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1년 세상을 떠난 스티브 잡스는 디자인을 전면에 내세웠다. 그가 말한 혁신의 핵심에는 디자인이 있었다. 애플의 제품이 주는 디자인적 감성이 소비자들의 마음을 움직였고, 지갑을 열게끔 했다. 디자인이 어떻게 모든 것을 좌우할 수 있는지, 디자인 경영의 정점을 보여줬다. 어디서(어느 나라에서) 만들었느냐가 중요했던 ‘Made in OOO’는 2000년대 들어 ‘Designed in OOO’라는 문법에도 맞지 않는 문구에 자리를 내줬다. 그렇다면 현재 기업들의 가장 중요한 핵심으로 자리매김한 디자인을 둘러싸고 어떤 흐름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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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혁신이란 ‘디자인’을 의미하기 시작했다. 적어도 1980년대, 소니가 워크맨을 만들어내던 시기부터 모든 혁신은 디자인에서 시작되었고, 디자인으로 끝이 났다. 기술은 점차 눈에 보이지 않는 이면으로 밀려났고, 디자이너가 기술자에게 제품의 사양을 제시하는 상황으로 바뀌었다.”(p.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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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 인정과 불인정의 사이
김 심사관, 문제를 낸다. 만약 내 집 담벼락에 누군가 그림을 그렸다면 마음대로 지울 수 있을까? 아니, 내 집의 담벼락인데, 당연히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 아니겠느냐고 생각한다면, 오산! 법적으로 담벼락에 그린 그림을 마음대로 지울 수 없다. 저작권법 상의 원본이 유지될 권리, 동일성 유지권 때문이다. 김 심사관에 의하면, 저작권은 만드는 순간 발생하고 변경이나 발표 권리도 작가에게 있다. 또 공터에 농사를 짓는다고, 땅주인이 뽑을 수도 없다. 소유권에 우선한 경작권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유권이 전능하지는 않다. 그렇다면 내 집 담벼락에 낙서했을 때, 낙서한 장본인을 혼낼 수 있는 방법은? 기물훼손죄가 있다.
“‘거인의 어깨위의 난쟁이’. 뉴턴이 즐겨 썼던 말인 것으로 알고 있다. 이전에 쌓아온 지식 위에 나는 조그만 것을 올려놓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표현이다. 저작권은 이런 것을 기본에 깔고 간다. 고양이만 그렸다고 내 저작권이 될 수 없다. 저작권을 따질 때는 인류가 이룬 업적이나 인류 공동의 자산은 빼고 내가 더한 것만 따진다. 구스타프 클림트가 그만의 표현기법이 있다고해서 독점할 수는 없다. 표현기법에 대한 것이나 행위 자체는 인류 공동의 자산이다. 사람의 몸, 동작, 구도 등에 대해서는 저작권을 주장할 수 없다.”
너훈아, 패튀김, 조용팔 등의 이른바 ‘이미테이션’ 가수들이 목소리, 인상, 머리 등을 원본 가수와 비슷하게 하는 것, 저작권 침해가 아니다. 아무리 비슷해도 목소리에 대한 저작권은 인정이 되지 않는다. 헤어스타일도 마찬가지다. 아주 독특한 것이 아니라면 일반적인 헤어스타일에는 저작권이 없다. 옷(패션)은 지역에 따라 다르다. 한국과 미국에선 옷에 대한 저작권이 발생하지 않지만, 유럽에선 저작권을 인정한다. 유럽은 패션산업이 발전해서 베껴 쓰는 곳이 많고, 패션산업을 지키기 위해 저작권을 인정하고 있다.
이런 재밌는 경우도 있다. 2000년대 초반 비슷한 시기에 유행하고 유명세를 떨쳤던 두 캐릭터, 마시마로와 졸라맨. 마시마로는 저작권을 통해 큰돈을 벌었으나 졸라맨은 돈을 벌지 못하고 조용히 사라졌다. 이유가 무엇일까.
“졸라맨은 초등학교 아이들이 그림을 처음 그릴 때 졸라맨과 비슷하게 그리는 표현 방법이라는 이유로 저작권이 인정되지 않았다. 졸라맨은 저작권이 없느냐. 그렇지 않다. 플래시 동영상은 영상 저작물로 인정이 된다. 캐릭터에 대해선 저작권이 인정되지 않았다. 또 졸라맨은 캐릭터 상품으로도 만들기가 무지하게 어렵다는 단점도 있었다.”
미국에서는 오바마 대통령의 초상을 둘러싼 저작권 분쟁도 있었다. 대개 공인인 대통령은 초상권에 대해 보호가 덜 된다. 한 작가가 오바마 사진을 토대로 2차적인 작품 포스터를 만들었다. 2차 저작물에 HOPE라는 글을 썼고, T-Shirt로 만들어 엄청나게 팔렸다. 그러자 오바마의 사진을 처음 찍었던 사진작가가 저작권 침해로 소송을 걸었다. 문제는 법정에서 불거졌다. 2차 저작물을 만든 작가가 사진을 보고 그리긴 했는데요, 라고 인정한 것. 게임이 끝났다. 2차 저작물의 작가는 벌었던 돈을 사진작가에게 줘야했다. 김 심사관이 전하는 교훈. “침해를 해도 인정하면 안 된다(웃음).” 한편 함부로 저작권을 침해했다고 고소하다가 명예훼손으로 걸리는 경우도 많단다. 저작권 침해소송을 남발해선 안 되는 이유.
“포장디자인에서 점점 손글씨가 늘어나고 있다. 손글씨는 미술저작물로 패키지에서는 상표로 보호받을 수 있다. 글자는 저작권이 없으나, 손글씨는 미술저작물로서 원한다면 특허청에 상표로 등록할 수 있다. 그러나 책 편집이나 포털사이트는 저작권 인정을 받지 못한다. 한정된 지면에 제한된 글자를 배치하는 것은 저작권으로 인정받을 수 없다. 다만 네이버는 녹색 네모박스를 상표로 등록해 놨다. 옷은 저작물로 인정이 안 되나 버버리는 100년 이상 자신들의 패턴으로 돈을 벌어왔고, 상표로 등록해 놨다. 상표법 적용이 가능하다. 등록상표다. 버버리 패턴을 따라하다가는 저작권 침해가 아닌 상표권 침해로 처벌을 받을 수 있다.”
이어 김 심사관은 아파트와 관련한 소송도 이야기한다. 외관디자인 저작권 침해소송이 있었고, 아파트 외관을 그대로 따라한 경우, 저작권 침해가 인정됐다고 밝혔다. 다만 아파트 도면은 거의 비슷한 일반적인 예라서 저작권 침해로 인정하지 않았다.
“저작권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저작권 침해소송을 해서 떼돈을 벌지 못한다. 변호사 비용이나 시간, 기회비용, 평판 등을 생각하면 실리가 없다. 미국은 징벌적 손해배상이 있지만, 우리는 그렇지 못해서 저작권 침해소송을 걸어서 돈을 절대 못 번다. 함부로 남발하다가 명예훼손으로 걸릴 수도 있다. 확실히 따져보고 해야 한다.”
브랜드와 상표, 어떻게 따져봐야 할까?
TM. 트레이드 마크의 약자다. 등록된 상표라는 뜻이다. R이 붙어 있는 상표를 함부로 쓰면 상표권 침해가 된다. 한미FTA체결 이후 상표권 침해에 대한 규정이 크게 강화됐다. 할리데이비슨 소리는 할리데이비슨사의 상표이며, MGM영화마다 나오는 사자 포효소리도 상표고, 리바이스의 빨간 딱지도 위치상표다.
고 스티브 잡스에 대한 이야기가 빠질 수 없다. 1984년에 디자인한 매킨토시 초기 모델. 윈도우 시스템의 원형을 간직한 이 모델을 내놓고 잡스는 애플에서 쫓겨났다. 문제는 마이크로소프트가 이것을 베껴서 윈도우 3.0을 만들었다. 마우스는 IBM에서 가져가서 발전적으로 만들었다. 쫓겨난 잡스, 픽사를 만들어 부활한 뒤 애플이 거의 망할 무렵, 다시 돌아와 디자인 혁신을 하고 지적재산권 방어에 적극 나선다. 직접 생산을 하는 않고 디자인에 역점을 뒀다.
“아이폰이 2007년에 나왔는데, 잡스는 변리사를 불러 일일이 특허를 건다. 매킨토시 초기 모델을 만들어놓고 저작권으로 피 본 경험 때문에 그랬다. 미국은 디자인을 특허권으로 보호해준다. 우리나라는 디자인보호법으로 부른다. 잡스는 외관 디자인을 스무 개로 쪼개 특허권을 걸고, 박스는 물론 아이콘도 상표권으로 걸었다. 밀어서 잠금 해제, ‘스티브 잡스 특허’로 불린다. 디자인 하는 사람들은 지재권으로 걸 생각을 안 했는데, 많은 것을 특허로 걸었다.”
잡스는 화면은 물론 아이콘 하나하나, 운영체제 등 모든 것을 특허로 걸고 삼성전자와 소송을 했다. 특허는 만든 사람, 유통한 사람, 판매한 사람 모두를 잡을 수 있다. 아이콘은 구글이 만들었으나 유통?판매는 삼성이 했다는 이유로 애플은 삼성을 걸고 넘어졌다. 애플이 구글을 걸면 미국 기업끼리 싸우는 모양새가 나오기 때문에 삼성을 대상으로 소송을 걸었다는 것. 미국 배심원들은 애플 손을 들어줬다. 잡스는 직원이 꿈꾼 내용까지 특허로 만들고, 아이폰 전체를 상표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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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미래에 디자인 경영은 종말을 고할 것으로 보인다. 기술자를 몰아내고 그 자리를 지재권 전문법률가가 차지하였듯이, 디자이너를 기술자화시켜 주변부로 밀어내고 있다. 기업의 지식재산권 경영은 선택이 아니라, 피할 수 없는 필수 이행과정이 되었다.”(p.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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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심사관에 의하면 상표권이 가장 힘이 세고 오래 간다. 특허는 20년, 디자인 저작은 15년을 가는데, 상표권은 돈만 내면 무한대로 간다. 그런 의미에서 상표는 참 재밌는 지점이 있다.
“나이키는 디자인 등록을 하지 않는다. 상표와 특허권으로 디자인을 보호한다. 리복은 97년부터 밑창을 상표로 등록했다. 이들은 상표와 특허로 수백 가지 상품을 보호하고 있다. 특허로 걸면 일단 베끼지 못한다. 가령 특허 받은 음식, 느낌이 어떤가. 특허청이 맛을 평가하진 않는다. 그런데도 특허권이 걸려 있다고 하면 뭔가 있어 보이게 만든다. 쓰레기 같은 특허도 많은데, 아무짝에 쓸모없는 특허도 그런 효과가 있다. 나도 마음만 먹으면 특허를 100개도 넘게 만들 수 있다. 미국에선 미키마우스 연장법이 저작권 시효를 20년 더 연장시켜 미키마우스도 70년이 지나면 끝나면 저작권이 풀리나 월드 디즈니는 상표권 등록을 했다. 미키 마우스는 죽지 않는 불사의 존재가 됐다. 인류 공동의 자산인데 미국에서는 상표가 된다. 인정을 해준다. FTA 때문에 우리나라도 곧 들어올 것이다. ‘주지 저명성’의 활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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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적으로 동일한 효력을 발휘하는 상표권과 저작권법이 미국의 산업을 보호한다. 작가가 죽고 나서도 무려 70년이나 그 권리를 보호해 주니, 월트 디즈니 사후에 자식과 손자와 증손자까지도 떵떵거리며 살 수 있는 든든한 금액을 챙겨주고, 미국의 세금으로 고스란히 흡수된다. 미국의 각종 산업은 특허법과 상표법, 저작권법, 부정경쟁방지법, 영업비밀보호법 등의 보호장치들로 둘러싸여 공장 없이 제품을 생산하고, 타국의 회사를 집어삼키고, 경영권을 간섭하고 있다.”(p.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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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없는 다이슨 선풍기가 크게 히트를 쳤다. 그런데 코스텔이라는 업체에서 날개 없는 선풍기를 내놨고, 다이슨이 특허소송을 내도 이길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어떻게 피해간 건가?
모두 팬이 없다. 두 개가 같다고 생각하는데, 팬이 없다고 해서 다 침해가 되는 게 아니다. 모양이 달랐다. 모양이 달라서 디자인 침해는 되지 않고 특허 침해는 소송이 진행 중으로 알고 있다. 다이슨은 날개가 없으면 자기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좀 더 까보면서 지켜봐야 한다. 잘못하면 영업방해나 명예훼손으로 걸릴 수도 있다. 소송을 당한 회사는 피해놓을 방법을 만들어놓고 제품을 내놓았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피해갈 수도 있다.
디자인관련법이 어떤 기준으로 개정돼야 하고 디자인업계를 위해 꼭 필요한 것이 있다면?
디자인보호법이니까 디자인이면 다 보호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디자이너는 저작자도 아니고, 아무데서도 보호받을 수 없다. 디자인보호법은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즉 기업을 보호하기 위함이지 디자이너를 보호하기 위한 게 아니다. 우리나라는 남의 것을 베껴서 소송해서 지면 번 것에 대해서만 돈을 주면 그만이다. 미국은 벌금을 추가로 3배 더 물린다. 우리나라는 간신히 이겨도 원래의 돈 밖에 못 받는다. 정신적인 스트레스 등에 대해선 돈을 받지 못한다. 우리나라에도 징벌적 제도가 있으면 좋겠다.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자 할 때 프로그래밍과 함께 디자인이 들어갈 텐데, 지재권 개념에 대해 알고 싶다.
소프트웨어보호법이 저작권보호법에 들어갔고, 프로그래밍을 만든 뒤 저작권등록을 하면서 개발자 등을 써놓으면 저작권위원회 서버에 들어간다. 이렇게 하면 누군가 소송을 걸었을 때 강력한 힘이 된다. 소프트웨어를 보호하려면 저작권위원회에 등록하는 게 확실하다. 이때의 디자인은 굳이 등록을 안 해도 저작권등록이 된다. 운영체제는 가능하면 특허를 내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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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자인 전쟁
- 김종균 저 | 홍시커뮤니케이션
디자인 지재권 경영에 필요한 기본적인 법률 지식과 관리 방법을 한데 모은 최초의 책이다. 저자는 현장 경험과 수년간의 연구를 바탕으로 이 책을 썼다. 컨설팅을 위해 만났던 중소기업 대표, 지자체 공무원, 기획실/홍보팀, 농어민 단체 담당자 등의 눈높이로 전문성 있는 내용을 흥미롭고 쉽게 썼다. 국내외 디자인 경영과 지재권 분쟁의 다양한 사례들이 적재적소에서 이해를 도우며, 실제 기업 경영에 반드시 적용해야 할 내용들이 알기 쉽게 제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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