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석훈, “집값은 떨어지는 게 좋다.” -『시장은 정의로운가』 4인4색 대담회
승자독식, 부당거래, 불공정으로 흔들리는 ‘시장’을 돌파할 방법은 무엇인가?
시장은 그 자체로 정의 여부를 따질 수 없는 가치중립적 단어이겠으나, 문제는 한국의 시장엔 시민이 없다. 돈맛만 아는 모욕적인 존재들이 지배한다. 주류 경제학자들 또한 그들에게 복무한다. 그래서 소장파 경제학자들이 지난 3월26일,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의실, 『시장은 정의로운가』 출간기념으로 만났다.
『기업은 누구의 것인가』라는 책, 국가보다 더 커버린 한국의 재벌기업이 기업국가의 주인 행세를 하고 있음을 질타한다. 국가가 기업에 동화되는, 즉 국가의 기업동조화에 따른 부패와 민주주의의 실각을 지적한다. 가장 뼈아픈 지적은 이것이다. 3대에 걸친 북한의 권력 세습과 다르지 않은 재벌기업의 3대에 걸친 세습 자본권력. 저자는 이리 말한다. “북한에서는 국가 위에 당이 있다면 남한에서는 국가 위에 재벌 기업이 있는 것이 다를 뿐이다.”(p.225)
그리고 이 말도 뒤따른다. “예를 들자면, 정몽구 회장은 2006년 1000억 원의 비자금을 조성해 빼돌린 협의로 구속 기소당해 보석으로 풀려나기까지 두 달 가량 감옥 체험을 해야 했다. 미국이라면 정 회장은 어쩌면 아직도 감옥에 있을 수도 있었겠지만, 이 나라에서는 100만 원을 훔쳤다는 죄로 감옥에서 썩는 사람들은 많아도 1000억 원을 훔쳤다고 징역을 살지는 않는다. 그리고 정몽구 회장도 여전히 회장으로 건재하고 있다.”(p.256)
이런 마당, 시장이 정의롭다고 말할 수 있을까? 시장은 그 자체로 정의 여부를 따질 수 없는 가치중립적 단어이겠으나, 문제는 한국의 시장엔 시민이 없다. 돈맛만 아는 모욕적인 존재들이 지배한다. 주류 경제학자들 또한 그들에게 복무한다. 그래서 소장파 경제학자들이 지난 3월26일,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의실, 『시장은 정의로운가』 출간기념으로 만났다. 주제는 ‘승자독식, 부당거래, 불공정으로 흔들리는 ‘시장‘을 돌파할 방법은 무엇인가?’
패널로 저자 이정전 교수를 비롯해, 소장파 경제학자들인 우석훈 박사, 홍기빈 박사가 함께 했으며, 김민웅 교수가 사회를 맡았다. 우석훈 박사와 홍기빈 박사가 우선 등장했다.
우석훈(이하 훈) “『88만원 세대』를 절판할 것이다. 자유무역협정(FTA) 문제를 2006년부터 다뤘다. 경제대장정 12권 중 9권까지 나왔고, 이를 통해 FTA를 추진하지 않는 사회를 만들고 싶었다. 그런데 얼마 전 한미 FTA가 발효되면서 항의의 표시로 삭발을 했다. 삭발까지 하니 더 이상 할 게 없다. 단식은 못하겠고. 그래서 내 저서 중 가장 잘 팔리는 책 1권을 절판하기로 했다. FTA(반대)를 6~7년 하다 보니 다른 분들이 다 지쳤다. 혼자 남은 것 같아서 어떡해야 하나 싶다.”
홍기빈(이하 빈) “『거대한 전환』은 3년 전부터 속도가 붙었다. 세계경제 위기가 2008년에 왔는데, 누가 알았겠나. 이 책은 500권이나 팔릴 수 있을까 했는데, 그보다 훨씬 많이 팔렸다. 시장에 대한 맹신이 앞선 30년 동안을 지배했는데, 지금 그런 기조가 흔들리고 있다. 그에 일조해보려고 번역도 많이 하고 집필도 하고 있는데, 속도가 붙은 상황이다.”
시장에 대해 비판적인 얘길 하면, ‘반시장주의자냐?’, 이런 질문을 한다. 반시장주의자인가?
(훈) 난 반시장주의자가 아니다. 시장만 있는 사회도, 조직만 있는 사회도 문제라고 본다. 시장도 조직도 실패가 생긴다. 모든 제도는 문제가 있는데, 시장이나 조직만 지배하는 사회는 지옥이다. 시장만 있어도 된다는 게 지금 대통령이고, 우린 지옥을 살았다. (웃음) 반시장주의는 이른바 빨갱이다. 나는 빨갱이는 맞는데, 시장을 개선해서 활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시장을 잘 제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빈) 난 빨갱이는 아니다. (웃음) 공립대학을 다녔는데, 식당이 형편없었다. 강 건너 사립학교에 가니 밥이 무척 좋은 거다. 사립은 식당을 외주를 줬다. 맛있는 밥을 먹고 싶어서, 우리는 시장주의자로 전향해서 식당을 입찰하자고 얘기한 적이 있다. 시장 없이 어떻게 인간사회가 성립하겠나. 문제는 인간사회에 존재하는 모든 경제활동을 시장으로 풀어야 한다고 할 때, 시장주의자가 탄생한다. 시장근본주의자인 거지. 의료, 교육, 결혼도 시장으로 풀자고 하면 시장주의자가 된다. 지난 30년간 전 지구적으로 횡행한 이데올로기는 모든 인간 활동을 시장에 맡기고, 시장이라는 유령 앞에 누구도 저항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정의로운 시장이면 괜찮은가? 아니면 근본적으로 시장은 정의롭지 않은가?
(훈) 경제학에서는 정의라는 말의 정의가 없다. 시장이라는 말에도 정의가 없다. 시장은 거래가 이뤄지는 장소일 뿐이다. 가령 이런 거다. 지난 대선 때 이명박을 찍었는데, 생각해보니 무르고 싶다. 그건 경제적으로 정의롭지 않다. 물건을 샀는데, 잘못 샀다고 무르면 경제학적으론 정의롭지 않은 거다.
(빈) 시장에 대한 고전적인 정의는 모두 다 자기가 받아야 할 몫을 다 받는 것이다. 시장에서 일이 벌어지냐 아니냐가 중요하다. 요소 생산성이라는 게 있다. 노동이든 자본이든 생산성에 기여한 만큼 분배받는 것을 완전경쟁이라고 해서 정의롭다고 가르친다. 이 논리가 왜 파산 났냐면 요소생산성을 측량하는 게 불가능하다. 그렇게 요소생산성을 측량할 길이 없으니, 소득이 많은 사람이 생산성에 많이 기여했다는 평가를 한다. 기가 막힌 일이지. 그래서 시장근본주의 경제학에선 증명하고 분석해야 할 것이 뒤집혀서, 현존하는 소득분배야말로 시장이 자연스럽게 만들었다고 말한다. 나는 이건 납득할 수가 없다.
집값이 오르는 게 좋나, 떨어지는 게 좋나?
(훈) 떨어지는 게 좋다. 올리는 게 좋다는 사람, 나쁜 사람이다. (웃음) 물론 집값이 떨어지면 희생자가 생기는데, 집을 사라고 계속 부추긴 조선일보, 모피아(주. 재정경제부(MOFE)와 마피아(MAFIA)의 합성어로 과거 재무부 출신인사를 지칭한다.) 등이 책임을 져야 한다. 문제는 그들이 책임을 지지 않는 거지.
(빈) 시장에서 싸고 비싸고는 두 사람이 판단한다. 두 사람의 합의는 계약이 성사됐을 때 가격과 수량으로 나타난다. 제3의 관점에서, 산업사회에선 적정한 판단의 기준을 사회의 합의라고 본다. 일률적으로 통일하자는 것이 아니더라도, 시장기구 이외에도 적정한 가치를 사회적으로 토론하는 방법이 있고, 그것이 시장과 병존해야 한다고 본다.
시장은 정의로운가? 정의롭지 않다면, 정의로울 가능성은 있나? 태어날 때부터 불가능한가?
(이정전, 이하 전) 시장은 정의로울 수 없다! 시장에 대해 정의를 얘기할 수 없다. 경제학자들이 시장의 정의 여부에 대해선 말을 안 한다. 시장근본주의자들은 세계경제가 위태로워지고 비판이 나오니까 시장이 정의롭고 옳다며 옹호한다. 보수언론 등을 통해 그런 것이 보도되고 얘기된다. 시장이 정의롭지 않다는 얘기가 안 나오는 것이 나는 불만이다.
세간에는 아담 스미스에 대한 오해가 있다. 어디서부터 오해하게 된 건가?
(전) 아담 스미스가 『국부론』, 『도덕감정론』 두 권을 썼다. 거칠게 비유하면, 『도덕감정론』은 구약성서, 『국부론』은 신약성서다. 두 개를 모두 알아야 하는데, 이상하게 이야기가 약간 다르다. 『도덕감정론』에 의하면, 이기심만 갖고 행동하는 곳이 시장이다. 『국부론』에서 ‘보이지 않는 손’을 말하는데, 책에 보이지 않는 손만 있는 건 아니다. 공적인 부분도 당연히 있다.
『국부론』의 출발은 중상주의 비판이었다. 윤리와 경제를 결합하면 어떤가?
(전) 우리나라에선 윤리는 빼고 보이지 않는 손만 얘기했다. 원래 경제학은 윤리와 시장이 합쳐진 것이다. 신고전학자들이 수학을 쓰기 시작하면서 윤리가 빠졌다. 정의도 빠지고. 옛날 경제학에선 정의, 윤리, 도덕성을 얘기했다. 그러나 200~300년 사이에 경제학은 보이지 않는 손만 얘기하고 시장을 옹호하고 시장원리만 얘기했다. 수학을 하지 않고도 경제학을 할 수 있도록 경제학은 일상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어야 한다.
시장 현실이나 경제를 이해하거나 경제학을 공부할 때, 윤리적인 판단과 경제학적인 접근이 만나지 않으면 어렵다는 얘기인데, 두 소장학자는 경제학을 공부하면서 윤리를 사고했나?
(훈) 나는 윤리적이지 않은 사람이라. (웃음) 파리에서 공부했는데, 그때 배운 윤리 중 가장 큰 것이 가난하게 사는 법이었다. 선생들이 내게 가난하게 살 거니까 욕심 부리지 말라고 하면서 공부는 안 가르치는 통에 그것만 배웠다. (웃음) 경제학에서 하는 수학은 수학도 아니다. 그건 경제학 하지 않는 사람을 겁주기 위한 것이다. 윤리는 경제학에서 가르치지 않는데, 지도 교수나 선생이 괜찮으면 가르친다. 재수 없어서 4대강을 옹호하는 선생에게서 배우면 윤리가 작동하지 않는 거지. (웃음)
(빈) 난 트라우마(정신적 외상)가 있다. 87년 경제학과에 들어갔는데, 학교 근방에 공단이 있었다. 그 당시 월급이 10만원이었다. 당시에도 빈부격차가 심할 때였다. 경제원론을 가르친 양반이 경제학에 대해 좋은 얘기를 하는 거다. 1학년 때였는데, 그건 미국 얘기 아니냐면서 질문했더니, 선생이 짜증을 내면서 더 공부하라고 화를 내더라. 이후 수업시간에 질문을 하면 선생은 물론 학우들도 짜증을 내는 눈빛이었다. 되지도 않은 애가 자기네들을 방해한다는 식으로. 그래서 경제학과를 떠나 다른 과로 갔다. 80년대 중반이후 경제학이 테크니컬처럼 돼서 지난 30년간 경제학에서 윤리는 전혀 없었다고 본다.
자본주의 시장을 철폐하고 다른 식으로 만드는 것이 괜찮은지, 노력하면 정의를 찾을 수 있을 것인지 물어보고 싶다. 또 시장이 잘 돌아가서 돈도 벌어주게 해주고 시장도 살을 찌게 해주는데 세금을 내라는 건 곤란하다고 할 땐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전) 시장은 없앨 수 없다. 이미 삶이고 일부다. 인정을 하고 활용해야 한다. 다만 시장의 고삐가 풀려서 삶을 지배해선 곤란하다. 시장은 삶에 보탬이 돼야지, 삶과 사고방식을 지배하고, 여러 문제를 시장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건 곤란하다. 자본주의 시장은 경쟁 체제다. 문제는 능력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 간의 빈부가 더 벌어진다는 거다. 대공황이 생기고 시장도 폭삭 주저앉게 된다. 빈부격차와 시장구조가 경제위기를 불러온 거다. 중산층이 망하면 생산된 제품을 누가 사주나. 사주는 사람이 없으면 경제 안 돌아간다. 사람들이 돈이 없으니까. 빈부격차를 벌리면 돈 많은 사람도 망하니, 세금을 내라고 말해야 한다.
정치는 누구의 돈을 어디에 먼저 쓸 것인지 결정하는 것이다. 한국사회에선 사회적으로 필요한 재원을 돈 많은 사람에게만 요구한다고 불평할 수 있을 것 같다.
(전) 정부에게 돈을 줬더니, 돈을 써야 할 데 안 쓴다. 돈을 낭비하고 4대강 사업이나 하고 있다. 엉뚱한 데 돈을 자꾸 쓰면 낙수효과도 없다. 정부가 이런 식으로 돈을 쓰니, 세금을 내야 되겠냐는 말이 나오는 거다. 우선 한국에선 정부가 돈을 잘 쓰고, 국민들이 제대로 감시하고, 그래도 안 되면 세금을 더 내라고 설득해야 한다. 그것이 이익이 된다고 설득하고.
딜레마가 있다. 비정규직이 양산되는 건 문제가 있다고 말한다. 헌데, 비정규직이 없으면 정규직만으로 굴려야 한다. 기업 입장에서 정규직의 노동 강도가 너무 세질 수 있다. 비정규직이 양산되는 게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주장할 수 있나?
(전) 정의차원에서 보면, 똑같은 일을 하는데 한 사람에겐 많이 주고 다른 사람에게 덜 주면 틀려먹은 거다. 경제논리에서 말해도 기업이나 부유층이 자기 발등을 찍는 거다. 비정규직에게 박봉을 주면 그만큼 수요가 준다. 자본주의에선 공급과 수요가 맞물려야 한다.
“진정한 협동은 흔쾌한 마음에서 나온다. 소득 분배의 불평등이 심해질수록 사람들의 협동심이 위축되면서 결과적으로 생산 증가 속도가 둔화되거나 심하면 생산 자체가 줄어들게 된다.”(p.29) |
내수도 그렇다면, 수출해서 먹고 살겠다고 한다면?
(전) 문제는, 앞으로 수출로 돈 벌어 먹고 살기가 어려워질 것이다. 내수를 살리지 않고 수출에만 의존하는 건 위험하다. 수출 때문에 모든 걸 희생하기보다 내수도 함께 키워야 한다. 내수를 살리려면 중산층부터 살리고 봐야 한다.
보통 사람들은 마트가 들어서면 결국 마트로 발걸음을 향한다. 구멍가게는 결국 안 된다.
(전) 경제적인 측면과 비경제적인 측면으로 나눌 수 있다. 동네 구멍가게가 다 망하면 나중엔 결국 마트가 가격을 올린다. 독점기업의 역사를 보면 그렇다. 경쟁에서 이긴 뒤 서서히 값을 올린다. 이기적으로만 행동하지 말아야 한다. 사소하지만, 우리 동네의 구멍가게를 가면 서로 안부를 묻고 대화가 이뤄진다. 대형마트에 가면 그런 게 있나? 물건만 오갈 뿐이다. 시장은 그렇게 말이 필요 없는 곳이다. 삭막하다.
(우석훈 박사의 질문)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팔고 도망갔고, 이런 일이 또 생길 것 같다, 그게 내 고민이다. 어떡해야 좋나?
(전) 이른바 ‘먹튀’에 대해선 제재와 규제를 가해야 한다. 2008년 발생한 금융위기와 경제위기가 약간 누그러들면서 규제하자는 소리가 줄어들고 있다. 금융권도 이에 저항하면서 규제가 유야무야 되고 있다. 참 어려운 문제인데, 결국 우리가 계속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홍기빈 박사의 질문) 4대강 사업을 보면, 인간끼리의 문제에선 갑론을박이 가능하니 해법이 있을 것 같은데, 자연은 말을 못한다. 그래서 해법이라는 게 보상비용, 보존비용이나, 그건 자연의 목소리가 아니다. 자연에 대한 정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권리를 주장할 수 없는 사람들, 약자들을 위해 시장은 어떤 고민을 해야 할까?
(전) 환경이 오염되면 부자들에겐 큰 영향이 없다. 오염된 것을 피할 수 있는 수단이 있으니까. 그렇다면 누가 당하냐. 가난한 사람만 당한다. 정의롭지 않은 것이다. 우리 사회는 약자에 대해선 배려를 해야 하는데, 안타까운 것은 배려한답시고 시혜차원에서 접근하는 경향이 있다. 그건 시혜가 아니라 권리 차원에서 말해야 한다. 시혜 차원에서 복지혜택을 주는 건 미련한 짓이다. 받는 사람이 기분 좋게 받아먹어야 복지다. 사회복지는 국민들이 함께 어울리기 위한 것인데, 시혜는 사회통합에 저해가 될 뿐이다.
복지의 확충이 경제에 부담이 되나, 도움이 되나?
(전) 일시적으로 부담될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모두에게 도움이 된다. 가난한 사람들은 100을 벌면 다 쓴다. 부자들, 반도 안 쓴다. 복지 확충은 궁극적으로 경제에 도움이 된다.
순환출자가 나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장하준 교수가 삼성의 순환출자도 외국의 금융자본 때문에라도 용납을 해야 한다고 말해서 패닉에 빠졌다. 어떻게 생각하나?
(이) 참 어렵다. 나는 삼성이 경제력을 남용해서 삼성이란 체제 유지에 악용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삼성이 권력을 남용해서 국내 중소기업을 괴롭히고 있다는 게 문제가 아닌가 싶다.
경제의 문제도 정치의 문제로 풀어야 한다. 정치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홍)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재임 중 모든 권력은 시장에 넘어갔다고 했는데, 전혀 동의할 수가 없다. 지난 30년 간 규제를 한다든가, 시장 이외의 방법으로 경제를 조직하는 방법도 있었는데, 지레 겁먹고 뒤로 빠졌다. 이데올로기 공세에 쉽게 넘어갔다. 지금이라도 섣부른 패배주의를 벗어던지고 구체적인 것부터 하나씩 용기를 갖고 해 봤으면 좋겠다.
예를 들어, 어린이집 문제를 보자. 서울에 사는 분들은 구립 어린이집이 부족하다고 생각할 텐데, 그건 사립 어린이집의 이익 보장과 얽혀있어서 그렇다. 문제는 사람들 머릿속에 깃든 시장이 우월하다는 생각이다. 공공부문 확장이 안 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있다. 어린이집도 공공부문이나 협동조합 등으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우) 국가는 무섭다. 이명박 같은 사람이 나와서 그러면 참 무섭다. 기업도 무섭다. 시민이 나서서 직접 해야 한다. 자급자족도 해보고. 협동조합도 시도해보고.
정치가 시장의 정의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이) 대안은 시민밖에 없다. 정부, 관료, 정치가는 자기 이익 챙기기에만 급급하다. 국민을 생각 하느냐? 100% 그렇지 않다고 본다. 자기 이익만을 위해 행동한다. 정부, 정말 무섭고, 시장도 정말 무섭다. 얼마나 무서운지 책을 읽어봐라. 제대로 시장과 정부를 이해하면 시민이 할 수 있는 일이 꽤 많다. 시민이 감시의 눈을 번뜩일 때 우리 삶이 행복해질 수 있다.
마이클 센델의 『정의란 무엇인가』 이후 한국 사회가 마주해야 할 질문인 ‘시장과 경제의 정의’에 대해 과감히 문제의식을 던지고 해법을 담은 책이다. 승자독식, 부당거래, 불공정으로 흔들리는 ‘시장’을 돌파할 방법은 과연 무엇인가? 왜, 더 자유로운 시장보다 더 정의로운 시장이 되어야 하는가? 상생과 승자독식, 효율과 공평, 협동과 무한경쟁, 개인의 권리와 공공의 이익을 둘러싸고 다양한 이견이 난무하는 시장과 경제의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