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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수아 “나에게 서재란, 옷 갈아입는 작업실”

감명을 주지 않는 아포리즘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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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수아 작가는 최근 장편소설 『알려지지 않은 밤과 하루』 를 출간했다. 꿈속에 입장하는 것처럼 입구는 알 길이 없고, 출구는 막무가내로 나가고 싶지 않은 것처럼 좀체 보이지 않는다. 작가는 술술 읽힌다는 말을 듣고 싶었다고, 이제 어렵다는 말은 조롱처럼 들리기도 한다고 했다. 이름을 바꾸어서 낼 걸 하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또 이해 받고도 싶고 이해 받고 싶지 않기도 하다. 중요한 건 누구의 이해를 받느냐이다.


“유년기 때는 행복했어요. 안데르센 동화를 참 많이 읽었어요. 그런 동화를 좋아했어요. 민속성을 살린 동화보다는 인생의 어두운 단면을 드러내는 동화, 작가의 상상력에 기대어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동화가 좋았어요. 안데르센의 『그림 없는 그림 책』 『눈의 여왕』 같은 동화는 굉장했어요. 특히 『눈의 여왕』 은 성인이 읽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최고의 판타지예요. 엘리너 퍼전의 『보리와 임금님』 도 어린 시절에 되풀이해서 읽은 책으로 기억에 남아요.”

“유년기 때 행복했다면 청년기에는 불행했어요. 지금은 청년기 때보다는 행복해요. 불행했던 청년기에 무슨 책을 읽었을까? 책을 안 읽었어요. 그래서 불행했나?(웃음) 저는 소설가 지망생 시기가 딱히 없었어요. 인터넷에 떠도는 얘기가 맞아요. 타이프 연습하다가 소설을 쓰게 됐어요. 청소년, 청년기에는 문학이 재미없는 건 줄 알았거든요.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려 있는 것, 학교에서 배우는 교과 과정이라는 생각에 재미가 없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더 어렸을 적에 읽었던 책들이 제 등단 시기를 지배했지요.”



책을 읽지 않아 불행했던 청년기, 어쩌면

“이번에 새로 낸 소설은 볼프강 바우어의 희곡집에서 많이 영감을 얻었어요. 굉장히 흥미롭게 읽었고,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어디에 있는가, 어디로 가는가’ 하는 문제를 소설과는 다르게 전달하는 방식이 인상 깊었어요. 히다야트라는 이란 작가의 『눈먼 부엉이』 라는 책도 있어요. 처음부터 끝까지 초현실적으로 일관하는 책인데, 한동안 도저히 놓여날 수가 없었어요. 알을 깨고 날아오르게 하는 책이 있잖아요. 그런 종류의 책이었어요. 네루다의 45번 소네트에서 ‘하루’라는 말에 꽂힌 게 이번 소설을 쓴 계기도 됐구요. 이렇게 빚진 책과 글들이 있네요.”

“요즘 관심사라면 번역이에요. 제가 소설가니까 부업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아니에요. 운이 좋아 좋은 텍스트들을 만났고 할수록 빠져들어요. 그중에 막스 피카르트의 책을 작업 중인데, 이 작가 책 중에 최승자 시인이 번역한
『침묵의 세계』 라는 책이 있지요. 이 사람의 사색은 쉽게 소비되고 쉽게 감명을 주는 아포리즘이 아니에요. 『인간과 말』 이라는 책을 보면 깔끔하게 똑 떨어지는 아포리즘이 아닌 응시가 있어요. 종교적 색채가 있는 책인데, 저는 종교가 없어요. 모든 종교가 하는 말이 진리 같아서 종교를 가질 수 없어요(웃음).” “최근에 본 영화로 <한나 아렌트>가 기억에 남아요. 한나 아렌트의 전기영화는 아니고 그녀 인생의 어떤 한 시기를 에피소드로 다룬 영화예요. 홀로코스트 얘기가 나오고, 흥미롭게 본 영화예요. 라스 폰 트리에의 <멜랑콜리아>는 처음에는 좀 지겨웠는데 나중에 가면서 흥미진진해졌어요. 불특정 혜성하고 충돌해서 지구가 망하고 어쩌고 하는 얘긴데, 세상의 종말 얘기 중에서 가장 매혹적이었어요. 안드레이 타르콥스키의 <희생><거울>도 너무너무 사랑하는 영화예요. 전 타르코프스키의 영화를 10년 전?, 아니면 몇 년 전에 봤는데, 친구들이 유행 다 지나고 뭐 하냐고 비웃지 뭐예요(웃음). 타르코프스키의 유명한 영화가 많지만 저는 <거울>에 애정이 가장 많이 가요. 저한테는 시간 개념이 특이하게 흘러가는 면이 있어요. <희생><거울> 같은 영화를 보면 제게 딱 맞는다는 느낌이 있지요.”



감명을 주지 않는 아포리즘이 좋다

“책을 고르는 기준은, 우선 잘 안 보게 되는 종류나 분야의 책은 넘어가고요(웃음). 일본 소설이나 미국 소설에는 별로 손이 안 가는 편이에요. 차라리 장르 소설은 좋아하지요. 독일 소설이 좋기는 좋은데 재미가 없다는 단점이 있어요(웃음). 그런데 『눈먼 부엉이』 를 읽으면서 국적에 대한 편견을 버려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것도 이게 물경 1930년대 소설이에요. 하지만 모든 소설을 다 읽을 수는 없으니까 고르기야 하지요(웃음). 좀 전에 말한 독일문학으로 돌아가 보면, 아주 좋아하는 작가로 제발트가 있어요. 특히 『토성의 고리』 는 글 자체가 좋아요.”

“서재요? 서재가 있어야 이름을 짓지 않겠어요?(웃음) 그냥 집인데, 저는 학교 다닐 때부터 도서관, 독서실 가는 게 싫었고 집에 있는 게 좋았어요. 흠, ‘옷 갈아입는 작업실’ 정도로 할까요? 몇 년 전에 한 인터넷 카페에 ‘옷 갈아입는 번역가’라는 제목으로 글을 쓴 적이 있는데요. 제게는 어떤 옷을 입고 작업하는지가 너무 중요해요. 집에서 일한다고 후줄근하게 입기 싫다는 차원을 넘어서, 순전히 저 옷을 입으면 오늘 작업이 잘 될 것 같아, 하고 산 옷이 있을 정도예요. 한번은 밖에 입고 나다기는 그렇고, 잠옷으로 입기에는 뻣뻣하고 불편할 것 같은 옷을 보고 저 옷은 글 쓸 때밖에는 못 입겠다고 산 적이 있어요. 그런 식이에요. 한창 작업을 하다 보면 무슨 옷을 입었는지 까먹는데도, 그렇게 하게 돼요. 그래서 ‘옷 갈아입는 작업실.’”

배수아 작가는 최근 장편소설
『알려지지 않은 밤과 하루』 를 출간했다. 꿈속에 입장하는 것처럼 입구는 알 길이 없고, 출구는 막무가내로 나가고 싶지 않은 것처럼 좀체 보이지 않는다. 작가는 술술 읽힌다는 말을 듣고 싶었다고, 이제 어렵다는 말은 조롱처럼 들리기도 한다고 했다. 이름을 바꾸어서 낼 걸 하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또 이해 받고도 싶고 이해 받고 싶지 않기도 하다. 중요한 건 누구의 이해를 받느냐이다. “잘 읽혔으면 하면서도 전작 두 권이 지향했던 부유하는 성향에서. 가벼움에서는 약간 벗어나고 싶었어요. 부유하는 상황에서도 가라앉는 것, 거기에서 남은 무거움에 기대어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명사의 추천

 

눈의 여왕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저/김양미 역/규하 일러스트 | 인디고(글담)

안데르센 동화를 참 좋아했어요. 어린 마음에도 인간의 어두운 세계가 드러나는 책이 좋았던 것 같아요. 물론 이 책은 어른이 읽어도 최고의 판타지를 제공해주지만요.








침묵의 세계

막스 피카르트 저/최승자 역 | 까치(까치글방)

피카르트의 사유는 팬시상품 같은 아포리즘이 아니에요. 꼭 무언가를 깨우칠 필요도 없고 가르침을 받을 필요도 없어요. 반하지 않을 수가 없지요.








찬란한 오후 외 4권

편집부 편 | 성균관대학교출판부(SKKUP)

연극을 보는 것이 아니라 희곡집을 보면서 느끼는 감상이 있어요. 우리의 사연을 소설과는 다르게 전달하는 방식에 매혹되고는 하지요. 특히 볼프강 바우어의 희곡을 읽으면 그렇습니다.








토성의 고리

W. G. 제발트 저/이재영 역 | 창비

제가 추천 글을 썼을 정도로 좋아하는 책이고, 좋아하는 작가예요. 책 한 권을 읽는다고 오늘이, 내일이, 어제가 달라지나요? 이 책도 그래요. 그럼에도 그저 달라지게 만드는 책.








거울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감독/마가리타 테레코바, 이그나트 다닐체프, 알라 데미도바 | 마루 엔터테인먼트

처음 보고 나서 몇 번을 더 봤을까요. 타르코프스키 영화에서처럼 흘러가는 시간개념이 참 좋습니다.







멜랑콜리아

라스 폰 트리에 감독/커스틴 던스트, 샤를로뜨 갱스부르, 키퍼 서덜랜드, 알렉산더 스카스가드 | 조은

처음에는 좀 지루한가 싶더니 갈수록 흥미진진했던 영화예요. 세상의 종말을 다룬 영화 중에 이만큼 매혹적인 영화는 없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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