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미선 “백화점이라는 공간 속, 사람들은 보지 않아”
『백화점에는 사람이 있다』 백화점은 상징적인 공간, 이것은 우리 모두의 이야기
살아남아서 증언할 수 있는 노동자들 뒤에 실제로 그 노동을 견디지 못하고 돌아가시거나 병든 분들이 있는 거잖아요. 이런 분들은 침묵 상태고요. 그래서 저는 이분들이 말하지 못한 이야기가 뭘까 많이 생각했어요. 또 이런 표현은 좀 그렇지만 이분들이 유언을 남긴다면 세상에 어떤 증언을 하고 싶을까 생각하면서 작업을 했던 것 같아요.
사람으로 좀 봐주면 좋겠어요. 고객만 사람이 아니라, 거기서 일을 하는 직원들도 사람이라고. 내가 뭔가 좀 즐거워야 하고, 내가 피곤한 게 풀어져야 고객한테 응대를 할 때에도 좋게 응대를 하는데, 항상 찌들어 있으면 웃음이 나올 수가 없거든요. 백화점이 뭔가 노동자에게 요구를 하려면 그만큼 합당하게 해주고 난 다음에 요구를 해야, 노동자도 해야 되는 몫이 있는 거죠.(205쪽)
2013년, 백화점 노동자의 자살 소식이 두 번이나 전해졌다. 고객 ‘갑질’로 온갖 수모를 당하는 백화점 노동자들의 이야기도 왕왕 있었다. 폭언과 폭행에 무차별로 노출된 백화점 노동자들의 이야기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한국여성민우회는 2013년 사건을 계기로 백화점 노동자들의 노동 현실을 모니터링하는 시민 모니터링(일명 ‘우다다액션단’)을 시작했다. 열네 명의 백화점 노동자들과 인터뷰를 진행했고, 그들의 이야기가 백화점 노동의 실태를 보여주는 한 권의 책 『백화점에는 사람이 있다』이 되었다.
『백화점에는 사람이 있다』를 공동 작업 한 안미선 작가는 이 이야기가 백화점이라는 공간에 국한된 ‘다른’ 이야기가 아니라고 말한다. 고용 불안정, 매출 압박, 스트레스로 인한 정신적 문제 등은 “대부분의 저임금 노동자에게 해당되는 이야기”라는 것. 때문에 이 책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겪은 일터에서의 경험을 나누고 변화의 계기를 만들길 바랐다. “상황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가변되는 것이죠. 변화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모든 것의 첫걸음이에요.”라는 작가의 말에 밑줄을 긋는다.
이분들이 유언을 남긴다면
백화점 노동자의 자살이 여러 번 뉴스가 되기도 했죠. 그렇지만 백화점의 노동환경을 막연하게만 알았던 거예요. 책은 읽으면 읽을수록 놀라운 내용들뿐이었거든요. 쓰면서 어떤 생각을 가장 많이 하셨어요?
자살에 대한 것이 사회적으로 공론화되면서 한국여성민우회에서도 캠페인을 계속 했었는데요. 백화점이라는 공간은 소비의 공간이고, 굉장히 고급스러운 공간이죠. 한편 사람들은 백화점이라는 공간은 보지만 그 속에 있는 사람들은 보지 않아요. 그것은 어떻게 보면 사회 전체가 물건과 이윤을 중심으로 보고 있는 거라 할 수 있겠죠. 이것이 백화점 노동자가 죽은 것과 같은 원인이라고 생각해요. 저도 백화점 노동자 인터뷰를 봤을 때 많이 놀랐어요. 이 사실은 사람들도 잘 모를 거라고 생각했죠. 노동자 한 분, 한 분의 목소리가 무척 호소력 있었기 때문에 그 목소리의 결을 살리면서 이분들이 증언한 백화점 노동의 현실을 다시 사회에 공유할 필요가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특히 매출 부분을 쓸 때 가슴이 아팠는데요. 제가 글을 써놓고도 울컥하는 느낌이 있었거든요. 왜냐하면 살아남아서 증언할 수 있는 노동자들 뒤에 실제로 그 노동을 견디지 못하고 돌아가시거나 병든 분들이 있는 거잖아요. 이런 분들은 침묵 상태고요. 그래서 저는 이분들이 말하지 못한 이야기가 뭘까 많이 생각했어요. 또 이런 표현은 좀 그렇지만 이분들이 유언을 남긴다면 세상에 어떤 증언을 하고 싶을까 생각하면서 작업을 했던 것 같아요.
매출 압박 때문에 끝내는 빚에 몰리고, 우울증을 겪거나 자살을 생각하는 이야기가 나와요. 개인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큰 문제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그러나 백화점은 이를 한 명의 사람이 아니라 비용으로 보잖아요.
게다가 여성의 노동이 거의 서비스 판매직에 몰리고 있는 상황이죠. 이러한 여성의 저임금 문제는 사회적인 문제예요. 여성 열 명 중 네 명이 저임금 상태로 일하고 있거든요. 또한 백화점이라는 독과점화한 유통기업이 이윤은 독차지하면서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직접 고용하지 않고, 소모되는 도구처럼 생각하는데 정작 노동자들은 끝없이 매출을 올려야 하는, 이런 현실은 어떻게 보면 우리나라 대부분의 저임금 노동자에게 해당되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어요. 백화점은 상징적인 공간이고, 이런 현실은 누구나 다 공감할 수 있는 현실인 거죠. 이를 토대로 자기 일터의 경험을 이야기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해요.
이 책은 정책적인 제언이나 법적 개선을 알리는 면도 있지만 일반 사람들의 공감을 확산시키는 면도 있어요. 왜 이 사람들이 남이 아닌가, 어떻게 이 사람이 나와 연결되어 있는가, 라는 것을 이야기할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시민운동 차원에서 기획된 거예요. 이 책을 읽은 누군가가 공감을 했으면 좋겠어요. 거기에 있는 사람들의 관점을 말이에요. 사람들이 물건을 보던 시선을 돌려서 사람을 볼 수 있다면 그것으로 이 책이 목적을 달성한 것 아닌가 생각하죠. 결국 세상은 사람들의 힘으로 바뀌는 거니까요. 내가 어떻게 해도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는 많은 무력감들이 있는데요. 내가 공감한 이것이 결국 세상을 바꾸는 단초가 될 것이라고 하는 희망, 용기를 함께 나누고 싶어요.
문제의 핵심은 백화점의 엄청나게 복잡한 고용구조일 텐데요. 여러 목소리가 ‘IMF’를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이 눈길을 끌어요.
1998년 ‘근로자파견법’이 통과되고요. 2005년에는 ‘기간제법’ 같은 문제가 확산되었죠. 그러면서 간접 고용이 굳어지게 된 건데요. 대부분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그 시점부터 많은 변화들을 겪었기 때문에 그렇죠. 백화점 노동자들이 ‘갑질’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IMF 이전이 오히려 고객들이 착했던 것 같다고 하고 있거든요. 지금은 어떤 면에서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고 있는 거잖아요. 이건 사람들이 갑자기 사악해졌기 때문이 아니에요. ‘근로자파견법’이나 IMF 이후에 기본적으로 상황이 삭막해지고 피폐해졌기 때문에 그렇죠. 모든 사람들의 관계가 악화된 거예요. 소비자나 생산자, 서비스직 노동자 모두의 관계가 적대적이고, 서로에 대해 지배적인 관계가 되었는데요. 바로 그 토대가 된 것이 고용 불안정의 문제였어요. 백화점이라는 공간에서 사람들이 소비자와 노동자로 만나는데요. 사람들은 이것이 분리되어 있다고 생각하잖아요. 돈이 있으니까 상품을 살 수 있고, 그들은 내가 내는 돈으로 임금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거죠. 그런 분리가 조장된 것도 다 고용 불안정이 본격화된 시점과 맞물린 것 같아요.
그 결과, 백화점의 노동환경이 얼마나 나빠졌고, 백화점이 노동자에게 얼마나 치졸해졌는가를 봐야겠죠. 백화점의 꽃이라고 하는, 화장품 매장이 모여 있는 1층에는 안경 낀 노동자가 없다는 사실, 엄청난 CCTV의 수, 열악한 휴게 공간은 물론 물도 마음대로 마실 수 없다는 사실 등 실로 엄청나요. 아주 기본적인 인권이 지켜지지 않는 곳이 백화점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한국여성민우회가 진행한 캠페인 중 백화점에 요구안을 낸 것이 있어요. 시민들이 백화점에 요구하는 노동자의 권리 선언 같은 건데요. 노동자에게 물을 마시게 해달라, 노동자가 엘리베이터를 사용 하도록 해달라는 등의 내용이 들어있어요. 노동자로서의 대접을 해달라는 내용이죠. 이것이 백화점에 전달이 되었고요. 이런 상황들이 분명히 있었는데도 이전까지는 보이지 않았다는 것은 사실 우리 사회가 무관심 했다는 거거든요. 물건을 파는 서비스 노동자들에 대한 하대가 있었기 때문인데요. 그런 것에 대해 노동자들의 죽음이든, 어떤 자기표현이 있었고요. 그것에 시민들이 눈길을 돌리고, 캠페인에 동참을 하고, 요구안들을 백화점에 전달하게 된 거죠. 이런 내용이 또 이런 책으로 만들어져서 사람들이 읽을 수 있게 됐고요. 또한 감정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입법들이 준비되고 있는데요. 이런 것을 기반으로 제도적인 확충이 될 수 있다면 변화가 불가능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상황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가변되는 것이죠. 변화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모든 것의 첫걸음이에요. 변화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에서부터 많은 것이 시작되지 않는 것 같아요.
프랑스, 이탈리아 등에서는 노동법을 만들어 영업시간과 공휴일 영업시간을 제한하고 있죠.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말씀에 공감해요. 결국 사회적 합의의 문제인데요. 다만 그런 면에서 한국 사회는 아직도 후진적인 요소가 너무 많은 게 아닌가 싶어요. 그것이 사람들을 무력감에 빠뜨리는 것 같고요.
사람들이 많이 무력하기도 하지만 협력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공감대가 많이 확산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눈에 띄지는 않지만 말이죠. 많은 사람들 삶이 열악해졌죠. 저임금 문제가 더 이상 한두 사람의 문제가 아니잖아요. 가계 부채 문제, 지속 가능한 삶의 문제는 이제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는 문제가 됐어요. 자신의 일터에서 만나는 동료와 다른 일터에 있는 노동자들이 나와 같이 임금을 받아야 생존할 수 있는 사람들이고, 우리가 이 구조 안에 같이 있다는 것에 대해서 공감대가 많이 확산됐다고 생각해요. 무엇보다 협력과 소통으로 사람이 살아남는 것이지 기존 체제가 요구하는 대로 경쟁하면서 살아남을 수 있는 시대가 아니라는 공감대가 보이지 않게 확산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요. 그러한 것에 대해 사람들이 행동하고, 표현하고, 요구한다면 그런 법들이 우리나라에도 만들어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특히 백화점 같은 경우 고객과 노동자, 기업이라는 세 가지 축 중에서 고객, 시민들의 태도 변화가 많은 변화의 한 축을 담당하는 지점이거든요. 같은 노동자로서 백화점 노동자를 바라보는 태도 변화와 행동이 말이에요. 백화점 노동자가 서비스 노동자기 때문에 그래요. 고객들, 시민들이 다른 이의 열악한 노동환경을 바꿀 수 있는 주체적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런 메시지에 귀를 열고, 다르게 세상을 보고, 동참할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봤으면 좋겠어요.
많은 사람들이 고용 불안정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으니까요. 비정규직 노동자도 많고요. 결코 남의 일이 아니죠.
지금 같은 경우는 압축 성장의 부작용으로 차별이나 계층 간의 갈등, 소수자에 대한 배제 같은 것들이 많이 드러나고 있는 상황이에요. 여기에서 사람들이 자신들의 분노와 체제에 대한 분노를 다른 이에게 전가하고, 차별하는 것으로 격화되고 있는 시점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것이 가시화되었는데요. 그 원인을 어떻게 해석하고, 어떻게 연결점을 찾느냐에 따라서 우리가 협력할 수 있느냐, 끝없이 경쟁하고 누군가를 배제하면서 ‘그래도 나는 괜찮아’라는 자기 위안에 갇힐 것이냐 하는 선택의 기로에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힘들수록 위축되지만 좀 더 주변 사람들의 삶이나 다른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겠죠. 그런 면에서 책이나 여러 매체들, 사람들 개개인의 의견들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지지와 연대
복잡한 고용구조는 노조 결성을 어렵게 하는 요소기도 합니다. 노조가 있는 노동자들의 근무 환경은 상대적으로 낫잖아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부터 해결되어야 할까요?
사실 노동조합 문제는, 안정적으로 보장되고 있는 것이 아니고 열심히 싸워서 얻어내는 과정이거든요. 그 안에서도 노동조합을 유지하기 위해서, 또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 무척 분투하는 과정들이 있어요. 때문에 노동조합이 있다고 해서 안정적인 상황은 아니죠. 게다가 백화점 노동자 같은 경우는 노동조합 가입률이 많이 낮은 상태고요. 서로 다른 고용 구조 때문에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부분이라서 간단하지가 않아요.
노동조합을 만들고, 그것을 굳건히 해야 한다는 것이 하나의 과제고요. 시민들이 노동조합을 지지하고 노동자의 권리를 지지하면서 연대해 가는 것도 한 축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백화점 노동자들이 스스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권리 확충을 하는 행위자로서의 역할을 하는 것은 계속해서 그 권리가 존중되고 확대되어야 해요. 민주노총이나 여러 영역에서 그런 노력을 많이 하고 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 지켜지지 못하는 권리와 역할에 대해서는 많은 이들의 관심이 반드시 필요해요. 지지하고, 적어도 비난은 하지 않는 그런 역할을 하는 사회 풍토가 형성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그런 분위기를 어떻게 만들어갈 수 있을까, 이런 것에 관심을 가지고 있거든요.
적어도 비난하지 않는 분위기가 필요하다는 말은 너무 가슴이 아프네요.
사람들은 일상적인 영역과 노동의 영역이 분리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자신의 일상적인 삶을 귀찮게 하는 존재로써 다른 사람의 권리 운동을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요. 백화점이라는 공간은 내가 돈을 쓰는 소비의 공간이기도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일터기 때문에 그들의 얼굴이나 그들의 삶의 조건에도 관심을 가져야 하는 거죠. 우리는 사실 그런 교육이나 훈련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한 사람, 한 사람이 가진 인식의 한계가 있어요. 그렇지만 그것은 고정된 게 아니에요. 자신의 삶과 맞닥뜨리면서 바뀌어 가는 과정에 있는 거죠.
반복해서 개인들의 인식 변화, 참여와 연대 같은 말씀을 하시는데요.
네, 노동의 문제는 전체적인 문제기 때문에 딱 한 사람의 힘만으로 바꿀 수가 없어요. 이 책 작업을 하면서 책의 방향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고민을 했는데요. 열두 명의 백화점 노동자들이 굉장히 큰 용기를 내서 이야기를 했고, 그 목소리 하나하나가 특색이 있거든요. 이 책에서는 구술이 자료 인용에 그치지 않아요. 각자의 음색, 그들의 삶의 태도를 살리려고 애를 많이 썼는데요. 책을 읽는 사람들 자신의 개인적인 삶과 그분들의 목소리가 만나서 일으키는 공명의 자장을 기대했었어요. 책이라는 매체는 한 사람의 독자를 만나는 것이고, 한 사람의 독자는 그 책의 의미를 완성해가는 것이니까요. 독자가 적극적으로 텍스트를 만드는 주체자로 참여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하다못해 자기가 백화점에 갔던 경험, 주변에서 했던 서비스 노동의 경험 이 모든 것들이 독자 안에서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냈으면 좋겠어요.
하위의 직종, 여성직
앞서 언급했듯 ‘특히나’ 이것은 여성 노동의 문제잖아요. 다층의 문제를 내포하고 있는 것인데요.
여성 취업 인구 중 80%가 넘는 인구가 3차 서비스 부문에 집중되었다는 것은 성별 분리가 되었다는 의미예요. 여성들은 이 사회에서 대부분 서비스 일을 하게 되는 존재로 이미 구조화된 것인데요. 반면 기술직, 관리직이나 사회에서 일을 만들고 판단하는 직종은 남성이 대부분이죠. 백화점에서도 관리자는 대부분 남성이거든요. 노동법의 보장을 받지 못하는 하위의 직종이 ‘여성직’인 것이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현상이에요. 여성 노동자가 우리 사회에서 차지하고 있는 일의 위치와 그런 사회적 장벽들을 책을 통해 함께 논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백화점 노동은 어떻게 보면 눈길을 끌지만 여성 노동의 맥락으로 봤을 때는 굉장히 일반적인 이야기고, 한 사례인 거니까요.
최근 여러 분야에서 여성적 시각으로 다시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그간 여성과 노동 이야기를 계속 해온 입장에서 이런 페미니즘 이슈를 보며 어떤 생각을 하셨는지도 궁금하더라고요.
여성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오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이에요. 큰 상처를 받았으므로 거기에 대해 자기를 표현하는 것이 사람의 권리고요. 여성 혐오나 여성의 문제는 굉장히 오랫동안 우리 사회에 지속되어온 문제예요. 그것이 명명되고 그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뚜렷한 목소리들이 젊은 여성들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는 것을 건강한 목소리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이것을 차별이나 배제라는 좁은 프레임에 가두면 안 돼요. 사람들이 사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이 의식주라고 여전히 생각을 하는데요. 자신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사는 데 필요한 정당한 권리를 받지 못하는 것은 구조적인 문제거든요. 그것을 소수자 때문에, 여성 때문에, 이주자 때문에, 이런 식으로 대하는 것은 자신이 받은 차별을 그들에게 투영하는 것이고, 그건 전혀 해결책이 되지 못하죠. 특히 그러한 불평등 구조에서 받은 분노를 자신보다 약한 혹은 자신보다 약해야 하는데 약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여성이나 소수자들에게 전가하는 방식은 굉장히 우려스러워요. 이런 것들이 방향을 틀지 않으면 우리 사회에 큰 위기가 될 거라 생각해요. 적어도 그러한 것이 사실이 아니라고 지적하는 목소리는 옳다고 생각하죠.
확실히 지금은 뜨거운 상태 같아요. 워낙 결이 다른 많은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고요.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지 궁금하기도 한데요.
거기에 대해서 제가 깊이 말할 것은 아니지만요. 저는 그것이 결국 불평등의 문제이지 않나 생각하는 거죠. 우리의 삶을 이루는 기반이 붕괴되고 있는데요. 사람의 욕망은 무한하지만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은 유한해요. 그런데 왜 서로를 동료로 보지 못하는 것일까, 왜 저 사람은 나와 다르고 짓밟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그런 생각을 많이 하거든요. 이 차이를 없애는 문화적인 작업들이 많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 경우 저서 작업일 수 있겠지만 다른 분야에 계신 많은 분들, 시민운동을 하시거나 책과 책을 만나게 해주시거나 하는 많은 분들의 활동이 가지는 역할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죠.
모두의 문제예요. 이 사람과 저 사람이 싸우니까 그들의 문제인 게 아니라 모두의 문제인데요. 그 문제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 더 넓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워낙 구조적으로 하위직을 여성이 많이 담당해왔기 때문에 불평등의 문제와 젠더 문제를 구분하기가 쉽지 않은 것 같아요.
많은 것들을 바로 볼 수 있는 사람은 사실 차별 받는 사람의 시선일 때가 많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럴 때 이것은 옳으니까 네가 바뀌어, 이렇게 하기는 쉽지가 않죠. 많은 것을 요구하고, 억압 받은 목소리들이 유통이 되고, 그런 힘들이 결집돼야 변화의 계기들이 생기는 거죠. 기득권을 가진 사람은 그것을 내려놓기가 참 어려운 것 같아요. 또한 저는 이제 여성들의 이야기는 결국 남성의 문제고 사회를 더 평등하고 안정되게 만드는 문제기 때문에 조금 더 넓은 시야를 가지는 것이 결국 그들을 위해서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요.
선생님께서 하고자 하는 글쓰기가 궁금합니다.
그보다 먼저 『백화점에는 사람이 있다』는 여러 사람이 협력해서 만든 책이라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어요. 백화점 노동을 가명으로 용기 내 증언해주신 분들이 있었고요. 그런 것을 활동으로 이어간 한국여성민우회가 있고요. 김종진 선생님의 연구나 기타 백화점 서비스 노동자들에 대한 연구가 많이 선행이 되어 있었어요. 또 법제화를 위한 노력들도 있었고요. 그렇게 협력해서 만든 책이라는 점을 꼭 밝히고 싶어요. 저는 여성들이 협력해서 이 사회에 필요한 지식을 생산해내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 책도 사실 굉장히 많은 백화점을 지역에 계신 분들이나 많은 이름 없는 시민들이 함께 해서 지식화한 거거든요. 그런 점에서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여성의 목소리에 관심이 있어요. 여성의 목소리라는 것은 결국 그 사회에서 젠더를 보는 관점, 그 시대에서 자원이 분배되는 방식, 그 사회의 모습을 모두 드러내는 것이거든요. 여성들이 그것을 어떻게 겪었고, 어떻게 기억하는가, 개인의 목소리로써 그것이 어떻게 표현되는가, 이런 것에 관심을 갖고 작업을 해왔는데요. 앞으로도 그런 작업을 할 것 같아요. 한 여성이 자신의 얘기를 했을 때 그것이 지극히 사적인 얘기라 하더라도 사회의 모순을 표현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지극히 사적인 목소리 속에 진실이 있는 것이다, 라고 생각을 하고요. 활동이나 연구의 영역이라기보다 표현이나 문학의 영역에 이것이 더 가까울 수 있을 거예요.
여성과 노동 문제에 관심 있는 독자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한국여성민우회에서는 이 책 외에도 출판 사업을 꾸준히 해왔어요. 『뚱뚱해서 죄송합니까?』, 『있잖아...나, 낙태했어』, 『내가 살 집은 어디에 있을까?』 이런 책들이 있는데요. 여성이 노동을 할 때 사적 영역이라고 하는 섹슈얼리티나 가족 등의 다양한 영역들이 어떻게 교차되어 있는지를 말하고 있어요. 제가 쓴 『여성, 목소리들』도 있고요. 『기록되지 않은 노동』은 <일다>에 연재되었던 것인데요. 많은 여성의 노동들이 10년이나 20년 안에 새로 만들어진 직종들이거든요. 그것이 똑같은 방식으로 저임금으로 가는 모습, 그것을 일하는 사람들이 전 세대가 되어가는 상황들을 기록한 책이에요. 여성 노동에 대해 조금 더 깊은 얘기를 들으려면 『여자, 노동을 말하다』라는 책을 읽으면 좋을 것 같아요. 노동자들이 노동현장에서 겪게 되는 건강 문제를 얘기한 『노동자, 쓰러지다』도 있고요. 현장을 르포 형식으로 같이 보여주는 그런 책들은 많은 독자 분들의 시야를 넓혀줄 수 있을 것 같아요.
백화점에는 사람이 있다 안미선,한국여성민우회 등저 | 그린비
『백화점에는 사람이 있다』는 휘황찬란한 백화점 공간 이면에서 고강도의 노동으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물건에 대한 이야기는 넘쳐나지만 사람에 대한 이야기는 귀한 시대”에, 이 책은 우리에게 친절하게 물건을 건네주는 사람, 바로 그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전한다.
읽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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