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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해서 쓸쓸한 감정을 시로 표현했다고? 소설 쓰는구나! - 박남준

지리산 속에 이 시인이 홀로 사는 법, 『스님, 메리 크리스마스』 내 시에는 사람 냄새가 안 난다고? 그럼 나는 무엇인가!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소주는 ‘구례 잎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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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남준 시인이 최근 산문집 『스님, 메리크리스마스』 출간한 기념으로 독자들을 만났다. 시인은 독자들과 봄밤의 살짝 흥분을 품은 이야기를 도란도란 나눴다.

봄날, 봄비가 흐를 때면, 절로 읊조리게 되는 시구(詩句)가 있다.

봄비는 오고 지랄이야
꽃은 또 피고 지랄이야
이 환한 봄날이 못 견디겠다고
환장하겠다고
아내에게 아이들에게도 버림받고 홀로 사는
한 사내가 햇살 속에 주저앉아 중얼거린다
십리벚길이라던가 지리산 화개골짜기 쌍계사 가는 길
벚꽃이 피어 꽃 사태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피어난 꽃들 먼저 왔으니 먼저 가는 가
이승을 건넌 꽃들이 바람에 나풀 날린다
꽃길을 걸으며 웅얼거려본다
뭐야 꽃비는 오고 지랄이야
-박남준, 「봄날은 갔네」 중에서-
그날도 살짝 봄비가 왔다. 지랄이었다. 겨울이 그냥 가기 섭섭해서 막바지 앙살을 부린, 3월 20일의 봄밤. 10년 전,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한 날이기도 했다. 그게 다 봄이기 때문이리라. 『보통날의 물리학』은 봄 타는 우리를 호르몬의 양이 변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해준다. 봄 햇살이 망막을 통해 간뇌 뒤의 송과선을 자극, 에스트로겐과 테스토스테론의 분비를 촉진시키고, 생체리듬을 조절하는 멜라토닌의 분비를 감소시키기 때문이란다. 신진대사가 활발해지면서 심리적인 흥분도가 높아지면서 봄 타는 우리 앞에, 지리산에서 봄손님이 왔다. 박남준 시인. 최근 산문집 『스님, 메리 크리스마스』 출간한 기념으로 독자들을 만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봄밤의 살짝 흥분을 품은 이야기를 도란도란 나눴다.




지리산 악양 동매마을에 핀 시인 박남준

박남준 시인, 10년 전 지리산으로 갔다. 형제봉의 악양 동매마을, ‘악양산방’이 그의 거처다. 그는 우선 악양산방에서 동거하고 있는 갖가지 꽃들의 향연을 독자들과 나눈다. 온갖 색색과 하나 같이 다른 모습의 꽃들이 봄의 시작을 알린다. 아직 꽃샘바람에 움츠리고 있는 서울에 남쪽 꽃소식을 전달한다. 그 하나하나의 이야기와 느낌을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봄시인이다.

“민들레꽃, 양지꽃, 솜방망이꽃, 산괴불주머니꽃, 꽃다지꽃, 애기똥풀꽃은 노란색이다. 제비꽃, 금창초꽃, 하늘매발톱꽃, 봄구슬붕이꽃, 봄까치풀꽃, 얼레지꽃은 보랏빛이다. 광대나물꽃, 앵초꽃, 자운영꽃, 엉겅퀴꽃, 금낭화는 붉은색이며 봄맞이꽃, 개별꽃, 쇠별꽃, 별꽃은 흰색이다. 형형색색, 풀꽃들이 저마다 고운 빛깔로 봄날을 수놓는다. 사람들에게도 저마다의 성정에 따라 좋아하는 색이 있다.”(p.25~27)
그리고선 아니나 다를까, 「봄날은 갔네」를 낭송한데 이어 자신을 노래한 ‘섬진강 박시인’(정태춘?박은옥 <바다로 가는 시내버스> 앨범 수록곡)을 냅다 부른다.

“연분홍 봄볕에도 가슴이 시리더냐/ 그리워 뒤척이던 밤 등불은 껐느냐/ 누옥의 처마 풍경소리는 청보리밭 떠나고/ 지천명 사내 무릎처로 강바람만 차더라/ 봄은 오고 지랄이야 꽃비는 오고 지랄/...♪”
“「봄날은 갔네」가 나올 무렵, 악양에 정태춘?박은옥 부부가 놀러왔다. 술 마시고 책에 사인을 해줬다. 박은옥은 나랑 동갑이라 친구로 지내는데, 갑장 신곡 좀 없소? 그랬는데, 1년쯤 후에 이 노래를 만들었더라. 서울에서 부산으로 가면서 만들었다고. 가사를 써서 보내줬더라. 왜 이렇게 기냐고 했었는데, 3절까지 할 줄 누가 알았겠냐. (웃음) 작년에 이들이 10여 년 만에 낸 <바다로 간 시내버스>라는 앨범에 들어있다.”




영영 성공하지 못할 시인 박남준의 운명

박 시인은 이어 『스님, 메리 크리스마스』의 일부를 낭독하고 이야기를 푼다. 지금은 없어진 전주의 한 콩나물국밥집에 대한 부분이다. 자신이 혼자 가면 돈을 받지 않고 국밥을 건넸던 주인아주머니에 대한 이야기다.

“한번은 그 집 콩나물국밥이 너무 먹고 싶어서 혼자 용기를 내어 들어갔다. 왜 이렇게 오랜 만이냐며 반가운 내색을 하신다. 어서 먹으라고 국밥을 말아주신다. 뚝배기 그릇 맡에 돈을 감춰두고 잘 먹었다며 서둘러 인사를 하고 빠른 걸음으로 가게를 나서는데 “삼춘~”하고 누가 부른다. “예, 이제 성공했으니까 국밥 값 받으세요.” 그랬더니 “아직 멀었다. 장가도 못 가고 자동차도 없는 것 봉께 아직 성공 더 해야것다”고.”(p.107~108)
국밥집 주인아주머니는 2년 전쯤 소장암 수술을 했단다. 그러나 암 세포가 다시 온몸으로 전이가 됐다. 국밥집은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박 시인, 며칠 전 아주머니께 책을 보냈다. 잘 받았다며 전화가 왔다.

“국밥 값 받으려면 국밥집을 열어야겠다며, 훌쩍거리시면서 더 살고 싶다고 하시는 거야. 마음이 무겁더라. 사실 무거운 이야기는 아니고. (웃음) 여러 사람과 함께 가면 내가 돈을 안 내니까, 다른 사람이 내면 돈을 받으신다. 어느 날 혼자 갔더니 안 받더라. 다음에 또 갔더니 안 받는 거야. 국밥값 있는데도, 먹고 싶은데도, 그 집엘 못 갔다. 혼자는 못 갔다. 꽤 불편도 했다. 언제쯤 성공해서 국밥값 받으실까, 했는데 영영 국밥 값을 못 내게 됐다. 그 아주머니에게 나는 영영 성공 못하는 사람이 됐다. (웃음)”

“내가 자주 가는 곳은 ‘장뻘’이라는 조금은 괴상한 이름을 갖고 있는 콩나물국밥집이다. 이 집에 드나들던 인연은 근 20년이 되었다. 그런데 주인아주머니는 아직도 내게 콩나물국밥값을 받지 않는다. 어찌어찌 내가 시를 쓴다는 것을 알고 혼자 사는 가난한 시인이 무슨 돈이 있겠느냐며 밥값을 끝내 고사하시는 것이다. 꽤 오랫동안 밥값을 받지 않는 장뻘에 혼자 갈 수 없었다.”(p.106)
그는 홀로 무악산에서 오랫동안 살았었다. 세상과 유리 혹은 격리된 채 유배하듯 살아온 것은 아니지만, 스스로 그런 삶에 가까웠다고 생각하고 있다. 지리산에 온 것은 올해로 딱 10년이다. 자의반 타의반, 사람들과 만나는 자리를 갖게 되고, 혹은 엮여서 자리를 할 수밖에 없는 경우도 생긴다.

“글 쓰면서 사람들의 이야기가 조금씩 들어간다. 어떤 평론가가 그런 말을 하더라. 내 시집을 보곤, 사람 냄새가 안 난다고. 그래서 노루? 사슴? 그래, 내가 이슬만 먹어, 라고 했지만, 경남(지리산)으로 가니까 소주가 화이트더라. 전북(무악산)에선 하이트를 마셨는데. 구례 잎새주라는 소주가 있다. 요즘 내가 가장 즐겨 마신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소주가 아닌가 싶다. (웃음) 최근 사진 전시회에 잎새주에 인생 저당 잡힌 사람이 있다는 작품을 냈는데, 보해 소주에서 연락이 안 와. 이 정도면 평생 먹을 잎새주를 제공해야 하는데. (웃음)”




박남준, 행복과 희망에 대하여

다시 박남준 시인의 목소리로 詩가 흐른다. 지리산에 관한 詩다. 「가을, 지리산, 인연에 대하여 한 말씀」(『그 아저씨네 간이 휴게실 아래』(실천문학사, 2010) 중에서)

저기 저 숲을 타고 스며드는
갓 구운 햇살을 고요히 바라보는 것
노을처럼 번져오는 구름바다에 몸을 싣고
옷소매를 날개 펼쳐 기엄둥실 노 저어 가보는 것
(…)
아니다 다 쓸데없는 말이다
한마디로 인연이란 만나는 일이다
기쁨과 고통,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는 것
당신을 향한 사랑으로 물들어간다는 뜻이다
봄날에 읊는 가을의 詩도 멋지다. 그리곤,
“혼자 물어보기도 하고, 사람들이 질문도 하는 것 중의 두 가지다. 우스개다. 하나는 ‘왜 결혼 안 하느냐’. 이 봄날에 너는 미우니까 안주고 너한테만 주겠다고 할 수 없잖나. 세상에 고루고루 햇빛을 주기 위함이지. (웃음) 다른 하나는, ‘박남준, 행복해?’. 누군가 처음 그렇게 물어왔었을 때 당황했었다. 행복을 생각해 봤었나? 생각해보지 않았더라. 무악산에 살 때 어느 날 문득 의문이 들었다. 밥 한 그릇과 쑥을 캐 쑥국을 끓이고 김치 한 조각 먹고, 물을 솥에 부어 숭늉을 비우면 행복한데, 그때는 행복하단 생각보다 이렇게 죄를 짓고 살아도 되나, 이런 생각을 했다. 90년대 초였다. 내 한 몸을 위해 사는 게 아니라 세상을 위해 건강한 땀을 흘리거나 자신의 삶을 희생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나만 이리 산 속에서 한 몸 편히 지내면 죄를 짓는 거 아닌가, 행복에 앞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편안하질 않았다. 부채의식이 내 안에 있었다.”

그랬던 그였다. 그리고 세월이 흘렀고, 나이가 들면서 생각이 달라졌단다. 오십 넘고 보니, 내가 할 수 있는 건 하고, 도울 수 있는 건 돕고, 내 삶은 내 삶이라는 그런 생각. 그런 생각에 대해서도 ‘이기적이지 않나’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스스로 행복에 대한 그림을 다시 그렸다.

“한 그릇의 밥을 달게 비워내고, 물을 마시며 따뜻한 아랫목에 뒹굴 거리는 것도 행복하겠지만 내가 가진 것들이 있다고 보면, 필요로 하는 곳에 내 삶을 나눴을 때가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내 행복은 거기 있겠다 생각했다. 그런 행복한 길로 한발자국씩 걸어가다 보면 더 행복해지지 않겠는가? 여러분도 그렇지? 발자국은 어렵지 않다. 한 발 내디디면 거기서부터 길이 시작된다.”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 중국의 루쉰(노신)이 이야기한 행복에 대해 말한다. “희망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땅 위의 길과 같다. 본래 땅 위에 길이 없었다. 누군가 걸어간 길을 사람들이 따라갔을 때 길이 된다.” 희망이나 행복, 그렇게 자신의 발자국 한 걸음을 길이 있는 곳으로 내딛는 것이 아닐까, 시인은 전한다.

무언가 함께 나눈다는 것
걱정해준다는 것
친구가 되는 일이라고 하네
참 아름다운 일이라고 하네
- 박남준, 「우리 집 앞뜰」 중에서 -
“꽃샘추위, 곧 물러가겠지? 지가 악을 쓰고 용을 써봤자, 봄에 당할 재간이 있겠나. 「봄날은 갔네」를 발표했더니, 한 평론가가 이 詩를 쓴 시인이 아내와 사별이나 이혼을 해서 쓸쓸하고 처절한 혼자 사는 이야기를 해 놓은 것 같다는 평을 했다. 소설을 쓰는구나, 했다. (웃음) 지리산에서 즐겁게 살고자 마을 친구들과 밴드를 했다. ‘동네밴드’라는 이름인데, 내게 노래를 안 시켜준다. 물론 다른 친구가 더 잘한다. (웃음) 내가 박강성 노래로 오디션을 봤는데, 떨어졌다. 박강성과 비교돼서 떨어졌나 해서, 직접 곡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가 직접 만든 곡을 부른다. ‘4대강 삽질’에 대한 박남준만의 노래다. 세상 어느 누구와도 비교되지 않는 노래. ‘이런, 제기랄 세상.’ 운운하는 노래를 들으며, 시트콤 <푸른거탑>의 말년 병장 최종훈의 말투가 떠올렸다. ‘이런 젠장’. 삽질에 대해 그렇게 말할 만하다.




박남준 시인이 전하는 봄바람

요즘 가장 즐거운 일과 올해의 계획은?

마당의 꽃들과 이야기하는 시간, 오늘은 뭐가 나왔지 하고 기웃거리고 궁금해 하는 시간이 가장 즐겁다. 올해 계획은 자식을 낳을 수도, 피임을 할 수도 없고, (웃음) 요즘 몸이 안 좋아서 술을 못 마신다. 3월 한계상황까지 참을 수 있는데, 4월에도 못 마시면 끝장을 내려고.

“봄날 햇살이 눈부시다. 아침마다 일어나면 앞마당이며 뒷마당을 돌아다니며 살핀다. 오늘은 무슨 새싹이 돋았는지, 어떤 꽃봉오리가 불쑥 올라왔는지 궁금해서다.”(p.165)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작가들에게 있어 술이란 존재는 얼마나 목숨 같은 것인가. 뗄 수 없는 숙명의 모질고도 질긴 오랏줄 같은 것인가.”(p.142)
스님과 메리 크리스마스는 상반된 의미 같은데, 특별히 의미가 있나?

요새는 음반기획자로 알려져 있는데, 담양에 사는 임의진이라는 전 목사가 있다. 목회활동 하지 않아서 전 목사다(웃음). 언젠가 전화가 왔다. 당시 모르는 사이였는데, 강진에서 목회하는 목사라며, 칠석날 행사에 시낭송을 해달라고 하더라. 가겠다고 하고, 그날 일찍 도착했다. 시간이 남아서 해남 미왕사의 금강스님을 불렀다. 행사 끝나고 절에서 재워달라고 부탁했고, 행사가 끝나고 오셨더라. 목사와 인사를 나누게 했는데, 이젠 날 통하지 않고 가끔 직거래를 하더라. (웃음) 어느 날, 교회에 갔더니, 4월 석탄절에 축하 현수막이 붙어 있고, 성탄절에 절에 갔더니 예수탄생 축하 현수막이 붙어 있더라. 그런 인연이 있었고, 제목은 화계사 주지로 계시다가 세상 일로 갑자기 잠적한 수경스님에 대한 것이었다. 잠적 1년이 다 되가는데 연락이 안 닿아. 다른 분들이 내게 자꾸 전화를 하는 거라. 나도 어디 계신지 모르는데. 그때 신문 칼럼을 쓰고 있었는데, 크리스마스에 가까워져서 걱정이 돼서 편지를 썼는데, 그 제목이다.

힘이 되어주는 말씀 한 구절 들려주신다면?

나는 계획성 있거나 부지런한 사람이 아니다. 언제 詩를 쓰는지 질문도 받는데, 주로 놀고 틈나면 또 놀고, 소풍가고 저녁 되면 술 마시다가 정말 더 할 게 없고 일상이 권태롭고 외로우면 詩를 쓴다. 사실 이런 질문을 받으면 곤란한데, 세상의 성현들이 좋은 잠언이나 경구를 남겼다. 그걸 참고해라. (웃음)

언제 글이 잘 써지나?

전에는 새벽에 글을 썼는데, 이젠 시간이나 계절에 상관없이 쓰기도 한다. 예전엔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주로 2~3월에. 나는 유명한 시인이 아니라서 청탁도 별로 없다. 일 년에 詩 열댓 편정도 발표하는데, 대부분 2월경에 한탕주의다. (웃음) 그때 장사를 한다. 지리산에 와서는 한번에 詩가 잘 써지지 않더라. 한번에 많이 쓰면 2~3편? 그것을 조금 자주 한다.

동안과 매끄러운 피부의 비결은? (웃음)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이 있다. 나는 전남 곡성포가 고향인데, 학교에서 돌아오면 뻘밭에서 온몸에 머그팩을 했었다. 십 몇 년을 머드팩으로 피부 관리한 덕을 보는 것 같다. 틈나는 대로 여름에 머드팩을. 보령에서 나를 홍보대사로 써야 하는데. (웃음) 스트레스를 받으면 온몸의 장기가 영향을 받는다. 매사에 스트레스 받지 않고 살아야 하는데, 세상이 그렇게 녹녹치 않아서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다. 어떻게 스트레스 줄일까. 여러분도 잘 알 것이다. 욕심을 덜 부리면 된다. 조금 덜 갖고, 넓은 평수로 이사 가겠다는 욕심을 줄이면 된다.

가시연꽃을 마당에 키우고 있다. 아는 게 때론 병이 되고 방해가 되기도 하는데, 우포늪에서 가시연꽃을 처음 만났을 때 지름 1미터쯤 되는 큰 잎들이 있더라. 보라색과 흰색이 몽환처럼 피어 있는 꽃이 무척 마음에 드는데, 잎이 너무 커서 그 잎을 키울만한 연못이 있어야겠다 싶어서 포기했었다. 그러다 화계에 차를 만드는 친구집에 갔는데, 가시연꽃을 작은 접시에 키우는 게 아닌가! 그걸 보고 씨앗 두 개를 얻어 심었다. 책 두 권 크기의 돌 수조에서 잎을 피우고 꽃을 피우더라. 수조에 맞춰서 손바닥만 하게 자란 것을 보고, 살 곳을 고집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어떤 생명체든 보고 배우고 일깨우는 스승 아닌 것이 없는데, 가시연꽃이 주어진 환경과 조건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봤다.


“가시연꽃에게서 배운다. 그것은 환경에 대한 적응력이라기보다는 나는 본디 이러하니 이런 대접을 해달라며 자신만을 고집하지 않는 것, 주어진 조건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 결과만을 중시하며 각박하게 질주하고 있는 이 시대에 최선을 다한다는 것을 얼마나 아름다운 일이냐.”(p.77)
삶이 힘들 때 멘토가 되어주는 분이 있나?

멘토라기보다 술친구인데, 소설가 현기영 선생. 문규현 신부, 수경스님, 도법스님과 같은 분들도 있고, 문단에서 잘 어울려 다니는 친구들도 있다. 어떤 공식적인 모임이 끝나고 뒤풀이를 하면 끝장을 보는 친구들인데, 하나같이 많이 다르다. 유용주 시인, 한창훈 소설가, 이정록 시인 등과 같은 친구들이 있는데, 힘겹거나 문학적으로 뭔가 잘 안 될 때 서로 격려해주고 감싸주며, 이가 갈리도록 날카로운 비판을 서슴없이 가해주는 친구들이다. (웃음)

어쩜 그리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나? 책에 붓으로 그린 그림이 멋있다. 언제 배웠나?

(인기 많은 건) 원죄다, 원죄. (웃음) 무악산 살 때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다. 1995년 세 번째 시집 『그숲에 새를 묻지 못한 사람이 있다』가 나오기 전까지는 어떤 해는 청탁이 한 편도 없고, 많아야 1년에 2~3편 청탁을 받을 때였다. 경제적인 활동 않고 산속에 있었는데, 사람들이 찾아오지 않으니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다. 너무 심심하니 혼잣말을 하고 그러던 어느 봄날이었다. 햇빛이 쨍했다. 마루에 앉아 우두망찰(주. 정신이 얼떨떨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는 모양) 있는데, 마당의 돌멩이를 보고 무심코, ‘야 너도 심심하냐, 나도 되게 심심하다’고 말한 거다. 내가 한 말이 내 귀에 우뢰처럼 들려서 깜짝 놀랐다. 그 다음부터 돌 앞이나 개울에 가서 이야길 하면서 위안을 받고 그런 과정을 겪다보니 영혼이 치유되는 것 같더라.

내가 잘할 수 있는 방향이 이런 거려니 했다. 앞으로 사람들에게 나누고 들려줘야 할 것이 이런 거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아버지가 쓰던 벼루를 갖고 와서 먹을 갈아 신문지나 종이에 낙서처럼 그렸다. 1998년 실천문학사에서 두 번째 산문집 『작고 가벼워질 때까지』를 냈는데, 외국 작가들이 크로키나 스케치를 해서 책 내는 것을 보면서 내가 그린 그림으로 책을 만들어보고 싶었다. 그래서 긁적이다가 그때 연필이나 색연필 등을 사용해서 책을 냈다. 그림을 따로 배운 건 아니고, 그림을 책에 넣고 싶은 못 버린 욕심 때문에 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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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 메리 크리스마스 박남준 저 | 한겨레출판
‘섬진강 박 시인’, ‘버들치 시인’으로 불리는 박남준 시인이 산문집 《스님, 메리 크리스마스》를 출간했다. 저자는 자연을 벗 삼은 동매리 산골 외딴집 일상과 기대어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과의 인연을 조곤조곤 풀어놓는다. 홀로 살지 않는 산골 생활의 즐거움이 가득한 이 책에서 저자는 텃밭에서 벌레를 잡고, 꽃들에게 거름을 주며 말을 시킨다. 따뜻한 잠을 위해 나무를 쓰러뜨리는 자신의 삶이 전혀 생태적이지 않다는 저자는 역설적으로 우리에게 스스로의 삶을 돌아보라는 반성의 기회를 주기도 한다. 이번 책에는 저자가 직접 그린 그림도 10여 컷 정도 글과 함께 수록되어 보는 재미를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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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이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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