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 특집] 원작을 탁월하게 영화로 옮긴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내 생애 최고의 원작 영화
영화는 원작 소설의 의미를 전혀 바꾸지 않았다. 단편은 행복한 순간만을 보여주지만, 그것은 언젠가 닥칠 미래의 비극을 생각하지 않겠다는 적극적인 의미에서의 도피였다. 과거가 아닌, 미래에의 망각.
원작의 맛을 그대로 살리는 것과 각색을 하는 감독의 의도에 따라 새로운 주제나 의미를 끌어내는 것. 어느 것이 더 낫다고 딱 잘라서 말할 수는 없다. 때에 따라서, 작품에 따라서 때로는 감독이 누구인지에 따라 결과는 너무나 다르다. 피터 잭슨의 <반지의 제왕>은 최대한 원작의 이미지를 그대로 구현하면서 찬사를 들었다. 원작의 팬들은 변화나 창조적 해석보다는 전통적인 각색을 원했다. 스탠리 큐브릭의 <샤이닝>은 원작자인 스티븐 킹에게 강력한 비난을 들었다. 그 영화는 내 이야기가 아니라며 독설을 퍼부었다. 하지만 스티븐 킹이 직접 각본을 쓴 TV판 <샤이닝>은 너무나도 지루했다. ‘원작 파괴자’라는 말을 듣기도 했던 스탠리 큐브릭이 만든 <샤이닝> <롤리타> <시계태엽 오렌지> 등은 하나같이 걸작이다. 감정을 말로 설명하고, 시대의 공기를 구체적으로 묘사했던 소설은 느낌과 정서를 이미지로 그려내는 영화가 되면서 뉘앙스가 달라지는 경우도 많다.
소설을 영화로 옮길 때, ‘장편과 단편 어느 것이 유리한가’도 마찬가지다. 장편소설을 2시간 남짓의 영화로 만들 때는 많은 세부를 들어내야만 한다. 반대로 단편이라면 더 많은 이야기와 장면을 만들어내야만 한다. 그래서 장편이 영화화되면 원작의 의미를 제대로 살리거나 구현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종종 듣는다. 세부를 들어내면서 영화는 집중을 하는 경우가 많아진다. 다만 문자와 영상의 상상력은 다를 수밖에 없다. <원 데이>에서 원작이 보여주던 시대의 풍경은 희미해졌지만, 수 십 년에 걸친 남녀의 ‘하루’는 더욱 예민하게 그려진다. 단편을 확장하면 이야기 자체도 달라지는 경우가 많다. 아사다 지로의 <러브 레터>를 각색한 <파이란>은 중국에서 온 여인과 위장결혼을 하고, 죽은 그녀에게 편지를 받는다는 기본 설정 이외에 거의 모든 것이 새롭게 만들어졌다. 추가된 세부 덕분에, 그녀의 캐릭터가 선명해지고 3류 건달의 비극적인 운명이 더욱 투명하게 그려진다. 단편을 영화화할 때는, 시나리오 작가나 감독의 의도에 따라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 주제로 바뀔 수도 있다.
‘우리는 물고기야. 죽어버린 거야. 그런 생각을 할 때 조제는 행복하다. 츠네오가 언제 조제 곁을 떠날지 알 수 없지만, 곁에 있는 한 행복하고, 그것으로 족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조제는 행복에 대해 생각할 때, 그것을 늘 죽음과 같은 말로 여긴다. 완전무결한 행복은 죽음 그 자체다.’ (소설 중에서) | ||
‘거기가 옛날에 내가 살던 곳이야. 깊고 깊은 바닷 속. 난 거기서 헤엄쳐 나왔어. 그 곳은 빛도 소리도 없고, 바람도 안 불고 비도 안 와. 정적만이 있을 뿐이지. 별로 외롭지는 않아. 처음부터 아무 것도 없었으니까. 그냥 천천히 시간이 흐를 뿐이지. 난 두 번 다시 거기로 돌아가진 못할 거야. 언젠가 네가 사라지고 나면 난 길 잃은 조개껍질처럼 혼자 깊은 해저에서 데굴데굴 굴러다니겠지. 그것도 그런대로 나쁘진 않아.’ (영화 중에서) | ||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걸 보고 싶었어. 좋아하는 남자가 생겼을 때. 무서워도 안길 수 있으니까. 그런 사람이 나타나면 호랑이를 보겠다고. 만일 그런 사람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평생 진짜 호랑이는 볼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 | ||
‘언젠간 그를 사랑하지 않는 날이 올 거야. 베르나르는 조용히 말했다. 그리고 언젠가는 나도 당신을 사랑하지 않겠지. 우린 또다시 고독해지고. 그냥 흘러간 1년의 세월이 있을 뿐이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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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평론가, 영화평론가. 현 <에이코믹스> 편집장. <씨네21> <한겨레> 기자, 컬처 매거진 <브뤼트>의 편집장을 지냈고 영화, 장르소설, 만화, 대중문화, 일본문화 등에 대한 글을 다양하게 쓴다. 『하드보일드는 나의 힘> 『컬처 트렌드를 읽는 즐거움』 『전방위 글쓰기』 『영화리뷰쓰기』 『공상이상 직업의 세계』 등을 썼고, 공저로는 <좀비사전』 『시네마 수학』 등이 있다. 『자퇴 매뉴얼』 『한국스릴러문학단편선』 등을 기획했다.
<다나베 세이코> 저/<양억관> 역9,000원(10% + 5%)
2004년 부천영화제 최고의 화제작,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의 원작을 비롯한 총 9편의 단편이 실려있다. 표제작은 다리가 불편한 소녀 조제와 평범한 대학생 츠네오의 귀엽고도 애달픈 연애담을 그린 작품으로, 일본에서는 소설과 영화 모두 큰 인기를 끌었다. '올해 최고의 연애영화'라는 극찬을 받은 바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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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노트 "언젠간 그를 사랑하지 않는 날이 올 거야." 베르나르는 조용히 말했다. "그리고 언젠가는 나도 당신을 사랑하지 않겠지. 우린 또다시 고독해지고… 모든 게 다 그래. 그냥 흘러간 1년의 세월이 있을 뿐이지." "네, 알아요." 조제가 말했다. - 프랑소와즈 사강 <1년 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