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윤정, 같은 유럽인데 길거리 디자인은 왜 다를까?
유럽 여행 가기 전 한번 읽으면 좋을 『디자인은 다 다르다』 독일, 스위스, 네덜란드, 프랑스, 영국의 길거리 디자인을 분석하다
외국 여행이 더는 낯설지 않아진 한국. 지구 반대편에 위치한 유럽 여행도 한 번 정도는 가는 게 당연한 시대다. 오늘날의 세계를 있게 한 유럽, 거기에는 볼 것도 배울 것도 많다. 그래서 유럽으로 갔던 여행자 대부분은 수백 장, 수천 장의 사진과 함께 돌아오곤 한다. 정작 한국에 돌아와서는 찍은 사진을 정리도 못 한 채 일상으로 복귀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디자인은 다 다르다』를 쓴 황윤정 저자는 다르다. 유럽에서 보고 겪고 느끼고 찍은 것을 책 한 권으로 냈다. 단 한 번의 유럽여행으로 말이다.
제목 그대로, 『디자인은 다 다르다』는 유럽의 디자인을 다룬 책이다.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디자인 중에서도 길거리 디자인이다. 저자가 방문한 독일, 스위스, 네덜란드, 프랑스, 영국의 길거리 디자인을 소개한다. 시각 디자인을 전문적으로 공부한 학자답게 개인의 감상을 단순히 나열한 게 아니라 다양한 참고문헌을 바탕으로 유럽의 길거리 디자인이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된 역사적 맥락도 짚었다.
ⓒ황윤정
『디자인은 다 다르다』가 첫 책입니다. ‘황윤정’이라는 저자 이름이 생소한 사람이 있을 텐데, 채널예스 독자를 위해 간단히 자기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홍익대학교 시각디자인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현재 ‘현디자인연구소’에서 연구원겸 북디자이너, 그래픽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는 황윤정입니다. 스무살때부터 ‘한국적인 디자인’이 뭘까 고민하며 동양화도 전공하고 민화와 그래픽을 결합한 디자인 등을 작업하고 있습니다. 현디자인연구소에서 여러 인문학 공부도 함께 하고 있고요. 지금은 치열하게 잡지디자인마감중입니다.
『디자인은 다 다르다』는 어떻게 쓰게 된 책인가요?
사실 책을 써야지! 하고 마음먹고 쓴 글은 절대 아닙니다. 책의 시발점은 3년전 연구원들과 함께 한달의 유럽여행을 갔을 때였는데요. 학구적인 우리 연구원들이 저마다의 전공분야인 산업디자인, 패션디자인, 건축 등을 열심히 찍더라고요. 저 혼자만 카메라만 만지작 거리고 있기 뭣 해서 그냥 닥치는대로 길거리의 그래픽디자인들을 찍어댔습니다. 찍다보니 어느순간 유럽의 독일, 프랑스, 스위스 등 나라들이 국경선만 넘으면 디자인이 확확 달라지는 걸 발견했어요.
한국에 돌아와서 현 디자인연구소의 대표님, 최경원 선생님께 ‘디자인이 왜이렇게 달라요?’라고 여쭈어 봤어요. 선생님은 서양역사,서양미술사,서양철학사 등을 수북하게 꺼내주시며 ‘그걸 와 나에게 묻노. 니가 여기서 찾아바라.’라고 하시는 겁니다. 그래서 3년간 현디자인연구소에서 스터디를 하며 유럽디자인이 왜 이렇게 서로 다른가에 대해 탐구를 해보았어요. 연구결과를 조그만 가제본 책자로 만들어 보았는데, 운이 좋게도 이 조그만 책자를 출판하게 됐습니다.
책에는 다양한 시각 자료와 함께 역사, 문화적인 배경 지식까지 담겨 있는데요. 이 책을 쓰면서 유럽은 몇 번 방문하셨나요.
한달간 방문해서 찍은게 전부입니다. 스위스, 네덜란드는 채 이틀도 있지 않았는데요. 그래도 ‘삼보일찍’(세걸음에 한컷) 촬영습관 덕에 사진은 충분히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은 단순히 그래픽 디자인만을 배열하는 책이 아니라 문화, 역사적인 배경도 함께 아우르는 책이기 때문에 서양관련한 책과 자료 인프라가 풍부한 한국에서도 충분히 저술이 가능했습니다.
ⓒ황윤정
관련 분야를 전공하지 않은 일반인에게는 예술, 하면 프랑스나 이태리가 떠오릅니다. 그래서 왠지 이 책을 펼쳤을 때도 두 나라가 먼저 등장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요. 책에는 독일이 가장 먼저 나옵니다. 방문한 순서순인 듯한데, 나라별로 방문순서를 정할 때 기준이 있었나요?
아, 사실대로 말하면 방문한 순서순이 아닙니다. 책에서는 여행의 흐름이 자연스럽게 보이기 위해 이 목차들이 방문순서인 것처럼 재편집을 했어요. 사실 독일, 스위스, 네덜란드, 프랑스, 영국으로 이어지는 책의 목차는 도식적으로 요약하자면 기능주의디자인에서 표현주의 디자인으로의 이행입니다.
독일, 스위스, 네덜란드는 같은 문화권에서 기능적이고 기하학적인 디자인을 즐긴다면 프랑스는 좀 더 예술, 표현주의에 가깝죠. 이 대비되는 지점을 좀 극대화하고 싶어서 일부러 책의 순서를 이렇게 편집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결국 ‘디자인은 세계유행과 상관없이 제 생긴대로 하더라.’라는 메시지를 주는 프랑스편이 이 책의 하이라이트, 본론일지도 모르겠네요. 영국은 섬나라라는 지리적 특징때문에 대륙의 디자인과는 다소 차별화되어 맨 뒤 순서로 편집했습니다. 실제로 영국 히드로 공항에서 아웃하기도 했고요.
유럽의 길거리를 찍으면서 특이한 일이 생긴 적은 없나요. 가령, 한국에서도 디자인이 중요한 한복집 같은 데에서는 한복과 관련이 없는 사진을 찍을 때에도 저지당하곤 합니다. 책 속에 사람을 찍은 사진도 많던데, 불상사(?)는 없었는지 궁금합니다.
그래픽디자인이야 벽에 있는걸 그냥 찍으면 되지만 길거리 패션사진은 소위 ‘몰카’이기 때문에 책에 사진을 넣으면서도 약간 망설였습니다. 그런데 나중에는 몰카 찍는것도 힘들어서 그냥 유럽사람들에게 ‘위 아 코리안 패션포토그라퍼’라고 말하며 당당하게 포즈를 요구했어요. 제가 부탁드렸던 분은 네덜란드의 멋스러운 노년 부부였는데 아주 흔쾌하게 ‘예스’라고 답하며 멋지게 포즈를 취해주시더라구요.
이 책은 디자인에 관한 교양서로 읽을 수도 있지만, 여행 에세이로도 볼 수 있을 듯합니다. 평소 여행을 즐기는 편인가요? 여행할 때 자기만의 여행 철학이 있다면 알려 주세요.
사실 저는 피서나 휴양지로 떠나는 여행보다 뭔가 공부할꺼리가 있는 여행을 좋아합니다. 저희 현디자인연구소는 이 여행을 ‘답사’라 명명하는데요. 연구소에서 답사를 떠나기 전 간단한 관례가 있다면, 저희는 무조건 미니답사책을 만듭니다. 책이라고 해서 거창한건 아니고요. 그냥 흑백프린터로 소책자인쇄를 해서 호치키스 제본한 미니 가이드북을 말해요. 예를 들어 경주를 간다, 하면 연구원들은 경주 유적지의 위치, 전화번호 등의 기본정보를 비롯해서 신라의 역사, 신라의 유물, 그리고 여기서 뷰포인트가 무엇인지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합니다. 제가 편집디자이너이니까 그 정보를 받아 간단한 사진 같은 것을 첨부해서 한권의 책으로 만들죠. 심지어 일러스트 전공인 친구를 시켜 일러스트까지 그리게 한 적이 있습니다. 여하튼 이 미니답사책은 저희가 원하는 정보만 담겨 있어 읽기에 편합니다. 현지인들도 가이드북을 보면 신기해하고 기특해하며 유물정보를 더 알려주시려고 하죠. 3년전의 유럽여행 역시 이런 동일한 과정을 거쳤습니다.
물자 부족에 시달린 독일이 표현의 경제성을 고려하여 직관적인 길거리 디자인을 발전시켰다는 지적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한국도 불과 얼마 전까지는 물자 부족에 시달렸고, 주변 강대국에 껴서 생존했다는 점에서 독일과 지정학적으로는 비슷해 보이는데요. 한국의 길거리는 조금 어지러워 보입니다. 한국의 길거리 디자인은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같은 물자부족 국가였던건 맞지만, 한국과 독일은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디자인이 현재의 모습으로 흘러온 데에는 사회적인 이유뿐이 아니라 역사적인 이유, 문화의 DNA적인 부분이 함께 복합적으로 결합되어서인데요. 한국은 독일과 다르게 경제적인, 기능적인 디자인이 맞지 않다고 생각해요. 어떻게 보면 ‘어지럽게 보이는 것’ 역시 하나의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례로 독일은 뭐든 딱딱 들어맞고 규칙적이고 정확한걸 좋아하지만 우리는 약간은 허술하면서도 유연한, 엇박의 디자인이 잘 맞아요. 문화사적으로도 조선의 민화라든지 민요라든지 또는 가구나 건축을 보더라도 꼭 아귀가 칼같이 들어 맞는 직선적인 디자인은 찾기 힘들어요. 오히려 독일은 일본에 가깝죠. 한국의 길거리 디자인은 어떻게 보면 어지러울 수 있는데, 또 어떻게 잘 추려서 발전된다면 독일과는 또 다른 매력의 길거리 풍경을 만들어내지 않을까 싶네요.
오세훈 서울시 전 시장은 임기 중 디자인 서울이라는 프로젝트를 실행했습니다. 이에 대한 비판도 많지만, ‘도시 디자인’의 중요성을 일깨운 계기였다고 평가하는 사람도 있는데요. 서울 길거리의 디자인은 어떻게 변해야 할까요.
무언가를 인위적으로 어떻게 하려하지 말고 가만 두는게 가장 현명한 길인것 같습니다. 유럽디자인도 그랬지만, 사실 시간에 따라 자연스럽게 그나라 문화와 역사와 사회가 우러나오는게 가장 좋은 디자인이죠.
시리즈로 책이 나와도 흥미로울 법합니다. 이번에는 유럽 편이었으니, 다른 지역을 주제로 쓰실 계획은 없나요.
틈틈이 중국과 일본도 여행을 다녀올 수 있다면요. 중국과 일본을 다룬 동아시아편도 나와도 재밌을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같은 길거리 그래픽디자인이지만 정말 일본은 너무 아기자기하고 일본적이고, 중국은 정말 스케일 큰 대륙의 디자인을 선보이거든요. 색 쓰는 법도 다르고, 또 디자인의 비례감도 다르고요. 암튼 재밌을것 같습니다.
디자인, 미술이 관련 분야를 잘 모르는 일반인에게는 접근하기 어렵게 느껴집니다. 초보자도 쉽게 볼 수 있는 책이 있다면 추천 부탁드립니다. 동시에 즐겨 있는 책이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세상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50인의 그래픽디자인』 책이 입문서로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실제 저도 많이 참고하기도 했고.. 50인의 디자이너뿐만 아니라 디자인역사도 흐름을 잡을 수 있는 좋은 책이죠. 답사갈때마다 즐겨 읽는 책은 『김봉렬의 한국건축이야기』입니다. 한국의 고건축을 역사,사회,문화사적으로 꿰어 해설해주는 정말 튼실한 책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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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끌 모아 태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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