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보면 도시는 치유를 갈망하는 이들로 넘쳐나는 공간이다. 편하기 이를 데 없는 교통망과 움직임을 최소화하도록 설계된 편의시설들 속에서 우리는 왜 그토록 답답함을 느끼며 힘겨워하고 있을까. 의문이 이쯤 되면, 굳이 성인군자의 말을 되새기지 않더라도 ‘인간은 자연에 있을 때 비로소 생기를 찾는다’는 진리를 깨닫게 된다. 아스팔트와 같은 까칠함이 느껴지는 도시의 삶 속에서도 우리는 간간히 작은 꽃밭에, 햇살 사이로 반짝 거리는 플라타너스 잎사귀에 안도하고 편안함을 느낀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십분도 못가 접을 엉뚱한 생각한다. ‘역시 이 이상의 무엇을 느끼려면 도시를 떠나야 돼’…….
그러나 10분 후, 혹은 곧바로 대개의 사람들은 일상의 분주함과 그밖에 현실적인 문제와 같이 ‘안 되는 이유’를 떠올리며 머릿속에 떠오른 특별한 계획을 다음으로 미루곤 한다. 그러나 이는 실행력 내지는 부지런하지 못함을 탓해야 하는 게 아닐까.
사실 우리가 사는 도시를 비롯해 그 인근에는 조금만 노력하면 의외로 놀라운 자연을 만끽 할 수 있는 힐링 스팟이 곳곳에 산재해 있다. 다만 그런 공간을 찾으려면 약간의 수고로움과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쳐야 한다는 번거로움이 있을 따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 없고 정신없는 현대인들을 위해 수고로움과 시행착오의 단계를 훌쩍 뛰어넘을 수 있게 한 책이 있으니, 바로 자연 소품 디자이너 김수나 작가가 쓴 『수요일은 숲요일』이다.
소풍을 떠나다
봄, 여름, 가을, 겨울로 나눠진
『수요일은 숲요일』은 계절별로 여운 깊은 힐링을 만끽할 수 있는 먹을거리와 공간, 소품을 가득 담고 있다. 책 출간에 맞춰 왠지 이벤트의 낌새(?)가 짙어질 즈음, 드디어 독자들과 함께하는 소풍 소식이 들려왔다. 독자들과 함께 떠나는 소풍의 목적지는 서울 부암동의 백사실 계곡. 이 도심 속의 숲에서 작가를 비롯한 서른 명 남짓의 독자들은 간단한 브런치를 먹고 자연 소품을 이용한 코사지를 만드는 프로그램을 함께하기로 예정 돼 있었다.
며칠 후 기다리고 기다리던 이벤트 당일인 9월 19일은 역시 수요일, 살짝 구름이 낀 듯 한 날씨가 염려스러웠으나 평일임에도 적지 않은 독자들이 김수나 작가와 함께 부암동 주민센터 앞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모두 다 설렘과 기대감에 가득한 표정들이 특히나 인상적이었다. 경복궁역과 세검정 사이를 잇는 자하문터널 위의 공간, 부암동이라고 불리는 독특한 이곳은 특유의 여유로움과 아날로그적인 감성 간직한 마을이다.
영화에나 나올 법한 창의문을 지나 오르막길을 따라 걷다보면 이끼 낀 옛날식 옹벽이 투박하게 이어진다. 이 옹벽 길을 따라 약간 숨이 차게 올라가다보면 중간중간 눈길을 사로잡는 독특한 디자인의 건축물들을 감상하는 즐거움도 있다. 20여분을 올라 아랫동네의 집들이 성냥갑 크기가 될 즈음이 되자 오르막길이 끝을 맺는다. 내리막길이 이어지며 백사실 계곡의 표지판이 눈에 띌 즈음 한숨을 돌린 작가에게 슬며시 참았던 질문을 던져 본다. 우선은 가장 기본적인 질문부터, ‘책을 내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2년 전 쯤 「숲」이라는 인문학 잡지에 매달 연재를 할 기회가 있었어요. 대략 1년 정도 글을 썼죠. 『수요일은 숲요일』과 비슷한 주제로 자연적인 삶에 대한 이야기와 제가 실천하고 있는 것들에 대한 글이었어요. 그러다 결국 이렇게 책으로 출간을 하게 됐죠(웃음).”
디자이너가 본업인 그녀에게 책 출간은 처음 경험하는 일이였다. 때문에 망설임도 적지 않았다. 자신의 이야기가 진정 책으로 엮을만한 가치가 있는지를 자문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작가는
“그러한 과정을 거치는 동안 차츰 마음속에는 용기가 자리 잡았고 결국 책을 내게 됐다”며 수줍은 미소를 띄어보였다.
“좀 더 편하게 생각하기로 마음먹었죠. 아직까지 이런 이야기를 하는 분들이 드물었고, 또 만들어진 이야기가 아닌 제가 사는 이야기였으니까요. 나름대로 진실성이 있다고 자부했고 책으로 엮어 더 많은 이들과 제가 느낀 즐거움을 함께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녀가 자연적인 감성과 느낌을 반영한 삶을 사는 것은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충남 공주에서 태어난 덕분에 어린 시절부터 자연과 밀접한 공간에서 자랐다는 그녀. 그런 어린 시절은 그 마음속에 그대로 각인 돼 도시에서의 삶을 살기 시작한 뒤에도 이어진 셈이다.
“대학생활을 하면서 도시로 왔는데, 사실 도시는 처음 접할 때는 정말 재미있는 것 투성이잖아요(웃음). 할 것도 많고요. 그런데 어느 순간 그런 도시의 느낌과 제 어린 시절의 자연적 감성이 맞물리게 되더라고요. 남다른 방식으로 사물을 바라보는 버릇은 그때부터 생긴 것 같아요.”
환상적인 공간에 감탄사가 저절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어느새 백사실 계곡의 입구가 눈앞에 펼쳐졌다. 고백하건데 ‘도시의 숲’이라는 선입견 탓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던 터라 놀라움의 크기는 더했다. 마치 영화 속에서 단번에 주변 풍경이 뒤바뀌어버리는 경험이랄까. 숲은 느끼기도 전에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세상과 단절된 듯한 적막함 속에 계곡의 물소리와 바람에 사각거리는 나뭇잎 소리만이 공간을 채우는 숲 속……. 가슴을 채우는 신선한 공기조차 감동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 공간의 룰을 지키려는 듯 소풍 팀에서는 숲의 목소리에 맞춘 나지막한 감탄사가 이어지기 시작했다.
점심시간 무렵에 도착한 숲의 한 가운데는 나무들이 우거진 사이에 마치 오래전부터 손님 맞을 준비를 한 냥 널찍한 공간이 마련 돼 있었다. 옹기종기 둘러앉은 독자들이 각자의 소감과 사연을 털어놓기 시작한다.
“고등학생 아들딸을 둔 입시생 엄마에요. 맑은 공기, 바람소리, 물소리를 들으러 왔습니다.”
“안녕하세요. 초등학생 아들이 학교 사정이 생겨서 지난주에 개학을 했는데, 정말 죽는 줄 알았어요(웃음). 이렇게 숨통을 틔울 수 있는 기회를 얻어 기쁘네요. 늘 유목민 같은 삶을 꿈꿨는데 가정 꾸리고 아이들 키우다보니 잊고 살았어요. 오늘이 너무 고맙네요.”
“저는 지금 취업을 준비하고 있어요. 뉴스에 나오는 것처럼 취업하기가 제 마음 같지 않더라고요. 매일 이력서 쓰고 공고를 뒤지고 하니 눈도 너무 아프고 정신도 삭막해지더라고요. 집에서 시체놀이를 하다가 이렇게 오게 됐어요. 저도 몇 년 전에는 혼자 여기저기 돌아다녔는데 한동안 집에 있으면서 기분이 우울해졌어요. 오늘 잠깐이라도 이렇게 숲을 거니니 너무 기분이 좋네요. 역시 사람은 자연과 함께 해야 한다는 깨달음을 새삼 얻었어요.”
“저는 야생화 자수를 하는 공예작가인데요. 항상 자연을 가까이 느끼고 싶다고 생각해 자주 숲을 찾긴 하는데 늘 혼자였어요. 다른 사람들과 나눌 기회가 없어서 아쉬웠던 차에 작가님 책을 본거죠. 풀꽃에 우주가 있어요. 그걸 이해해줄 사람이 주변에 별로 없거든요. 그걸 나누고 싶어서 이 자리에 왔어요.”
“저는 디자인 회사에서 사보 만드는 일을 하는데 지금은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좀 여유가 생겨서 오게 됐어요. 너무 좋네요. 요즘에 운동하는데 취미를 붙여야겠다 해서 여기저기 다니는데 확실히 헬스장보다는 자연에서 걷는 게 좋네요.”
“저는 여기 처음이 아니고 두 번째 언니랑 왔었어요. 이번에는 추석이 되기 전에 시댁 스트레스 풀려고 오게 됐죠(웃음).”
“저는 사실 김수나 작가님을 몰랐는데 이벤트에 당첨이 돼서 책을 읽고 가는 게 예의다 싶어 밑줄 그어가며 책을 읽었어요. 김수나 작가님 살아온 이야기, 숲 이야기들이 저와 비슷하더라고요. 사실 전 아직 결혼 전인데 최근 갑상선 암 수술을 받고 항암치료를 받았어요. 젊었을 때는 가방을 매고 배낭여행도 다녔지만 이런 한국의 좋은 숲을 한 번도 안 갔어요. 그런데 아프고 나서 6개월 휴직기간 동안에 산에 다니면서 이렇게 좋은 곳을 두고 왜 해외로 나갔나 싶더라고요. 이 책을 통해서 정말 좋은 곳을 알게 됐어요.”
“저는 대기자였다가 한분이 불참하신다고 해서 정말 운이 좋게 참가하게 됐고요. 사실 출발하기 전에 세무서에서 연락이 왔어요. 작은 사업을 하는데 법인등록을 하게 됐거든요. 제가 하는 일은 암환자와 가족들을 위한 치유문화 콘텐츠를 지원 사업이에요. 그래서 자연치유에 관심이 많죠. 전국의 온갖 숲과 수목원, 정원을 다 찾아다니고 그 안에서 원예치료나 숲 치료를 관심 있게 진행하고 있는데, 김수나 작가님 책을 보고 첫째는 진짜 작명을 잘하셨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숲요일’이라는 단어가 하나의 키워드가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전 2년 전에 허리디스크를 앓은 뒤로 집 근처에 북한산 둘레길에서 주로 걷기 운동을 하고 있어요. 1시간 정도 걷고 나서 덕성여대 솔밭공원 인근에 다다르면 있는 노천카페에서 커피를 즐겨 마시죠. 여러분들에게도 꼭 추천하고 싶어요.”
“전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아픈 분들도 많지만 화가 난 보호자들 등등해서 응급실 자체가 특수한 상황이라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커요. 그것을 해소하기 위해 개인적으로 수목원 등에서 힐링을 찾곤 했는데, 저랑 코드가 맞는 분들을 만나기 힘들더라고요. 여기에 다 계신 듯해서 너무 든든하고 좋습니다.”
한 바퀴의 자기소개가 끝난 이후 드디어 작가의 차례가 돌아왔다. 불과 한두 시간 전 일면일식도 없이 만난 사람들이 각자의 사연을 털어놓고 나니 분위기는 벌써 화기애애해진 상황. 덕분에 마지막이 된 작가는 약간은 민망한 듯 하면서도 또박또박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눈빛은 호기심으로 더욱 빛이 난다. 어찌 보면 이 자리는 숲과 더불어 그녀와 만나기 위해 모인 자리이기도 했던 터다.
“늘 독자의 입장에서 있다가 저자 입장에서 여러분들을 만나니 아직 어색합니다. 그래도 그냥 숲 친구들과 놀러왔다고 생각하니 조금 마음이 편해지네요. 이야기를 들어보니 저보다 더 숲을 잘 느끼시고 사랑하시는 분들이 모이셔서, 나중에도 지속적으로 모일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도 여러분들과 함께 있으니 또 느끼는 거지만, 책 한 부분에 썼던 내용이 떠오르네요. 전 숲에 있으면 내가 어떤 세상에 중심, 조화에 중심에 있다는 생각이 들곤 하거든요. 책을 쓰며 굳이 자연 뿐 아니라 관계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전해드리고 싶었습니다. 숲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을 알게 되고 그 안에서 맺어진 관계가 종종 건강한 삶으로 이어지더군요. 오늘도 짧은 시간이지만 숲을 느끼면서 위로받고 싶으신 분들 위로 받으시고 편하게 노시다 가셨으면 좋겠어요. 자신의 마음속에 건강한 삶이 있다면 숲이 아니라도 자기가 있는 장소가 힐링의 장소가 될 수 있거든요.”
자연의 재료로 기념품을 만들다
각자의 소개가 끝난 후 준비 된 샌드위치를 먹는 이곳저곳에서 다시 이야기꽃이 피어난다. 비록 샌드위치 몇 조각에 물 한 모금이지만, 자연에서 즐기는 여유는 각자에게 한없는 즐거움으로 다가오는 듯했다. 브런치를 마친 후 어느새 오래된 친구처럼 친근해진 이들이 곧 자리에서 일어나 삼삼오오 같이 혹은 홀로 숲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마지막 숲 체험 프로그램인 코사지를 만들기 위해서다.
“자유롭고 편안하게 자신만의 코사지를 만들어 보세요. 산책을 하며 숲을 즐기다가 떨어진 낙엽이나 나뭇가지, 돌멩이 등 익숙한 오브제들이 모이면 오늘을 기념하고 백사실 계곡의 기억으로 남는 코사지가 만들어 질 거예요. 그렇다고 너무 집중하진 마시고요. 가장 중요한 것은 숲을 느끼는 거니까요.”
숲 사이로 오가는 사람들의 풍경이 마치 어린 시절 보물찾기를 연상케 했다. 호기심 넘치는 표정으로 이곳저곳 살피는 이들을 보니 그 보다 좋은 표현이 떠오르지 않을 정도다. 비록 비전문가라고 해도 숲 속에서 사람들이 들고 돌아오는 오브제들은 간간히 전문가의 예측을 벗어나 놀라울 정도로 독창적이라고 한다. 제각각인 사람의 얼굴처럼 개개인이 감정을 이입하는 오브제 역시 너무나 개성적이기 때문이다. 한 시간 여를 돌아다니는 사람들의 두 손에는 어느새 각자의 기억과 추억이 한 움큼씩 쥐어져 있었다. 어느새 나뭇잎 사이로 빛나는 햇살이 아늑하게 그 풍경을 감싸고돈다. 숲의 시간은 그렇게 천천히 흘러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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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요일은 숲요일 김수나 저 | 북노마드
바야흐로 여행의 계절이다. 많은 이들이 계절마다 휴가를 내고, 주말을 비워 어디론가 떠난다. 마치 멀리 갈수록 더 잘 쉴 수 있다는 듯이 도시에서 최대한 멀리 벗어나려 한다. 하지만 휴가는 짧고 길은 막히며, 도착한 그곳에서도 일은 여전히 우리를 따라다닌다. 도시인에게 ‘힐링’은 이토록 멀고 힘든 일일까. 가깝고 쉬운 힐링의 방법은 정말 없는 걸까. 『수요일은 숲요일』은 그러한 의문에 해답을 안겨주는 친절한 자연감성가이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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