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연, 개그맨을 위해 눈물을 흘리는 아이
저자 김지연 『개그맨』펴내
아이들의 세계가 따로 있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작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하지, 어리다고 해서 몰라야 하는 게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거든요. 오히려 아이들이기 때문에 더 이야기를 잘해줘야 하는 부분이 있죠.
어린이 그림책 『개그맨』은 눈물이 낳은 웃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기 위해 눈물을 삼키는 개그맨과, 그에게 잃어버린 웃음을 찾아주기 위해 눈물 흘리는 아이가 등장한다. 사람들은 무대 위의 개그맨이 더 세게 넘어질수록, 더 우스꽝스럽게 얼굴을 일그러뜨릴수록 즐거워했지만 아이만은 달랐다. 개그맨 아저씨가 아파할수록 웃음을 잃어갔다. 오직 작은 영혼만이 그의 고통과 쓸쓸함을 알아주었던 것이다.
“아픈 것들을 보면 같이 눈물 흘릴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하고 싶었다” 김지연 작가는 공감을 말했다. 다른 이의 아픔을 보며 그것이 자신의 것인 양 끌어안을 수 있는 마음. 『개그맨』은 그 소중한 가치를 아이들에게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작품 속의 개그맨처럼, 눈물에서 웃음을 틔워내는 이들을 향해 작은 위로를 전한다.
『개그맨』에는 어린이 책에서 흔히 발견되는 요소들이 없다. 숲 속의 동물 친구들도, 파스텔 톤으로 채색된 그림도 찾아볼 수 없다. 종이 판화 기법으로 만들어낸 이미지들은 다채로운 색감을 보여주지만 밝고 따뜻한 느낌과는 거리가 멀다. 드문드문 기괴한 모습을 한 인물들도 눈에 띈다. 이런 낯선 화법을 선택함으로써 작가는 또 하나의 질문을 던지고 있다. 아이들에게 보여주는 세상은 아름답게 꾸며낸 모습이어야만 하는지, 그것만이 좋다는 생각은 얼마나 자의적인지 묻고 있는 것이다.
김지연 작가는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세상과 전하고 싶은 마음을 손끝에 담아냈다. 하나하나 종이를 오려 붙이며, 세상 한 켠에는 눈물 맺힌 마음을 안고 살아가는 이웃도 있다고 속삭였다. 종이 조각 위에 색을 입히고 힘껏 찍어내면서, 그런 이들을 위해 아파할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다독였다. 마음으로 그리고 몸으로 기록하며 작품을 탄생시킨 것이다. 그래서일까. 『개그맨』은 짧은 이야기임에도 긴 여운을 남긴다.
아이들은 작은 사람일 뿐이에요
『개그맨』의 소재는 어떻게 구상하게 되셨나요?
작은 아이랑 둘이 프랑스 여행을 간 적이 있는데요. 그때 현지인들도 잘 모르는 극장을 하나 찾았어요. 공연하시는 분이 저희 애를 무대 위로 불러서 즉석에서 공연을 하셨는데, 너무 자연스럽고 재미있더라고요. 당시에 (국내에서는) 개그맨 김병만 씨가 수족관 안에서 콜라를 마시고, 그런 개그 코너가 있었는데 그걸 보면서 안쓰러운 부분이 있었어요. 슬랩스틱 코미디를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그걸 보고 좋아하는 우리 모습에 놀랐어요. 무대 위에서 개그맨이 계속 맞아도 다들 너무 재미있게 보는 거예요. 아프겠다고 말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상황이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마음들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자는 생각으로 만든 작품이 『개그맨』이에요. 우리 안에 있는 이면의 모습, 남을 아프게 하고 웃는 모습을 알아차리기를 바라는 마음이 많았어요.
작품 속의 개그맨이 낯설게 느껴지지만은 않았던 것 같아요. 사람들이 좋아하는 모습대로 자신을 바꾸어 나가는 건, 많은 사람들에게 익숙한 일이니까요.
(독자 분들이) 그런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어요. 어떤 아버지는 이제 보니까 자신이 개그맨이었다고, 너무 힘든데도 사실은 아이 때문에 웃으면서 일을 하고 있었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개그맨』을 읽으시면서 한 번쯤 그런 생각들을 하시는 것 같아요.
『개그맨』의 메시지가 가볍지만은 않다고 생각되는데요. 아이들은 어떻게 읽었을지 궁금해요.
아이들도 의미를 알아차리더라고요. 개그맨 아저씨가 안됐다고 이야기하기도 하고, 작품 속의 아이처럼 자신도 아저씨를 구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하고요. 저는 주로 그림책을 보여줄 때 글을 전부 가리고 그림만 보여주거든요. 그림만으로 이해가 되면 거의 대부분을 이해할 수 있는 거거든요. 그런데 대부분의 아이들이 (그림만 보고도) 이 이야기가 어떤 서사로 흘러가는지를 말하더라고요. 글이 없으면 조금 더 쉬워져요. 글을 읽는 순간 어려워지는 거죠.
그림만 보고 이야기를 이해하는 건, 어른들보다 아이들이 더 잘할 것 같습니다.
세대가 많이 달라져서 그래요. 우리 세대는 글로 모든 걸 배웠던 세대이고, 요즘 아이들은 태어났을 때부터 이미지를 볼 수 있는 매체들이 있었잖아요. 그러니까 이미지에 대한 훈련이 굉장히 잘 되어 있어요. 그래서 아이들이 책 읽는 게 힘들어요. 독서 단계가 올라갈수록 못 읽는 거예요. 책이 없어서 못 읽는 게 아니라 텍스트를 해석하는 게 힘든 거죠. 반대로 우리는 이미지를 해석하는 게 너무 힘들잖아요. 그런 점에서 그림책은 전 세대와 현 세대를 연결해주는 중요한 역할을 해요. 글과 그림을 품고 있으니까 엄마는 글을 보고 아이한테 접근하고 아이는 그림으로 엄마랑 그 세계를 나누는 거예요. 어느 세대든, 글씨를 알든 모르든, 여러 사람들과 나눌 수 있는 책이 그림책이에요. 정말 선물 같은 책이죠.
『개그맨』의 그림체나 색감은 거칠게 느껴지는 측면이 있습니다. 말씀하셨듯이 이야기를 미화하지 않으려다 보니 그런 선택을 하신 것 같은데요. 우려되는 부분은 없으셨나요?
저는 아이들의 세계가 따로 있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작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하지, 어리다고 해서 몰라야 하는 게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거든요. 오히려 아이들이기 때문에 더 이야기를 잘해줘야 하는 부분이 있죠. 독자들이 어린이이기 때문에 불편하고 거친 방식이라고 말하기에는 책은 굉장히 평등한 도구죠. 그리고 출판이 되기 전에 편집자와 디자이너가 필터링을 다 했어요. 원래는 더 기기 묘묘해요(웃음). 그래서 그렇게 불편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다양성의 측면에서 『개그맨』이 가지는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선택은 아이들의 몫이라 하더라도 어른들에게는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줄 의무가 있는 것 아닐까요?
우리가 자꾸 뭔가를 마련해주려고 하면 안 되는 것 같아요. 특히 문화나 예술은 다 경험해 보고 선택해 가야지, 이것이 좋다라고 말하는 기준은 참 애매모호한 거죠. 도덕적인 선에서 어긋나지만 않는다면, 세상을 판단하는 기준에 대해서 우리가 함부로 선택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아이들의 책은 도서관에서 함께 고르세요
자녀에게 어떤 책을 골라주면 좋을까요? 그리고 어떻게 하면 재미있게 책을 읽어줄 수 있을까요?
사실은 책을 골라주려고 하는 것부터가 문제의 시작인 것 같아요. 연령대별로 다르기는 하지만, 아이들에게는 그림책이 놀이감이거든요. 그림책으로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는 게 중요한 거예요. 유명한 작가의 훌륭한 책이 중요한 게 아니고요. 책을 통해서 아이와 공감하는 시간을 만드는 거죠. 부모는 글을 이해하는 데 뛰어나고 아이들은 이미지를 해석하는 데 뛰어난데, 그 공통의 것을 담은 게 그림책이거든요. 책을 통해서 아이와 이야기를 하면 되는 것이지, 추천목록이라는 게 의미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아이가 관심 가지고 있는 소재에 대한 책을 함께 읽으면서 우리 아이만의 추천목록을 만들어가는 게 중요한 거죠. 그래도 이왕이면 여러 가지를 상상할 수 있는 그림과 시적인 언어가 있는 그림책을 보는 게 좋겠죠.
아이가 좋아하는 책만 읽으려고 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실컷 보고 질리면 다른 책도 보게 돼요. 그런데도 너무 걱정된다고 하시는 분들이 계신데, 그러면 저는 도서관에 가시라고 말씀 드려요. 엄마 혼자 책을 골라서 집으로 배달시키면 그건 엄마의 취향일 뿐이잖아요. 아이와 같이 도서관에 가면 아이는 아이 취향대로 어머니는 어머니 취향대로 고를 수가 있어요. 그래서 3:2 비율로 이번에는 아이가 세 권을 선택하고 다음에는 엄마가 세 권을 선택하는 식으로 골고루 읽는 거예요. 그러면 한쪽으로 치우칠 수가 없죠. 항상 균형점이 있으니까요. 아이가 아무리 이상한 책을 가지고 와도 수준을 나무라면 안 돼요. ‘이 책이 재미있을 것 같니?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뭐야?’ 하면서 같이 재미있게 읽어줘야죠. 그래야 엄마가 고른 책도 아이에게 권할 수 있잖아요.
『개그맨』은 여타의 어린이 그림책과는 다르게 느껴졌는데요. 출판사 측에서도 비슷한 생각을 하신 것 같습니다(웃음). “어린이들이 이런 화법을 낯설어할지도 모른다는 우려에도, 망설임 없이 이 그림책을 출판하게 됐다”고 하시더라고요.
맞아요(웃음). 다소 거친 부분이 있어요. 그렇지만 이야기를 순화시키면 정말 웃긴 이야기가 되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방법을 선택한 거예요. 단순히 웃기려고 만든 이야기가 아니라 웃기고 웃는 관계에 대해서 이해를 하자고 말하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부드러운 파스텔 톤으로 바꾸면 그냥 ‘어느 유쾌한 개그맨 씨의 이야기’가 돼버리잖아요. 그래서 거칠지만 이런 방식으로 갈 수밖에 없었어요. 아마 출판사 측에서도 저랑 똑같은 생각을 하셨을 것 같아요. 누군가는 이런 이야기를 해야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요. 『부적』이라는 책을 만들 때도 같은 생각을 했었고, 계속 그런 식의 작업들을 해왔죠. 그 역할을 함께 해주는 출판사가 있으니까 너무 신나고 고마워요.
첫 작품이신 『부적』은 성인 독자들을 대상으로 만드신 책이었죠?
그림책 작가가 되기로 결심했을 때부터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고민했었어요. 그때 저를 가르쳐주셨던 SI 그림책학교의 조선경 선생님께서 ‘지금 네 생각이 어디에 꽂혀있는지 생각해 봐라’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아이가 잘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고, 그게 기원이랑 맞물렸어요. 기원이라는 게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잖아요. 그걸 어떻게 책으로 만들 것인지 생각하다가 부적을 떠올렸죠. 그렇게 해서 『부적』을 수제본으로 200권을 만들었는데 당시에 센세이션했던 거죠. 일단 금기시됐던 것을 건드렸고 무당도 아닌 사람이 출판물로 만들었으니까요. 그러다가 어린이 책 출판사에서 연락이 온 거예요. 『부적』 같은 어린이 책을 만들어달라고요. 그래서 『깊은 산골 작은 집』을 만들게 됐죠. 조선경 선생님의 지지와 지도가 없었더라면 『부적』은 세상에 나오기 힘들었을 거예요. 제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 소신을 밀고 나아가는 힘을 만들 수 있게 해주셨거든요.
서른일곱의 나이에 어린이 그림책을 만들기 시작하셨잖아요. 계기가 있으셨나요?
원래는 서양화를 전공하고 그림을 그렸었어요. 강남의 갤러리 같은 곳에 초대를 받고 전시회도 했었는데요, 그 안에서 괴리감이 컸어요. 저는 시장에서 자랐거든요. 시장에서 장사하시는 아주머니들이 저를 칭찬해주고 격려해주시면서 반은 키우신 거예요. 그런데 그 분들은 정작 갤러리에 오시지 못하잖아요. 문턱이 너무 높으니까요. 그게 정말 아이러니한 거예요. 그러면서 내가 진짜 원하던 모습이나 미술의 방식이 이런 거였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방식을 조금 바꿔야겠다는 고민을 하게 됐고, 이후에는 작업을 하지 않았어요. 그러다가 저희 아이들한테 그림책을 보여주면서 이거구나 싶더라고요. 큰 비용 들이지 않고 살 수 있는 책 속에 간결한 글과 그림을 실으면 많은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겠다고 생각한 거죠. 그때부터 그림책을 만들기로 마음먹었고요. 『부적』을 기획할 때부터 남들이 하면 안 된다고 말하는 것들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까지 판화를 이용해서 작품을 만들어 오셨는데요. 익숙한 서양화가 아닌 판화를 선택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간절하게 비는 마음에는 힘이 있어야 되잖아요. 진짜 간절한 건 세거든요. 그 센 마음을 붓으로 표현하니까 많이 약하더라고요. 필력으로 표현하기에는 도가 통하고 신기가 있는 사람이나 가능할까, 쉽지 않았어요(웃음). 그런데 조각 칼은 조형미를 살리면서도 센 힘을 보여줄 수가 있었어요. 그게 판화를 시작하게 된 이유죠. 판화는 힘을 가해서 눌러야 찍히기 때문에 그 힘만큼 전달이 된다고 생각해요. 물리적인 측면에서도 힘이 들어가지만, 저는 마음의 힘도 들어간다고 생각하거든요. 조각할 때도 굉장히 집중을 해야 되고요.
『부적』과 『깊은 산골 작은 집』에서는 부적을 소재로 선택하셨고 『꽃살문』은 십장생, 『한글 비가 내려요』는 한글 뒤풀이에서 이야기를 풀어가셨어요. 지속적으로 전통문화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가 있으세요?
전통문화에 남아있는 물건들이나 상징들은 굉장히 오랜 시간 가치가 누적된 것들이에요. 어떤 사물을 하나 선택하면 그 안에 굉장히 깊은 생각이 누적돼 있는 것이 전통의 소재들인 거죠. 현대의 사물을 가지고 이야기하자면 지금 시점의 이야기를 할 수는 있지만 누적된 가치는 별로 많지 않거든요. 그런데 옛 것에는 많은 사람들의 시공간과 가치가 누적되어 있어서, 제가 조금 덜 드러내도 사람들이 알아채는 부분이 많더라고요. 그런 소재가 정말 많은데 공부하는 과정은 너무 어려워요. 『부적』은 자료 조사만 3년을 했고요. 『한글비가 내려요』도 책이 나오기까지 5~6년 정도 걸렸어요. 『꽃살문』도 2~3년 동안 준비했고요. 많은 사람들 손에 쥐어지는 이야기인데 잘못 해석이 된다거나 다른 생각을 하게 할 수는 없잖아요. 어린이들에게 읽히는 책이라는 점에서 느껴지는 책임도 있고요. 소재를 가지고 다른 이야기를 전개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지만,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그대로 전달해야죠.
공감한다는 건 정말 멋진 일이야
자녀들에게 읽어주셨던 그림책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무엇인가요?
재미난 책들이 정말 많은데요. 『헨리에타의 첫 겨울』은 좋아하는 그림책이기도 하고 ‘나도 언젠가 이런 책을 만들어봐야지’하고 생각하는 책이에요. 마치 우리들 이야기 같더라고요. 살다 보면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있잖아요. 무슨 짓을 해도 안 될 때,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 몰리면 세상을 비관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삶을 포기하기도 하죠. 그런데 그런 순간에도 방법이 있는 거예요. 그것 하나로 또 살아가게 되고요. 『헨리에타의 첫 겨울』은 그런 걸 생각하게 해준 책이었어요. 최근에 봤던 책 중에 뭉클했던 건 『엄마가 만들었어』예요. 강연에서 이 책을 읽어드리면 다 울고 난리가 나요(웃음). 『엄마가 만들었어』는 정말 엄마 이야기예요. 최선을 다하는 우리 엄마들의 이야기죠. 저희 작은 아이는 그 책을 읽고 나서 ‘효도하겠습니다’ 그러더라고요(웃음). 『더벅머리 아이』도 읽어 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어린이 그림책 작가로서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으세요?
어린이 책 작가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고요. 그냥 그림책 작가라고 생각해요. 저는 제 자신이세상의 1~2%가 아닌 97~98%에 속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그런 사람들하고 같이 살면서 부대끼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될 거예요. 지금 준비하고 있는 이야기들도 98%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고요. 어린이 책에서는 1~2% 안에 드는 사람이 되라고 말하기보다, 네 곁에 이렇게 많은 98%의 사람들이 있고 그들은 정말 소중하고 멋진 사람들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어요. 그런 결심을 했기 때문에 서양화를 그리다가 그림책을 만들기 시작한 거고요. 책을 만들지 않더라도 그런 활동을 계속 하지 않을까 싶어요. 책 만드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이 일을 하면서 더 많이 공부하게 되고 성장하더라고요. 그게 너무 멋진 일이죠.
그림책을 만드시면서 배우신 건 무엇인가요?
일단은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게 무척 쉬워졌어요. 가치 있는 일을 하기로 결심하고 그림책을 만들기 시작했기 때문에 그게 너무 명료해진 거예요. 아무리 힘들어도 가치 있는 일이라면 신이 나고요. 그렇지 않으면 재미도 없고 관심도 없죠.
어린이 독자들에게 그림책을 선물하면서 ‘정말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구나’라고 느껴지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독자 분들이 ‘이런 것도 있군요’라고 하실 때인 것 같아요. 『한글비가 내려요』는 한글 뒤풀이에 대한 이야기잖아요. 노래로 한글을 익혔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셨다가 제 책을 계기로 아실 때 뿌듯하죠. 노래를 통해서 한글이 전파됐다는 걸, 노래에 그런 힘이 있다는 걸, 이야기하는 게 너무 즐거운 일이고요. 『꽃살문』도 마찬가지예요. 우리에게 이렇게 아름다운 문이 있었고, 문을 열고 닫으면서 꿈을 꾸고 사는 멋진 사람들이 있었다는 걸 이야기하는 거죠. 『부적』에서도 진심을 담으면 다 소원이라고, ‘할머니 오래 사세요’라고 쓴 카드가 곧 부적이라고 말하는 거고요.
『개그맨』에서 독자들이 어떤 메시지를 발견하길 바라세요?
아이들에게는 ‘아픈 것들을 보면 같이 눈물 흘릴 줄 알아야 해’라고 말하고 싶어요. 내 것으로 만들고 싶어서 우는 아이는 많지만 타인에게 공감해서 눈물을 흘리는 아이는 거의 없잖아요. 특히 남을 위해서 흘리는 눈물은 정말 적거든요. 그런데 『개그맨』에서는 아이가 개그맨을 위해서 눈물을 흘리잖아요. 그 눈물이 신비로워진 세상이 된 거예요. 마땅하고 당연한 일인데 말이죠. 그래서 타인에게 공감하는 마음과 눈물을 흘릴 수 있는 건 굉장히 멋있는 일이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그래서 이 작품은 제목은 『개그맨』이지만 주인공은 아이예요. 나머지 인물들은 다 종이로 만들고 아이만 리놀륨으로 조각한 이유도 그래서고요. 종이 판화는 살살 문질러서 색 조절을 해야 하는데 리놀륨은 힘 있게 찍히거든요. 작품을 보시면 아이에게 힘이 집중되어 있는 게 느껴지실 거예요. 아이처럼 공감하라고, 아저씨에게 힘을 주는 사람이 되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는 거죠.
지금은 어떤 작품을 준비하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어린이 미술 교과서를 만들고 있어요. 그 동안은 미술 교육이 입시를 위해서 혹은 학교에서 점수를 잘 받기 위해서 이루어졌잖아요. 제가 만들고 있는 책은 인문학적으로 접근하는 미술 교과서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자전거의 원리를 알기 위해서 자전거 그림을 그리는 게 아니라, 내 몸에서 만든 에너지로 자전거를 탄다는 게 정말 멋진 일이라고 느끼면서 그림을 그리는 거죠. 자화상을 그리면서 얼굴을 예쁘게 잘 그리는 데 집중하지 않고, 나는 어디에서 왔을까 질문을 던져보는 거고요. 어머님들이 보시고 아이들과 직접 놀이를 할 수 있는 책이 될 거예요. 내년 봄쯤에 출간하지 않을까 싶어요.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신가요?
그림책은 정말 멋진 책이라는 이야기를 꼭 하고 싶어요. 정말 좋은 책인데 잘 모르고 있으신 것 같아서 너무 안타까워요. 글과 그림으로 가치 있는 것을 이야기하는 건 굉장히 적극적인 방법인데, 어리고 유치하다고 치부해버리는 측면이 있잖아요. 우리가 미처 생각해보기 전에 가치 대상에서 제외됐던 거죠. 그림책은 굉장히 여러 가지 생각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줘요. 항상 열린 결말이 있거든요. 그건 그림책만이 할 수 있는 일이죠.
개그맨김지연 글그림 | 웃는돌고래
《개그맨》은 사람들에게 웃음을 나눠 주느라 정작 자신은 웃음을 잃어버린 개그맨과 그런 개그맨에게 웃음을 찾아 주고 싶은 아이의 이야기를 담은 그림책이다.
코미디 공연을 앞둔 개그맨은 관객들이 자기 공연을 얼마나 좋아해 줄지 두근두근한다. 드디어 시작된 공연, 그러나 관객들은 무표정하다. 오로지 아이만이 즐겁게 보고 있을 뿐이다. 세상을 웃게 하는 개그맨의 의미, 웃음의 의미를 생각하게 하는 이야기다. “세상 모든 개그맨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는 작가의 헌사처럼, 우리에게 진짜 웃음을 주는 ‘개그맨’의 소중함을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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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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