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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명 “책을 쓰며 엄마에 대한 미안함이 줄어들었다”

『엄마 에필로그』 펴낸 ‘명필름’ 대표 심재명 저자와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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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면을 가득 채우는 글자 모양이 낯설다. 빛 바랜 영상에선 ‘지지직’ 잡음이 묻어난다. 1997년, 한국 영화에 새로운 감성을 불러일으킨 영화 <접속>을 다시 상영하는 자리였다. 제작사 ‘명필름’의 대표 심재명과 만나는 시간. 그녀가 쓴 첫 번째 책은 영화가 아닌 엄마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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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제작자 심재명과 함께하는 ‘추억 돋는’ 시간


7월 25일 광화문 인디스페이스를 찾은 독자들 손에 영화 표가 쥐어졌다. 상영하는 영화는 <접속>. 한때의 감성을 추억하며 1997년을 만났다. 전도연의 입술은 90년대의 유행만큼 짙었고, 한석규의 얼굴은 30대만큼 젊었다.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페일 블루 아이즈(Pale blue eyes)」가 한밤의 동호대교를 배경으로 울려 퍼졌다. 요샛말로 ‘추억 돋는’ 시간이었다.


<코르셋>, <접속>, <조용한 가족>, <해피엔드>, <공동경비구역 JSA>, <바람난 가족>, <시라노 연애조작단>, <마당을 나온 암탉>, <건축한 개론>. 1995년 심재명이 설립한 명필름은 지금까지 서른세 편의 영화를 제작했다. 심재명은 성공한 커리어우먼이다. 충무로의 품질 보증 마크이자 한국 영화를 대표하는 제작자이다. 다독가로도 유명한 그녀가 처음으로 책을 썼다. 영화 제작이나 숨은 노하우를 기대할 법하지만, 그녀의 기록은 엄마에 대한 기억이었다.


엄마는 자신의 이야기를 한 적이 별로 없다. 무엇을 정말 원하는지, 무엇을 간절히 꿈꾸었는지, 언제 가장 기뻤고 슬펐는지, 엄마는 어떤 생을 살고 싶었는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었는지. 자기 자신은 숨겨두고, 자식들만 바라보았다. 내가 좀 철이 들어서 아주 뒤늦게 엄마의 속 깊은 이야기를 듣고 싶어졌을 때, 엄마는 마침 불치의 병을 얻어 목소리를 잃어버렸다. (p.8)


1시간 36분의 영화 상영이 끝나고 심재명이 무대 위로 올랐다. 영화 <접속>에 관한 이야기로 말문을 열었다. 시나리오 작업만 2년이 넘게 걸린 작품이다. 수정 작업만 스물일곱 번을 거쳤다.


“그때는 경험이 부족해서 시행착오가 많았다. 영화가 성공해서 많은 이들이 기억해주니 고맙다. <접속>은 내 인생에서 가장 생생한 시절이었다. 막 아이를 낳고, 제작 경험도 짧았던 때였다. 그냥 추억이 아니라 지금도 손에 잡힐 듯이 그날의 기억이 생생하다.”


영화배우 김태우도 무대 위에 섰다. 영화 <접속>은 그의 데뷔작이다. 이를 시작으로 <공동경비구역 JSA>, <버스정류장> 등의 작품으로 심 대표와 인연을 맺은 배우다. 그는 심 대표의 첫 번째 출간을 축하하는 말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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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에 대한 기억을 솔직하게 풀어내다


심재명의 어머니는 2006년 루게릭병을 앓다가 세상을 떠났다. 저자는 가족과 공유하기 위해 엄마와 관련한 동영상을 모아두었다. 그것을 차일피일 미루다 글로 바꿔 쓰게 됐다.


“너무 사적인 이야기였다. 마음이 아픈 내용이라 쓰다가 지우고를 반복했다. 그러다가 작년에 나이 오십이 되었다. 나의 갱년기와 오십 대였던 엄마의 갱년기가 엮어졌다. 그렇게 마음속에 어지럽게 얽혀있던 엄마에 대한 기억을 풀게 됐다.”


심 대표는 처음 쓰는 책에 대한 긴장감도 나타냈다. 저자로 불리는 게 어색하다며, 책과 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함께 이어갔다.


“영화도 캐릭터가 생생해야 관객이 몰입한다. 나의 엄마가 어떤 사람인지를 독자가 생생히 느꼈으면 하는 바람이 컸다. 상당히 부끄러운 이야기도 마다치 않았다. 나는 원래 무뚝뚝하고 말 없는 성격이다. 속 깊은 이야기를 하다 보니, 길거리에서 혼자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결국 솔직한 게 답이었다. 솔직함이 독자의 시간을 낭비하지 않으리라 믿는다.”


저자는 글쓰기의 효용에 대한 생각도 나타냈다. 기록하는 행위를 우물에 자신의 모습을 비쳐 보는 것으로 비유했다. 글쓰기는 저자 자신을 돌아보고 치유하는 계기였다. 책을 쓰며 엄마에 대한 미안함이나 슬픔도 나아진 듯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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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아끼는 <접속>의 명 장면은?


지금 보니 전도연(이수현 역)이 스토커 같다. 별 볼 일 없는 여자가 능력 있는 남자에게 매달리는’신데렐라 드림’ 같기도 하다(웃음). 마지막 장면을 명장면으로 꼽고 싶다. ‘만나야 할 사람은 꼭 만난다.’라는 대사가 인상 깊다. 소소한 장면도 놓치고 싶지 않다. 수현이가 짝사랑하는 기철의 신발을 신어보는 장면이 그렇다. 당시 한국 영화에 없던 섬세함이었다. 일상 속에서 진심을 이야기하는 예민하고 섬세한 장면이다.


영화 제작 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은?


‘공감’이다. 장르에 상관없이 관객의 공감을 얻는 게 가장 중요하다. 상투적인 말이지만 어려운 일이다. 자칫 잘못하면 공허하거나, 시대착오적인 이야기가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발이 땅에 닿아있는’ 영화를 만들기 위해 항상 노력한다.


<접속> 음악은 어떻게 선택했는지?


한국에서 저작권료를 내고 음악을 사용한 첫 번째 영화였다. 선곡 담당을 따로 둔 것도 한국 영화 최초였다. 조영욱 음악 감독은 현재도 많은 작품으로 활약 중이다. 극장에서 나오는 사람들이 주제가 「어 러버스 콘체르토(A Lover’s Concerto)」를 흥얼거릴 때 흥행을 예감했다.


<마당을 나온 암탉>과 어머니와의 관계는?


엄마가 투병 중일 때 제작을 결심한 영화다. 닭은 미물 같은 존재일 수 있다. 그럼에도 강한 모성애와 주체적인 삶에 대한 의지가 마음에 와 닿았다. 엄마는 굉장히 평범한 삶을 사신 분이다. 그런 엄마의 모습 때문에 시나리오에 다른 제작자들보다 민감하게 반응했던 것 같다.


자신 있는 ‘엄마표’ 요리는?


딸이 내가 만든 김치찜, 갈비찜을 좋아한다. 엄마표 요리하면 생각나는 건 김밥이다. 영화 <버스정류장> 컨셉 때문에 우리 집에서 촬영했던 적이 있다. 그때 엄마가 엄청난 양의 김밥을 만들어 주셨다. 그게 마지막으로 만들어 주신 김밥이었다. 이듬해부턴 발병으로 손을 움직일 수 없었다.


어머니 생전 가장 후회되는 일은?


서로 교감하는 시간을 충분히 가지지 못해서 아쉽다. 엄마의 임종도 지키지 못했다. 한창 영화 일로 바쁠 때였다. ‘그까짓’ 회의는 다음 날 해도 됐었는데 자리를 지키지 못한 게 평생 후회다. 그래도 나쁜 짓을 한 건 아니니 어쩔 수 없다. 살아가면서 어쩔 수 없이 갖고 가야 할 마음의 짐이다. 다른 사람들처럼 ‘살아계실 때 잘할걸’ 하는 후회가 크다.


앞으로의 계획은?


서른네 번째 영화 제작에 들어간다. 사십 대의 성과 사랑을 그린 <관능의 법칙>이다. 이후 여러 작품을 준비 중이라 가장 바쁜 여름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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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송인희

홋카이도의 매력에 흠뻑 빠져 삿포로에서 살고 있다.
새로운 언어와 문화, 일상을 여행한다.
먹고 마시는 것과 사소한 순간을 좋아하며, 종종 글자를 읽고 쓴다.
song_soon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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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인 심재명이 털어놓는 뜻밖의 기록 “나이 오십에 문득 지금 내 나이의 엄마를 생각한다” [접속]에서부터 [공동경비구역 JSA]와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건축학개론]에 이르기까지 제작하는 영화마다 한국 영화사의 새로운 이정표를 마련한 명필름의 심재명 대표. 『엄마 에필로그』는 그의 첫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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