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수 ‘사막을 달리며 삶의 지혜를 배운다’
『미쳤다는 말을 들어야 후회 없는 인생이다』 김경수 저자
사막을 달리며 휴가를 보내는 대한민국 공무원. 참으로 독특한 삶을 사는 평범한 한 남자의 이야기가 출간됐다. 『미쳤다는 말을 들어야 후회 없는 인생이다』에 담긴 그 이야기는 일탈을 꿈꾸는 우리들을 유혹한다. ‘미친 짓’이라는 말을 듣더라도 가슴을 뛰게 하는 일을 감행하라고. 그러면 인생 최고의 순간을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절망의 벽을 희망의 언덕으로 바꾸다
직업은 강북구청 공무원, 취미는 오지레이스. 그의 삶을 평범하다 말해야 할까, 비범하다 말해야 할까. 이 알쏭달쏭한 삶의 주인공은 『미쳤다는 말을 들어야 후회 없는 인생이다』의 저자 김경수다. 그는 우연히 TV 다큐멘터리에서 본 사막 레이스 경기에 마음을 빼앗겨 11년 동안 사막과 밀림을 찾아 2,336킬로미터를 달렸다. 나이 마흔에 시작한 극한의 도전. 주위 사람들은 모두 고개를 가로저으며 ‘왜?’라고 물었다. 수많은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사막으로 가야하는 이유를 물었다. 적지 않은 나이와 많지 않은 급여도 도전을 만류하는 이유 중 하나였다. 그를 아는 모든 사람들이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고, 오직 그만이 태연하게 대답했다. ‘그냥 가고 싶으니까’. 처음엔 단순한 호기심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오지의 한 가운데서 밤하늘을 바라보는 시간들이 쌓여갈수록, 이루 말할 수 없는 이유들이 생겨났다. 마침내 그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왜 사막에 가는 걸까?’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 지난 시간들의 경험을 들추어보았다. 그리고 『미쳤다는 말을 들어야 후회 없는 인생이다』 안에 자신이 찾은 답을 적어 내려갔다.
우리는 자기 자신에게, 그리고 서로에게 앞만 보고 살아가길 요구합니다. ‘나는 그러기 싫다.’고 한다면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십중팔구 미쳤다는 소리를 듣게 마련입니다. 그렇지만 저는 확실히 알고 있습니다. 한때 들었던 ‘미쳤다’는 말이 즐겁게 기억될 만큼, 후회 없는 인생이 펼쳐진다는 걸 말입니다. (p.11)
지난 7월 27일, 북한산 둘레길 탐방안내센터에서 저자와 독자들의 만남이 이루어졌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 도전과 모험이라는 일탈을 꿈꾸는 이들이 함께한 자리였다. 그들을 위해 저자는 『미쳤다는 말을 들어야 후회 없는 인생이다』에 담긴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고, 북한산 둘레길을 같이 걸었다.
“처음 사하라 사막으로 떠나기 전까지, 저는 살면서 대단한 것을 이룬 경험도 없었고 조금은 소심한 성격으로 살아왔어요. 그런데 40대를 넘어서면서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인생에서 뭔가 이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끝까지 가봤던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고요. 그렇게 오지레이스의 첫 발을 내딛게 됐습니다.”
생애 첫 오지레이스를 떠난 모로코의 사하라 사막에서, 그는 삶의 희로애락과 그 안에 숨은 인간의 본성을 목격했다. 생존을 위해 경쟁을 피할 수 없는 거친 환경은 자신이 떠나온 문명세계와 크게 다를 바 없었다. 결정적인 순간에 이빨을 드러내는 인간의 이기심 역시 마찬가지였다. 치밀하게 세운 기획과 그에 거는 기대를 비웃기라도 하듯 예기치 못한 상황들이 벌어지고, 어쩌면 사막이라는 곳이 훨씬 더 가혹한 공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그는 사막에서 삶의 지혜를 배웠다.
“레이스에 참가하기 전에 엄청난 운동을 했지만 그것이 무의미할 정도로 사막에서 인간은 정말 작은 존재가 되더라고요. 그런데 한국에 돌아와서 제가 그렇게 넘어서려고 발버둥 쳤던 빅듄(거대한 모래산)의 사진을 보고 생각했어요. ‘이 빅듄은 넘어설 수 없는 자에게는 절망의 벽이고, 넘어선 자에게는 희망의 언덕이구나’ 라고요.”
침낭을 버리고 태극기를 선택한 이유
모로코와 이집트의 사하라 사막, 중국의 타클라마칸 사막, 남아프리카의 나미브사막, 인도의 뮤나 밀림과 미국의 그랜드캐니언 등지에서 셀 수 없는 경험들을 쌓았다. 하지만 그 시간들을 말할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가 있다. 시각장애인 이용술 씨와 함께한 두 번의 레이스가 그것이다. 두 사람은 2005년 중국의 고비 사막을 함께 완주하고, 이듬해 다시 한 번 칠레의 아타카마사막을 달렸다. 국내 최초의 시각장애인 마라토너인 이용술 씨는 이미 2005년에 풀코스를 85회 완주한 기록을 가지고 있었고, 저자 역시 한 차례의 오지레이스를 경험한 후였다. 하지만 두 사람이 사막 레이스를 함께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만은 않은 도전이었다. 그럼에도 저자는, 자신도 고비 사막에 데리고 가 달라는 이용술 씨의 부탁을 흔쾌히 들어주었다. 그리고 “김 형은 이제부터 낙타가 되는 거야. 사막에서는 낙타가 제일 믿음직하잖아”라는 말에 기꺼이 한 마리의 충직한 낙타가 되어주었다.
한 밤중에 길을 잃으면 이용술 씨를 안전한 모래 둔덕에 놔둔 채로 홀로 땅을 기어가며 앞서 간 선수의 족적을 찾았다. 혼자서도 걸어가기 힘든 낭떠러지 위에서 이용술 씨를 안심시키느라 곱절로 진땀을 빼기도 했다. ‘두 번은 못 할 일’이라고 혀를 내두를 만도 하지만 오히려 저자는 이용술 씨 덕분에 완주가 가능했다고 말한다.
인간 김경수였다면 포기하는 게 당연한 곳들이었다. 하지만 낙타 김경수였기에 가능했다. 이용술이라는 무거운 짐을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데려다 줘야 한다는 목표가 공포와 두려움을 넘어서게 만들었다. 인생도 그런 것 같다. 때론 무거운 짐이 삶의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너무나 무거워서 짓눌려버릴 수도 있지만, 그 무거움이 나를 움직이게 할 수도 있다는 걸 고비사막 레이스에서 배웠다. (p.227)
그가 사막으로 거듭 떠나는 이유는 그곳에 삶이 있기 때문이다. 생존을 위해 경쟁하기도 하고 힘이 되어주기도 하는 사람들, 그들이 살아가는 시간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곧 저자의 삶이기도 하다. 결국 오지에서 그가 마주한 것은 맨 얼굴의 자신이다. 스스로도 알지 못했던 모습을 발견했고, 그를 향해 예전에는 미처 몰랐던 삶의 지혜를 들려주었다.
“2011년에 참가했던 호주 극한 레이스는 10일 동안 엘리스 스피링스에서 출발해 울루루까지 가는 530km의 코스였어요. 레이스 9일 째가 되니까 어깨에 붙은 파리의 무게까지 느껴질 정도로 고통이 심해졌죠. 너무 힘들어서 무조건 배낭의 무게를 줄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치약, 칫솔, 옷, 코펠 할 것 없이 전부 버리고 마지막에 남아있는 것이 침낭과 대형 태극기였어요. 둘 중에 어떤 걸 버려야 할지 정말 고민되더라고요.”
그는 무엇을 버렸을까. 침낭을 버린다면 캠프에서의 마지막 밤을 추위 속에서 보내야 할 것이고, 태극기를 버린다면 자신이 계획했던 멋진 세리머니를 할 수 없을 것이었다. 그의 선택은 태극기였다. 그는 모래 속에 침낭을 파묻었다. 태극기를 휘날리며 결승점에 들어서는 것, 거기에는 단순한 세리머니 이상의 의미가 있었기 때문이다. 열렬한 애국자는 아니지만 한국의 대표로서 완주한다는 사실을 가볍게 여길 수만은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태극기 세리머니는 자신에게 주는 선물이었다. 한 번도 원하는 것을 끝까지 해본 적 없는 스스로에게 ‘완주’를 축하해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 마음 하나로 태극기를 출국 전부터 준비하고, 경기 내내 어깨에 짊어지고 달렸던 그였다. 그렇기에 침낭보다도 더 무거운 태극기이건만 끝내 버릴 수가 없었다.
그 순간 나는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비로소 알게 되었다.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가져갈지 결정해야 하는 절박한 순간을 경험하면서 내가 이 미친 짓을 계속하는 이유도 알게 된 것이다. 가슴 속에 담아둔 열망을 현실로 끌어내는 일, 내가 가장 원한 것은 바로 그것이었다. 지금 나는 당신에게 묻는다. 당신의 열망은 어디에 있는가? 분명 당신에게도 끝까지 가보고 싶은 열망이 있을 것이다. (p. 306)
가치 있는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
자신이 뜨겁게 바라는 것을 따르는 것이 미친 짓처럼 보이더라도, 그 경험이 인생의 짜릿한 순간을 선사해 줄 것이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저자는 강연을 마쳤다. 이어 독자들 한 사람 한 사람과 만나 사인을 해주고 담소를 나눈 뒤 북한산 둘레길 걷기에 나섰다. 그들이 함께 걸은 ‘순례길’은 북한산 둘레길의 2구간으로, 저자가 직접 코스 개발에 참여했던 길이기도 하다. 강북구청에서 4.19 문화재 행사를 주관하며 새롭게 만든 구간인 순례길에는 모두 12기의 독립유공자의 묘역이 조성되어있고, 4.19 민주묘지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북한산 자연환경 해설사의 안내에 따라 저자와 독자들은 이준 열사와 이시영선생의 묘소, 광복군 합동 묘소를 참배했다.
을사조약의 부당함과 우리나라의 자주성을 알리기 위해 이상설, 이위종과 함께 헤이그특사로 파견되었으나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비통함에 생을 마감한 이준 열사. 그의 시신은 사후 56년이 되어서야 고국으로 돌아와 지금의 묘소에 안장되었다. “땅이 크고 사람이 많은 나라가 큰 나라가 아니고 위대한 인물이 많은 나라가 위대한 나라가 되는 것이다” 묘역으로 향하는 길에 새겨진 열사의 말씀은 보는 이의 마음을 숙연하게 했다.
초대 부통령을 지낸 이시영 선생은 조선의 손꼽히는 명문가 자제로 명예와 함께 막대한 재산을 가지고 있었으나, 그 모두를 조국 독립을 위해 바쳤다. 일제 강점기에 이시영 선생을 포함한 여섯 명의 형제들은 전 재산을 가지고 만주로 건너가 신흥 무관학교를 세우고 독립군을 양성했다. 신흥 무관학교가 배출한 졸업생들은 훗날 청산리 대첩과 봉오동 전투를 승리로 이끈 주역이 되었다. 하지만 그 빛나는 업적과는 대조적으로 이시영 선생의 형제들은 옥사와 병사, 아사로 운명을 달리하며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광복군 합동묘소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광복군으로 중국 각지에서 싸우다 순국한 애국선열들을 모신 곳이다. 이곳에 잠든 18명의 광복군들은 모두 무연고로 합동 안장되었다.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광복군 한 명도 포함되어 있으며, 시신을 거둬오지 못해 유해는 단 한 구도 없다.
순례길을 따라 걸으며 만난 역사와 그것을 있게 한 선조들의 삶은 모두의 마음을 무겁게 했다. 우리에게 주어진 생을 어떻게 살아내야 하는가, 하는 결코 가볍지 않은 질문을 던져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미쳤다는 말을 들어야 후회 없는 인생이다』에 담긴 저자의 삶과도 맥락을 같이 하는 것이었다. 그저 나와 내 가족의 안위를 위해 하루하루 열심히 사는 것으로 진정한 삶을 산다 할 수 있을까. 가치 있는 삶이란 무엇인가. 저자를 사막으로 떠나게 한 그 질문은 오래 전 애국선열들이 품은 질문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거듭 물은 끝에 얻은 정답까지도 닮아있을 것이다. ‘정말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알게 되었을 테니 말이다.
세상에 순탄하게만 이어지는 삶은 없다. 그런데 우리는 모든 좌절과 실패의 경험을 불행한 인생과 동일시한다. ‘꿈을 이룬 사람은 행복하고 좌절한 사람은 불행하다.’라는 명제를 참으로 설정해놓고 모두 거기 빠져 허우적거리며 산다. 과연 그게 맞는 걸까? (중략) 우리가 한평생 가장 잘 살았다고 말할 수 있는 인생은 자신이 처한 환경을 극복한 삶이 아니다. 인간승리의 드라마가 아니며, 좌절하지 않는 삶이 아니다. 나에게 주어진 환경 때문에 행복했다거나 불행했다고 생각하지 않는 삶이다. 누구 때문에 행복했다거나 불행했다고 생각하지 않는 삶이다. 그럴 때 그 인생은 너무도 잘 산 인생이다. (p.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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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