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예능프로그램 tnN <꽃보다 할배>에는 루브르 박물관에 방문한 ‘할배’들이 뜨거운 볕 아래 한 시간을 기다리는 모습이 나온다. 하지만 제작진이
『윤운중의 유럽 미술관 순례』를 미리 읽었다면 ‘할배’들은 더운 곳에서 무작정 기다릴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저자 윤운중은 관광객 대부분이 가는 나폴레옹 중앙 홀의 긴 줄이 아니라 지하통로로 나와 개찰구를 통과한 뒤, 우측으로 돌아야 보이는 담배 가게에서 입장권과 박물관 패스를 구입하라고 조언한다. 그러면 훨씬 수월하게 빠른 속도로 루브르에 들어갈 수 있다. 모두 루브르에 천 번 다녀 온 저자 윤운중의 체험에서 나온 팁이다. 저자는 루브르를 천 번 넘게 해설한 ‘루천남’으로 대중들에게 알려져 있다. 미술에 대한 방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관객들에게 생생한 감동을 선사해 온 그는 2010년부터 미술과 음악을 접목한 ‘아르츠 콘서트’를 진행하며 렉처 콘서트의 일인자로 자리 잡고 있다.
『윤운중의 유럽 미술관 순례』는 그가 8년을 준비해 독자들에게 내놓는 유럽 미술관의 모든 것이다.
유럽 5대 미술관을 아우르며 4만여 명의 관객에게 전시 해설을 한 저자도 처음부터 미술에 대해 잘 알고 있었던 건 아니었다. 그는 대기업 전자회사에서 일하던 중 회사를 그만두고 바티칸 박물관 가이드 일을 시작했다. 해설을 시작할 무렵에는 ‘르네상스’가 호텔 이름인줄만 알았다고 말했다. 가이드 일을 시작한 뒤, 맹렬하게 미술 책을 찾아 읽고 외웠다. 미술에 문외한이던 그는 이제 해박한 지식으로 관객을 사로잡는다. 그는 과거에 자신이 그랬듯 미술관에 가본 적 없는 대중들에게 미술이 드라마만큼 재미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게 목적이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그의 해설에는 유머가 빠지지 않는다.
이번에 출간한
『윤운중의 유럽 미술관 순례』는 어렵지 않게 미술작품을 읽어주는 동시에 박물관을 효과적으로 감상하는 실질적인 팁들을 담고 있다. 꼼꼼하게 미술 작품을 읽어주는 사이에 화장실 가는 법, 표를 싸게 사는 법, 대기 시간을 줄이는 법 등 다른 곳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없는 정보들이 숨어있다. 이날 강의에서는 유럽에서 진행된 사조들의 큰 흐름을 살펴보는 자리로 꾸며졌다. 특히, 저자는 지면상의 이유로 책에서 다루지 못한 부분이나 독특한 위치에 있는 작품들을 중심으로 강연을 진행했다.
15세기 북유럽 르네상스
르네상스를 이야기하면 사람들은 늘 이탈리아를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것은 르네상스의 절반만 아는 것이라 저자는 말한다. 북유럽 르네상스의 대표적 작품은 얀 반 에이크의 <아르놀피니의 결혼>이다. 작품을 스크린에 띄운 저자는 이 작품에서 촛불은 결혼의 신성함, 모서리에 있는 여신상은 다산을 기원하는 수호 여신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오렌지와 모피코트, 나막신은 고가의 물건으로 부를 상징한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이 작품을 유명하게 만든 것은 부부 뒤에 있는 볼록거울이다. 그 거울에는 ‘내가 여기 있었노라’ 라는 얀 반 에이크의 서명이 들어가 있다. 또 거울 안에는 화가와 결혼식의 증인 등이 그려져 있다. 하지만 저자가 가장 주목한 것은 바로 이 거울의 둘레에 그려진 장식이다. 직경 1센티미터의 좁은 공간에 예수 수난을 상징하는 12개의 그림이 차례로 들어가 있다. 섬세하게 그려진 이 그림은 사람의 눈으로는 볼 수가 없다. 확대해서 보면 도저히 손으로 그렸다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하다. 그는 이런 사실을 모르고 미술관에 가면 정작 중요한 것을 보지 못하고 온다며 보이지 않은 것을 보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같은 작가의 작품으로 <롤랭 재상과 성모마리아>라는 작품이 있다. 이 작품 역시 아주 작은 크기로 제작되었다. 얀 반 에이크는 성모마리아의 옷, 천사의 날개 등에 자신의 화려한 색감을 뽐내기도 했다. 그림 안에는 카톨릭의 7대 죄악 등 다양한 상징이 있지만 중요한 것은 세부 묘사다. 작품을 보면 바깥의 현실세계와 내부의 영적인 세계가 있는데 이 두 세계를 이어주는 다리가 주목할 만하다. 높이가 2.5∼ 3.5 밀리미터 정도 되는 이 다리에 서른 명의 사람들이 지나간다. 포구에는 배 두 척이 지나가는데 자세히 보면 물살 모양도 다르다고 한다. 예수의 머리 뒤, 눈으로 잘 보이지 않는 풍경 부분을 확대해보면 백 여명의 사람들이 있다. 미사를 가는 사람 팔십 명, 나귀를 탄 사람, 수다를 떠는 사람의 모습이 그림 속에 숨어있는 것이다.
설명을 마친 저자는 이번에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르네상스의 대표작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보여주었다. 북유럽 르네상스와 달리 남쪽의 르네상스는 남쪽은 조화와 비례를 중시한다는 말로 설명을 시작했다. 작품의 소실점은 중앙에 있는 예수로 모아져 있고, 예수를 중심으로 3명씩 4그룹으로 나뉘어져 있는 그림은 전체적으로 아주 규모 있게 구성되어 있었다. 저자는 예수가 충격적인 선언을 할 때 각 인물들이 어떤 반응을 보였을지 다빈치가 캐릭터를 파악해 그린 것이라 말하며, 그림 속에 드러난 순간적 반응들이 집어주었다. 잇달아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 라파엘의 <아테네 학당>을 함께 보며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진행된 르네상스 미술을 감상했다.
매너리즘
서구회화는 우리 눈에 보이는 3차원 현실 세계를 2차 평면에 어떻게 잘 보여주는가에 오랫동안 천착해왔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명암과 원근이 중요한 장치였다. 그런데 라파엘 시대에 이르자 명암과 원근은 더 이상 발전할 수 없을 만큼 발달했다. 고민에 빠진 작가들은 이제 굴절된 프리즘에서 본 세상을 보기 시작했다. 꼭 사람의 눈으로 본 세상이 아니라 다른 관점에서 본 세상을 그리는 것이다.
저자가 처음으로 스크린에 띄운 그림은 파르미자니노의 <볼록거울에 비친 자화상>이었다. 그는 독창성이 걸작을 평가하는 기준이라면 이 작품은 미술사 최고의 작품 중 하나일 거라 평했다. 작품 탄생의 비화는 다음과 같다. 19살의 청년 화가가 이발소에 가서 볼록거울을 보고 놀랐다. 가까이 있는 대상이 커 보이고 멀리 있는 대상이 작아 보이는 것에 놀라 이를 그림으로 옮긴다. 하지만 둥근 렌즈에 비친 모습을 평면에 옮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고민 끝에 파르미자니노는 아예 구형에 그림을 그린다. 파르미자니노는 이 그림으로 당시 바티칸에 있던 교황에게 찬사를 받은 건 물론 예배당 그림을 맡게 되는 등 이름을 알린다.
16세기 매너리즘, 즉 마니에리스모를 대표하는 또 다른 작품은 내셔널 갤러리 제8전시실에 걸려있는 아뇰로 브론치노의 <사랑과 시간의 알레고리>다. 이 작품은 수많은 알레고리로 이루어져 있다. 화면 위쪽 날개 단 노인은 시간을 상징하는 의인화다. 노인의 오른쪽 어깨에는 모래시계가 있고 장막으로 인물들을 가리려고 한다. 그 왼편에 있는 여인은 진실을 의인화한 형상으로 이 천을 빼앗기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화면 중앙의 미모의 여인은 비너스이고 그녀의 젖가슴을 만지는 동시에 비너스 왕관을 벗기려는 건 큐피드다. 비너스는 속아주는 듯 웃어 보이며 몰래 큐피드의 사랑의 화살을 뽑아내고 있다. 이처럼 둘 간의 속임수는 육체적 사랑이 속임수에 불과하다는 교훈적 의미를 담고 있다.
이 시기의 유명한 그림 중에는 홀바인의 <대사들>도 포함된다. 저자는 헨리 8세가 앤과 결혼하기 위해 국교를 바꾸었던 일화를 소개하며 이 그림이 당시 불안하던 유럽 정세를 반영한 것이라 말했다. 그리고 독자들과 함께 그림 중앙에 기울어진 채 배치된 해골의 모습을 찾았다. 저자는 지식과 교양의 도구, 프랑스 대사의 위풍당당한 모습이 그림 전면에 나와 있지만 그 안에 숨겨진 죽음의 이미지가 인생의 덧없음과 삶의 진실한 가치를 생각하게 한다고 말했다.
17세기 바로크
저자는 ‘르네상스가 열린 음악회라면 바로크는 아이돌 공연’이라는 말로 설명을 시작했다. 열린 음악회 같은 르네상스는 전체적인 장면을 잡지만 바로크는 어둡게 시작해서 점점 얼굴을 클로우즈업 하다가 결정적인 순간 음악이 나오며 극적인 효과를 내는 아이돌 무대 같다는 것이다. 그의 절묘한 비유에 독자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매너리즘과 르네상스 사이에서 방황하던 예술의 항로를 바로크로 바꾼 것은 카라바조다. 미술을 공부하며 저자 윤운중이 가장 처음 좋아하게 된 화가가 바로 카라바조다. 그는 17세기 화가들은 대부분 카라바조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다음으로 본 작품은 벨라스케스의 유명한 작품 <시녀들>이었다. 저자는 이 작품을 볼 때, 정면에서 멀리서부터 공주의 드레스를 보면서 걸어가면 놀라운 경험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멀리서 보면 공주의 드레스에서 완벽한 질감이 느껴지지만 가까이서 보면 인상주의에서 볼 수 있는 붓 터치에 불과하다고 했다. 이 작품은 후에 등장하는 인상파의 태동을 보여준다. 이 그림의 또 다른 특징은 작품 속에 화가, 모델, 캔버스가 모두 들어있다는 점이다. 관객들은 이 작품 안에서 화가가 무엇을 그리고 잇는지 알 수가 없다.
18세기 신고전주의와 낭만주의
빠른 속도로 이어진 강연은 어느새 프랑스대혁명 이후로 접어들고 있었다. 신고전주의와 낭만주의는 거의 비슷한 시간에 진행된 유파들이다. 신고전주의의 대표적 작가는 <나폴레옹 대관식>을 그린 다비드를, 낭만주의의 대표적 작가는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을 그린 들라쿠르아를 들 수 있다. 서구회화에서는 오랫동안 선과 색의 논쟁이 있었다. 르네상스와 바로크를 살펴봐도 르네상스는 선, 바로크는 색의 회화로 나뉜다. 바로 이 둘의 전통을 이어받은 것이 신고전주의와 낭만주의다. 신고전주의는 선, 낭만주의는 색채의 회화다. 그림의 주제 역시 신적인 것이나 숭고함과 인간이 가진 감정의 대립으로 표현된다. 신고전주의의 대표적 작가 다비드는 정치적 관심이 많았다. 격동적인 프랑스 혁명기를 살았던 그의 걸작인 <나폴레옹 황제의 대관식>은 3년에 걸쳐 완성된 작품이다. 실제 대관식을 보고 그대로 재현해 낸 작품으로 나폴레옹이 이 작품을 보고 감탄해 그에게 프랑스 최고 훈장을 수여했다고 한다.
이와 달리 사람의 감정을 색채로 표현했던 것이 낭만주의다. 작가 들라쿠루아는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에서 격렬한 혁명의 모습과 동시에 혁명의 주역이 민중이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제리코의 <메두사의 뗏목> 역시 낭만주의의 대표적 작품이다. 실화를 토대로 한 이 작품은 비극적 사건인 메두사호의 난파를 그리고 있다. 이 작품은 고통과 절망, 죽음의 공포 속에서도 삶의 의지와 희망을 놓지 않으려는 몸짓들을 드라마틱하게 보여준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고야는 인간의 감정을 보여준다는 낭만주의 특징에 잘 부합한다. 여기서 낭만적이라는 것은 아름다운 것을 말하는 게 아니다. 그보다는 인간본성에 대한 것, 원초적 본성에 대한 것을 뜻한다. 이를테면 극단적 공포나 분노, 살의 같은 것이다. 고야의 그림 중 <자기 아들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을 보면 인간의 깊은 내면에 숨겨진 본성을 볼 수 있다. <1808년 5월 2일 마드리드: 맘루크의 공격> 는 프랑스 군이 스페인 민중을 공격하는 시기의 그림이다. 하지만 이 그림은 프랑스군의 억압을 고발하는 작품이 아니다. 그림을 보면 스페인 민중 역시 프랑스 군에게 칼을 휘두르고 찌르고 있다. 이 그림은 분노 그 자체에 대한 그림이다. <1808년 5월 3일 마드리드: 프린세페 피오 언덕의 학살>에서도 그런 특징이 드러난다. 이 그림에서 사람들은 마치 기계처럼 보인다. 원근도 중요하지 않다. 이 그림은 살상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당시의 끔찍한 분위기를 전하고 있다.
북쪽에서는 다른 분위기로 낭만주의가 진행됐다.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의 작품 <바닷가의 수도사>를 보면 명상적인 북유럽 낭만주의를 느낄 수 있다. 저자는 어떤 관람자가 했다는 ‘차라리 난파선이라면 이렇게 답답하지는 않을 것 같다.’는 말을 통해 그림을 설명했다. 프리드리히의 그림들은 인간이 도달할 수 없는 것, 숙명적 한계를 인정하는 그림이다. 그래서 항상 인간의 뒷모습이 등장하고, 대자연 앞에 한없이 작아지는 인간을 보여준다.
인상주의
인상주의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일화로 출발했다. 에드워드 마네가의 작품 <풀밭 위의 점심>이 미술관에 걸리자 격렬한 반발이 이어졌다. 이 그림은 남녀가 야외에서 즐기는 일상적인 주제임에도 역사화나 주제화에 어울릴 법한 대작으로 그렸다는 점은 이 작품에 비난을 쏟아지게 했다. 뿐만 아니라 누드 여인의 시선이 화면 밖을 응시하고 있다는 점 역시 관객들을 불편하게 했다. 그림이 자신을 도발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마네는 회화는 문학의 시녀가 아니다, 회화는 2차원 평면에 놓여있는 색과 면의 조합이다 라고 말했다. 그래서 그의 그림에는 부피감이 전혀 없다. 인상주의 이전의 그림들은 대체로 보고 그린 것이 아니라 알고 있는 걸 그린 그림이다. 그런데 인상주의는 신화적, 역사적 주제가 없는 눈에 보이는 그림이다.
저자는 사람들이 유파의 이름이 나오면 어렵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심오한 의미가 없다고 했다. 인상파라는 말은 모네의 ‘해돋이’를 보고 한 비평가가 순간의 인상만 그린다며 인상파라고 비아냥 거린 것에서 시작됐다. 이들은 신체 감각기관에 의존해서 인상 그 자체를 그리는 집단으로 모네, 르누아르, 피사로, 드가 같은 인물을 들 수 있다. 모네는 <루앙 대성당> 연작에서 빛에 따라 달라지는 대성당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어떤 비평가는 모네가 이 성당 그림만 평생 그렸으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할 정도로 빛에 따라 달라지는 순간을 잘 포착하고 있다.
20세기 미술
어느덧 20세기에 이르자 저자는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을 독자들에게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제부터 시간과 공간이 해체된다고 설명했다. 피카소가 몽마르트에서 <아비뇽의 처녀들>을 그리자 사람들은 드디어 피카소가 캔버스에 목을 매 자살하기 직전이라 말했다고 한다. 그만큼 당시에는 이해할 수 없는 그림이었다. 20세기의 가장 충격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피카소의 큐비즘이 형태에 집착했다면 마티스는 포비즘은 색채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큐비즘과 포비즘 역시 별 다른 뜻이 없다. 저자는 피카소 그림을 보고 작은 큐브들을 그려놓았다고 말한대서 큐비즘이, 전시회를 보고 마치 야수들에 둘러 쌓여 있는 것 같다는 말에서 포비즘이 유래되었다고 설명했다. 저자는 피카소의 그림 몇 점과 마티스의 그림 몇 점을 꺼내 독자들과 나누었다.
그리고 칸딘스키의 일화를 빌어 추상화와 미술을 감상하는 태도에 대해 설명했다. 그날도 칸딘스키는 별 생각 없이 작업실 문을 열고 들어섰다. 그 때 그의 눈에 그림 한 점이 눈에 띄었다. 어찌나 아름다운지 감탄을 하며 가까이 가서 보자 자신이 그린 그림을 옆으로 세워둔 것이었다. 그는 그림을 다시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그 그에서 느낀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렇게 칸딘스키는 의식하지 않은 상태에서 순수한 마음으로 보자 느꼈던 감정이 기존의 경험과 정보로 인해 방해 받는 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 대상을 그리길 포기하고 추상화를 그리게 된다. 피카소 역시 노년에 더 이상 아이처럼 그릴 수 없는 것이 속상하다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저자는 18세기 고전회화는 정보가 많이 필요하지만 현대미술을 볼 때는 아이의 마음으로 보는 것이 더 좋을 때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곧 몬드리안의 <나무> 연작을 관객들과 보며 나무가 점점 추상적인 형태로 변해가는 과정을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저자가 보여준 작품은 뒤샹의 <샘>이었다. 이전까지 예술에는 예술품을 만드는 지난한 과정이 꼭 포함되었다. 하지만 뒤샹 이후로 예술가의 정신노동만으로도 예술이 됐다. 그는 오늘날 세계적인 작가들은 뒤샹의 후예들이라고 말했다. 이를테면 데미안 허스트가 수조에 상어를 집어넣고 이름을 붙인 것은 수십만 파운드인데, 다른 사람들이 수조에 상어를 넣으면 가치가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미술은 피카소의 영향에서 뒤샹의 영향으로 재편되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저자 윤운중은 유럽 곳곳에 펼쳐져 있는 미술품들을 시대 순으로 짚어주었다. 주요 작품과 그 시대의 분위기를 살펴보는 것만으로 미술사의 맥이 보이는 듯 했다.
『윤운중의 유럽 미술관 순례』는 미술 작품을 제대로 알고 감상하고 싶은 독자들과 곧 유럽여행을 떠나는 독자들 모두에게 훌륭한 선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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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운중의 유럽미술관 순례 윤운중 저 | 모요사
윤운중은 십여 년을 유럽에서 살며 미술관 가이드로 명성을 쌓았다. 특히 루브르는 천 번 이상 방문하며 ‘루천남’이란 별칭을 얻었고, 이외에도 ‘걸어 다니는 종합예술사전’, ‘유럽 도슨트계의 전설’로 불린다. 십여 년을 유럽에서 살며 미술관 가이드로 명성을 쌓은 그는 유럽 전역의 미술관을 돌며 원화를 직접 보고 공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유럽미술관의 현장을 그대로 옮겨온 듯한 생동감 넘치는 그림 해설을 펼쳐놓는다. 이 책 안에서는 명화의 숨어 있는 스토리뿐만 아니라, 그림을 보는 데 그치지 않고 '읽고' '느끼게' 하는 다양한 경험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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