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기지 않는 삼성 X파일, 이렇게 사용해주세요 - 『이상호의 X파일』
보도하려는 자와 보도를 막는 자 간의 사투 삼성 X파일, 지금 꼭 얘기해야 하는 이유
“이 책을 읽고 누가 경제 민주화를 실현할 대통령인지 판단해서, 12월 19일 날의 써주셨으면 좋겠어요. 이 책을 내서, 제가 매를 맞으면서 의제를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사람들이 화를 내든 소송을 걸든, 같이 생각해 볼 기회를 만들고 싶었는데, 불행하게도 아무도 저를 때리지 않아요. 이렇게 조용하게 지나가선 안 될 것 같아요. 차라리 고소라도 했으면 좋겠어요. 고소, 미(me)!”
삼성 X파일 사건, 이상호 기자 앞에 던져지다
책 반응이 좋습니다.
책 내는 게 무서워서 걱정이 많았어요. 소송을 당할지도 모르고, MBC에서 선후배들이 혼을 내면 어쩌나 싶기도 했고요. 노무현 정부 때 삼성과 결탁하면서 만들어낸 서민 경제 정책을 비판한 내용도 있잖아요. 저도 노무현 대통령을 사랑하지만, 저보다 더 그분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화를 내시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반응을 생각할 겨를도 없었어요.
생각보다 독자들의 반응은 호의적인 것 같습니다. 좋은 평도 이어지고 있고요.
제가 걱정하는 분들이 아직 책을 읽지 않으신 게 아닌가.(웃음) 제가 공격적인 냉혈한인 줄 아는데 저 사실 겁이 되게 많거든요. 겁이 많은 개가 많이 짖는다고 하잖아요.(웃음) 항상 그랬어요. 옛날에도 생방송 할 때도 어찌나 떨었는지. ‘이어서 이상호 기자 카메라 출동으로 고발합니다’하면 VHS 테이프를 넣어야 해요.
그때부터 손발에 땀이 나고, 소송하겠다고 으르렁대던 사람들의 눈빛도 떠오르고요. 옛날엔 인터넷이 없어서 전화만 끄고 있으면 조용해지는데, 인터넷이 생긴 이후에는 도망도 못 가요.(웃음) 이번에 책 내고도 그랬어요. 지금도 두려운데 그래도 용기를 북돋아 주신 분이 많아서 얼떨떨해요. 정확하게 모르겠어요.
겁이 많은 만큼 취재할 때 철저해지는 부분이 있겠네요.
그렇죠. 완전 범죄 하려고 노력하죠. 저는 기자’질’이라고 속되게 표현하는데, 늘 느끼는 게 그거에요. 진실은 차치하고 사실이라도 달성할 수 있는가? 소송 때문만이 아니라, 이 일 자체가 어려운 일인 것 같아요. 진실까지는 바라지도 않고, 사실이라도 제대로 전하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소송이 저를 제일 많이 단련시켰고, 최근에 욕을 좀 먹고 있지만, MBC 기자라는 프라이드가 저를 담금질해왔어요.
취재기를 오랫동안 써왔어요. 이번에 책을 낸 것에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럼에도 ‘지금’ 책을 내기로 한 까닭은 뭔가요? 이제는 말할 수 있다고 판단한 까닭이 궁금합니다.
원래는 20년 정도 뒤에 내려고 했어요. 집사람은 제가 늘 고발기자, 카메라 출동 기자인 것을 항상 자랑스러워했어요. 그랬던 그녀가 유일하게 반대했던 게 삼성 X파일이었거든요. 여자 말 안들은 죄로 7년 동안 고통받았는데, 그녀가 반대했던 또 하나가 이 책을 내는 거였어요. 책 속에 나오는 인물들이 다 인관관계가 얽혀 있고, 이해관계가 있으니 그때가 지나면 현재의 어떤 독기가 빠지고 정제되어 있을 거다. 그 전에 이 책을 내면 그건 진짜 승산도 없고 우리 사회에서 못살 거라고 조언을 해줬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 책은 지금 얘기돼야 하는 책이에요.
중요한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잖아요. 삼성의 영향력은 7년 전보다 더 강고해졌어요. 또 노무현을 계승하겠다는 사람들, 당시 경제 정책에 책임이 있는 사람이 또다시 노무현 시대를 반성 없이 집권했을 때, 또 한 번 어려운 시기를 맡게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저도 그분을 인간적, 역사적으로 좋게 평가하지만, 그 시대 경제정책에 관한 비판적 평가를 더는 유보해서는 안 된다고 봤고요. 인간관계가 박살 나는 건 피하려고, 머리를 썼어요. 소설로 쓰자. 그런데 잘 안돼서, 이름만 가명으로 전환했죠. 언 발의 오줌 누기죠.
한참 경제 민주화 얘기가 많이 나오고 있잖아요. 삼성 X파일 사건이야말로, 자본이 어떻게 언론을 장악하고 있는지, 얼마나 큰 권력이 되었는지 실감 나게 보여준 것 같아요. 실명뿐만 아니라 더 많은 이야기가 숨겨져 있진 않을까 싶었고요. 결국, 그때 겪은 일을 나름의 기준으로 추려내신 걸 텐데, 어떻게 추려서 무엇을 보여주고 싶으셨어요?
욕 적게 먹고 소송 안 당할 수 있도록.(웃음) 사적인 얘기는 많이 뺐고, 최소한의 플롯을 유지하기 위해서 재미있는 부분은 살려뒀어요. 왜 삼성이 문제가 되는가? 왜 자본이 우리가 경계해야 할 대상이 되는가? 자본과의 관계 속에서 사람이 어떻게 나약해지고 비겁해지는지 보여주고 싶었어요. 우리 사회 속에서 벌어진 일이고, 제가 그 접촉면에서 고통스럽게 겪은 일이잖아요. 우리 사회가 어디에 있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 그 인식을 공유하고 싶었어요. 기자는 그냥 기사 몇 줄 쓰고, 있었던 일 알려주는 게 아니거든요. 우리 시대의 인식 공장이에요.
이 취재기가 기자님한테는 대나무 숲 같은 존재였을 것 같아요. 아무 데도 할 수 없는 이야기를 풀어낸 거잖아요. 김광석, 장자연, 강호동 등 취재를 하고도 다 얘기하지 못한 게 많잖아요. 취재기록을 쓰기 시작한 건 이런 이유에서였나요?
처음에는 법정에 제출할 소송 자료의 하나로 만들었어요. 나중에는 점점 고립되고 소외되니까 우울증에 공황 장애가 생겼어요. 생겨서 사람 눈을 쳐다보지 못하고, 내가 뭘 잘못한 것 같아서 눈치를 보고 다녔어요. 정말 사람이 좋아서 시작한 기자 일이거든요. 그런데 그게 싫은 거야. 집에 누워 있다가, 컴퓨터 켜보면 상처되는 말만 보이고. 그래서 저와 대화를 한 거에요. 저는 읽으면 그때의 고통이 생생하게 되살아나요. 그래서 다시 못 읽겠더라고요. 독자 중에 저처럼 읽으면서 고통을 느낀다는 분도 있는데, 그분들에게 죄송하죠.
사건이 어찌나 꼬이던지요. 오해는 끝없이 빚어지고, 사건은 계속 수렁 속으로 빠져들어서 눈을 못 떼고 읽었어요. 영화화 소식을 들었을 때, 참 그럴 만하다고 생각했어요. 그 사건 당시엔 어떻게 버티셨어요?
막막했고,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몰랐어요. 그럼에도 포기하겠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내가 쓰임 받고 있구나. 내가 고통스러울수록 뭔가 하고 있다는 거잖아요. 대단히 미안한 얘기지만 기자는 고통스럽지 않으면 일하지 않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잘못된 상식과 관성과 타성과 싸우는 일이잖아요. 본질에서 무언가 거스르는 일이에요.
사람들이 자꾸 물어서 헤아려 봤어요. 58번째 소송이 진행 중이더라고요. 1년에 동시 진행 중인 소송이 네다섯 개 있어요. 그중에 단 한 번도 예상하지 못한 소송은 없었어요. 그럼에도 했던 일이거든요. 당연히 고통스럽죠. 하지만 내가 자초한 일이니까, 즐기려고 노력했어요. 물론, 즐겁진 않았지만요.(웃음)
<발뉴스>나 <개나발> 등은 팟캐스트, 트위터를 활발히 활용하잖아요. 여기 스티브 잡스에게 고마워해야 할 분이 한 분 더 계시는구나 싶었어요.(웃음)
오히려 그 당시에 팟캐스트나 트위터가 있었으면 어땠을까? 생각해봤어요. 지나고 나니까 모든 이야기는 해야 할 때가 있는 것 같아요. 박근혜 후보가 5.16 얘기를 할 때마다 왜 과거에 얽매이냐고 하잖아요. 현재는 얽매일 수가 없어요. 진행되는 일에 어떻게 얽매여요.(웃음) 사건이 지나고 나야 거기에 지금 얽매일 수 있는 거거든요.
만약 그때 지금처럼 SNS가 있어서, 나 억울하다고 얘기했다면, 더 가루가 됐을 것 같아요. 지금 너무 많은 이야기가 분출되고, 순식간에 흘러가죠. 최소한의 사실이 숙성되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요. 7년이란 시간 동안에도 생각을 많이 했어요. 나를 부정도 해보고, 왜 보도를 했을까, 매너리즘에 빠진 건 아닐까 고민도 해봤어요. 남는 건 하나더라고요. 알려야 했어요. 지금은 이 이야기가 걸맞은 시기에 나와서 더 많이 공감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서문에도 쓰셨잖아요. 글을 정리하면서 기자라는 게 뭘까 생각해봤다고요.
공부하던 때 생각이 났어요. 저 박사학위가 있거든요. 대부분 ‘대학이나 나왔니?’ 하는 얼굴로 보시는데, 요즘엔 책 날개에 학력을 보시고 놀라는 분이 많아요.(웃음) 삼성 기사 쓰고 일이 생기지 않아서 시간이 많았어요. 그때 논문을 쓰고 공부를 했는데, 공부가 채우는 게 아니라 비우는 일이라는 걸 알게 됐어요. 리셋(reset)하는 기분으로, 기자를 준비하던 시절에 읽은 책과 하던 생각들이 떠오르더라고요. 그때 마음에 품었던 나만의 규칙들.
이를테면, 기자 생활하면서 갖게 되는 현실적인 논리가 있어요. 회사의 경영을 생각해서, 광고되는 기사도 써줘야 한다고 얘기하잖아요. 그런 세상의 때를 청소하는 시간이었어요. 비록 지금은 소수이지만, 바른말을 하는 소수가 공정하고 열린 사회에서 평가받고, 다수가 되는 것, 그게 진보하는 사회 아니겠어요? 오늘날 억압받는 소수와 함께 있는가? 이 문제가 저에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그들과 함께 사실을 이야기할 수 있는 용기가 있는가? 이런 기본적인 것들이요. 여전히 좋은 기자가 되고 싶고, 그게 아주 어려운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이 책을 읽어보니, 좋은 기자를 하려면 잘할 수 있는 게 많아야겠다 싶더라고요. 사람관리도 잘해야 하고, 제보자에게 신뢰감도 줘야 하고, 줄다리기도 잘해야 하고요.(웃음) 기자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뭐라고 보시나요?
자기를 스스로 잘 낮추는 것. 겸손한 태도라고 생각해요. 결국, 우리는 그릇이에요. 이야기를 담고, 흔적을 채취하는 그릇인데 그 그릇이 자기를 내세우면 안 되죠. 저도 고통스럽게 돌아보는 대목이기도 한데, 방송 기자는 팀플레이를 해야 하거든요. 물난리가 나서 중계차가 뜬다면, 기자 한 사람의 판단에 의해서, 중계차 갑시다! 하던지 상황이 어려우니 철수합시다! 하는 거거든요. 회사랑 커뮤니케이션도 해야 하는 건데, 현장에서 여러 사람이 일하다 보면 불만이 많아요. 제보자나 동료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편안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봐요.
아픈 이야기인데요. 내부 고발, 삼성 X파일 보도를 두고, 공명심 운운하는 비난도 많이 들으셨다고요. 그런 비난 앞에서 어떤 중심을 갖고 버티셨어요?
공명심이라는 말을 들으면 갑자기 신경질이 팍 나요. 오랫동안 저를 괴롭혔던 덫이에요. 많이 생각해봤고, 지금은 결론을 내렸어요. 나는 공명심이 있다고 인정하기로 했어요. 자기 이름으로 기사를 내지 않을 거면, 뉴스마다 “MBC 뉴스, 이상홉니다.”라고 왜 복창을 해? 그게 공명심이지! 이름을 떨치는 거잖아요. 이름을 떨치고 싶은 마음이 요만큼 있는데. 왜 그걸 떨치면 안 되나요?
용기 있게 얘기하자면, 난 정당한 공명심은 필요하다고 봐요. 부당한 방법으로, 잘못된 목적을 추구하는 공명심은 안 되겠지만 자기의 이름값을 소중하게 여기려는 것, 명예를 드높이기 위해 애쓰는 일이 왜 나쁜가요. 공명심으로 사람을 비난하는 건 적절치 않다고 생각해요. 물론 이제까지 공명심보다는 기자로서의 직업윤리에 충실히 하려고 애써왔어요.
선거로도 교체되지 않는 자본 권력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상호 기자 X파일』을 읽고 생겨난 분노는 어떻게 써먹어야 할까요?(웃음) 『이상호 기자 X파일』 활용법을 알려주세요.
불쏘시개로 써주세요. 이 책을 읽고, 누가 경제 민주화를 실현할 대통령인지 판단해서 12월 19일 날의 불쏘시개로 따뜻하게 써주셨으면 좋겠어요. 이 책을 내서, 제가 매를 맞으면서 의제를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사람들이 화를 내든 소송을 걸든, 같이 생각해 볼 기회를 만들고 싶었는데, 불행하게도 아무도 저를 때리지 않아요. 전치 십 주 정도는 감내하겠다는 생각으로 책을 냈는데, 아예 얘기하지 않아요.
김미화의 <여러분>에 나가서 과격하게 말했어요. 이 책은 재벌 위주의 정책을 편 노무현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한 고발서고, 노무현 정부의 정통성을 잇는다고 주장하는 후보라면 명백하게 반성을 촉구하는 탄원서라고요. 그때를 반성하고, 그때 노무현 정부를 지지했던 서민, 중산층에게 다시 믿음을 줬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아무 얘기도 안 해요. 그게 더 무서워.(웃음) 이렇게 조용하게 지나가선 안 될 것 같아요. 누가 고소했으면 좋겠어. 고소 미(me)!
앞으로 기자 이상호의 계획은 뭔가요? 자연인 이상호의 꿈도 궁금합니다.
<발뉴스>는 인터넷 국민 방송을 자임하고 있어요. 이 스튜디오도 국민 성금으로 세웠고요. 아주 기초적이고, 열악한 환경에서 자원봉사 수준으로 일하고 있지만, 어느 언론사 부끄럽지 않아요. MBC에서 다시 기회를 준다면 열심히 하겠지만, 그때까지 이 친구들과 근사하게 <발뉴스>를 꾸려가고 싶어요. 팟캐스트는 언론 민주화에 있어 대단히 중요한 실험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이제 인생의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데 죽을 때까지 방송하다가 죽을 수 있길 바랍니다. 그런 꿈을 위해서 첫 삽은 떴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기자가 되기 위해 노력할 겁니다.
이제 내리막길이라고 하셨으니(웃음) 사사롭게 바라는 것 하나 얘기해 주세요.
책이 좀 많이 팔렸으면 좋겠어요. 많이 읽어서 세상이 변했으면 하는 마음도 있고, 저희도 소고기가 먹고 싶어요. 으하하하.
이한열 기념관 2층에 이 발뉴스 스튜디오가 있죠. 기자님한테 이한열 열사는 특별한 이름이잖아요. 오랫동안 마음으로 불러온 이름이고.
개소식 할 때 이한열 열사 어머니 배은심 여사님이 그런 말씀을 하더라고요. 일곱 살 때까지 이한열 열사 이름이 상호였대. 저랑 이름이 같았더라고요. 이한열 열사와 대학교 때 되게 친하게 지냈어요. 형의 꾐에 빠져서 대모도 했었고, 마지막 가시던 날도 현장에 같이 있었어요. 그날, 신촌, 광화문까지 거리 진출하기로 한 날이어서 필시 연행이야. 연행되면 입고 간 흰옷이 검은색이 돼서 나왔어요. 하도 밟혀서.
그날도 생생하게 기억해요. 민주 광장에서 집회를 평상시보다 열 배나 짧게 했어. 5분 만에 일어나서, 대열이 흩어질 때 빠지려고 백스텝을 취하고 있었는데 이한열 선배가 손을 내밀더라고요. 내 마음을 아는지. ‘상호야, 오늘까지만 가자.’ 그래서 자기가 첫 줄에 서고, 제가 두 번째 줄에 섰거든요. 첫 줄에 있다가 최루탄 맞아서 돌아가셨잖아요. 그 충격이 컸어요. 첫 줄에 서 있는 사람의 고독. 둘째 줄에 선 사람의 안온함. 비겁함. 그런 것들…… 살면서 잊었던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제가 오늘 여기 찾아오면서 이한열이라는 이름을 세 번이나 얘기했거든요. 이렇게 <발뉴스> 덕분에 이제 이한열이라는 이름을 많은 사람이 같이 부르게 됐어요.
사무실이 없어서 한동안 카페를 전전하면서 공간을 찾았어요. 여기에 들어오게 된 건 정말 의도한 바가 아니었어요. 처음에 이 공간을 보고, 너무 넓어서 하지 않겠다고 했거든요. 그런데 생각해보니, 여기에 세를 내면, 이한열 기념관 후원비로 들어가잖아요. 펀딩을 해서 들어오기로 했어요.
이한열 스튜디오라고 이름을 지으면, 사람들이 우리 방송을 볼 때마다 이한열에 대해 알게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80년대 정치 민주화를 위해 희생한 그 사람 이름이 경제 민주화를 위해 다시 필요한 시점이에요. 전두환도 완전히 정리하고 과거 퇴행 세력을 확실히 막고요. 다시 한번 사회를 성숙시킬 수 있도록 형의 이름을 불러야 할 시기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중요한 이름이네요. 방향이 되기도 하고. 기자님을 여기까지 데려왔고 앞으로도 데려갈 이름이니. 그러려면 <발뉴스>가 더 잘 되야겠어요.(웃음)
※ 이상호 기자와의 만남에 독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 신청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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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X파일을 취재한 이상호 기자의 책이다. 저자는 대한민국 대표 탐사전문 기자로 2005년 ‘삼성 X파일’ 보도로 한국기자상을 수상하였다. 그 외에도 ‘연예계 노예계약’, ‘전두환 비자금 추적’, ‘방탄 군납비리’, ‘방송가 뇌물커넥션’ 등 숱한 특종을 낳았다. 그는 삼성 X파일 보도 후 회사에서 계속해서 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