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을 즐길 수 있는 다양한 방법
『과학, 인문으로 탐구하다』 공동저자 박민아 교수 인터뷰 “두 분야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는 일이 늘 어렵습니다.”
과학과 인문학을 접목하면 어려운 수학이나 전문용어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도 과학을 이해하고 즐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이런 일들을 해나가고 있습니다.
『과학, 인문으로 탐구하다』는 과학이 본래 융합적인 학문이라는 데 초점을 맞추고, 다양하고 흥미로운 사례를 통해 예술ㆍ철학ㆍ사상ㆍ문화 등 다양한 분야와 과학의 관계를 살펴본다. 그럼으로써 과학의 진면목을 이해하고, 현대과학과 다른 학문 간 융합의 필요성을 이해하고자 한다.
3명의 저자가 공동으로 집필한 만큼 과학과 관련한 매우 다채로운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역사 속의 과학 및 그 안에 담긴 철학적 의미와 관련된 내용은 박민아 한양대 교수가 주로 맡아 썼고, 과학의 역사에서 일어난 구체적인 사건이 사회에 미친 영향과 관련된 글은 정원 전북대 교수가 썼으며, 선유정 전북대 교수는 한국을 비롯한 동양의 과학, 첨단과학기술, 최근 문화 콘텐츠에 접목된 과학 이야기를 맡았다.
『과학, 인문의 경계를 넘나들다』의 저자 세 분들은 이번 저서 외에도 과학과 인문학을 접목한 연구 및 강연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계신 걸로 압니다. 박민아 교수님께서는 과학과 인문학을 접목해야겠다고 결심하신 특별한 계기가 있었는지요?
특별한 계기가 있지는 않았어요. 그저 제가 대학에서 물리학을 공부했었는데, 수많은 수식 속에서 길을 잃어서 그쪽 공부에 의미를 못 찾고 과학사로 전공을 바꾸게 되었지요. 과학사 공부를 하면서 그전에 몰랐던 물리 방정식들의 의미를 깨닫고 아, 이거구나~ 하며 속 시원해 했던 순간들이 있었어요. 과학과 인문학을 접목하면 어려운 수학이나 전문용어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도 과학을 이해하고 즐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이런 일들을 해나가고 있습니다.
과학과 인문학을 깊이 공부하지 않은 보통 사람들에게 ‘과학’과 ‘인문학’은 정말 동떨어진 학문처럼 보입니다. 원고를 쓰면서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두 분야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는 일이 늘 어렵습니다. 과학을 기대하는 독자는 이 책을 읽으면서 “에게, 이게 무슨 과학이야” 하고 실망할 수도 있고, 인문학을 기대하는 독자는 과학에 대해 깊이 얘기하면 “에고 과학 나온다, 넘어가자” 할까 봐 걱정하며 글을 씁니다. 과학과 인문학이 원래는 한 뿌리에서 나왔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과학과 인문학이 분화되지 않았던 먼 옛날의 이야기를 하기도 하는데요, 이런 걸 두고 ‘이게 왜 과학이야?’라고 생각할 독자를 어떻게 설득할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합니다.
머리말에서 찰스 스노의 ‘두 문화’에 대해 언급하셨는데요. 우리나라에서 과학자와 인문 지식인 사이에 크나큰 괴리가 존재하게 된 이유는 무엇이며, 그로 인해 어떤 문제가 발생할 수 있을까요?
한국의 두 문화가 뿌리 깊은 사농공상의 전통에서 연유한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기도 한데, 제 주변 문과 출신들을 보면 학교 다닐 때 배운 과학이 너무 어렵고 머리 아파서 일단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더 이상 들여다보고 싶지 않아하는 것 같더군요. 예전 우리 중고등학교 과학교육이 예비 과학자를 위한 양성으로 초점이 맞춰졌다 보니까 과학에 관심 없는 학생들에게는 점수 따기 위해 공부해야 하는 과목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 과학을 교양으로 즐기고 싶은 생각은 안 들었을 거예요.
두 문화의 괴리가 가져온 문제로는 과학을 경제적인 유용성으로만 판단하는 도구주의적인 관점을 들 수 있을 겁니다. 요즘 대학 구조화 흐름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이런 유용성 논리는 과학과 인문학 모두를 힘들게 하지요.
책에서 세탁기의 출현으로 예전보다 세탁을 더 자주, 더 많이 하게 됨으로써 오히려 가사노동 시간이 늘어났다는 ‘세탁기 패러독스’에 대해 얘기하셨는데요, 이미 언급하신 세탁기나 청소기 외에 이러한 패러독스를 발생시킨 과학적 발견/발명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세탁기 패러독스’는 기술의 초기 의도와는 다르게 사용 결과가 나타난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우리가 사용하는 많은 기술들에서 초기 의도와 사용 결과 사이의 괴리를 볼 수 있습니다. 경구 피임약 같은 예를 생각해볼까요? 1960년대 경구피임약이 처음 등장했을 때 이 약은 여성 해방의 상징이었습니다. 여성들을 임신의 공포로부터 벗어나게 해주어 자신의 육체에 대해 진정한 주인이 되게 해준다는 것이었지요. 하지만 경구피임약은 피임의 주된 책임을 여성에게 돌리는 결과를 낳기도 했습니다. 해방이 아니라 의무와 책임의 기술이 된 셈이죠.
과학자로서도 인간으로서도 훌륭하지만 나치에 협력할 수밖에 없었던 막스 플랑크의 삶이나 전쟁에 동원된 과학기술에 관한 이야기를 통해, 인간 역사의 비극과 결부된 과학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애국심이나 정치 이데올로기가 결부된 딜레마 속에서 과학 또는 과학자는 어떤 태도를 지니는 것이 좋을까요?
어려운 질문이네요. 저보다 훨씬 사려 깊던 과학자들도 현명하게 대처하지 못했던 문제니까요. 저는 과학자들이 정치적 신념을 위해 연구를 하는 게 무조건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파스퇴르는 애국심에서 독일 맥주를 이기기 위한 연구를 하기도 했으니까요.
플랑크처럼 딜레마적인 상황에 처한다면 과학에 관한 한, 과학자에게 훨씬 많은 재량권이 있다는 점을 인식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과학자는 전문성이 높기 때문에, 정치가들을 포함한 일반인들은 과학자의 말을 신뢰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전문성과 그로 인한 폭넓은 재량권을 최대한 활용해서, ‘공격 무기’ 대신 ‘방어 무기’를 제안할 수 있는 사람들이 바로 자신이라는 것을 인식하면 좋겠습니다.
영국의 과학 대중화 정책과 과학 이론을 담은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소개하시면서 한국 과학 대중문화의 부족한 토양을 지적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과학 대중화를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하다고 보시나요?
영국 과학 대중화 정책은 당시 영국 사회가 부딪쳤던 과학기술 문제들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2000년에 나온 보고서「과학과 사회」는 광우병 파동으로 인해 과학자들에 대한 대중의 신뢰가 하락한 상황을 고민하며 나왔습니다. 우리의 과학 대중화도 이렇게 한국 사회가 직면한 과학기술 이슈와 밀접하게 관련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그 필요성에 사회가 공감할 것이고, 그 효과도 잘 나타나지 않겠어요? 그런 점에서 우리 사회에 중요한 과학기술 이슈가 무엇인지에 대한 깊은 고민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과학 관련 직종에 있지 않더라도, 생계 수단으로서가 아닌 과학의 순수한 모습에 열광하는 성인들, 과학자를 꿈꾸는 아이들이 아직 많습니다. 과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한마디가 있다면요?
전공이 아니더라도, 복잡한 수학 공식이나 과학 용어를 모르더라도 과학을 즐길 수 있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에서처럼 인문학적 방법을 통해 과학을 접할 수도 있습니다. 요즘처럼 시원한 가을로 옮겨가는 계절을 즐기면서 하늘이, 길가의 가로수가, 벌레 우는 소리가 어떻게 바뀌어가는지를 관찰하고 궁금해하는 것도 과학을 즐기는 방법이 아닐까 싶고요.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인다고 했으니까 이렇게 즐기다 보면 과학을 점점 더 알고 싶어지고 배우고 싶어지지 않을까요?
과학, 인문으로 탐구하다 박민아,선유정,정원 공저 | 한국문학사
인문학과 경제학,건축,수학,의학의 만남에 이어, 인문학과 과학의 만남을 다룬 ‘융합과 통섭의 지식 콘서트’ 시리즈 05권 『과학, 인문으로 탐구하다』가 출간된다. 과학의 기본 개념과 기원, 과학과 타 분야의 만남으로 빚어지는 다양한 현상을 역사 속 또는 오늘날의 구체적 사례를 들어 살펴봄으로써 과학의 본모습을 알고, 현대과학에서 융합의 중요성을 이해하고자 한다. 이 책을 통해 과학도를 꿈꾸는 청소년이 꿈에 더 가까워지고, 아직 과학에 대한 낭만을 잊지 않은 성인 독자들의 열정이 다시 일어나게 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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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태그: 박민아, 과학인문으로탐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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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아>,<선유정>,<정원> 공저13,050원(10% + 5%)
융합과 통섭의 지식 콘서트 05권, 『과학, 인문으로 탐구하다』 인문학과 경제학·건축·수학·의학의 만남에 이어, 인문학과 과학의 만남을 다룬 ‘융합과 통섭의 지식 콘서트’ 시리즈 05권 『과학, 인문으로 탐구하다』가 출간된다. 과학의 기본 개념과 기원, 과학과 타 분야의 만남으로 빚어지는 다양한 현상을 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