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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가장 힘 센 신은, 지름신” - 전우용 『오늘 역사가 말하다』

역사학과 인문학을 하는 것은 ‘인간다움에 대한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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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우용 교수는 『오늘 역사가 말하다』 출간 기념 강연회에서 최근 나날이 섬뜩해지는 공포의 수사를 통해 ‘인간다움’의 상실을 엿봤다. 강연의 주제는 ‘인간과 역사: 인간다움에 대한 역사학적 성찰’이었다. 전 교수는 오래 전부터 자신의 트위터(@histopian)에도 그런 염려를 표출하기도 했다.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은 이렇게 맺음하고 있다. “밖에서 지켜보던 동물들의 시선은 돼지에게서 인간으로, 인간에게서 돼지로, 또다시 돼지에게서 인간으로 왔다갔다 분주했다. 그러나 누가 돼지이고 누가 사람인지 구별하기란 이미 불가능했다.” 동물농장에서 왕으로 군림하는 나폴레옹(돼지)이 다른 농장주(인간)과 결탁해 도박을 하고 술을 마시다가 싸움이 벌어지는 장면에서 끝이 난다. 이 소설은 러시아혁명과 공포정치를 부활시킨 스탈린 독재에 바탕을 둔 정치우화다. 동물에 빗대 스탈린 독재를 비판한 소설로 혁명 이후 권력이 어떻게 변질돼서 인민을 억압하는가를 자세히 보여준다. 인간은 동물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존재지만, 혁명을 배반하고 인간다움을 저버린 독재자를 돼지에 빗댐으로써 소설은 몰입도를 강화한다.

역사학자 전우용, 인간다움에 대한 탐구와 성찰, 이것이 결여될 경우 돼지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즉, 역사학과 인문학을 하는 것은 인간다움에 대한 탐구임을 강조한다. 『동물농장』에서 조지 오웰이 독재와 공포정치를 행하는 주체를 돼지로 삼은 것도 어쩌면 그런 맥락일는지도 모른다.

사람다움을 위해, 우리는 역사를 과연 잊지 않고 제대로 기억하고 있는 것일까. ‘기억의 의무’를 저버린 것은 아닐까. 역사는 한 번 가르쳐 준 것을 잊어버리는 자에게 매우 가혹하다는데, 우리는 지금 가혹함을 예약한 것은 아닐까. 노인의 기억력 감퇴가 젊은이를 다시 수렁에 빠트린 어떤 현실이 떠오른다. ‘인간다움을 고민하는 삶’에 대한 역사학자 전우용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사람은 언제 동물과 이별했을까?

전우용 교수에 의하면, 전 세계 시조신화는 비슷한 구조다. 한국의 단군신화를 보자. 단군의 할아버지는 환인이다. 즉, 제석(帝釋), 하늘의 신이다. 하늘의 신의 아들인 천자 환웅이 아래 사람들을 보고, 널리 사람을 이롭게 하겠다는 마음을 품고 모든 것을 가르친다. 이를 통해, 동물과 똑같은 존재였던 인간은 특별한 존재로 바뀐다. 그러자, 인간과 같은 맥락에 있던 동물들이 질투를 한다. 곰과 호랑이가 인간이 되게 해달라고 빈다. 인간의 몸을 얻은 곰이 아이도 낳고 싶다고 해서 환웅과 결합해서 낳은 아이가 단군이다. 이를 통해 볼 수 있듯이 사람의 조상은 사람이 아니다. 상상 속의 존재, 신이 개입한다. 신이 개입함으로써 사람은 다른 존재 혹은 동물과 구별됐다. 근대 문명의 탄생기, 공통적으로 이와 같은 신화가 나타났다.

고대 지중해 세계, 인간은 하늘에 속하지도 않고 지상에도 속하지 않는 존재였다. 고대인들은 따라서 세상에 친지인(우주, 자연, 인간) 세 개가 아닌 신, 인간, 괴물, 동물 등이 있다고 봤다. 신과 인간 사이의 중간적 존재인 ‘반인반신’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즉, 영웅이었다. 헤라클레스 등과 같은 영웅이 괴물을 무찔러서 인간을 구해주는 신화가 등장하는 이유다.

“그리스 로마 신화의 영웅들은 모두 신과 인간의 혼혈입니다. 기독교의 예수 그리스도도 신과 인간의 혼혈이며, 우리 민족의 시조로 추앙받는 단군도 천신의 아들과 곰 사이의 혼혈입니다. 영웅은 ‘신에 가까운 인간’,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인간’입니다.”(p.35)

이어서 등장한 세계는 신, 메시아, 인간, 동물로 나눠졌다. 중세로 넘어오는 이 시기, 중요한 것은 인간과 동물의 중간적 존재가 사라진다는 점이었다. 성경에도 악마는 나오지만 괴물은 나오지 않는다. 논어, 맹자를 봐도 용과 같은 이야기는 없다. 동물과 인간의 이별이다.

“기독교 세계에서 신은 단 하나다. 단 하나의 영웅이다. 사람은 동물과 이별했다. 신은 인간을 타락에서 구하는 존재로 나온다. 그렇다면 타락은 뭔가. 인간이 동물화 되는 것을 타락으로 봤다. 동물적 습성에서 벗어나는 것이 사람다움이라고 봤다. 사람다움의 표상은 사제다. 신의 뜻을 따르고 다른 인간을 구제해줄 수 있는, 타락에서 막아줄 수 있는 것이 사제였다. 동양에도 비슷한 사고가 있었다. 여기도 괴물이 사라졌다. 십이지신은 그림으로 남고 서사에서 사라졌다. 신, 천자, 인간, 동물로 나눠졌는데, 다만 천자는 부활하지 못한다. 기독교의 메시아는 부활하지만, 중국 유교의 천자는 영원히 살지 못하나 신의 율법과 사람의 도리를 따진다.”


인간, 신의 존재를 의심하고 동물과 다르지 않음을 발견하다

인간은 다시 변화를 겪는다. 전우용 교수는 1492~1543년 사이에 인간 의식에 혁명적 변화가 일어났다고 전한다. 그전부터, 즉 13세기 몽골의 유럽원정(침공), 페스트의 유럽전파, 유럽에서 진행된 마녀학살 등이 신의 존재를 의심하게 했겠다. 그러다 1492년 콜럼버스의 대서양 횡단이 땅에 대한 인간의 생각을 송두리째 바꿨다. 이어, 1543년 코페르니쿠스의 『천체의 회전운동에 관하여』라는 책이 나왔다. 괴테가 말했다. “지구는 우주의 중심점이라는 엄청난 특권을 포기해야 했다. 이제 인간은 엄청난 위기에 봉착했다. 낙원으로의 복귀, 종교적 믿음에 대한 확신, 거룩함, 죄 없는 세상, 이런 것들이 모두 일장춘몽으로 끝날 위기에 놓인 것이다.”

“1592년 안드레아스 베살리우스는 『인체 해부에 대하여』라는 책을 냈다. 사람의 몸을 해부하는 것은 신의 몸을 해부하는 것과 같았는데, 이제는 달라졌다. 사람과 동물은 얼마나 다른가? 이 책을 통해 동물계로부터 수십만 년 벗어나려는 노력을 해왔으나, 인간과 동물이 별로 다를 게 없다는 것이 밝혀졌다. 물론 인식이 바뀌기까지 시간이 좀 더 걸린다. 200~300년 동안 인간에 대한 논쟁이 격렬하게 펼쳐진다.”

19세기에 이르러서는 새로운 인간관이 튀어나온다. 찰스 다윈과 칼 마르크스에 의해, 인간은 ‘진보된 동물’임을 확인한다.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전 교수는 정리한다.

-찰스 다윈

ㆍ인간도 동물이다.
ㆍ인간의 본성과 동물의 본성은 다르지 않다.
ㆍ진화의 동력은 약육강식, 우승열패, 적자생존, 즉 경쟁이다.
ㆍ동물 진화의 원리와 사회 진화의 원리는 같다.

-마르크스

ㆍ종교는 인간 본성의 환상적 실현
ㆍ만국의 프롤레타리아여 단결하라!
ㆍ사회주의적 인간형 = 수도사적 인간형
ㆍ지상천국론의 계보
ㆍ당=교회 / 해방=구원 / 혁명=최후의 심판 / 부르주아=사탄

“마르크스의 인간형이 왜 수도사적 인간형인지 궁금할 수도 있을 거다. 박노자 교수가 한국에 와서 그 경험을 쓴 적이 있었다. 한국에 온 이유 중 하나가 공산당 청년당 활동을 하기 싫고 지겨워서였다. 그런데 한국에 와서 교회청년부 집회에 갔더니, 그게 공산당 청년당 활동과 같았다는 거다. 한국 기독교만의 특징이다. 수사적 인간. 금욕, 대의를 위해 희생하고, 당이 교회고, 해방이 천국의 실현이고, 다 이어진다. 구조가 똑같이 연결된 틀이었다.”


인간의 무모함, 그리고 악의 평범성

마르크스와 다윈의 생각이 당대에 힘을 계속 얻었다. 그런 와중에 인간에 대한 회의를 하게 만드는 사건이 일어났다. 전쟁이다. 경쟁의 가장 노골적이고 비열한 형태. 전쟁을 통해 인간이 상상했던 악마의 모습이 인간으로 나타났다.

“전쟁은 인간 자체의 문명을 파괴시켰다. 생각해 보라. 전쟁(터)에서의 인간은 어떻게 사나? 짐승같이 산다. 체면도 염치도 다 버리고, 살아남기 위해 짐승이 됨을 경험했다.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도 마찬가지다. 자기보다 약하다고, 해롭다고 믿는 집단을 인간으로 취급 않는다. 그래서 절멸시키려는 시도를 했다. 프랑스 생마르탱데스토레오의 1차 대전 기념문을 봐라. ‘1,200만 명 이상의 사망자, 인간들의 곤경 위에 쌓아올려진 치욕적인 재산들, 처형장에 선 죄 없는 사람들, 훈장을 받은 죄인들. (중략) 전쟁과 그 주역들에게 저주 있으라.’ 인간이 상상했던 어떤 악마도 인간만큼 잔인하지 않았다.”

[ 서울은 깊다 ]
[ 현대인의 탄생 ]
[ 한국 회사의 탄생 ]
결국 인간은 ‘인간이 뭐냐’는 질문에 재봉착했다. 진보한 결과가 고작 인간을 악마로 만든 것. 악마가 된 인간은 자기 자신을 멸망시킬 수 있다는 두려움에 휩싸였다. 이에 휴머니즘이 나타났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인간다움을 다시 찾아야 한다는 움직임. ‘어떻게 해야 공멸을 피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르네상스가 1차 휴머니즘이라면,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겪고 난 뒤 2차 휴머니즘 운동이 펼쳐진 것이다. 정의, 인도와 같은 단어가 심심찮게 등장했다. 힘센 나라가 약한 나라를 지배하는 것이 자연법칙이라고 그전에 생각했었지만, 그렇게 살지 말자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약자의 배려 등이 정의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와 함께 인간은 경제성장을 진화의 징표로 뒀었다. 그러나 대공황을 겪고 달라졌다. 대부분 주식들이 휴지조각이 되고, 재산이 줄어들 수 있음을 알았다. 이에 20세기 중후반까지, 인간은 새로운 고민을 한다.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 덜 신 같으면서 동물적 욕망을 긍정하는, 그러면서 동물과 얼마나 거리를 둬야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됐다.

“이때 19세기부터 20세기까지 다른 고민도 있었다. 새로운 신들이다. 그래서 신상을 만들고 동상을 만들었다. 동상을 세운다는 것은 사람을 신으로 바꾸는 행위다. 신격화의 표현이다. 지금 우리는 전지전능한 존재가 없다는 것을 안다. 그런데 있다고 믿는 게 있다. 재산이다. 재산은 잘 가꾸면 영원불멸할 거라고 생각한다. 더구나 돈은 못하는 게 없다고 생각한다. 불과 몇 십 년 사이 한국인, 전 세계인은 이 신을 믿는다. 뭐라고 기도하는지 진심을 보면 ‘돈 벌게 해 주세요’다. 옛날 최고의 신들도 돈신의 하위로 전락했다. 하느님, 부처님에게 돈 벌게 해달라고 빌지만, 실은 물신을 부르는 거다. 요즘 가장 힘 센, 신중의 신은, 모든 사람이 기꺼이 고개 숙이게 하는 건 지름신이다. 욕망과 물질, 재산이 과거 신의 자리를 차지했다.”

“수도는 언제나 그 시대 사람들이 섬기는 ‘신’을 닮았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은 어떤 신을 닮았을까요? ‘지름신’의 모습과 비슷하지 않은가요?”(p.145)


새로운 신의 등장에 종속된 인간

어쨌든 20세기 들어 영원불멸하며 전지전능한 새로운 존재가 나타났다. 세계는 물질과 기계에 포위되기 시작했다. 한국만 봐도 알 수 있다. 1910년에서 100년 사이, 인구는 4배 늘었다. 반면, 1910년 3대에 불과했던 자동차는, 지금은 2천만 대에 육박한다. 물신(物神), 유일신만 존재한다. 이처럼 생명체보다 비생명체가 확연히 늘면서 기계와 인간의 유사성을 유추하는 사고도 나왔다. 인간도 기계라는 환상으로 젖어들었다. <은하철도999>가 대표적이다. 주인공 철이가 기계의 몸을 얻고자 하는 것, 영생불사다. 최근 몇 년 사이에도 영생불사가 인간을 기대에 부풀게 만들었다. 전 교수, 인간관이 굉장히 동요하면서 인간이라는 좌표가 흔들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최근 한국사회에서 두드러진 어떤 추세를 든다.

“어떤 사람들은 책을 읽어 마음을 가꾸는 것이 아니라 칼을 대서 얼굴을 바꾼다. 예수와 석가모니는 자기 몸을 괴롭혀가면서 인류를 구원시키기 위해 고행을 했다. 그런데 요즘은 다이어트와 건강을 위해 고행을 한다. 헬스클럽은 고행의 장소다. 내면보다 신체에 집중하고, 인간은 물화된 존재가 되고 있다. 또 사람을 규정하는 정의 자체가 바뀌고 있다. 예전엔 이름 석 자가 사람을 규정하는 정체성이었다. 거기서도 성은 조상으로 물려받고, 중간은 돌림자, 자기 것은 한 글자였다. 요즘은 성도 부모 성을 같이 쓰는 등 이름에서 개인이 차지하는 몫이 커졌다. 재산이 인간의 평가기준으로, 정체성을 규정하고 있다. 인간이 점점 더 물질화되고 기계화되고 마음을 돌보지 않는 몸 중심이 되고 있다.”

인간이 믿어온 신이 변하고 있다. 신은 실은, 인간본성에 대한 정의를 표상했다. 인간이 이렇게 돼야한다는 믿음의 산물이었다. 구석기 시대에는 이것이 벽화로 드러났다. 그때는 인간이 동물보다 못함을 인정했다. 신석기 시대, 사람을 닮은 신이 등장했다. 종족 번성을 빌었다. 청동기 시대, 동물과 인간을 합체했다. 스핑크스가 대표적이다. 동물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철기시대에 들어서, 동물에서 벗어난 인간 자체의 모습을 신으로 상상했다. 인간이 자신을 닮은 모습으로 신을 생각했고, 그 신이 인간을 창조했다고 여겼다.

“인류가 일정 기간이나마 특정한 장소에 정착하게 된 것은 신석기시대 농경이 시작된 이후의 일입니다. 그들은 밭을 일구고 집을 지었습니다. 지금도 간혹 신석기시대 집터나 농경지 터가 발견되곤 합니다. 이렇게 사람이 땅에 남긴 무늬를 ‘터무니’라고 합니다. 인류 문명은 터에 무늬를 새기는 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터무니없다’는 말은 근거 없다, 허황하다 등의 뜻입니다. 사람이 땅에 발을 딛고 사는 존재이기에 이런 말이 생겼을 것입니다.”(p.275)

그렇다면, 지금의 새로운 신은? “기계다. 장기가 고장 나면 장기를 만들고, 체세포를 복제한다. 인간은 그렇게 영생불사를 꿈꾼다. 이게 좋은 것이냐. 결론을 내리자는 게 아니다. 우리 자신이 생각하는 인간은 무엇인가. 나는 어디에 점을 찍고 있는가. 돈, 기계, 등으로 만들어진 다차원적 세계에서 인간은 무엇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휩쓸려가면서 1차 대전 즈음의 인간형으로 갈 수 있다. 요즘 사람을 반동이라며 학살을 연상케 하는 발언이 나오고 있다. 오늘 한 탤런트가 안철수 전 후보와 관련해서 할복을 말해서 화가 났다. 왜 이렇게 돼 가는지 모르겠다.”

“역사는 한 번 가르쳐 준 것을 잊어버리는 자에게 매우 가혹합니다.”(p.313)




트위터를 보면, 1, 2, 3과 같이 나눠서 하더라. 대개 얼마나 시간이 걸리나?

요즘 좀 바빠져서 하루에 1시간 정도만 트위터를 본다. 트위터에 글 쓰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진 않는데, 140자에 맞춰야 하다 보니 하나를 올리는데 5~10분이 걸리는 경우도 있다.

『서울은 깊다』의 경우, 오랫동안 축적된 것을 쓴 것 같은데, 역사를 쓸 때 어떻게 쓰는지? 후속편을 쓸 계획도 있나?

『서울은 깊다』를 구상할 때부터 그걸로 끝낼 생각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현대까지 쓸 생각이었는데, 내용이 길어져서 그리 못했다. 뒤쪽은 바로 쓰려고 했는데, 산다는 게 그렇잖나(웃음). 그래서 손놓고 있다가 작년에 돌베게(출판사)에서 독촉하더라. 한겨레21에도 연재하고 있다. 2주에 15~20편씩 썼으니 300매 정도 됐다. 1년 정도 그랬으니 몇 년 더 있어야겠네. 자료는 많이 구해 놨다. 내가 하는 일이, 험하게 말하면 지저분하다. 공공기관 등에서 유물 감정을 할 때 평가단으로 참가도 하는데, 그런 것을 통해 사료를 모은다. 외환위기 이후 김대중 정부가 해온 사업이 한국의 인문학, 사회과학 자료를 정보화했다. 공공근로사업을 통해 후손들에게 득이 될 만한 사업을 했다. 그런 것들이 학자들에게 도움이 됐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공을 무시하지 말라는 얘기가 있다. 정말 공이 있는 건가?

누구나 공과가 있다. 공과가 없는 사람이 어디 있나. 아무리 나쁜 사람이라도 잘한 것이 있겠지. 사람은 죽을 때 평가가 된다. 아마도 박정희 전 대통령이 3선 개헌을 안 하고 물러났다면, 쿠데타도 묻혔을 것이다. 공이 아무리 많아도, 그가 남긴 유산인 독재, 유신, 사법살인은 어떤 공을 세워도 그 부분을 덮기가 어렵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정말 공이 있는가. 제3세계에서 나타나는 현상인, 사회의 중요한 재원인 지식, 정보, 기계 등을 군대가 독식하는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불가피하게 군사독재로 이어질 수 있는 조건이나, 그것이 군사독재를 정당화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저급한 정치인에게 역사의식 없는 국민은 다루기 쉽습니다. 국민의 역사의식을 제 편한 대로 바꾸려 드는 정치인은 스스로 저급한 정치인임을 폭로하는 셈입니다. 그런 정치인들에게 당하지 않으려면 스스로 역사 공부를 해야 합니다. 공부는 성공하기 위해서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속지 않고 살기 위해서도 필요합니다.”(p.77)

역사학 하겠다고 하니, 집에서 먹고사는 문제 등으로 고민한다. 역사학이 앞으로 어떻게 나아갈 거라고 보며,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줄까?

역사학과에 가겠다니까, 고등학교 졸업식 날 선생에게 맞았다. 역사학, 인문학을 하는 것은 인간다움에 대한 탐구다. 그건 돼지가 돼선 안 된다는 것이다. 인문학이 사회적으로 얼마나 기여를 할 수 있을까를 보면, 지금이 그런 시기다. 인간이 인간다움에 대한 회의, 스스로 참담함을 느낀 건, 전쟁이 끝나고 난 뒤이다. 그런데, 인간의 기억력이 얼마나 짧으냐면, 인간이 반성하고 그게 얼마나 가느냐면, 한 세대밖에 못 간다. 지금은 인문학이 문제가 아니고, 인문학과 어떻게 융합할 것인지가 관건이다. 인간다움을 고민하는 삶이 안 된다면 사회가 망한다. 자각이나 각성은 시작됐다.

“언젠가 트친 한 분이 ‘우리 역사상 가장 중요했던 순간은 언제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어왔다. 나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바로 지금’이라고 대답했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E.H.Carr의 정의를 뒤집을 수 있는 말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p.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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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역사가 말하다
전우용 저 | 투비북스(TOBEBOOKS)
우리 일상과 사회의 관심거리가 되는 소재와 주제를 다룬 역사이야기 300편이다. 저자는 과거와 현재의 메신저이자 우편배달부를 자처하며 ‘바로 지금’화제가 되는 것들의 과거를 탐색하여 그 내용을 현재의 우리에게 전해준다. 과거가 전해주는 이야기는 세밀하며 흥미롭고, 역사의 메시지는 통렬하다. 주제는 총 300가지로, 인물, 정치, 사회경제, 문화, 학문과 민족 등의 여러 분야에 걸쳐 무심코 쓰는 생활 어휘부터 첨예한 독도 문제까지 일상과 세태의 거의 모든 것을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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