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세 소녀의 눈에 비친 미군 기지촌의 풍경 - 정한아 『리틀 시카고』
기지촌, 아물지 않은 채로 덮인 상처를 이야기하다 미군, 기지촌, 그리고 그 안의 사람들…… 젊은 여성작가가 체험적 취재를 바탕으로 쓴 또 다른 대한민국의 현실
바람의 기운이 가을을 머금은 듯 시원하다. 정한아 작가와의 첫 만남 역시 비슷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데뷔 5년차, 자신의 세 번째 책을 세상에 내놓은 작가의 설렘은 호수의 파장처럼 주변 사람 역시 동감하게 만들고 있었다.
작품의 모티브가 된 실제 장소가 동두천이라고 들었는데요. 실제로 그런 별칭이 있는 곳인가요.
네, 실제로 ‘리틀시카고’란 곳이 있어요. 그곳에 제가 아는 지인이 레스토랑을 하고 있거든요. 소설에도 나오는 ‘아침식사 전문 레스토랑’이죠.
젊은 여성 작가로서 기지촌이라는 소재로 작품을 쓴다는 것은 좀 의외였는데요.
기지촌 문제에 대해서는 대학에 간 스무 살 무렵 미군 주둔 반대 사진전을 보게 되면서 처음 관심을 가졌어요. 그런 사진을 생전 처음 봤죠. 당시에는 시각적으로 엄청난 폭력을 느꼈고 상처가 되기도 했어요. 우리가 엄청난 어떤 것을 봤을 때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할 수 없다고 느낄 때는 ‘어쩔 수 없어’하고 말아버리잖아요. 하지만 저는 좀 달랐던 것 같아요. 끈질기게 매달리는 면이 있었고 그래서 더 상처를 받았죠. 그렇게 기지촌에 대한 질문이 20대의 시절의 제게 항상 맴돌았던 것 같아요.
그러나 그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이 너무 전형적인 공간, 전형적인 상처라서 새롭게 이야기할 자신이 없었어요. 하지만 그 레스토랑에 가서 실제로 본 풍경은 생각과 달리 완전히 새롭더라고요. 제 머릿속에 각인 된 상처를 덮어주는 뭔가를 발견했거든요. 레스토랑에서 아침식사를 허겁지겁 먹는 미군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어요. 그러면서 제가 느꼈던 증오나 상처를 좀 더 다른 느낌으로 풀어낼 수 있을 것 같았죠.
신인 작가에게는 왠지 쏟아놓을 것들이 많아 절제하는 것이 더 힘들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드는데요.
글쎄요. 저는 제 안에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 작가가 된 케이스는 아닌 것 같아요. 오히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데 더 열정이 있었던 것 같아요. 처음 작가가 되고자 마음을 먹었던 것도 소설이라는 것이 얼마나 한 사람에게 구원이 될 수 있는가를 경험했기 때문이고, 그래서 그런 작업을 해나가고 싶은 욕심이 많았어요. 그것은 단순히 저 혼자만의 기쁨이라기보다 소설이라는 작업이 갖는 공감과 관계지향성에 대한 열정이었던 것 같아요. 다른 신진 작가들의 관심사와는 조금 다를지 모르지만 좋은 소설을 써서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이 되는 것이 저에게 굉장히 중요한 열정인 것 같아요.
선희 아버지의 레스토랑으로 묘사되는 장소가 작가님의 관찰 공간이었던 셈인데, 작품 속 인물들의 묘사를 보면 굉장히 ‘체험적인 집필’을 하셨는데요.
레스토랑 같은 경우는 지켜보는 취재를 했어요. 그런데 레스토랑에서 취재를 하면서 정말 중요한 것은 클럽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외국인 전용 클럽이라 들어갈 방법이 없더라고요. 여러 가지 방법을 모색하던 끝에 결국은 레스토랑 지인의 소개로 먼 친척인 냥 둘러대고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게 됐죠.
그 이전에는 그런 시도를 해 본 적이 있나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저는 제 밖의 이야기를 쓰는데 중심을 두고 있었어요. 특히 대학생 시절에는 경험의 폭이 넓지 않아서 취재를 정말 열심히 할 수밖에 없었죠. 제 소설 중 「아프리카」라는 단편이 있는데, 거기에서는 집창촌 이야기가 나와요. 그때도 비슷하게 지인의 도움을 얻어 취재를 할 수 있었죠.
겁 없다는 소리를 많이 들을 것 같네요.
아니에요. 겁이 정말 많아요. 그런데 소설을 쓰는 데 있어서는 좀 과감해지는 것 같아요(웃음).
기지촌이 그렇게 극단적인 공간만은 아니라고 하셨는데요. 사실 미디어가 생산한 고정관념으로 인해 부정적 인식이 고착된 부분이 있기도 하죠. 실제로 경험한 기지촌은 어떤 공간이었나요.
기지촌에는 역사적으로 뿌리 깊은 상처가 존재하고 또 그게 없어졌다고 할 순 없는 것 같아요. 대신 세월이 지나서 바뀐 게 있다면 오래 전에는 약자의 자리에 우리나라 여성들이 있었지만 지금은 제 3국 여성들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다는 거죠. 풍경이 바뀐 거라고 보진 않고요. 더 쇠락한 상황 속에서 더 이방인인 사람들이 그곳에 있는 것 같아요. 그러나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 알고 싶어 하지 않죠. 너무 아픈 공간이니까요. 많은 사람들이 없는 공간인 것처럼 여기지만 아직도 기지촌은 존재하고 그곳에는 여전히 신음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단지 이제 한국 여성이 없다고 해서 괜찮은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것은 분명 정치적인 이유가 있고 그 혜택은 우리가 누리고 있으니까요.
암울한 공간에서도 왠지 명랑함이 느껴지는 건 선희라는 열두 살 아이의 시각에서 이야기가 진행 됐기 때문인데요. 그런 설정을 하게 된 이유는 뭔가요.
어떤 새로움 같은 것이 절실했어요. 이 시대에 기지촌 이야기를 다시 쓴다는 것이 너무 허황된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고 한국문단에는 이미 좋은 전작들까지 있었고요. 그래서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이 소설이 꼭 필요하다면 나만의 개성을 담아야 할 텐데……’같은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새로운 감성과 더불어 기지촌 내에 새로운 이야기, 새로운 화자가 필요했고요. 하지만 쉽지 않더라고요. 연재 당시에는 정말 힘들었어요. ‘결코 가볍게만 이야기할 수 없는 기지촌의 상처인데 이것을 어디까지 다뤄야하나’와 같은 고민도 있었고요. 그런 고민 끝에 2년의 탈고 과정에서 화자를 바꾼 적도 있었어요. 하지만 농밀한 성인의 언어로 이야기를 했을 때 깊이는 들어가도 새로움은 사라지더군요. 그래서 결국 다시 돌아갔죠(웃음).
빵과 스테이크를 굽는 아버지, 타샤, 필리피나, 미세스 정, 잭슨 할아버지, 양복점 할아버지 미카 등 많은 등장인물 디테일한 묘사를 보며 실제하는 인물도 적지 않을 듯하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 중에 필리피나는 실제 그 레스토랑의 종업원이에요. 정말 소설에서처럼 당차고 생활력이 강하고 애인에게 마음을 주지 않는, 생명력 넘치는 사람이었죠. 저도 그렇고 레스토랑 주인도 그런 그녀를 굉장히 좋아했고요. 소설과 같은 사건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레스토랑 주인 역시 실제로 선희 아빠와 같이 새벽에 일어나서 미군들의 아침을 만들어요. 정말 저렴한 가격에 푸짐한 아침을 제공하죠. 일종의 어떤 희생이나 봉사의 개념으로 느껴졌어요. 그런 인물들이 저에게 영감을 많이 줬죠.
클럽에서 아르바이트생으로 위장취업(?)하며 취재를 했다지만 너무 적극적으로 물어보면 반감이 있을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요.
일단 직접적인 질문은 안 했어요. 들킬 염려가 있으니까(웃음). 그저 툭툭 던지는 말로, 가족은 어떻게 되는지, 여기에는 어떻게 오게 됐는지를 물어보곤 했죠. 클럽에서 취재했던 여성들은 정말 어렸어요. 기지촌의 편견 때문에 이젠 한국 여성이 없었지만 저보다도 어린 제 3국 여성들을 취재를 하면서 정말 마음이 아프더군요. 그들은 제게 대학생이라면서 왜 아르바이트를 하냐고 묻더군요. 같이 많은 시간을 보내고 친하게 지내려고 했지만 마음을 잘 안주더라고요.
처음 등단을 한 것이 스물다섯이라는 것을 알고 조금 놀랐습니다. 언제부터 꿨던 꿈이 이뤄진 것인가요.
고교시절 작가가 돼야겠다는 생각을 막연히 했어요. 그때 한국소설을 처음 읽기 시작하면서 빠져들었어요. 이상문학상 작품집을 찾아 읽으면서 문학소녀로서 꿈을 키웠고, 그때 문학동네가 막 생겼어요. 당시 등단하는 젊은 작가의 책을 읽으면서 꿈을 공고히 했던 것 같아요. 생각하면 놀라워요. 제가 그 매체를 통해 등단했다는 것도 그렇고, 작가가 됐다는 것도…….
사춘기를 꽤 힘겹게 거쳤다는 이야기를 하신 적이 있는데, 당시 이야기를 들려준다면?
제 사춘기가 힘들었다고 이야기하면 굉장히 질풍노도의 시기, 방황과 타락의 시간을 보냈나 하시는 분도 있는데 그 정도는 아니었고요(웃음). 우울감이 짙은 아이였던 것 같아요. 사춘기는 사회화가 되는 과정이잖아요. 그 과정에서 너무 불합리하고 이해할 수 없는 어른들의 세계를 마주하며 상처를 많이 받았던 것 같아요. 그때 소설이 큰 힘이 됐죠. 문장 하나가 한 시절을 버티게 해주는 것 같기도 하고 책 한 권이 한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 같기도 해요. 저는 그걸 경험했던 사람이고 불합리한 삶 속에서 실패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어떻게 해석될 수 있는지, 그 가능성을 문학에서 발견했던 것 같아요. 너무 놀라운 작업으로 느껴졌고 그래서 작가를 꿈꿨던 것 같아요.
당시에 동경했던 작가들도 꽤 많았을 것 같습니다.
맞아요. 처음 이야기하는데, 지금 생각하면 좀 창피하지만 문제집 같은 데 제 이름을 안 쓰고 유명 작가 이름을 썼었어요(웃음). 한강, 조경란, 전경린, 은희경 선생님 같은 분들을 동경했죠. 등단하고 나서 뵐 경험이 있었는데 너무 벅차더라고요.
5년의 시간 동안 총 세 권의 책을 세상에 내 놨는데, 스스로에게 꽤나 치열했던 시간이 아니었나 싶네요. 되돌아봤을 때 어떤 생각이 드나요.
저는 정말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요. 어떤 시대를 횡단하는 열차에 운 좋게 탑승한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요. 그래서 작가는 제 정체성에 최우선이 된 것 같기도 해요. 여러 면에 제가 있지만, 작가가 되는 것에 대해 너무 어렸을 때부터 집착, 혹은 욕심을 부렸다고 할까요. 그래서 한때는 ‘좋은 소설을 쓰지 못하면 인생 자체가 실패’라는 공포감도 있었어요.
그런데 이번에 『리틀 시카고』를 엮으면서 깨달은 것은 제게 탁월한 어떤 면이 있어 이른 시기에 시작하고 달려올 수 있었던 것은 아니라는 거였어요. 여러 좋은 분들, 기운들 덕분이란 생각이 들어요. 앞으로 좋은 작가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증명해 보이는 건 등단을 했던 상황처럼 갑작스러운 게 아니라 오랜 시간이 필요하고 오랫동안 성취해야 한다는 것을 느꼈죠. 그러면서 조급함이 많이 덜어졌던 것 같아요. 단 몇 권이라도 정말 만족스러운 책을 쓰고 싶다는 것이 지금 저의 솔직한 마음이에요.
20대에 등단해 30대에 접어든 지금, 작가가 꿈꾸고 있는 것, 고민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궁금한데요.
소설은 이제까지 제 삶의 0순위였어요. 지금까지는 그게 가능했던 것 같아요. 학생이었고 싱글로서 가능했는데, 어른이 되면서 책임감도 무거워져요. 앞으로도 소설을 최우선으로 하고 싶지만 선배 작가님들을 보면 그렇게 되지 않는 경우를 많이 겪으시더라고요. 그때가 정말 중요한 게 아닌가 생각해요. 작가로서 저를 놓지 않는 것, 끊임없이 고민하고 사유하는 것 말이죠. 일종의 자발적인 고독을 참는 노력이 필요할 듯해요. 언젠가 선배 소설가 중 한분이 그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열심을 다 하려고 해도 안 될 때가 있다. 그런 때가 오더라도 그 끝을 붙잡고 갈 수 있는 게 중요하다’ 30대에 접어든 제게는 중요한 화두에요.
실례인지 모르지만, 작가로의 삶 외에도 여성으로서 사랑이나 결혼도 염두에 둘 시기가 아닌가 싶네요.
사실 다음 주에 결혼을 해요(웃음). 그래서 방금 그런 고민이 깊었던 거고요. 자발적 고독이라는 것이 더 중요해 질 것 같다는 이유도 그 때문이죠. 가정이라는 울타리가 너무 주저앉기 쉬운 곳이라서 지금 제게는 절실한 질문이에요. 수많은 선배님들이 그 두 가지를 잘 양립해 오신 것을 본받아서 균형을 이루도록 노력해봐야죠.
자발적 고독이라는 것은 많은 의미가 포함 돼 있는데요. 작가들 중 집필을 위해 모처로 훌쩍 떠나 글을 쓰시기도 한다는데 배우자 되시는 분과는 협의는 됐는지 궁금하네요.
지금쯤은 포기가 됐을 거예요(웃음). 꼭 떠나지 않더라도 제 스스로 혼자의 세계에 침잠해버리는 순간이 있잖아요. 제가 느끼는 고독이 있을 거고요. 그런 것이 작가에게는 절대적으로 필요하니까요.
앞으로도 작가로서 새로운 작품을 계속 써 갈 텐데,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예전에 저는 굉장히 자신 만만한 소녀였는데, 소설을 써 나갈수록 자신 있는 이야기를 못하게 되더라고요. 좋은 작품을 쓰게 하는 가장 좋은 영감이 제가 원한다고 해서 나오는 게 아니라는 걸 이제 알게 된 거죠. 제일 중요한 것은 건강과 균형감, 공손함이라고 생각해요. 동의하지 않는 분도 계시겠지만 전 좋은 사람이 좋은 소설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앞으로의 제 삶은 어떤 도구로서 저를 만들어놓고 영감을 기다리는 것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신통치 않은 도구라도 써만 주신다면 닳도록 노력해 볼 생각입니다(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