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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서 홀로 귀양살이를 하는 김정희의 심정이 어땠을까

소장자의 글 욕심은 동양화를 어떻게 바꿨나 - 『한 폭의 한국사』 손영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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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1일, 서울 서교동 인문까페 창비에서 『한 폭의 한국사』의 손영옥 저자(국민일보 문화생활부 선임기자)와의 만남이 열렸다. 저자는 ‘그림 속에 시가 있고, 시 속에 그림이 있다’는 주제로 강연을 펼쳤다.



동양화와 서양화, 어떤 차이가 있나

손영옥 저자는 동양화와 서양화의 가장 큰 차이가 무엇인지부터 묻는다. 동양화와 서양화 사이, 많은 차이점이 있지만, 저자가 꼽는 가장 큰 차이는 동양화에는 글이 있다는 것. 즉, 그림 속에 시가 있고, 시 속에 그림이 있다. 그리고 동양화의 이런 특징에 대해 언급한다.

-재료 : 종이 비단, 묵, 붓-용묵(用墨)
-전시방식 : 두루마리(軸), 족자(圈), 첩(冊)-장황
-공간구성 : 여백
-제발 인장

저자는 두루마리의 예부터 든다. 황공망 <부춘산거도>다.

“<부춘산거도>에 얽힌 재밌는 일화가 있다. 중국의 10대 회화 중 하나로 유명 소장가들이 보유했던 그림인데, 길이만 6미터(33 x 636.9cm)가 넘는다. 명나라 말 우홍위의 손에 들어가는데, 이 그림을 무척 사랑했다. 죽을 때 함께 태워달라고 유언을 했을 정도니까. 그런데 우홍위 조카가 훌륭한 그림이 사라지는 게 안타까워 불이 붙자마자 껐다. 그래서 약간 불탄 흔적이 있고, 국공내전이 일어나고 장개석이 이 그림을 소장했다. 장개석이 대만으로 도망가면서 중국의 유명 회화를 대거 가져갔다. 대만 박물관이 이 그림을 소장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산수화인 안견의 <몽유도원도>에 대한 언급도 빠지지 않는다. <몽유도원도>는 19명의 선비가 글을 썼고, 길이만 20미터에 달하는 두루마기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이어 족자의 예로, 북송의 화가 범관이 그린 <계산행려도>를, 첩의 예로는 김홍도의 풍속화 화첩을 보여준다. 동양화의 중요한 특징인 ‘여백’에 대한 것도 빠지지 않는다. 중국 그림에도 처음부터 여백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당나라 때 그림을 ‘청록산수’라고 말하는데, 당시에는 화면 가득 그림을 채워 넣었다. 여백은 송나라 이후부터 강조되기 시작한다. 배경에 공백을 뒀고, 칠하지 않은 채 여백을 남겨둔 것.

“글과 그림은 한 뿌리에서 나왔다고 ‘서화동원(書畵同源)’이라고 했다. 붓, 먹, 종이, 비단을 쓰고, 동일한 도구를 사용하는 쌍둥이 형제 같다. 사실 상형문자 자체가 그림이다. 동양화는 문학성을 강조한다. 당나라 왕유는 이런 말을 남겼다. “그림 속에 시가 있고 시속에 그림이 있다.” 동양화는 기교나 사물의 묘사 자체보다 그림의 정취를 강조하는 특징이 있다.”

따라서 동양화를 감상하기 위해선 ‘제발(題跋)’, 즉 여백의 글귀도 함께 이해해야 했다. 여기서 ‘제’는 제사 화복의 앞쪽에 쓰는 글이며 ‘발’은 화폭의 뒤에 쓰는 글을 뜻한다. 제발의 내용은 화가에 따라, 제발을 쓰는 사람에 따라 달랐다. 詩를 쓰기도 했고, 그림을 그리게 된 배경이나 그림을 그릴 때의 기분 등을 썼다. 제발을 쓰는 주체도 화가뿐 아니라 감상자나 소장자도 가능했다. 서양화와의 차이는 여기서도 난다. 서양화는 화가가 모든 것을 다루는데, 동양화에선 감상하는 사람도 글을 쓰는 경우가 있었던 것.

그렇다면 이런 제발을 쓰는 전통은 언제부터 생겼을까. 저자에 의하면 원나라 이후다. 북송시기만 해도 사인과 날짜는 눈에 보일 듯 말 듯 썼다. 그러다 남송시기에 여백이 등장하면서 제발이 강조되기 시작했다. 문인화태동과 관련, 여백의 미도 강조됐다.

“북송시절 범관의 <계산행려도>를 보면 화폭 전체가 꽉 차 있어서 글을 쓸 수가 없다. 원나라로 오면서 여백이 본격 등장하는데, 원나라 말의 오진이 그린 <동정어은도>를 보면 시가 여백에 쓰여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림과 글, 화가의 고충

그렇다면, 화가는 그림만 잘 그린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었을 것 같다. 글에 대한 부담은 없었을까. 아니나 다를까. 저자는 화가의 삼중고에 대해 말한다.

“전통 화가는 힘들었다. 그림도 잘 그리고 글도 잘 지어야 했으며, 글씨도 잘 써야 했다. 그래서 이런 말도 나왔다. “치졸한 글씨를 보이기보다 차라리 공백으로 남기는 게 낫다.” 이런 부담이 있었다. 서예 글씨체에 대해서 중국에는 이런 비유를 들기도 했다. 드리워진 이슬, 바람에 날리는 명주실, 하늘을 치는 번개, 풀숲으로 사라지는 놀란 뱀. 글씨를 이렇게 비유한 것을 보면 글씨를 얼마나 중요시했는지 알 수 있다.”

저자는 조선의 추사 김정희가 아꼈던 제자이자 중인 조희룡의 <묵란>을 보여준다. 그에 의하면, 조선 초중기, 그림을 그리고 감상하는 것은 오롯이 양반의 문화였으나 후기로 가면서 중인들도 양반을 따라 한다. 중인들도 그림을 그렸고, 조희룡은 그런 시대의 변화에 따라 각광을 받은 중인이었다. <묵란>에는 난을 그린 뒤 이런 글씨가 새겨져 있다.


우리 집에는 난초가 잡초처럼 흔하다. 미친 듯 함부로 그려낸 것이 네 벽을 가득 채웠다.
우습게도 어린 손자가 겨울 말을 배울 나이에 벌서 붓을 거꾸로 잡고 봄바람을 그리려 한다.
텅 비어 광활한 세계, 맑은 바람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이 경지를 늙은 눈으로 그려낼 수 있을까. 내 못할 게 무엇인가.


“19세기에는 중인 출신의 ‘시서화 삼절’이 나오기도 했어. 양반들은 교양의 기준으로 시를 잘 짓고 글씨를 잘 쓰고, 그림도 잘 그려야 한다고 했는데, 이 세 가지가 모두 빼어난 사람을 석 삼(三) 자와 빼어날 절(絶) 자를 써서 삼절(三絶)이라고 불렀거든. 김정희의 제자였던 조희룡은 대표적인 중인 출신 시서화 삼절이야.”(p.227)

김홍도 <포의풍류도>에 대한 언급이 뒤를 잇는다. 이 작품은 풍류를 즐기는 모습을 그렸는데, 선비처럼 살고 싶은 모습이다. 제발에는 이렇게 써있다.

흙벽에 창을 내고
여생을 벼슬에서 물러나
시나 읊조리며 살리라


“18세기 후반에 절정을 이룬 풍속화는 정조 시절에 조선의 문화가 활짝 꽃피었음을 보여 주는 좋은 사례야. 영조가 죽고 스물다섯 살에 왕이 된 정조는 영조가 오십 년 동안 이룩한 정치적?사회적 안정을 토대로 조선 후기 최고의 문화 황금기를 이룩했어.”(p.209)

김홍도 <마상청앵도>를 보는 순간, 저자는 충격을 받았다. 즉, 고미술에 관심을 갖게 한 계기였다. 제발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아름다운 여인이 꽃 아래에서 천 가지 가락으로 생황을 부나
시 짓는 선비가 술상 위에 귤 한 쌍을 올려놓았다
어지럽다 황금빛 베틀 북이 실버들 물가를 오고 가더니
비안개 자욱하게 이끌어다가 봄 강에 고운 깁을 짜놓았구나


“<마상청앵도>를 자세히 보면 선비가 뭔가를 유심히 보고 있다. 버들나무 가지 사이에서 소리를 내고 있는 새들을 보고 있다. 이 장면을 귤 한 쌍을 올려놓거나 베틀 북을 왔다 갔다 하는 것으로 묘사했다. 이런 비유, 참 아름답다.”




감상자가 쓴 ‘제발’

저자는 감상자가 쓴 제발(그림 속의 글)의 예를 들었다. 화원화가였던 강희언의 대표작 <인왕산도>는 하늘을 여백으로 두지 않았다. 서양화가 들어온 영향이었다. 빈 여백을 하늘색으로 칠했다. 이 작품에 표암 강세황이 제발을 썼다. 강세황은 문인이면서 화가와 교류를 많이 했던 사람이었다. 다음과 같은 내용의 제발이다.


우리 산천의 실제 모습을 그린 작품은 매번 지도와 비슷해서 너무 무미건조한 점이 걱정이었는데,
이 그림은 이미 충분히 사실적이면서 또한 화가의 법식을 잃지 않았다.


“이 그림은 지도처럼 세밀하게 그렸다. 산천을 그리면서 격을 잃지 않았다고 강세화이 칭찬하는 내용이다.”

허나 제발도 마냥 그림을 살리는 것만은 아니었다. 제발이 그림을 망친 경우도 왕왕 있었다. 그 대표적인 것으로 원나라의 조맹부가 그린 <작화추색도>가 있다. <작화추색도>는 조맹부가 귀양을 가서 그를 도와준 친구 주밀을 위해 주씨 집안이 조상대대로 살아온 산동 제남의 교외 풍경을 그린 작품이다. <작화추색도>는 문인화의 출발로 본다. 조맹부는 문인화의 시조로 볼 수 있는데, 소장가들은 그런 이유로 그의 그림을 갖고 싶어 했다. 이에 건륭황제도 빠지지 않았다. 건륭황제는 <작화추색도>에 소유자이자 감상자로서 제발을 썼다.

“제발을 보면 객이 주인을 내쫓는 격이다. 조맹부가 쓴 제발은 하나인데, 건륭이 4개의 제발을 썼다. 너무 많이 쓰다 보니 그림이 가지는 여백의 맛이 완전히 사라졌다. 건륭은 제발 뿐 아니라 인장도 많이 찍었다. 그림을 버린 대표적인 경우다. 조맹부의 제발만 있으면 여백의 미를 살릴 수 있는 그림이나 소장가들의 지나친 사랑이나 과시욕 때문에 그림을 망쳤다.”

양 두 마리를 그린 조맹부 <이양도>도 마찬가지다. 제발은 많지 않은데, 인장이 엄청나게 찍혀 있다. 건륭이 여기서도 대거 인장을 박은 것이다.

조선은 어땠을까. 조선초중기의 소장가는 왕과 왕족, 양반이었다. 그러다 조선 후기로 접어들면서 돈을 번 중인도 소장가로 나섰는데, 석농 김광국이 대표적인 경우였다. 그는 영정조 시절의 어의로 엄청난 컬렉션을 자랑했다. ‘석농김광국화첩’을 보면, 네덜란드 화가의 그림도 있을 정도였는데, 석농은 그림에 대한 예의를 갖춰서 제발이나 인장을 찍었다.

“영조와 정조 시절에 어의를 지냈던 김광국은 재산이 아주 많아서 값비싼 그림을 수집한 것으로 유명했어. 영조와 정조를 거치며 사회적 지위가 올라간 중인들이 양반의 문화도 누리기 시작한 거야. 그 전에는 값비싼 그림을 구입해 감상하는 건 왕실이나 명문 양반 가문이 아니었다면 꿈도 꿀 수 없는 사치스러운 문화였거든.”(p.226~227)

김광국은 네덜란드 화가의 그림에 대해 아래와 같이 평하고 있다.


서양화법은 당나라도 송나라도 아닌 그 자체로 별체이다. 작은 화복에 능히 천 리의 경치를 담고
그 새김 기법 또한 신묘하고 정교하여 비교할 게 없다. 한 폭 수장하여 일격을 갖춘다.


석농김광국화첩에는 공재 윤두서의 <석공공석도>도 있는데, 석공의 노동하는 모습을 직접 관찰해서 그린 그림으로 추정된다. 현대갤러리에서 지금 전시회를 하고 있으며, 역시 이런 평을 쓰고 있다.


이 <석공공석도>는 공재가 그린 것으로 세상에서 말하는 소위 속화이다.
자못 형사를 얻었으나 관아애제 비한다면 오히려 한 수 아래라 하겠다.


“청나라 문화가 들어오면서 조선의 제발도 바뀐다. 추사 김정희 <부작란도>에서 그것을 엿볼 수 있다. 김정희는 글씨나 그림, 제발도 파격이다. 동양화는 제발이 오른쪽에서 시작하는데, 김정희의 것은 왼쪽에서 시작한다.”

“한양에서 가장 먼 세상 끝의 섬, 제주도에서 홀로 귀양살이를 해야 하는 김정희의 심정이 어땠을까. 놀랍게도 김정희는 원망과 울분으로 세월을 낭비하지 않고 다만 글씨를 쓰고 또 썼어. 너무나 파격적이어서 ‘괴이한 멋’이 있다는 추사체는 이처럼 유배 시절의 인내와 끊임없는 연습 끝에 탄생한 것이야. ‘내 칠십 평생 벼루 열 개가 닳아 구멍이 났고 붓 천 자루가 몽당붓이 되었다.’ 김정희가 남겼다는 말이야. 얼마나 많이 벼루에 먹을 갈고, 붓으로 글씨를 썼을지 상상이 되니?”(p.220)


Q&A

어떤 과정을 통해 이런 미술 공부를 하게 됐는가?

학창시절, 미술동아리를 했었다. 그런데 기자생활 하면서 그림 그리고 싶은 욕구는 안 생기더라. 그러다 직장 생활이 중반쯤 되자, 전문분야를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 미국 연수를 가서 경제학을 공부했는데, 생각이 바뀌었다. 필요한 일보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었다. 김홍도 그림이 내 마음으로 들어오면서 전통미술을 공부하겠다며 대학원에 들어갔다. 서양화보다는 중국 미술과 한국 미술을 공부했었다.

일반적으로 그림에 대해 제목을 붙일 때 화가가 하는가, 소장자나 다른 후대 사람이 하나?

후대에 붙이는 경우가 많다. 소장자가 붙이는 경우도 있고, 현대에 와서 붙이기도 한다. 김홍도의 <송하선인>도 나중에 붙은 경우다. 현대 그림에서 제목이 갖는 의미와는 조금 다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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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폭의 한국사
손영옥 저 | 창비
이 책은 그림 한 폭에 얽힌 이야기와 역사, 사회문화를 풀어가면서 한국사 전반을 쉽고 재미있게 공부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미술 역사서다. 저자는 선사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한국사를 관통하는 16가지 대표 예술품을 설명하면서 작품들이 만들어진 시대적 배경까지 상세히 알려 준다. 역사는 암기 과목이라는 선입견을 가졌던 청소년들은 이 책을 통해 역사가 사회와 문화, 사람 등 여러 요소들이 얽히고 설킨 한 편의 이야기와 같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예술품조차 암기의 대상으로 교육받던 이들에게 미처 알지 못한 그림 보기의 매력을 알려 주어 ‘보는 즐거움’을 일깨워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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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이준수

커피로 세상을 사유하는,
당신 하나만을 위한 커피를 내리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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