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의 파산, 주정뱅이, 폐암. 역경 딛고 최고의 작가로 우뚝 - 『레이먼드 카버: 어느 작가의 생』
'레이먼드 카버: 어느 작가의 생' 가상 인터뷰 파산한 주정뱅이가 미국 최고의 작가로 다시 태어나기까지
내가 소설 창작을 공부하기 시작한 건 열일곱 살 때였소. 할리우드에 있는 파머 작가학교 통신과정에 등록했지. 그렇소, 난 작가가 되고 싶었소. 헤밍웨이에게 자극받았지. 사랑받는 작가가 되는 것 말고 내가 원한 게 뭐가 있겠소. 난 단편소설을 썼소. 처음엔 소규모 잡지들에 간신히 글을 실었지. 커트 존슨(당시 『디셈버』의 편집장)을 잊을 순 없소.
레이먼드 카버는 20세기 미국의 대표적인 작가이다. 1938년에 태어나 1988년에 사망하기까지, 그리 길지 않은 생을 누리며 주옥 같은 작품을 남겼다. 술에 찌들어 지내던 그가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고, 폐암으로 사망하기까지를 다룬 책이 『레이먼드 카버 : 어느 작가의 삶』이다.
* 인터뷰는 레이먼드 카버와 채널예스의 가상 인터뷰로 진행되었습니다. 강출판사 김정현 편집장이 레이먼드 카버 역을 맡았습니다.
당신은 누구인가?
나요? 난 레이먼드 카버요. 이거 왠지 ‘나쁜 레이’ 시절로 돌아가 말하고 싶군(알코올중독 말기까지 갔던 카버는 술을 마시던 시절의 자신을 ‘나쁜 레이’라고 불렀다. 그 시절 카버의 손에는 늘 술병이 들려 있었다). 그 편이 더 재밌을 거 같지 않소? 자 그럼 그렇게 알고 이야기를 시작하겠소. 잠깐, 그전에 잔을 좀더 채워야겠군. 스미노프 보드카요. 이보다 더 좋은 건 없지.
근데 어떤 이야기를 듣고 싶은 거요? 데이비드 코퍼필드 식의 이야기? 그렇게 시작하는 것도 나쁘진 않지. 난 1938년 미국 오리건 주 클래츠케이니에서 태어났소. 장남이었지. 난 내 아버지 클레비 레이먼드 카버를 사랑했소. 제재소 톱날기사였던 아버지를 따라 낚시 가는 걸 무엇보다 좋아했지. 혹시 낚시를 해본 적 있소? 무지개송어를 낚아본 적 있냔 말이오.
카버는 아버지가 해주는 이야기를 들으며 글을 쓰고자 하는 욕망을 품게 되었다.
내가 소설 창작을 공부하기 시작한 건 열일곱 살 때였소. 할리우드에 있는 파머 작가학교 통신과정에 등록했지. 그렇소, 난 작가가 되고 싶었소. 헤밍웨이에게 자극받았지. 사랑받는 작가가 되는 것 말고 내가 원한 게 뭐가 있겠소. 난 단편소설을 썼소. 처음엔 소규모 잡지들에 간신히 글을 실었지. 커트 존슨(당시 『디셈버』의 편집장)을 잊을 순 없소. 그 친구가 내 글을 잡지에 처음 실어주었거든. 날 알아봐주었다고. 『에스콰이어』에서 연락을 받은 건 1971년이었소. 그때 내 기분이 어땠는지는 상상도 못할 거요.
소규모 잡지 『디셈버』의 편집장 커트 존슨. 그 역시 엄청난 술꾼이었다.
당시 『에스콰이어』는 최고였거든. 아무나 이름을 올릴 수 있는 잡지가 아니었다고. 그러다 1976년에 첫 소설집 『제발 조용히 해줄래, 제발?』이 나온 거요. 그즈음에 술도 끊었지. 쉽지 않았소. 정말 쉽지 않았어. 내가 해낸 일 중 가장 자랑스러운 게 뭔 줄 아시오? 바로 술을 끊은 거요. 그러니까 오늘은 매우 예외적인 날인 거요. 기념비적인 날이지. 1977년 6월 2일 금주를 시작한 이후 술을 입에 댄 건 오늘이 처음이라고.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이하 『사랑을 말할 때』)이 나온 건 1981년이었소. 역시 눈을 반짝이는군. 편집자 고든 리시와의 관계에 대해 묻고 싶은 거요? 2007년 미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그 사건에 대해? 그 얘기라면 내 전기를 참고하는 게 좋겠소. 거기 아주 면밀하게 소개돼 있으니까. 대신 한 가지만 귀띔해주지. 얼마 후면 내 소설집이 한 권 더 출간될 거요. 리시가 수정을 가하기 전 원고들을 묶은 책이지. 그걸 꼭 읽어줬으면 좋겠소.
『사랑을 말할 때』가 성공을 거두면서 나는 유명 작가가 되었소. 그렇다고 삶이 완전히 바뀌는 건 아니더란 말이지. 가족 문제나 돈에 얽힌 일상적인 상황들은 크게 호전되지 않았단 말이오. 그래도 난 기뻤소. 『대성당』이 퓰리처상 후보에 오르면서 내 작가 경력은 최고점을 향해 가고 있었거든. 난 운이 좋았지. 운이 정말 좋았어. 하지만 그 운이란 게 영원할 리 없잖소. 폐암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거요. 완전히 골초였거든. 술은 끊어도 담배는 어쩔 수 없었지. 지금도 후회는 없지만 더 이상 글을 쓸 수 없다는 것, 타자기가 놓인 내 책상 앞을 떠나야 한다는 게 날 슬프게 했소.
『레이먼드 카버: 어느 작가의 생』은 어떤 책인가?
이제 그만 술잔을 치우고 ‘착한 레이’(술을 마시지 않던 시절의 레이)로 돌아와야겠소. 방금 책에 대해 물었소? 캐롤 스클레니카라는 이름을 들어봤는지 모르겠군. 이 책의 저자 말이오. 영문학을 전공한 사람인데 소설가이기도 하지. 내가 스클레니카를 만난 적이 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소. 아마 우리가 서로 만난 적은 없을 거요. 대신 스클레니카는 내가 알고 지내던 거의 모든 사람을 만났지. 가족과 친구들은 말할 것도 없고 나에 대해 사소한 기억거리를 갖고 있다면 그 누구라도.
낡은 셰비 자동차 앞에서. 카버는 이 차를 타고 아이오와 작가 워크숍을 들으러 떠났다.
나에 대해 너무나 알고 싶어했지만 정작 나를 찾아올 순 없었으니까. 내가 이미 죽고 난 후였거든. 십 년도 넘게 자료 조사를 샅샅이 하더군. 세상에 십 년이라고! 내 작품들, 각종 문헌, 수많은 기사들, 너덜너덜해진 메모들까지 죄다 말이오. 『레이먼드 카버: 어느 작가의 생』은 스클레니카의 이런 노력 끝에 완성된 나의 연대기요. 이 연대기에는 내가 작가로 성장해온 과정이 생생하게 재현돼 있소. 또 거기에는 내 가족과 친구들의 이야기가 얽혀 들어가 있고. 당신이 궁금해하는 고든 리시와의 관계도 빼놓지 않았다니까.
한 사람의 삶이란 건 무수히 많은 관계들로 이루어지게 마련이잖소. 내가 깨닫든 그렇지 못하든 그 관계들이 유기적으로 작동하며 삶을 끌어가는 거지. 스클레니카는 이 연대기를 완성해가는 동안 그런 면면들을 다각도로 바라보았소. 균형 잡히고 사려 깊은 시각으로 말이오. 이런 사람이 내 전기를 썼다니, 난 역시 운이 좋은 사람이오.
당신의 작품 중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가? 소개해 달라.
어떤 게 좋겠소? 잠깐만 기다려보시오. 일흔 편이 넘는 작품 가운데 하나를 고르는 건 쉬운 일이 아니잖소. 하나같이 공들여 쓴 것들이란 말이오. 좋지 않은 건 하나도 없다고. 아니, 잠깐만. 조금만 더 기다려보시오. 내 전기를 읽어보면 알겠지만 내가 좀 소심하오. 덩치하곤 상관없다니까. 사실 지금은 소심해서가 아니라 당신에게 정말 좋은 작품을 골라주고 싶어서 그런 거요. 자 이제 됐소. 「수집가들」(『제발 조용히 좀 해요』, 문학동네)을 선택했소. 기묘한 슬픔을 느끼게 하는 작품이지. 자 그럼 이야기를 시작해볼까.
이 소설에는 슬레이터라는 남자가 등장하오. 이 사람 아무래도 파산한 것 같지 않소? 집은 텅 비었고 곧 날아들 통지서 때문에 겁을 잔뜩 집어먹고 있잖소. 비 내리던 어느 날 오브리 벨이라는 진공청소기 판매원이 슬레이터를 찾아온 거요. 아니 원래는 슬레이터 부인을 찾아온 거지. 근데 이 사람 정말 슬레이터 부인을 찾아온 것 같소? 처음부터 슬레이터를 만나려고 한 게 아닐까? 어쨌든 슬레이터와 오브리 벨 두 사람이 만난 후로 시간이 기묘하게 흘러가는 거요. 뚱보 오브리 벨은 청소기의 성능을 보여주겠다며 매트리스와 카펫 등을 청소하지.
그때 그가 이런 말을 했소. “몇 달, 몇 년 동안 매트리스에 어떤 것들이 모이는지 알면 놀랄 겁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매일 밤 매일 낮 우리의 작은 조각들을, 이런저런 파편들을 남기죠.” 그는 진공청소기로 그동안 쌓인 슬레이터의 파편들을 죄다 빨아들였소. 마지막에는 슬레이터 앞으로 온
우편물(그가 받기를 두려워하고 있던)까지 수거해버렸지. “슬레이터 씨한테 온 겁니다. 내가 처리하죠. 커피를 못 마실 것 같네요.”
편집자 고든 리시가 찍어준 사진. 리시에게 빌린 청셔츠를 입고 윗단추를 풀어헤쳤다.
이 사람 아무래도 슬레이터의 속사정을 다 알고 있는 것 같지 않소? 그렇소, 오브리 벨이 바로 이 소설 전체에 깔려 있는 ‘기이함’의 진원지요. 그의 강박적인 태도가 슬레이터를 홀려버렸소. 꼼짝 못하게 만들었지. 오브리 벨이 커피를 사양하고 집을 떠나자 이제 슬레이터에게 남은 건 아무것도 없었소. 그가 ‘모든 걸’ 가져가버렸지. 슬레이터는 거기, 오브리 벨이 떠난 그 집에 아직 남아 있는 게 맞는 거요? 정말 그런 거요?
스클레니카가 내 전기에서 얘기했듯이 이 소설은 내가 겪은 파산 경험에서 비롯됐소.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었지. 그렇소, 두 번씩이나. 당신은 절대 나와 같은 일을 겪으면 안 되오. 부채 목록을 정리하고 파신신청을 하고 파산 청문회에 참석하고…… 정말 고통스럽고 슬픈 일이오. 그 시절의 내가 죽지 않고 살아 있는 건 기적이었다니까.
물론 이 소설은 한 개인의 파산만이 아니라 다른 여러 차원에서 이야기될 수 있을 거요. 그건 당신이 누구인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에 달린 거요.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이 꼭 알아주었으면 하는 것은 무엇인가?
당신이 이 책을 보았다면 이제 내 단편들을 읽어주면 좋겠소. 내 이야기에 귀기울여준다면 더 바랄 게 없지. 이미 본 걸 다시 읽는 것도 좋을 거요. 전과는 다를 테니까. 이 책의 소용이 무엇이겠소. 내 생은 그다지 특별하지 않거든. 누구나의 생이 그런 것처럼 그저 슬플 뿐이오. 내가 남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작가가 되기를 열망했다는 것, 그래서 글쓰기를 멈출 수 없었다는 것, 우리들 삶의 순간들을 단편과 시 속에 붙잡아두고 시대를 거듭해 다시 태어나게 했다는 것 정도요. 이 책을 통해 당신이 나와 좀더 친밀해졌으면 좋겠소. 그렇게 내 이야기 안으로 들어와 주기를 바랄 뿐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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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밀화처럼 카버의 생애를 그려내고 있는 이 책에서 저자는 미국 북서부 워싱턴 주의 야키마에서 가난한 제재소 노동자의 아들로 자란 예민한 감성의 뚱보, 레이먼드 카버의 성장기를 생생하게 재구성해내고 있다. 레이는 열아홉 살 때 고등학교 시절부터 사귀어온 두 살 아래의 메리앤 버크와 결혼했다. 동네 의사가 사무실 청소를 조건으로 빌려준 지하 아파트에서 결혼 전에 임신했던 첫애를 기르면서(이때 둘째 밴스는 엄마의 뱃속에서 자라고 있었다), 두 사람은 레이가 작가가 될 것이라고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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