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두 마리의 고양이 ‘수운’(암)과 ‘잡방’(수)을 입양했다. 한창 얼굴을 익히고 서로의 패턴을 주시하면서 조금씩 서로에게 익숙해지고 있다. 일과의 시작을 그들과 인사하는 것에서 시작하고, 일과의 끝에 그들과 작별인사를 나눈다. 매일 밥을 챙겨주고, 배설물을 치워준다. 처음 경계만 하던 그들이 이젠 조금씩 다가올 줄도 안다. <슈렉>의 고양이처럼 생긴 잡방이는 내킬라치면 ‘귀요미’ 표정도 작렬해준다. 그들과 함께 살아간다는 건, 매일 매순간이 놀랍고 새로운 경험임을 자각하는 것이다. 이들의 작은 몸짓 하나에 웃고 동요한다. 다른 종의 생명과 함께 산다는 건 그런 것일까. 지난 5월 12일 ‘입양동물의 날’, 남양주에 위치한 애견테마파크 ‘조이독’에서 만난 이들, 한없이 봄에 가까운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다.
『고양이 섬의 기적』 출간기념 동물자유연대(www.animals.or.kr)와 함께하는 ‘입양동물의 날’ 기적의 봉사대도 함께했다. 동물자유연대 행당동 보육센터에 집결한 봉사대원들, 남양주 조이독으로 가서 봉사활동을 진행했다. 일일 보모(도우미) 역할이다. 개에게 물도 먹이고 그늘에 앉히거나 마구 돌아다니지 못하게 하는 것이 그들의 몫. 물론 함께 게임 참여도 하고 개와 놀아주기도 해야 한다. 유기견을 위해서다. 뭔가 모자라거나 부족해서 버려진 것이 아님을 확인시켜줘야 한다. 개들에게도 자존감이 있을 터.
입양동물의 날은 “버려지는 동물들에게 사랑을 주세요”라는 모토를 내세운다. 또 “사지 마세요, 입양하세요”라고 말한다. 이날의 행사는 이런 안내문을 내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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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림받고 거리를 떠돌며 힘겨운 삶을 사는 유기 동물 입양을 통해
올바른 반려동물 문화를 정착하고자 합니다.
입양한 동물이 아니더라도 반려동물을 사랑으로 보듬어 주실 모든 분들을 환영합니다.
화창한 봄날, 사랑하는 반려동물과 함께 또 하나의 행복한 추억을 만드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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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도 뛰고 사람도 뛴다
애견테마파크. 개들의 속 깊은 심정은 모르겠으나, 화창한 봄날의 푸른 잔디, 사람들은 개와 함께 즐겁다. 뭣에 신나는지 개도 뛰고 사람도 뛴다. 봄날의 풍경, 아름답다. 수시로 개들이 퍼지르는 똥도 치운다. 개를 품은 사람들이 계속 몰려든다. 누군가는 행사장에 들어오면서 말한다. “개판이네, 개판!”
그리고 웃는다. 까르르르, 웃음소리가 공기를 타고 흐른다. 그저 봄날의 주말. 도시를 벗어나 자연 속에 있어서일까. 개들과 함께여서 일까. 아이들도 개와 함께 봄날을 즐긴다. 한편으로 개를 무서워하면서도 호기심에 충만한 아이들의 눈빛은 개의 몸짓 하나하나에 박혀 있다. 개 반 사람 반. 돗자리를 깔고 자신의 자리를 찾는 사람들. 커피와 팝콘이 주어진다. 커피 향과 팝콘 향이 공기 중에 섞인다. 그 냄새를 맡고 몰려드는 개들도 있다.
개를 부르는 소리도 공기 중에 메아리친다. 개 이름도 사람이름만큼 제각각.
끼도, 짱아, 보리, 얄리, 마리, 귀동, 영희, 돌이, 깜식이, 왕눈이, 윌리, 카스, 쁘띠, 때국이, 복슬이, 깜찍이, 루끼….
노는 형태도 제각각이다. 남의 가방에서 먹을 것을 찾아내 냉큼 물고 달아나는 개도 있고, 먹을 것 냄새를 맡고 이리저리 몰려다니는 개도 있다. 개들끼리 목청 높여 싸우기도 한다. 조용히 앉아 다른 개들의 모습을 지켜보기도 한다. 짖고 뛰거나 휴식을 취하는 저들 각자의 하루. 개나 사람이나 모두 즐거워 보인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을 묶는 것은 ‘개’라는 존재다. 그러고 보니, ‘듀이’라는 이름의 고양이도 떠오른다. 1988년 1월, 미국 아이오와 주 스펜서 市 도서관. 사서 비키 마이런은 도서반납함에서 생후 8주로 추정되는 새끼고양이를 발견했다. 추위와 굶주림에 바들바들 떨고 있던 유기묘에게 마음을 뺏긴 마이런, 시와 도서관 직원들을 설득한 끝에 도서관에서 이 고양이를 키우기로 했다. 도서관에 사용되는 십진분류법 창안자의 이름을 따 ‘듀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런데 이 작은 고양이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더 나아가 마을을 움직였다. 경제적 어려움에 빠져 있던 스펜서 市의 많은 주민들이 일터를 잃은 상태였다. 도서관을 아지트 삼은 이들에게 듀이는 스스럼없이 안기고 애정을 표했다. 우울증에 빠져 있던 이 마을, 듀이의 애교에 위로를 받고 사람들은 듀이를 보기 위해 도서관을 자주 찾았고, 책을 읽게 됐다. 듀이 덕분에 주민들이 도서관에 관심을 갖게 됐고, 주민들도 우울에서 차츰 탈피했다.
즉, 듀이는 마을공동체의 구심점이 됐다. 마을이 한 마리의 고양이로 인해 바뀔 수 있음을 보여줬다. 듀이가 2006년 11월 안락사하자, 250여 매체가 듀이의 부고를 실었다.
『세계를 감동시킨 도서관 고양이 듀이』에 실린 이야기. 고양이 한 마리가 길어낸 마을의 기적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고양이 섬의 기적』도 고양이가 일군 기적의 모습을 보여준다. 3ㆍ11 대지진과 쓰나미가 삼킨 섬을 살린 고양이(들). 일본 다시로지마 섬을 살린 것은 고양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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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로지마 섬 사람들은 펀드를 통해 굴 양식업을 부활시킬 자금을 모아보자는 무모한 도전을 시작하지만 3ㆍ11 대지진과 쓰나미로 동일본 전체가 피해를 입은 상황에서 사람들이 이 작은 섬에 얼마나 관심을 줄지 알 수 없는 실정이었다. 그때 기적이 일어난다. 고양이를 살리자, 그러려면 사람을 살리자, 그러려면 섬을 살리자, 이렇게 마음은 점점 커져갔다. 고양이를 통해 너의 불행은 나의 불행이 되었고 그로 인해 타인을 도울 힘이 생겨났다. 그리고 결국 섬이 살아났다. 각박한 세상이지만 가끔 이런 기적이 일어난다. 그 매개가 나에게는 음악, 다시로지마 섬에게는 고양이였다. 무엇이 매개가 되었든 마음이 오갈 때, 세상은 빛이 난다. 무엇보다도 소중한 빛이다.”(p.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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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동물과 함께하는 삶이 행복한 사람들
본격적인 행사의 시작. 조희경 동물자유연대 대표의 인사말로 시작됐다.
“어제 제주도에 제돌이를 보내고 기쁜 마음과 설레는 마음으로 오늘을 맞았다. 해마다 새롭게 참여하는 분들 참 고맙다. 입양동물이 이전에 버려진 것은 무슨 문제가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 그들도 누구나 다를 바 없이 사랑스러운 동물들이다. 반려동물 문화가 잘 정착하길 바라고 오늘 반려동물과 함께 즐기길 바란다.”
그렇다. 유기되고 버려졌다고 문제가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닐 것이다. 되레 그것을 제대로 돌보지 못한 사람들의 책임이 더 문제일 것이다. 어떤 사연이 있을 수 있겠지만, 함께 산다는 것, 함께 있다는 것에 대한 고민이 부족해서였을 수도 있겠다.
유기견을 입양한 사람들의 소감도 이어진다. 제나와 티나를 키우는 이길주 씨는 벅찬 표정을 지으며 말을 잇는다.
“앞서 키우던 딸기가 죽고 동물자유연대에서 봉사를 하다가 비슷하게 생긴 제나를 보고 바로 입양을 하기로 결정했다. 이어 동생인 티나도 입양을 해서 함께 키우고 있다. 우리 집은 순위가 있는데, 1순위가 제나, 2순위가 티나, 3순위가 나이고, 마지막이 우리 남편이다. 제나와 티나 덕분에 우리는 참 행복하게 산다. 이들이 없는 삶은 상상 못한다. 건강하게 잘 살면 좋겠다.”
아띠를 입양한 이정민 씨도 역시 행복하단다.
“행복이를 먼저 입양해서 함께 살고 있었는데, 친구가 필요한 것 같아서 아띠를 입양했다. 처음에는 서먹해 하는 것 같더니 이젠 친해져서 둘 다 잘 지낸다. 내 새끼처럼 잘 키우겠다.”
김영희 씨는 다리를 입양해 키우고 있다.
“다리가 처음에 분리불안도 있었으나 지금은 적응도 잘 하고 안정화가 됐다. 가족들에게 행복을 주는 존재다. 유기견이라고 해서 문제가 있어서 그런 게 아니고 사람들의 변심ㆍ사정에 의해 버려진 경우가 많다.”
행복하다는 저 말들, 거짓이 아닐 것이다. 그들의 진심이 고스란히 전해지고 있었다. 개도 뛰고 사람도 뛰는, 개와 사람이 함께 달리는 풍경에서 의심은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 기적은 고양이 한 마리에서, 개 한 마리에서 비롯될 수 있음을 확인하는 순간이다. ‘쓰나미가 휩쓸고 간 외딴 섬마을’을 재건한 것도 고양이였다. 다만 나는 유기동물을 입양해 키운다고, 그런 사람은 앞뒤 재지 않고 “무조건 착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에는 동의 못한다. 자신이 키우는 반려동물에게만 끔찍한 사람, 꽤 많다. 그것, 가족이기주의와 다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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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로지마 섬은 자연이 만든 고양이 카페예요. 고양이에게는 평화가 어울려요. 재해를 뛰어넘어 활기찬 섬이 만들어지면 좋겠어요’ ‘냥이 프로젝트’는 고육책으로 시작된 프로젝트였다. 하지만 이 작은 기적은 섬사람들의 생각을 뛰어넘어 ‘재건의 새로운 상징’이 되어가고 있다.”(p.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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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양이 섬의 기적 이시마루 가즈미 저/오지은 역/고경원 해설 | 문학동네
이 책은 3ㆍ11 동일본 대지진이라는 비극 이후, 다시 섬을 일으키려는 섬사람들의 담담하지만 강인한 모습을 담고 있다. 믿을 수 없을 정도의 거대한 자연재해 앞에서 망연자실하지 않고 꿋꿋하게 삶을 꾸리려는 섬사람들의 의지가 많은 이들에게 감동으로 다가갔고, 그것은 섬을 재건하고 섬의 고양이를 지킬 수 있는 원동력으로 바뀌었다. 비극을 감동으로, 새로운 캠페인으로 전환시킨 다시로지마 섬마을 사람들의 이야기가 한 편의 동화가 아닌 바로 지금 실제로 진행되는 사건이라는 점에서 우리에게 더욱 생생한 시사점을 던져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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