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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멋있는 아이가 있구나. 나도 닮고 싶다.’ - 이병승 :『여우의 화원』

내 아이에게는 세상을 어떻게 가르쳐주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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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승 작가의 동화 『여우의 화원』에는 이상의 모든 것들이 응축되어 있다. 이 동화는 우리 아이들에게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어떻게 심어주어야 할 것인가, 하는 고민에서 출발한 작품이다. 현재 우리 사회의 모습을 그리고 있고, 그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에 대한 해답도 제시되어 있다.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씌어졌지만, 작가의 바람대로 엄마와 아빠가 함께 읽고 아이에게 들려준다면 참 좋을 동화다.

‘자신이 어른이 되었다고 느낀 순간은 언제입니까.’ 누구나 한번쯤 자문해 본 적 있을 것이다. 정답은 없다. 사람들의 숫자만큼 다양한 대답이 있을 것이고, 그 모두가 정답일 것이다. 다만 조심스럽게 짐작해 보건대, 아마도 알지 못했던 세상의 순리와 진실에 대해 알게 되었던 순간이 아니었을까. 때로는 노력을 배신하는 결과를 얻기도 하고, 진심이 통하지 않을 때도 있으며, 해낼 수 없는 일들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는 순간 말이다.

그렇게 학교와 선생님, 부모님, 사회의 어른들이 말해주지 않았던 세상의 실체를 알게 될수록 ‘그렇다면 내 아이에게는 세상을 어떻게 가르쳐주어야 할까’ 고민하게 된다. 세상 일이 계획대로 되지 않고 뜻하는 바와 어긋난다 하더라도, 아이들이 자책하고 낙담하며 자기 자신과 시간을 허비하지 않았으면... 바라기 때문이다.

어떻게 세상을 해석해서 아이에게 이야기해 주어야 할지 고민한다면 그 아이가 살아가야할 세상의 모습을 그려봐야 한다. 그 출발은 지금 우리가 딛고 서 있는 이곳의 실체와 문제를 파악하는 것이다.

이병승 작가의 동화 『여우의 화원』에는 이상의 모든 것들이 응축되어 있다. 이 동화는 우리 아이들에게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어떻게 심어주어야 할 것인가, 하는 고민에서 출발한 작품이다. 현재 우리 사회의 모습을 그리고 있고, 그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에 대한 해답도 제시되어 있다.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씌어졌지만, 작가의 바람대로 엄마와 아빠가 함께 읽고 아이에게 들려준다면 참 좋을 동화다.




“난…… 너랑 친해지고 싶어. 친구가 되고 싶다고.
 근데 넌 왜 우리 아빨 욕해?”


『여우의 화원』은 초등학생 민수와 억삼이가 나누는 우정에 대한 이야기다. 민수의 아버지는 국내의 자동차 대기업 ‘미래자동차’의 사장이고, 억삼이의 아버지는 그곳에서 해고된 노동자다. 자신의 멋진 잔디밭을 가꾸기 위해 잡초를 솎아내는 ‘해고’는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이야기하는 민수의 아버지와, 자신들은 삶의 터전에서 뿌리째 뽑혀 버려져서 말라 죽어 가는 나무와 같다고 말하는 억삼이의 아버지. 너무도 다른 두 아버지의 입장과 주장은 민수와 억삼이의 우정을 시험에 들게 하는 시련으로 작용한다.

민수에게 있어서 아버지는 미래자동차를 경영하며 벽암시를 발전시킨 훌륭한 분이다. 아버지를 통해 들은 해고 노동자들은 게으르고, 불평불만만 일삼고, 일도 제대로 안하는 ‘잡초’다. 반면 억삼이에게 아버지는 ‘잘릴 만 한’ 분이 아니다. 십 년 넘게 회사에 빠진 적이 단 한 번도 없고 지각도 한 적 없으며, 야근은 거의 날마다 했던, 우수사원 표창만 세 번을 받은 훌륭한 분이다. 억삼이에게 민수 아버지는, 자신의 아버지를 내쫓고 그 자리를 보다 저렴한 인건비의 외국인 노동자로 대체시킨 거짓말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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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대기업과 그로 인해 발전한 도시, 그곳에 남은 해고 노동자, 복직을 요구하는 천막농성, 위기에 처한 그들의 가족. 그렇다. 이 이야기는 평택 쌍용자동차 사태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단지 그 이유만으로 노동자의 입장에서 씌어졌다고 속단해서는 안 된다. 작가는 쌍용자동차 사태의 책임을 한 사람에게 돌리지도 않고, 이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주장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민수와 억삼이, 두 주인공의 입을 통해 상반된 주장을 보여주고 팽팽하게 대립시킨다. 아이들에게 자칫 편향된 시각을 심어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될 수 있음을 누구보다도 작가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창작 내내, 그러한 비판을 받지 않기 위해 스스로 경계했다. 그 고민의 과정과 결과에 대해 작가에게 직접 들어보았다. 『여우의 화원』 북콘서트에서의 만남이었다.

평택 쌍용자동차 사태를 배경으로 한 만큼 북콘서트는 의미 있는 장소에서 진행됐다.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와 가족들을 위한 심리치유센터 <와락>이다. 이곳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많은 분들이 아이들과 함께 다양한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페이스페인팅과 포토타임이 마련되었고, 아이들이 직접 준비한 톤차임(tone chime) 연주와 난타 공연을 감상할 수 있었다. 송경동 시인과 노래패 ‘우리나라’(이광석)도 함께했다. 아이들이 밝고 건강하게 자라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희망을 잃지 말라는 당부의 말도 잊지 않았다. 무엇이든 꿈꿀 수 있고 어떤 모습이든 꿈꾸는 대로 되리라는, 그것은 예상이 아닌 약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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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니까 이 정도지. 진짜면 넌 죽었어.”

『여우의 화원』에서 민수와 억삼이의 너무나도 다른 처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소재는 ‘용역 놀이’다. ‘용역’ 과 ‘놀이’. 결코 어울릴 수 없는 두 단어의 조합이, 해고 노동자의 자녀들에게는 새로 찾아낸 놀이의 이름이다. 작품 속에서 ‘용역 놀이’라는 소재는 두 주인공의 대립되는 상황을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동시에 해고 노동자 자녀들의 현실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가슴 아픈 것은 이 놀이가 작가에 의해 만들어진 ‘허구’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지난해 9월, 한진중공업의 영도조선소 주변에 살고 있는 초등학생들이 ‘용역놀이’를 한다는 내용의 신문 보도가 있었다. 세게 머리를 맞은 듯 충격적이고, 가슴을 가격 당한 듯 저릿해지는 뉴스였다. 작가 역시 해당 기사를 보고 가슴이 너무 아팠다고 했다. 아프지만 현실을 이야기해야 했다. 지금 우리 곁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일은 없는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고 잊어버리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용역놀이’는 작품의 모티프가 되었다.

현실의 아이들이 하는 용역놀이의 모습 그대로, 작품 속의 아이들은 용역과 노조로 역할을 나눈다. 마치 술래잡기를 하듯 노조 역할을 맡은 아이들은 용역 역할을 하는 아이를 피해 우르르 달아난다. 술래잡기와 차이점이 있다면 붙잡힌 노조 아이는 흠씬 두들겨 맞는다는 것이다. 이 놀이의 규칙에는 슬픈 진실이 숨어있다. 노조가 도망을 가고 용역이 그들을 뒤쫓는 것과, 붙잡힌 노조에게 용역이 폭력을 행사하는 것을 누구도 의아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놀이를 하고 있는 아이들도, 놀이에 대한 설명을 듣는 어른들도 그 규칙을 이해하는 데 조금의 어려움도 느끼지 않는다는 사실이 진짜 슬픈 것이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할 줄 알고 약한 자에게 베풀 줄 아는,
용기를 가지고 행동할 수 있는 아이를 보여주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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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역 놀이’와 함께 지난해 진행된 ‘한진중공업 희망버스’에 관한 뉴스를 접한 후, 작가는 우리 동화에도 이와 같은 문제를 이야기하는 작품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편향된 시각을 심어줄 수는 없었다. 그것은 그가 의도하는 것이 아니었다. 작가의 바람은 아이들 가슴에 휴머니티를 심어주는 것이었다.

“제 동화관의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휴머니티를 가진 아이’가 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거에요. 정의가 무엇이고, 사랑이 무엇이고,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할 줄 알고. 자기보다 약한 자한테 베풀고 도와줄 줄 아는, 용기를 가지고 행동할 수 있는 아이요. 그런데 아이들이 조금만 크면 바로 현실 문제에 부딪히잖아요. 그러니까 좌절하는 거죠. 거기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별로 없을 거에요. 사회에 나가면 옳지 않은 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따라가잖아요. 그런데 어렸을 때 읽은 동화를 통해서 좋은 모델들이 자기 안에 한 번 새겨지고 지나가면 그것을 좀 늦출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옳지 않지만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을 최소한 덜하지 않겠느냐는 거죠. 그런 아이들이 사회에 나가서 어른이 되면 조금 더 사회가 예뻐지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래서 현실에 대해 비판적이고 부정적으로 그리고 있는 작품을 많이 보여주고 싶지는 않았어요. 가능하면 멋진 아이, ‘이렇게 멋있는 아이가 있구나. 나도 닮고 싶다.’라는 생각이 드는 아이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한 쪽에 치우친 시각과 생각을 주입시키고 싶지 않았기에 작품의 주인공으로 억삼이가 아닌 민수를 선택했다. 일방적으로 노동자 측의 입장과 주장을 늘어놓지 않으려는 의도였다. 주인공인 민수의 관점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는 것은 노동자가 아닌 사용자의 시각을 전제로 사건에 접근한다는 의미다. 그리고 그것은 양 극단 사이에서 균형을 잡기 위한 작가의 끊임없는 노력의 결과물이다.

그가 생각하는 좋은 동화란, 가볍지 않은 문제를 쉬운 말로써 쉽게 전달하는 이야기다. 동화는 표면의 이야기가 있고 그 밑에 숨겨진 또 다른 의미가 있다. 그리고 더 깊이 들어가면 또 다른 한 세계가 있다는 것이, 그가 생각하는 동화가 가진 매력이다. 그렇게 다차원적인 세계와 의미를 품고 있기 때문에 먼저 동화를 읽은 엄마가 아이에게 책을 건넨 후 가만히 생각해 보면 ‘아, 이게 내 이야기구나.’ 느낄 수 있는 것이라고. 그래서 그는 부모와 아이가 같이 동화를 읽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여우의 화원』 역시 함께 읽기를 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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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의 어머니가 아들을 위해 세 번이나 이사를 한 이유는 맹자가 주변에서 보고 듣는 것을 그대로 학습하고 따라했기 때문이다. 묘지 가까이에 살 때 맹자는 장사 지내는 흉내를 냈고, 시전 근처에 살 때에는 물건 파는 흉내를 냈다. 그리고 오늘날, 평택과 부산의 해고 노동자 자녀들은 용역과 노조를 흉내 내고 있다. 생존을 위해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고, 생존이 막막하여 세상을 등지는 이들에게 맹자의 어머니를 본받으라 할 것인가. 개인의 문제로 치부할 것인가. 그 아이들에게 새로운 세상을 보여줘야 할 책무는 우리 모두에게 있다.

북콘서트 현장에서 아이들의 모습을 열심히 카메라에 담았지만 싣지 못했다. 혹여 어린 마음에 상처를 입을까 걱정되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티 없이 밝은 아이들을 보면서 눈시울이 붉어졌기 때문이다. 시야가 흐려져 카메라를 들 생각을 하지 못했던 순간들이 있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밝게 빛나는 존재는 언제나 눈물겹다. 언 땅을 뚫고 돋아난 여린 새싹을 보듯 그 아이들을 감사한 마음으로 감싸고 소중하게 보살펴야 할 이유다.




※ 국내에 출간된 이병승 작가의 저서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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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의 화원 이병승 글/원유미 그림 | 북멘토

『여우의 화원』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지켜야 할 소중한 것, 진짜 가치, 그리고 참된 행복이 무엇인지 저절로 생각하게 하는 동화입니다. 1970년 전태일을 시작으로 1987년 대파업을 거쳐 900만의 비정규직으로 이어지는 우리의 노동사를 잘 녹여낸 이 동화는, 필연적으로 어른이 될 수 밖에 없는 어린이들에게 삶에서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전달합니다. 눈물겨운 우정을 보여주는 두 주인공 민수와 억삼이가 먼 훗날에도 서로 잡은 손을 놓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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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임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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