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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허가 된 절터에 왜 자꾸 가냐고? - 이지누『돌들이 끄덕였는가, 꽃들이 흔들렸다네』

“무엇이든 자기 자리에 있을 때 가장 아름다워요” ‘치명적인 매력이다. 그렇기에 더욱 더 자신을 내밀하게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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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사지는 폐허가 된 절터를 가리킨다. 이 단어만으로는 왜 폐사지 답사를 가는 건지 이해할 수 없겠구나 생각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책처럼 나라의 국보나 보물 같은 유적을 보러 다니는 것도 아니고 무너지고 흔적만 남은 절터에서 무엇을 보려고 하는지 이상할 수도 있다. 물론 절터에는 남겨진 불상과 탑, 불화와 같은 문화유적도 있지만 사실 황량한 벌판처럼 볼거리가 없는 곳이다. 왜 폐사지를 찾아 가는 걸까?




이지누 작가를 처음 만났을 때, 어쩐지 현실이라고 믿고 있는 곳과는 다른 그 너머의 경계에 맴돌고 있는 사람을 만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우리나라 곳곳을 자유롭게 누비며 어디든 발길 닿는 대로 옮기는 사람이라고 쉽게 생각할 수도 있다. 조근조근 이지누 씨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다 보면 그 속에는 사람들이 살아있다.

각자의 공간을 지켜내면서 오롯이 운명을 받아내고 오래도록 살아온 이야기가 다가와 우리의 주변을 돌아다닌다. 시간의 흐름이나 물질의 가치와 같은 척도가 사라진 공간 속에 우리는 놓이게 된다. 경쟁하고 불안해하면서 조급하게 더 빠른 방법만을 찾고 있던 나는, 이전까지 본 적이 없었던 사람들의 이야기에 매혹되었다. 이야기와 함께 걷다 보니 이 공간의 새로움과 이 공간이 아주 오래 전부터 존재했다는 사실에 놀랐다.




“폐사지가 뭐야?”

전라북도 폐사지 답사를 다녀와서 들뜬 기쁨으로 친구에게 경험을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했던 물음을 먼저 받았다. 절터라는 단어를 알고 있듯이 폐사지라는 단어도 당연히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물음을 받고 나니 미처 이 부분은 생각하지 못했구나 싶었다. 재미있는 일은 폐사지라는 단어를 포털사이트에서 검색하면 어학사전에 단어의 뜻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폐사지’의 연관검색어는 ‘묻지마라’라는 단어가 뜬다.

폐사지는 폐허가 된 절터를 가리킨다. 이 단어만으로는 왜 폐사지 답사를 가는 건지 이해할 수 없겠구나 생각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책처럼 나라의 국보나 보물 같은 유적을 보러 다니는 것도 아니고 무너지고 흔적만 남은 절터에서 무엇을 보려고 하는지 이상할 수도 있다. 물론 절터에는 남겨진 불상과 탑, 불화와 같은 문화유적도 있지만 사실 황량한 벌판처럼 볼거리가 없는 곳이다. 왜 폐사지를 찾아 가는 걸까? 폐사지란 뭘까?




“무엇이든 사람도 그렇고 사물도 그렇고 자기 자리에 있을 때 가장 아름다워요.”

서울에서 전라도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이지누 작가가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다큐로 할까요, 예능으로 할까요?”라는 재치 넘치는 말투로 시작한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답사에 관련된 화제로 넘어갔다. 저자는 그 동안 여러 일을 거쳐 폐사지의 아름다움에 푹 빠졌다. 전국 어디든 찾아 다녔고 다른 사람에게도 알려주고 싶어 책을 썼다. 이야기로만 듣던 지리산 정령치에 드디어 도착했다.

발을 내딛자마자 서늘하고 상쾌한 지리산의 공기에 깜짝 놀랄 만큼, 신기하고 즐거운 마음이 들었다. 아직도 낮부터 덥고 찌는듯한 매연 가득한 도시로부터 벗어나 숲으로 온 것이 얼마만인지! 개령암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고 곧바로 이지누 작가의 설명이 시작되었다. 사실 책도 끝까지 다 읽지 못한데다가 이런 방면의 지식도 전혀 없어서 그저 듣기만해도 배울 것들이 쏟아졌다. 저자는 무엇보다 함께 같은 경치를 보지만 서로 다른 자신만의 느낌과 생각을 갖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점심을 먹고 만복사지로 이동했다. 한낮의 땡볕아래 그늘 하나 찾기 힘든 폐사지에서 가장 놀란 것은 책 속의 사진에서 본 것만으로는 알 수 없었던 장엄함이었다. 탑이구나, 들보구나, 기억은 또렷하지만 실제로 보니 짐작했던 것보다 거대한 크기와 사물이다. 긴 세월을 버텨낸 것이 갖는 어떤 울림이 와 닿았다. 멀쩡한 절을 놓아두고 겨우 초석과 건물터가 남아 있는 이 곳에서 내가 무엇을 느낄 수 있을지 솔직히 의아했지만 가보고서야 알 수 있었다.

아무리 뛰어난 작가와 사진가라도 이 감동을 옮기기엔 부족하구나! 이곳에 존재하는 여백 만큼 내가 채울 수 있는 넉넉한 수십 수백 가지 느낌이 있었다. 새벽부터 한밤중까지, 봄부터 겨울까지, 맑은 날부터 비가 쏟아져 내리는 날까지 언제 어느 때고 찾아온다는 이지누 작가의 말에 그제서야 고개가 끄덕여졌다.




마지막으로 혼불문학관에 도착해서 곧장 호성암터로 올랐다. 걷는 동안 땀이 뚝뚝 떨어질 정도로 빠르게 한참을 올라가는 동안 아래로 내려다 본 풍경은 언뜻언뜻 자신의 아름다움을 부끄러운 듯 조금씩 내비쳤다. 한 시간 남짓, 산길을 올라 드디어 마애미륵을 마주할 수 있었다. ‘가녈가녈한 몸에 꽃 만지는 솜씨 좀 봐라. 은둔하고 있는 이것은 불상인가, 여신인가’라는 책 속의 문장 그대로 이렇게 부드럽고 아름다운 여신 같은 불상은 태어나 처음 본 것이었다.

길이 꽤나 험하니 각오 단단히 하라고 한참을 일렀던 말을 듣고도 쫓아온 보람은 이미 다 채우고도 남았다. 게다가 마애미륵 맞은편으로 펼쳐진 풍경은 역시나 옛 절터답게 절경이었다. 비좁고 구불거리는 산길 위에 이런 공간이 있으리라곤 상상도 못했으리라. 땀에 흠뻑 젖은 몸을 마애불 아래 차가운 물에 잠시 열기를 식히고 둘러보기 시작했다. 보아도 보아도 참으로 좋았다.

어쩐지 상투적인 것만 같고 미사여구일 뿐인지 몰라도 밤새도록 이곳에서 하루밤을 지새워도 행복할 것만 같았다. 책을 읽으면서 어떻게 이렇게 폐사지에 끊임없는 열정을 갖고 정열적인 활동을 하는지, 아주 긴 러브레터를 읽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만큼 애정이 넘쳐나는지 궁금했다. 결국 직접 그 곳에 서자 도저히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바라보고 있으면서도 다시 또 오고 싶다는 마음이 몇 번이나 들었는지 모르겠다.




‘치명적인 매력이다. 그렇기에 더욱 더 자신을 내밀하게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답사를 떠날 때만 해도 마치 단체관광이라도 가는 기분으로 가볍게 기대 없이 발길을 옮겼는데 다녀오고 나서는 당장이라도 다시 떠나고 싶은 열정이 가득하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알려주고 싶을 만큼 마음이 벅차다.

이 돌덩이와 흔적뿐인 절터가 치명적인 매력을 갖고 있다는 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몹시도 고민했지만 『돌들이 끄덕였는가, 꽃들이 흔들렸다네』 책이 훌륭히 표현했다. 폐사지와 관련한 역사와 시대적 배경에서부터 그 곳에 머물렀던 과거와 현재의 사람들의 이야기를 술술 뽑아내 엮었다. 그곳에서 느낀 정취와 섬세한 감정에 대한 묘사도 빠짐이 없다.




“남들과 같은 것을 보고 같은 생각을 하면 남과 같은 것 밖에 못 만들잖아. 그래서 남과 다른 걸 보려고 돌아다녔어."

전라북도 폐사지 답사를 다녀와서 달라진 점은 나를 자꾸만 되돌아보게 되었다. 인생을 살아가는 수많은 방법 중에서도 보통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걷는 길을 따라서 걷기만 했지 생각해보고 고민해본 시간은 몹시 적을 것이다. 폐사지에서 겪는 경험은 새로운 세상을 선사할 것이다.




‘사람마다 자신이 선택한 삶에 따라 스스로가 머물러야 하는 자리가 있는 법이다. 비단 그것은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만물 모두가 그러하다. 태양과 달 그리고 별을 생각해보라. 우리가 이렇게 살아갈 수 있음은 그들이 제자리를 지키기 때문이다 … 그렇기에 제자리를 지키는 사람들을 비록 우직해 뭉툭할지라도, 사실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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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들이 끄덕였는가, 꽃들이 흔들렸다네 이지누 저 | 알마
전라북도의 절터 여덟 곳을 답사한 기록이다. 모두 여덟 권으로 기획된 ‘이지누의 폐사지 답사기’의 두 번째 권으로, 앞으로 이 시리즈는 충청, 경기, 경주, 강원, 경남, 경북 편으로 차례차례 이어질 것이다. 전라북도의 폐사지 답사는 남원 만복사터에서 시작해, 남원 개령암터와 호성암터, 완주 경복사터와 보광사터, 고창 동불암터, 그리고 부안 불사의방터와 원효굴터로 이어진다. 저자는 때로는 시적인 감상으로, 때로는 설화와 전설과 민담으로, 때로는 불교와 관련된 역사적 사료로 절터를 입체적으로 재구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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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김하나(채사모2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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