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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기억을 되살리는 시인, 손택수 신미나

시 읽기 좋은 계절, 두 시인의 낭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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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의 수사학』 이후 4년 만에 시집을 펴낸 손택수 시인과, 등단 이후 첫 시집을 발표한 신미나 시인이 만났다. 독자들과 함께한 낭독회를 통해 손택수 시인의 『떠도는 먼지들이 빛난다』 와 신미나 시인의 『싱고, 라고 불렀다』 가 품고 있던 시의 이야기가 공개됐다.

‘시 읽기 좋은 계절’ 운운하는 것은 옹색한 변명일 테지만, 그럼에도 가을에는 시집을 향해 손을 뻗게 된다. 찬바람에 옷깃을 여밀 때 정작 추운 것은 몸이 아닌 마음이라서 그런 것 아닐까. 생각이 그에 미치자, 이 계절에 찾아온 두 권의 시집이 더욱 반갑고 고맙게 느껴진다. 잊었던 순간들과 정서들을 가득 담은 채 찾아온 손님은, 바로 손택수 시인의 『떠도는 먼지들이 빛난다』 와 신미나 시인의 『싱고, 라고 불렀다』 이다.

 

『호랑이 발자국』 『목련 전차』 『나무의 수사학』 의 시인 손택수가 4년 만에 『떠도는 먼지들이 빛난다』 로 독자들과 재회했다. 『싱고, 라고 불렀다』 는 2007년 등단한 신미나 시인의 첫 번째 시집. 두 시인은 서로 다른 시선과 언어로 말을 걸어오면서도, 함께 서정시의 고유한 영역을 지켜내고 있다. 그 인연 때문일까. 『떠도는 먼지들이 빛난다』『싱고, 라고 불렀다』 는 지난달에 나란히 ‘창비시선’으로 출간되었다. 그리고 자신들이 나누는 대화 속으로 독자들을 초대했다. 지난 17일, 서교동에 위치한 인문까페 ‘창비’에서 이루어진 만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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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택수, 『떠도는 먼지들이 빛난다』 는 거울을 마주보는 느낌이다


두 시인은 독자들과 함께하는 작은 낭독회를 마련했다. 그리고 또 한 명의 특별한 시인을 사회자로 초대했다. 『바람의 백만번째 어금니』 『아무 날의 도시』 의 시인 신용목이었다. 그는 “말은 점점 어려워지고 삶은 점점 가벼워지는 시대에 가벼운 언어로 무거운 삶을 이야기할 줄 아는 시인”이라는 말로 손택수 시인을 소개했다.

 

손택수 : 지난 10년 동안 출판 편집자와 CEO로 살았는데요. 제가 마지막에 돌아갈 자리가 어디인지 생각해 보니까 역시 시 밖에 없더라고요. 『떠도는 먼지들이 빛난다』 는 벼랑 끝에서 다시 시인의 자리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엮었어요. 독자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보기가 조금 고통스러워요. 지난 10년의 삶들이 이 시집 속에 담겨 있거든요. 저의 구겨진 얼굴들이 들어가 있는 것 같아서 마치 거울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어요.

 

뒤이어 모습을 드러낸 신미나 시인을 소개하며 손택수 시인은 그녀와 처음 만났던 순간을 회상했다. 마치 “어린 시절에 소꿉장난하다가 잃어버린 여동생을 만난 것 같았다”는 것. 서로 자주 만나지는 못했지만 손택수 시인에게 있어 신미나 시인은 “가슴에 박힌 사금파리처럼” 이따금씩 떠오르는 존재였다. 그렇기에 손택수 시인은 『싱고, 라고 불렀다』 의 출간을 더없이 반가워했다. 신미나 시인이 직접 낭독한 시 「낮잠」에 대해서는 “내가 쓸 수 없는 시인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쓰고 싶은 시이기도 한 것 같다”는 감상을 전하기도 했다.


「낮잠」

손바닥으로 방바닥을 훔치다
쌀벌레 같은 것이 만져졌다
검지로 찍어보니 엄마였다

나는 엄마를 잃어버릴까봐
골무 속에 넣었다
엄마는 자꾸만 밖으로 기어나왔다

엄마, 왜 이렇게 작아진 거야
엄마의 목소리는
너무 작아서 들리지 않는다

다음 생에서는
엄마로 태어나지 말아요

손가락으로 엄마를 찍어
변기에 넣고 물을 내렸다

잠에서 깨어나
눈가를 문질렀다

『싱고, 라고 불렀다』 中


신미나, 쓸모없는 일을 하면서 사는 사람들이 시인 아닐까


신용목 : 손택수 시인과 신미나 시인은 과거의 기억을 되살리려는 노력이 돋보이는 시를 쓰고 있죠. 신미나 시인이 토속성과 샤머니즘의 세계가 접목되어 있다면, 손택수 시인은 일상과 일상을 포함한 의도적인 통찰이 많이 가미되어 있다고 볼 수 있어요.

 

신용목 시인은 두 시인이 최근의 시 경향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만의 시 세계를 지켜오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감각적이고 세련된 어휘들을 구사하고, 그를 통해 세계 바깥으로 나가고자 노력하는 것이 과업처럼 여겨지는 시대”임에도 흔들림이 없다는 이야기였다. 특히 그는 30대 중반의 시인인 신미나가 오래전의 기억들을 고스란히 불러오는 작업이 인상적이라고 했다.

 

신미나 : 저는 과거와 지금이 혼재되어 있는 상황에 살고 있어요. 지금도 저희 고향집에는 재래식 화장실과 아궁이가 있거든요. 그런데 서울에 오면 전혀 다른 환경이잖아요. 불과 30분만 가면 볼 수 있는 세계인데 그렇게 달라요.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예전 것이라고 하면 낡고 촌스럽다고 생각하는데, 저는 거기에 동의하지 않아요. 개인적인 경험이라면, 어릴 때부터 굿하는 걸 많이 보면서 자랐는데요. 그런 기억들이 강해서 저는 그걸 놓고 살 수 없는 사람인 것 같아요.

 

손택수 : 시를 쓰면서 농경문화적인 전통의 아름다움들도 소중한 것일 테고, 그것으로부터 벗어나서 새로운 미학을 추구하는 것도 중요한 것 같아요. 그런 양자가 팽팽하게 긴장되어 있는 상태가 살아있는 시의 모습이라는 생각도 들고요. 저는 아주 오래된 시를 쓰지만 새로운 시를 쓰는 시인들에게 관심이 많아요. 문청 시절에도 저답지 않은 시를 많이 읽은 것 같은데요. 낯선 것들, 이질적인 것들, 저하고 다른 것들을 통해서 제 모습이 보였던 것 같아요. 그런 모습들이 저 자신을 발견하게 하는 역할도 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독자들과 함께한 낭독회에서 손택수 시인은 『떠도는 먼지들이 빛난다』 에 실린 작품들 중 「구르는 오디오」 와 「저물녘의 왕오천축국전」 을, 신미나 시인은 『싱고, 라고 불렀다』 안에서 「낮잠」 과 함께 「연」 을 낭독했다. 그리고 두 시인은 서로의 작품을 바꿔 읽기도 했다. 신미나 시인의 「길음동」 을 손택수 시인이, 손택수 시인의 「공연한 일들이 좀 있어야겠다」 를 신미나 시인이 낭독한 것.

 

신미나 : 저는 「공연한 일들이 좀 있어야겠다」 에서 ‘공연한’ 이라는 말과 ‘쓸모없는 일들’이라는 표현이 마음에 들었어요. 요즘 같은 세상에 시를 쓴다고 해서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언어하고 싸운다고 해서 뭔가 크게 달라지는 것도 없잖아요. 이렇게까지 시를 놓지 못하고 시로써 세상을 버티고 살아내 보려는 일들이 결코 아름답지만은 않은 세상인데요. 그렇지만 이렇게 쓸모없는 일을 하면서 사는 사람들이 시인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쓸모없는 일들 앞에서 자꾸 부끄러워진다’는 말이 저한테 조용히 다가왔던 것 같고요.


「공연한 일들이 좀 있어야겠다」

내게도 공연한 일들이 좀 있어야겠다
일정표에 정색을 하고 붉은색으로 표를 해놓은 일들 말고

가령, 태풍이 올라온다는 소식에 모종대를 손보는 노파처럼
곧 헝클어지고 말 텃밭일망정
흙무더기를 뿌리 쪽으로 끌어다 다독거리는 일

장맛비 잠시 그친 뒤, 비가 오면 다시 어질러질 텐데
젖은 바닥에 붙어 잘 쓸리지도 않는 은행잎을 쓸어담느라 비질을 하는 일

치우고 나면 쌓이고, 치우고 나면 쌓이는 눈에 굽은 허리가 안쓰러워
어르신, 청소부에게 그냥 맡기세요 했더니
멀거니 쳐다보곤 하던 일을 마저 하던 그 고요한 눈빛처럼

별 뜻도 없이 고집스레, 내 눈엔 공연한 일들에 노고를 아끼지 않는 사람들이 있으니

이상하지 않은가, 나는 이 쓸모없는 일들 앞에서 자꾸 부끄러워지는 것이다
세상에는 값지고 훌륭한 일도 많다지만

『떠도는 먼지들이 빛난다』 中

 

독자들과 함께 시를 나눈 가을 밤, 세 명의 시인은 시시각각 다른 눈빛으로 우리를 응시했다. ‘이제는 더 이상 시를 읽지 않는 시대라고들 말한다’고 할 때, 그들의 눈빛은 더없는 슬픔을 담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시가 필요한 이유’를 말할 때는 형언할 수 없는 희망으로 눈을 빛냈다. 그 모든 이야기를 조목조목 들출 필요는 없어 보였다. 다만 그것은 시에 대한 이야기였고 『떠도는 먼지들이 빛난다』 『싱고, 라고 불렀다』 안에 전부 녹아들어 있는 것이었다. 기사에서 소개한 단 두 편의 시만으로도 우리는 알 수 있다. 지금 우리에게 시가 필요한 이유를. 그래서 찾게 될 것이다. 우리 곁에 가까이 와 있는 시인들의 이야기를. 『떠도는 먼지들이 빛난다』『싱고, 라고 불렀다』 가 그 시작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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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고,라고 불렀다 신미나 저 | 창비
평범한 일상에서 삶의 의미를 찾아내는 감각적인 시선과 사물에 생기를 불어넣는 풍요로운 상상력, 언어를 부리는 빼어난 솜씨가 돋보이는 가운데 “농경적 삶의 배경과 지난 연대의 서정시 쓰기가 달성했던 언어와 미감의 한 진수”(김사인, 추천사)를 보여주는 단정한 시편들이 고요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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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도는 먼지들이 빛난다 손택수 저 | 창비


농경문화적 정서와 상상력을 거름으로 하여 전통 서정시의 내력을 이어가면서 섬세한 감수성과 서정의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수려한 시세계를 펼쳐온 손택수 시인의 네번째 시집이다. 4년 만에 펴내는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삶의 순간순간들을 놓치지 않는 예민한 감각과 세밀한 관찰력으로 생의 뒷면을 차분히 응시하며 곡진한 삶의 진경을 노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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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임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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