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철, 재즈부터 힙합, 레게까지 넘나들다
협업에서는 잘 꾸며주는 것이 내 역할
윤석철 트리오를 통해서는 제가 하고 싶은 재즈를 하고요. 장혜진, 자이언티, 이번 알리같이 다른 가수와 협업은 잘 꾸며주는 것이 제 역할인 것 같아요. 기본적으로 그 사람이 원하는 것이 뭔지부터 잘 들으려고 해요. 그래야 서로 편해질 수 있어요.
윤석철 트리오, 안녕의 온도, 방백, 자이언티 앨범에는 공통된 이름이 있다. 아니 어쩌면 이 그룹들 외에 더 많은 가수들 앨범에서 그의 이름을 발견할지도 모르겠다. 재즈부터 힙합, 레게까지 장르의 제한도 거의 없다. 이런 과감한 활동들은 윤석철 트리오의 최근작 <자유리듬>에서 그대로 나타난다. 제목부터 자유로운 EP는 다양한 요소들이 감각적으로 융합되어 있다.
평소에는 거의 반달눈으로 웃고 있는 그이지만 음악에 대해 이야기할 때 눈빛은 완전히 달랐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 자신의 생각을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표현해나갔다. 외유내강형 '여대 앞에 사는 남자(EP 수록곡)'를 실제 그가 사는 여대 앞에서 만났다.
요즘 가장 바쁜 아티스트가 아닐까 싶습니다. 최근에는 어떤 작업을 하고 있는지요?
서울재즈페스티벌 공연 이후로 좀 덜 바쁜 편입니다. (웃음) 윤석철 트리오 공연, 그리고 자이언티 공연을 준비하고 있고요. 최근에 알리X호란의 '품'을 편곡했습니다.
본인 작품이 아닌 다른 가수들과의 작업은 임하는 방식이나 느낌도 많이 다를 것 같은데요?
윤석철 트리오를 통해서는 제가 하고 싶은 재즈를 하고요. 장혜진, 자이언티, 이번 알리같이 다른 가수와 협업은 잘 꾸며주는 것이 제 역할인 것 같아요. 기본적으로 그 사람이 원하는 것이 뭔지부터 잘 들으려고 해요. 그래야 서로 편해질 수 있어요. 함께 하는 사람의 마음이 편할 때 나도 편하고 음악도 편해지는 것 같아요. (웃음) 물론 뮤지션 스타일에 따라 작업 방식은 많이 달라져요. 샘 김 같은 경우에는 작업 시간, 방식이 어느 정도 짜여진 궤도나 루틴에서 움직였고요. 반대로 방백 앨범은 즉흥성이 중요했습니다. 합주도 작업도 거의 '너 알아서 하면 돼'의 느낌이었습니다. 그래서 정말 맘대로 했죠. (웃음)
방백은 재즈는 아니지만 재즈 스타일의 작업방식이었네요.
그렇죠. 굳이 장르를 나누자면 방백 앨범은 재즈가 아니라 성인 가요에 가깝죠! 어느 날 거의 밤이 다 되어가는 시간에 베이시스트 서영도 형이 당장 악기 가지고 오라고 전화가 왔어요. 그래서 달려갔더니 방백의 첫 합주였습니다. 처음에는 합주인데 악보가 없어서 어리둥절하기만 했어요. 그런데 작업이 진행될수록 지금껏 느껴보지 못한 재미가 찾아왔습니다. 같이 하는 분들이 워낙 모두 좋은 사람들이잖아요. 방백 외에도 여러 아티스트와의 작업과 경험들이 나의 음악 일부로 계속 작용하는 것 같아요.
과장이 아니라 정말로 윤석철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본인이 느끼기에 그 시점은 언제로 보나요?
하나는 <Love Is A Song> 앨범 직후 스케치북에 출연하고 나서였어요. 아무래도 인기 프로그램이다 보니까 저까지 덩달아 잘된거죠. 그리고 작곡에 참여한 자이언티의 '그냥'이 나왔을 때도 사람들이 많이 알아봐줬어요. (작업은 어떻게 같이 하게 된건가요?) 자이언티가 제 작업실에 자주 놀러왔어요. 어느 날 갑자기 떠오른 8마디 곡을 들려주었거든요. 그러니까 자이언티가 나머지곡도 작업을 하겠다고 해서 '그래 그럼 '그냥' 해' 하고 했어요. (웃음) <즐겁게 음악> 발매 직후에도 많이 찾아주셨어요. 대중들에게 재즈치곤 굉장히 '대중적으로' 다가온 모양이에요. 사실 이때 눈치 보면서 작업하지 않겠다란 생각으로 만들었거든요. 내 마음대로 하니까 오히려 좋아해주시는 분들이 많아져서 '상황이 역설적이다'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다른 장르의 아티스트들과 작업을 하면서 느낀 점도 많을 것 같아요?
지금 나의 음악세계는 온전히 나만의 것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많은 뮤지션과 교류하고 작업한 경험들이 영감을 주고 있거든요. 특히 힙합을 하는 아티스트들과 친분이 생기면서 그들의 관점에 대해 배울 것이 많다고 느꼈어요. 일상적인 얘기를 하면서 보편적인 개념을 끌어오는 방식, 작은 소재나 아이디어를 통해 말하고 싶은 감정을 담는 방법을 보게 된거죠. 그래서인지 최근에는 앨범 제목을 가장 늦게 정해요. 작업 과정에서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었는지 도리어 마지막에 정리하고 파악하기 위해서요.
그래서인지 이번 <자유리듬>에서 여러 음악적 시도가 엿보이는데요?
시간이 지나면서 제 음악의 지평도 좀 확장되고 있지 않을까요? 윤석철 트리오의 자양분은 보수성과 진보성의 공존이라고 생각해요. 이번 앨범, 특히 12분짜리 곡 '자유 리듬'에서는 일렉트로닉이 많이 묻어나 있습니다. 민준(DJ 소울스케이프)형이나 피제이형, 무드슐라와 교류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것 같아요. 이 노래는 새로운 음악적 시도를 넘어서 지금껏 없던 음악을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작업 중에 인스타그램에 트랙을 올려보기도 하고 팬들에게 피드백을 받기도 했습니다.
확실히 최근에 전자음악에 푹 빠진 느낌이 들어요?
그렇습니다. 혼자 공연하는 세트 리스트에는 비트 가득한 드럼머신, 샘플러 같은 DJ 세트를 짤 때도 있어요. 나름 '힙'함을 표출하려는 노력으로 봐주셨으면 좋겠네요.
'렛슨 중', '렛슨 중2'는 중간에 어떤 상황이 펼쳐집니다. 이는 앨범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 건가요?
제 곡들은 대부분 연주곡들이라 의미 파악이 매우 힘들지 않을까 싶어요. 그래서 어느 정도의 방향성은 알려주면 좋겠다 싶어서 '렛슨 중'을 삽입했어요. 녹음 과정이 재밌기도 하고요. 예를 들어 '렛슨 중' 같은 경우는 결석하고 숙제를 안해 온 학생에게 열심히 연습 안한다고 혼을 냅니다. 그러다가 결국은 함께 연주를 하면서 끝이 나는데요. 그저 즐거운 마음으로 음악을 하는 게 더 중요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 곡을 만들었어요. 바로 이어지는 곡 제목이 그래서 '즐겁게 음악'이고요. 이번 '렛슨 중2'도 비슷한 역할이에요. 똑같이 노크소리로 시작하고 학생과 선생님의 설정도 그대로죠. 다만 학생이 뮤지션 김간지로 바뀌었습니다. 또 숙제 검사를 하는데... 숙제가 재즈의 고전 'Giant steps'를 연습해오는 거죠. 자기 스타일대로 연주하려는 김간지때문에 제가 당황하는 상황이 나오는데요. 제가 간지에게 기본 코드부터 제대로 치라고 막 설교를 하죠. 그러다가 바로 다음에 이어지는 곡이 전위적으로 해체해버린 'Giant steps'입니다. 둘 다 역설적인 거죠.
직접 쓴 앨범 소개 글에서 '춘곤'을 설명하는 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제목을 많이 고민했던 곡입니다. 원래 만들어질 때부터 '춘곤'이라는 이름이었지만 어쩐지 음악에 슬픈 정서가 묻어 있어서 맞지 않겠다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한번 태어난 이름은 바꿀 수가 없었어요. 언젠가부터 봄은 조금 슬픈 계절이 되었습니다. 마냥 나른해질 수만은 없게 되었습니다. - 윤석철의 '춘곤' 소개글
사실 4월은 제게 기쁨으로 가득 찬 달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생일이 있거든요. 하지만 다들 아시다시피 4월은 어느 순간부터 슬픈 의미로 다가와요. 하지만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어느 정도 움직이는 게 슬픔을 이겨내는 길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이 곡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고흐', '르누아르'를 곡명으로 하는 것 보면 미술이나 시각적인 이미지에도 관심이 많은 것 같아요?
미술에 대해 지식은 별로 없지만 좋아하는 편이에요. 그림들을 보고 곡에 영감을 받기도 하고, 반대로 제 곡을 영상이나 이미지로 발현시키고 싶은 욕구도 큽니다. 예전부터 비디오 아티스트와 협업을 하는 것이 꿈이었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자유리듬' 영상을 제작해보고 있어요.
그런 측면에서 앨범 커버도 참 독특한 것 같아요. 어떤 의미가 담겨 있나요?
'삼청로 146'에서 방민혁이라는 분이 그림 전시를 한 적이 있어요. 그 때 같이 작업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제가 앨범 이미지를 부탁드렸어요. 음악이 주는 이미지가 악기들을 추상화하고 그 악기들이 또한 다양한 모형으로 발현된 느낌이 들어요.
정말 많은 활동을 하고 있고 앞으로도 일정이 참 많으시죠? 앞으로의 계획 보다는 나아갈 방향이 더 궁금해집니다.
제가 허비 행콕(Herbie Hancock)을 정말 좋아해요. 내한 공연은 다 찾아가볼 정도로요. 그는 비밥, 하드밥을 뿌리에 두고 퓨전, 퓨처 재즈를 만들고 있죠. 좋아하는 사람이다 보니까 그와 제가 추구하는 갈래가 맞닿아있는 것 같기도 해요. 저의 방향도 퓨전이지만요. 이도 저도 아니게 되는 것은 가장 경계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즘 공식 질문입니다. 인생곡 3개를 뽑자면?
정말 어렵네요. 먼저 어릴 때부터 좋아하던 곡이자 <자유리듬>에 모티프인 미국 재즈피아니스트 썬 라(Sun Ra)의 'Disco 3000'을 뽑겠습니다. 동명의 앨범에 수록되어있는 곡인데 26분 동안 즉흥 음악의 정수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DJ소울스케이프가 추천해준 곡이자 브라질 대표가수 이반 린스(Ivan Lins)가 부른 'Setembro'도 좋아요. 멜로디의 아름다움이 경탄을 유발하죠. 퀸시 존스가 리메이크한 버전도 꼭 들어보시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는 자메이카의 키보드 제왕 재키 미투(Jackie Mittoo)가 발표한 1981년 앨범 < Showcase >입니다. 곡으로는 'Jumping Jack'을 뽑을게요. 소울, 레게, 덥 같은 다양한 장르가 조화롭게 혼재되어 있습니다.
인터뷰, 정리 : 김반야, 이기찬
사진 : 김정변지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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