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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식사가 좋으면 그 여행은 완벽해진다”

자금성과 후퉁, 스차하이, 그 옛적 청나라를 걸어본 셋째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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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첫 코스, 천안문 광장으로 향합니다. 이 광장은 베이징 시내 중앙에 있는 천안문 맞은편에 있습니다. 무려 100만명의 군중이 집회를 할 수 있는 세계에서 가장 큰 광장이라고 하는데, 우리에게는 1989년 6월 4일의 ‘천안문 사태’로 더욱 유명한 곳이기도 합니다. 개혁, 개방이후 민주화를 요구한 학생과 시민들을 중국 정부가 전차까지 동원하여 무력으로 진압한 사건이지요.

말이 필요없는 천안문 광장과 자금성

또다시 베이징에서 눈 뜨는 아침. 혼자 여행을 다녀본 적은 여러번 있었지만 혼자 호텔 트윈룸을 써 보기는 이번 여행이 처음입니다. 아침에 혼자 눈 떠서 텅 빈 옆 침대를 보니 말할 수 없이 이상한 기분이 들더군요. 이렇게 이틀 동안 절절히 외로워했기 때문이었을까요? 셋째날, 저는 그동안의 외로움을 다 보상받으라는 듯, 엄청난 인파에 휩쓸려 허우적거리게 됩니다.



천안문 광장에서 찍은 단체사진 (소정씨 사진)

조식을 마치고 오늘의 첫 코스, 천안문(天安門 : 텐안먼) 광장으로 향합니다. 이 광장은 베이징 시내 중앙에 있는 천안문 맞은편에 있습니다. 무려 100만명의 군중이 집회를 할 수 있는 세계에서 가장 큰 광장이라고 하는데, 우리에게는 1989년 6월 4일의 ‘천안문 사태’로 더욱 유명한 곳이기도 합니다. 개혁, 개방이후 민주화를 요구한 학생과 시민들을 중국 정부가 전차까지 동원하여 무력으로 진압한 사건이지요.

당시 저는 고등학생이었는데 얼마나 티비에서 뉴스로 크게 다루었던지 지금까지 천안문이라고 하면 저는 이 사건이 먼저 생각나곤 했었지요. 그동안 이렇게 저는 외국인의 시선으로만 천안문을 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답사 전에 읽고온 『중국인 이야기』의 이 대목 덕분에 이제 천안문이 중국인들에게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 조금 알 것도 같군요.




1949년 10월 1일 오후 3시, 중국공산당은 천안문광장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을 선포하는 개국대전 의식을 거행했다. 이른 아침 타이완의 장제스 관저에는 개국대전 식장 공습 명령을 하달해달라는 공군 사령관 저우즈러우(周至柔)의 전화가 빗발쳤다. 장제스는 출격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좀 기다려라”가 화답이었다. (중략) 공산당에 패해 타이완으로 철수했지만 당시 국민당은 막강한 공군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공습 계획도 장제스가 직접 지휘했다. 그러나 최후의 순간에 그의 발목을 잡은 것은 장소 때문이었다. 사람들이 죽고 사는 것은 대단한 일이 아니었다. 문제는 천안문과 자금성이었다. 장제스가 다른 곳이라면 몰라도 천안문은 절대로 공습하지 않을 것이라고 마오가 확신했기 때문에 천안문광장에 수많은 인파를 모아놓고 개국을 선포했다고 흔히들 말한다. 또 장제스가 출격명령을 내렸다면 실패할 확률은 거의 없었다는 것도 중론이다.
『중국인 이야기』 402쪽에서 인용



광장 동쪽에는 중국역사박물관과 중국혁명박물관, 서쪽에는 인민대회당, 그리고 남쪽에는 인민영웅 기념비와 모주석기념당이 있습니다. 여기서 잠깐 자유시간을 갖기로 합니다. 답사팀원들은 각각 자신들의 관심있는 건물을 찾아 사진 찍으러 갑니다.



인민영웅 기념비와 모주석기념당 입장객들의 대륙적 줄서기.

저는 남쪽, 인민영웅기념비와 모주석 기념당을 향해 가 봅니다. 가 봅니다. 또 가 봅니다. 진짜 열심히 가 보았건만 가도 가도 제자리입니다. 워낙 광장이 넓고 사람이 많아 인파를 헤치고 앞으로 나아가기가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리도 가이드이신 임미화님의 말씀에 따르면, 이 정도는 천안문 광장치고 한가한 편이라고 하니, 정말 대륙의 인파란! 게다가 이 긴 줄이 전부 마오쩌둥의 묘역에 참배하는 줄이라니!

『중국인 이야기』를 읽으면 혁명과 사랑에 뜨겁게 뛰어든 중국 근현대의 멋진 여성들을 많이 만나게 됩니다. 마오쩌둥의 세 번째 부인이었던 허쯔전(賀子珍) 역시 재능이 뛰어난 여성이었습니다. 그녀는 마오쩌둥과 대장정을 함께하였건만 온몸에 탄환과 파편이 박힌 채 장칭(江靑)에게 빠진 남편 마오쩌둥에게 버림받습니다. 그후 헤어진 지 20년 만에 살아서 한 번 마오쩌둥을 만난 후, 다시 20년 후에 모주석 기념당에 안치된 수정관 속의 사후 처리된 시신으로 그를 만났을뿐입니다. 유치한 학구열을 지닌 저는 그래서 베이징에 가면 허쯔전처럼 모주석의 수정관 앞에 서 보고 싶었습니다. 모든 이의 숭앙을 받는 혁명가이지만 자신에게는 사랑했던, 그러나 가질 수 없었던 남자였을뿐인 한 늙은 남자를 바라보는 여인의 마음을 느껴 보고 싶었습니다만…아, 이 대륙의 인파를 거스를 수가 없군요.



한길사 김언호 사장님과 행사 담당자 소정씨.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계속 광장을 혼자 어슬렁거립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계속 만나게 되는 빨간 티셔츠 입은 한 남자가 있었으니… 저의 미모에 반한 스토커 중국남이 아니라 바로 한길사 김언호 사장님! “어이, 거기 좀 서 봐요. 카메라 보고.”

저는 답사 첫날, 커다란 전문가용 사진기를 메고 나오신 김언호 사장님을 뵙고, 저는 이분의 취미가 사진찍기이신줄 알았습니다. 둘째날에는 아, 그냥 사진이 아니라 인물사진 찍기를 좋아하시는구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셋째날인 이날, 확실히 알아차렸습니다. 아, 그냥 사진찍기가 아니라 여자 사진찍기가 취미시구나… 라고요.

오랫동안 책읽는 루저이자 작가 지망생으로 살아온 저. 예스 블로거 친구분들께 여러번 글로 말씀드렸듯이 저는 한길사에서 나온 시오노 나나미의 책들을 모두 읽으며 역사 에세이스트의 꿈을 키웠지요. 뿐만입니까? 한길 히스토리아 시리즈의 아베 긴야와 페르낭 브로델, 한길 그레이트 북스 시리즈의 마르크 블로크와 에릭 홉스봄을 읽으며 제 지식을 쌓고 사관을 정비해 왔습니다. 물론 20년 전에 읽었던 영원한 고전 『해방전후사의 인식』을 통해 기본적 각성을 경험했고요. 이런 독서 이력을 가진 제가 만약 한길사 사장님과 찍고 찍히는 관계가 된다면 그것은 분명 저자로서 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찍히는 관계가 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뜻밖에 사진 찍고 찍히는 관계가 될 줄이야! 아, 제 꿈을 이루는 과정은 참 멀고도 멉니다… 아, 정정합니다. 한길사 김언호 사장님의 취미는 그냥 여자 사진찍기도 아니고 “예쁜 여자 사진찍기”입니다. 왜냐고요? 저를 많이 찍으셨으니까요. 하하.



자금성내 태화전 모습

마오주석 초상화가 걸린 천안문을 지나 단문을 통과하여 한참 걷다가 오문을 통과합니다. 지금부터가 진짜 자금성의 시작입니다. 내금수교를 건너 태화문을 통과하여 태화전을 지나고 건청문을 통과하여 건청궁을 봅니다. 자금성 내의 궁궐뿐만 아니라 베이징의 주요 건축물들은 이렇게 자금성을 중심으로 중축선을 따라 놓여 있습니다. 명 영락제때 완성된 자금성은 명, 청 양 왕조시대의 황궁이었습니다. 현재는 고궁이라 불리는 자금성이란 이 이름은 북극성을 의미하는 자미성과 금지한다는 의미에서 왔다고 합니다.

학구적인 저는 정말 자금성에 와서 직접 보고 확인하고 싶은 것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이 대륙적 인파에 휘몰리는 순간, 대륙의 여름 한낮 열기에 노출되는 순간, 그동안 벼르고 별렀던 모든 계획들이 하나도 생각이 나지 않더군요. 친구분들, 중국관광여행에서 가장 많이 구경하게 되는 것이 뭔지 아세요? 고궁? 사찰? 시장? 노, 노, 노! 바로 중국인 구경입니다. 저도 자금성의 궁궐보다 앞서 가는 중국인들 뒷머리 구경만 잔뜩 한 것 같습니다.

고궁의 북문인 신무문을 빠져나와 명의 마지막 황제인 숭정제가 목 매어 자살한 경산을 바라보며 짧고 아쉬웠던 자금성 관광을 끝냅니다. 대륙의 더위와 대륙의 인파와 대륙의 먼지에 시달려, 관광버스에 오르기 직전의 우리 답사팀의 모습은 거의 거지꼴이었습니다. 이후 우리는 ‘굉장히, 매우, 심한’의 의미로 ‘대륙의, 대륙적인’이란 수식어를 사용하며 대화를 나누게 됩니다. 오, 이 답사 후기, 대륙적으로 길고 말 많고 지겹죠? ㅋㅋ


난뤄구샹 후퉁과 왕푸징 대가, 옛날과 현대의 거리



난뤄구샹 후통 거리의 상점가

중식을 먹고 기운을 차린 후, 다음 행선지를 의논합니다. 김명호 교수님께서 추천해주시는 베이징 옛거리, 일명 후통을 방문하기로 합니다. 답사팀원들은 교수님의 난뤄구샹 후통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듣고,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들이 자금성처럼 많지 않다는 말에 대륙적으로 열광합니다.

세계 어디를 여행하든 궁궐이나 거대 기념건축만 보고 온다면 그건 지배계층의 삶과 생각만 엿보고 온 셈이죠. 베이징에 왔으면 황실의 삶의 흔적뿐만 아니라 베이징 서민의 삶의 흔적도 더듬어 봐야겠죠. 이럴 때 가보는 곳이 바로 후통(胡同)입니다. 후통은 특정한 지역의 이름이 아니라 일반적인 베이징의 골목길입니다. 원나라 때 우물을 의미하는 몽골어 홋톡의 음역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고, 화재시에 불이 번지지 못하게 구역을 나누어 길을 낸 데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기원이 불분명한만큼 역사도 오래된 베이징 시민의 삶의 현장인데, 지금은 베이징 재개발로 많이 사라져 가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찾아간 난뤄구샹 후통은 대로변 쪽은 상점가였고, 非자 모양으로 펼쳐진 옆 쪽의 작은 길은 예전 모습 그대로 보존된 사합원이 숨어 있었습니다. 사합원은 네모 모양으로 건물이 배치된 중국 전통 가옥입니다. 남향 배치를 기본으로 하여 담 안에 집이 모여 있지만 한 쪽은 열린 부분이 있는 우리나라의 건물 구조와 달리, 중국 사합원은 높은 담으로 둘러친 그 안에 口자 형태로 건물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가운데에는 대개 아름다운 정원이 있지만, 대문 앞에 시선을 차단하는 담인 영벽이 있기에 외부에서는 전혀 내부를 볼 수 없습니다.

저를 비롯한 일행분들은 드디어 대륙의 인파에서 벗어난 것을 자축하며 느긋하게 옛 거리 산책과 기념품 쇼핑을 즐깁니다. 저 또한 어슬렁거리며 후통과 사합원을 구경합니다. 각 사합원의 대문에는 “福”자가 붙은 빨간 종이가 붙어 있곤 합니다. 영벽을 구경하고픈 마음에 살짝 열려진 대문 틈을 들여다보기도 합니다. 사합원의 높은 문지방을 바라보며, 저는 <매란방>에서 현실의 벽을 상징하는 높은 문지방을 사이에 두고 매란방 역 여명 오빠를 배웅하는 맹소동 역 장쯔이의 애틋한 표정을 지어 봅니다. 정말 장쯔이 같았습니다. 믿으셔야 합니다. 그러나 사진은 생략, 하하.

저는 이 거리에서 <화양연화>와 <색, 계>를 본 이후 늘 갖고 싶었던 치파오를 한 벌 삽니다. 미리 말해두자면, 이 순결한 하얀 치파오를 입은 제 모습을 저녁때 보신 김명호 교수님께서 “이 옷은 중국 이발소 아가씨들의 유니폼이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저는 대륙적으로 삐져 버립니다.



왕푸징 거리의 먹자골목 소흘가 풍경

다음 행선지는 베이징 최고의 번화가인 왕푸징(王府井) 대가입니다. 대형 백화점과 전통있는 전문 상점들이 밀집해 있는 베이징의 명동 같은 곳입니다. 황제의 아들들인 친왕들이 모여 살던 곳이어서 ‘왕부’라 불렸는데. 이 왕부에서 사용했던 우물을 왕부정이라 한 데서 이 거리의 이름이 유래했다고 합니다. 청의 멸망이후 몰락한 친왕과 그 식솔들은 생계 수단이 없자 집안의 값진 물건들을 내다 팔기 시작하여 지금과 같은 상가가 형성되었다니, 아, 이렇게 현대의 거리에도 과거 역사가 숨어 있군요.

그러나 우리는 세련된 백화점이 있는 쪽이 아니라 재래시장 먹자골목인 소흘가로 들어갔기에 또 한번 징글징글한 대륙의 인파를 경험합니다. 뿐만 아니라 가판대의 엄청난 튀김용 꼬치에 꿰어진 채 살아 꿈틀거리는 온갖 식재료들을 보며 시각적 충격을 경험합니다.



베이징의 길거리 간식, 탕후루

전갈 등 한국에서 구경할 수 없는 다양한 꼬치들의 사진을 찍어 오기는 했지만, 채널 예스의 품위를 생각하여 사진은 이 과일꼬치인 탕후루만 올리렵니다. 베이징 특산 길거리 간식인 탕후루(糖葫蘆)는 원래 산사나무 열매를 나무 꼬치에 꿴 후 설탕시럽을 덧씌워 만드는데, 요즘은 딸기나 바나나, 파인애플, 키위 같은 다양한 과일로 만든다고 합니다. 책에서 읽은 바에 의하면, 12세기 남송시대 광종의 후궁인 황귀비가 병에 걸려 음식을 먹지 못하자 산사나무 열매와 설탕을 달여 먹게 한 데에서 유래했다고 하네요. 어느 나라가 길거리 서민 음식의 유래가 뜻밖에도 왕실이나 상류층 요리인 경우가 많은데 이것 참 재미있군요.


스차하이의 공을기 식당

드디어 베이징에서의 마지막 저녁입니다. 역시 김명호 교수님이 추천하시는 식당으로 향합니다. 우선 스차하이(什刹海)로 향합니다. 베이징에는 여러 개의 큰 호수가 있습니다. 베이하이(北海)와 중난하이(中南海), 그리고 스차하이(什刹海)입니다. 베이하이와 중난하이 쪽은 황궁에 속해 있어서 일반인들이 쉽게 접할 수 없었던 곳임에 반해, 스차하이는 일반인들의 쉼터 역할을 해 왔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베이징 시민의 사랑을 받는 명소가 되어 호수 주변의 후퉁과 카페 거리는 많은 관광객을 불러 들이고 있다고 합니다. 과연 스차하이 호수를 따라 난 작은 길을 걸어가니 이국적이면서도 전통적인 중국의 분위기가 물씬 느껴집니다.

식당까지의 짧은 산책을 아쉽게 마치고, 우리는 공을기(孔乙己)식당에 들어섭니다. 식당이라기보다는 중국 대가집 저택같은 느낌입니다. 스차하이 호수 근처에는 왕실과 고관대작의 으리으리한 저택들이 많이 있었다고 하는데, 학구적인 저는 곧 이 식당의 역사가 궁금해집니다. 김명호 교수님 말씀이 이 집에서 마지막 황제 푸이가 태어났다고 하니, 원래는 순친왕 짜이펑의 저택이었나 봅니다. 벽면에 증극번의 글씨가 액자에 담겨 걸려 있기도 하더라고요.



공을기 식당의 루쉰 흉상과 루쉰 닮은 력균씨.

식당이름은 루쉰의 단편 소설인 <공을기>의 주인공 이름에서 따 왔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식당의 뜰에는 <공을기>의 첫 대목이 새겨진 돌책이 있고, 내부 입구에는 루쉰의 흉상이 있습니다. <공을기>의 주인공 공을기는 진부하고 낡은 사상을 가져 남의 웃음거리가 되는 구시대의 몰락한 지식인을 상징하는 인물입니다. 몰락해가는 청조말의 봉건적 사고방식과 제도, 그 허위의식을 고발한 소설로 유명합니다.

예약된 자리에 착석한 우리는 소설 속에 묘사된 공을기처럼 후이샹떠우(茴香豆)라는 콩을 안주로 소흥주를 마십니다. 저는 오늘만은 저의 사랑 맥주를 배신하기로 합니다. 저는 한번쯤은 호탕하게 소흥주를 마셔 보고 싶었거든요. 중국 고전 소설을 읽으면 이런 장면이 종종 나오잖아요. 왜 유랑 검객이 주막에 들어가서 호탕하게 “여기 소흥주 한 말과 돼지고기 두 근 주쇼!”라고 주문하는 장면 말에요. 잔 단위도 아니고 말! 한 접시도 아니고 근 단위의 주문! 저는 언제 그런 경지에 올라 볼까요?



먹음직스런 동파러우가 등장했건만…

이 식당은 루쉰의 고향이자 <공을기> 소설의 배경인 사오싱(紹興) 지역의 요리가 전문입니다. 한국에서 먹던 일반적 중국요리처럼 기름지지 않아서 저는 먹기 좋았습니다. 그러나, 북송시대 문인인 소동파(蘇東坡)가 요리법을 개발했다는 동퍼러우(東坡肉,동파육)가 일인분씩 서빙되는 순간, 저는 살짝 경악을 합니다. 육식을 즐기지 않는 저는 이런 요리를 보면 전혀 맛있겠다,란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흠, 이런 게 내 똥배 속에도 들어있으렸다? 뭐 이런 생각만 납니다. 아, 이거 너무 솔직했나? 하하.

그러나 김명호 교수님은 너무도 다정하신 분이었고, 먹지 않는 제게 다가 오셔서 몸소 동파육의 기름진 양념 국물에 밥을 비벼 주십니다. “동파육은 원래 이렇게 먹는 거야”하시는 정다운 말씀에 예의바른 저는 “오, 절 위해 밥 비벼 주는 남자는 교수님이 첨이에요~” 라는 폭풍 애교로 답합니다. 그러나. 아… 곧 저는 후각과 미각, 비위의 삼위일체 멘붕 사태를 대륙적으로 경험하게 됩니다. 교수님께서 한 숟갈, 기름지고 느끼한 돼지 양념 국물에 비빈 밥을 제 입에 떠 넣으셨기 때문입니다.

아놔, 2010년 가고시마에서 돈고츠(豚骨)라멘 먹다가 만났던 미친 돼지떼, 2년 후 베이징에서 이렇게 다시 만날 줄이야. 그래도 김명호 교수님의 배려에는 감사드립니다. 미리 말씀드리자면, 교수님께서는 한국에 돌아오신 후 바쁘신 와중에 제 원고를 봐 주시고 격려해 주셨답니다. 정말 정많으신 분이십니다. 감사합니다.



공을기 식당 내부 풍경. 다들 김명호 교수님의 재미난 이야기 경청 중.

김명호 교수님의 “여행의 마지막 식사가 좋으면 여행이 완벽해진다.”는 말씀은 과연 진실이었습니다. 우리 모두는 볼이 발그레해집니다. 베이징에서의 마지막 만찬이란 감상에 취하고, 소흥주에 취하고, 서로의 이야기에 취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아쉬운 마음에 선뜻 식당을 나서지 못하고 여기저기에 삼삼오오 모여서 기념 사진을 찍습니다.

이후 호텔로 돌아와 호텔옆 양꼬치집에서 옌징 맥주잔을 기울이며 식당에서 못다한 이야기를 이어 나갑니다. 내일이면 공항에서 헤어질 사람들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애틋해집니다. 겨우 3박4일 같이 보냈는데 오래된 친구처럼 정이 들어 버렸습니다. 중국, 역사, 문학에 대해 이야기 나눠 볼수록 말이 잘 통합니다. 한길사에서는 어떻게 이런 멋진 분들만 콕콕 찍어서 답사팀을 꾸렸을까요? 이분들 또 보고 싶어서 어떻게 참을까요?

이런 마음을 다 읽으셨을까요? 한길사 김언호 사장님께서 약속을 하셨습니다. 『중국인 이야기』 10만부 돌파하는 시점에 이 답사팀원 전부를 다시 초청하여 두 번째 중국 역사 기행을 하기로요. 이에 우리 모두는 대륙적으로 건배하며 기뻐합니다. 그리고 십만부 달성을 위한 역할 분담을 시작합니다. 사장님께서 진지하게 다단계 판매를 권하셔서 우리는 취하지도 않았는데 맨 대륙에 그만 쓰러져 버리고 맙니다.

그리고 다음날, 저는 서울로, 일상으로 돌아 옵니다.

게으름 피우면서 늦게 후기를 작성하다보니, 베이징 여행 후 벌써 많은 날들이 흘렀군요. 돌이켜보면, 이번 베이징 답사 여행을 계기로 제가 좀 변한 것 같습니다. 저는 무슨 경험을 계기로 급격히 변했다거나 깨달았다거나하는 말을 떠벌리는 사람들을 보면 유난스럽고 의심이가고 그랬는데, 세상에, 이번에는 제가 그런 기분이 드네요. 그만큼 좋은 여행이었기에 그런가 봅니다.

제 블로그 친구분들은 알고 계시겠지만, 제가 지난 1년간 책을 쓴다고 좀 좌충우돌하며 유난을 떨었잖아요? 잘난척과 자뻑을 일삼았지만 솔직히 불안하고 지친 적이 많았어요. 막 도망가고픈 순간, 이번 답사 여행의 행운이 저를 찾아 왔습니다. 그리고… 『중국인 이야기』 책 속에서 만난 근현대 역사속의 중국인들, 예술촌에서 만난 젊은 중국 작가 등 현재의 중국인들, 그리고 답사팀원 여러분들에게 정말로 좋은 자극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여행기를 쓰면서 되돌아보니 이번 베이징 여정은 제 마음의 여정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적지도 않은 나이에 헤매기만 하던 제가 한 뼘 더 정신적으로 성숙해진듯한 느낌입니다.

방대한 지식을 보여주시고 다정하게 챙겨주신 여러 선생님들, 즐거운 대화를 함께 해준 선배님뻘 되시는 분들, 제게 없는 열정과 꿈을 보여주신 젊은 친구분들께 뭐라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네요. 가이드해주신 임미화님, 일명 임시인 표현대로 “정말 기특하십니다! 황홀한 시간이었습니다!” 라고 말씀드려도 될까요?

저에게 좋은 기회를 주신 예스와 한길사에도 감사드립니다.

아, 그리고 대륙적으로 긴 글을 끝까지 읽어주신 예스의 친구분들께도 물론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자, 껌정의 다음 여행을 위해, 잊지 마세요. 『중국인 이야기』 백만부! 하하.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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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껌정드레스

껌정드레스(http://blog.yes24.com/mkkorean). 예스24 파워문화블로거.
2012년 10월 말, 그녀의 첫 책인 매우 유니크한 역사에세이가 나올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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