작품이 더욱 기대가 된다.
'세계화 시대의 노예’로 전락해가는 인간상
『망고스퀘어에서 우리는』은 계간 『창작과비평』 창간 50주년 기념 장편소설 특별공모 당선작인 동시에 작가님의 등단작입니다. 오랫동안 소설쓰기를 해오셨다고 들었는데 공모전에 당선되면서 등단하게 되다니 감회가 새로우실 것 같습니다. 수상 소식을 들었을 때의 기분은 어떠셨나요?
우선은 기뻤습니다. 제 작품이 드디어 세상 밖으로 나가는구나 생각하니 작가로서 책임감도 느꼈구요. 오랜 시간 지원하고 지지해준 가족과 지인들에게 고마웠습니다. 『망고스퀘어에서 우리는』을 쓰기 위해 가족에게 알리지도 않고 여행을 떠났어요. 일주일 뒤 여행에서 돌아왔을 때 가족들이 저를 찾기 위해 제 산책로였던 태화강변을 뒤졌다는 얘기를 들었죠. 당선 소식을 전하고 나서야 용서받았습니다. 옷 사 입어라, 구두 사 신어라 하는 격려금도 과분하게 받았습니다. 미국에 사는 한 친구는 밥 한그릇 사기 위해 고향까지 찾아왔어요. 20년 동안 못 만나던 문우가 가장 먼저 축하 전화를 해줘서 기뻤습니다.
소설 쓰기를 시작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본격적인 글쓰기는 아들이 태어나던 날 시작됐습니다. 아들이 태어나던 날, 아내가 누워있던 병원의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소설을 쓰기 위해 곧장 랩탑을 사러 갔죠. 병원을 떠나 혼자서 워드프로세서를 연습하느라 골몰하는 동안 아들이 태어나 있었어요. “내가 소설을 써서 대체 안될 게 뭐람?”이라는 게 계기였죠. 그 당시 『마지막 시간』이라는 첫 소설을 썼는데요, 가장 열정적으로 썼지만 제일 빠르게 책상 서랍 속으로 묻히고 말았어요.
10년 동안 다른 문인들과 별다른 교류 없이 울산에서 혼자 소설을, 그것도 장편소설만을 쓴다는 것은 무척 외로운 작업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과정은 어떠셨나요? 어떤 것에서 소설쓰기의 동력을 얻으셨는지 궁금합니다.
등단 작가와 교류할 기회는 적었지만, 문인을 목표로 하는 분들과 동호회에서 서로 작품을 토론할 기회는 종종 있었습니다. 외로운 작업이라는 말에 동감합니다. 아무리 친하다고 한들 누군가 대신 써 줄 수는 없겠죠. 하루 중 점심식사 때 “칼국수” 한마디만 한 적도 많습니다.
저는 누구의 지시에 의해 행동하지 않고, 어떤 곳에도 출근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오직 자신에게만 지배 받으며 시간을 나누어 쓸 자유를 지닌 소설가를 꿈꿨어요. 군주제도 아니고 공산주의도 아니고 민주주의도 아닌 나의 세계를 구축하는 것이 글을 쓰는 동력이자 목표입니다.
최근에는 성취지향적인지 안정지향적인지 묻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성취와 안정을 이분법적으로 분리할 수 있을까요? 성취를 통해서 안정을 추구하는 사람도 있을 테고, 안정을 통해서 성취를 지향하는 부류도 있겠지요. 소설은 가장 느린 보상을 담보하는 작업일지 모른다는 생각도 듭니다.
『망고스퀘어에서 우리는』처럼 코피노가 주인공인 한국소설은 찾기 매우 힘든데요, 코피노를 주인공으로 선택한 이유나 계기가 있다면 어떤 것인가요?
인종적 측면에서 세계화란 다민족의 어울림이 증가하는 추세를 반영하게 마련입니다. 코피노에는 혼혈의 의미가 포함돼 있고, 아시아 문화권에서는 코피노뿐만 아니라, 자피노, 차피노를 자주 볼 수 있죠. 모두들 우리의 자식 중 한명인 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코피노라는 소재를 가져왔습니다만 소설에서는 코피노에 초점을 맞추었다기보다 등장인물 나, 나의 어머니와 아버지, 베렌, 누나, 일본 할아버지 등 ‘세계화 시대의 노예’로 전락해가는 인간상을 연상하며 집필했습니다.
특별공모 심사평 중에서 ‘코피노의 삶을 다루지만 소재에 따르는 기대치를 가뿐히 지나친다는 점이 매력적’이라는 평가가 인상적입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코피노에 대한 선입견이 있는 것 같습니다. 예컨대 한국인 아버지가 달아났다든지 필리핀 어머니가 고통 속에 살고 있다든지 하는 고정관념 같은 것 말입니다. 한 집단을 구성하는 개인의 아이덴티티가 똑같을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소설 속의 ‘나’가 유튜브 크리에이터로 설정된 점 등 개별 캐릭터를 발전시키는 데 집중하다 보니 ‘기대치’가 어긋나게 되지 않았나 합니다.
『망고스퀘어에서 우리는』은 한 소년의 성장, 사랑과 가족애와 같이 굵직한 이야기들을 담담하지만 꾸밈없이 묵직하게 다루고 있는, 품이 큰 소설이라는 감상입니다. 독자들이 이 소설을 어떻게 받아들이길 바라는지가 궁금합니다.
요즘 어떤 제품이 새로 나오면 얼리어답터(early adopter)가 즉각 그 상품을 사용해 품평을 내놓곤 합니다. 미국에선 책이 나오기 전 ‘리뷰 카피’를 통해 서평을 들을 수 있죠. 『망고스퀘어에서 우리는』도 얼리어답터처럼 먼저 소설을 읽은 독자의 견해를 경청했습니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 ‘나’가 마지막에 입는 옷에는 ‘P’라는 글자가 있습니다. 그 독자는 단테의 『신곡』, 「연옥」에 나오는 P자와 일치한다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사랑과 시혼’의 원천이 되었던 베아트리체(Beatrice)처럼 등장인물 베렌이 나를 이끌고 있다고도 생각하더군요. 이처럼 어떻게 받아들이냐 하는 점은 독자에게 열려 있습니다. 소설가라면 막힌 소설을 쓰고 싶지는 않을 겁니다. 크게는 세계의 독자 모두를 향한 소설을 쓰려고 했습니다.
지금까지 써놓으신 장편소설이 10편 정도 된다고 들었습니다. 강영숙 소설가와의 인터뷰에서 출판할 만한 작품이 두 개 정도 된다고 하셨는데, 간단히 줄거리나 주제를 소개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독자들에 대한 인사도 마지막에 살짝 붙여주세요.
한 작품은 굴지의 석유회사를 은퇴한 할아버지와 20대 남녀 커플의 이야기입니다. 다른 한 작품은 청소년기에 영어공부를 하면서 겪는 가족사, ‘특정 국가의 내전’이 삽화로 들어간 작품입니다. 『망고스퀘어에서 우리는』과 달리 두 작품 모두 한국에 뿌리를 둔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한 작품은 허영심의 바탕에서 내면의 정화로, 다른 한 작품은 억눌린 상태의 체험이 고립으로 치닫는 이야기랄까요. 묵은지처럼 담아둔 작품이라 지금 다시 읽어보면 새로운 맛이 날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독자가 미래의 저자라고 생각합니다. 저자는 독자이기도 하구요. 서로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인생의 새로운 의미를 생산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망고스퀘어에서 우리는』도 독자들에게 그런 기회를 줄 수 있는 소설이 되었으면 합니다.
망고스퀘어에서 우리는금태현 저 | 창비
『망고스퀘어에서 우리는』은 필리핀과 일본을 배경으로 갓 스무살이 된 코피노 주인공이 사랑과 가족을 발견하는 이야기로, 경계 위에서의 삶을 이례 없이 담백하게 다루면서 새로운 형태의 사랑과 가족애를 우리 앞에 설득력 있게 풀어내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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