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언제 와?”“엄마 금방 갈게 흑흑흑. 많이 아픈가 봐요”몸져 누운 아이가 화상전화를 통해 울먹거린다. 회의 중이던 엄마가 구슬피 흐느끼자 상사와 동료들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얼른 아이에게 가 보라며 그녀의 등을 떠민다. 잠시 후 회사에서 빠져나온 그녀는 신나게 춤을 춘다.
“앗싸!” 아이는
“엄마, 나 잘했지?”라며 웃고 있다. 일찍 퇴근하고 싶었던 엄마가 아이에게 거짓말을 시켜서 아프다고 ‘쇼’를 했다는 스토리였던 것. 이 당시 이 이동통신 광고의 메인카피는 이랬다.
“쇼를 하라!”
광고를 보자마자 얼굴이 화끈거렸다. 이내 화가 끓어올랐다. “아이가 아프다고 황급히 집으로 달려가는 워킹맘을 보고 ‘쇼를 하네’라고 생각한 일에서 떠올린 아이디어는 설마 아니겠지.”하는 헛된 망상까지 들었으니까. 곧, 이 광고를 본 일하는 엄마들이 분개하기 시작했다. 워킹맘에 대한 선입견을 갖게 하고, 육아문제를 희화화하며, 나아가 일하는 엄마들을 거짓말쟁이로 치부하는 ‘나쁜 광고’라고 비난했다. 한 여성은 ‘아이가 아파도 병원 한 번 마음 편히 데리고 가지 못했다’며 기가 막혀 울었다고도 했다. (『회사가 붙잡는 여자들의 1% 비밀』 p.265) |
말이 씨가 된다고 했다. 엄마라면, 게다가 아픈 아이를 돌보느라 마음을 졸여본 엄마라면 아이 건강을 가지고 함부로 거짓 핑계를 댈 수 있을까. 열이 끓거나, 상처가 난 아이를 들쳐업고 한밤중에 응급실에 뛰어가 본 엄마라면 성공에의 열망도 아이 앞에서 한순간에 무의미해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내 아이가 운다, 내 업무도 울고 있다, 하지만 일하는 엄마는 결코 울 수 없다
이 책의 저자 권경민 씨도 그랬다. 야근을 준비하며 저녁을 먹던 중, 다급한 전화가 걸려왔다.
“작은 애가 아파. 119를 불렀어,”
눈물이 솟구쳤다. 어떻게 사무실로 돌아가 짐을 챙겨 나왔는지 기억도 못 할 정도로 멍한 상태에서 오직 하나만을 생각했다. 제발, 제발 큰 일이 아니기를. 아이의 눈동자에는 초점이 없었다. 달려온 엄마를 올려다 보면서도 입을 열지 않았다. 권 씨는 아이를 품에 안고 속삭였다.
“엄마야, 엄마 여기 왔어.”불안해하는 아이를 안심시키기 위해 세상 모든 엄마가 가장 먼저 하는 말. ‘엄마 왔어.’ 그제서야 아이의 눈은 초점을 찾았고, 한 두 마디씩 반응하기 시작했다.
“그때 아이가 잘못됐다면 저는 제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을 거예요. 저 뿐만 아니라 어떤 엄마라도 그랬겠죠.”직장 생활을 하는 엄마들이 퇴직을 고려하는 1순위가 육아 문제라고 한다. 더구나 아이가 병에라도 걸려 아프다면 퇴직은 선택이 아니라 당연한 것이 된다.
“아이가 세상에 나오는 순간, 엄마에게 아이는 이 세상의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절대적인 가치가 되니까요. 세상의 가치가 뒤바뀌는 경험이죠. 자신을 희생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바로 아이예요.”돈은 왜 버나. 나와 내 아이, 내 가족이 한번 잘 살아보자는 것이다. 그런데 엄마가 없는 동안 아이에게 안 좋은 일이 생긴다면 그게 다 무슨 의미가 있을까. 두 아이의 엄마이자, 십년차 워킹맘으로 고군분투해 온 권경민 작가는 말한다.
“이 세상 모든 일하는 엄마의 하루는 그야말로 ‘우왕좌왕’이에요. 이기적 선택이냐, 희생이냐의 양극단에서 몇 번이고 고민에 빠지는 거죠.”“그녀를 덜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아이다,하지만 아무도 그렇게 말하지는 않는다”
소니 코리아에서 10년간 근무하며 영업팀에서 최초로 여성 영엄팀장을 지냈다. 아이 둘을 키우며 저녁에는 MBA석사 과정을 밟았고 경제일간지 및 월간지에 인터넷 전문가로 소개되기도 했다. 현재는 IT 외국계기업에서 마케팅 이사를 지내고 있다. 이 책의 저자 권경민 씨의 이야기다.
“나와는 다른 세계 사람이구나.” 아이들 키우며 허덕이고, 평범한 직급에 만족하는 대다수의 워킹맘들에게 선망과 동시에 거리감을 느끼게 할 프로필인지도 모르겠다.
“살겠다 싶다가 미치겠다가, 살겠다 싶다가 다시 미치겠다가. 아이들 키우는 건 이런 패턴의 반복이었죠, 뭐.” 다소 매끈하고 야심차 보이는 제목과 달리, 책장을 펼쳐보면 저자의 직접경험이 주가 되는 각종 ‘고난’의 사례들로 부글부글하다. 저자는 책의 모든 사례가 자신과 지인들의 실제 경험담이라고 밝힌다. 한 예를 보자.
대기업에 다니는 K의 삶은 아이를 출산하면서부터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 되어버렸다. (중략) 한번은 퇴근 후에 화장을 지우려고 거울을 보니 왼쪽 눈썹이 한 줄만 쭉 그어져 있었다. (…)‘이렇게까지 하면서 살아야 하나…’ 여자는 행색이 초라해지면 더 우울해진다.”(p.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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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복지부의 ‘마더하세요’ 공익광고. 권경민 씨는 “동료들의 배려와 이해도 중요하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워킹맘이 한 명 몫의 성과를 다 낼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요즘 워킹맘들은 업무시간 축소보다 야근을 하더라도 성과를 내길 원한다. 게다가 ‘배려받는 존재’로 눈에 띄는 것을 반길 직장인이 어디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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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를 낳고 시부모님과 함께 살게 될 당시, 과도한 업무량에 조직개편까지. 양손에 잔뜩 짐을 든 채로 걸어가야 했던 권 씨는 어느 곳 하나 마음 편한 곳이 없었다고 한다. 결혼한 여자기 때문에 회사에서 인정을 못 받는 것 같아 억울해 죽겠는 동시에, 일이 뭐라고 이 예쁜 아이들을 사랑해 줄 시간도 없는가 하는 미안함이 있었다. 초조하고 불안했다. 직장과 가정 모두 엉망인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혔다. 시간은 흘러 아이들도 손이 덜 가는 시기가 왔고, 겨우 숨을 돌릴 즈음 여자 후배들이 고민을 토로해 왔다. 모든 대화의 끝은,
“회사, 그만둘까 봐요.”“임신해서 승진 누락됐어요. 회사 그만둘까 봐요.”“상사가 압박해요. 회사 그만둘까 봐요.”“아이가 몸이 안 좋아요. 회사 그만둘까 봐요.”그 모든 것은 여자가 ‘엄마’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만두면 돌아오기 어렵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다. ‘질 수도 이길 수도, 그렇다고 항복할 수도 없는 전쟁’. 그게 워킹맘의 삶이다. 권 씨는 와튼 스쿨의 연구원 스티븐슨의 말을 인용했다.
“여성의 인생에서 그녀를 덜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아이다. 부자든, 가난하든, 아이를 일찍 낳았든 늦게 나았든 언제나 사실이다. 하지만 내가 아는 사람 둥 ‘아이가 내 행복을 망쳤다’라고 말할 사람은 거의 없다.”스티븐슨의 말대로 ‘엄마’라는 존재는 아이에 대해 그런 생각조차 해서는 안 된다는 암묵적 강제가 사회에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냉정하게 말해, 아이가 없다면 내 몸과 마음은 더 편해졌을 것이다. 엄마가 되는 순간 그녀는 난생 처음 겪는 전쟁터에 나선 것이다. 심각한 우울증에 시달리는 엄마들은 전쟁을 끝내는 것에는 자신이 삶을 포기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기조차 한다.
완벽주의를 버리자, 제대로 포기하는 법을 배우자 전쟁에서 이겨야 할 분명한 목적이 있기에
그러나 엄마라는 존재에게는 그 어떤 명분과도 바꿀 수 없는 분명한 전쟁의 목적이 있다. (p.23) 핏덩어리를 품에 안았을 때 문장으로 표현할 수 없는 묘한 감동의 순간은 그 목적의식의 시작이다.
“책의 제목에는 ‘성공’이 부각돼 있지만, 사실상 제 이야기의 핵심은 ‘행복’이에요. 일하는 엄마들이 직장에서 성공하고, 아이들 잘 키우고 하는 것 중요해요, 물론. 하지만 전 그녀들 개개인이 자신의 인생 자체에 행복을 느끼며 살기를 원해요. 그게 제 화두죠.” 한때 ‘슈퍼우먼’이라는 신조어가 유행했다. 지금은 쏙 들어갔다. 이 책의 소제 중 하나는 ‘완벽하려다 탈난다’다. 저자는 ‘불행한 완벽주의자가 되지 말고 행복한 최적주의자가 되라’는 메시지의 책
『완벽의 추구』를 읽어볼 것을 권한다. 일하는 엄마의 완벽주의는 스스로를 파괴시킨다는 메시지다. 그리하여, ‘제대로 포기하는 법’을 배우라고 권한다.
“스스로 해결하려고 더 열심히 하는 것. 그만두세요. 일하는 엄마가 투입할 수 있는 자원에는 시간과 돈, 주변사람들의 도움이 있어요. 이 요소들의 전략적 자원분배가 아주 중요해요. 적당한 돈을 들여 도와줄 사람을 고용하고, 속 끓이지 말고 도움을 요청하고, 시간을 쪼개 잠이라도 충분히 자야 해요. 엄마가 예민해지고, 신경과민이 되면 스스로와 가족이 모두 파괴되니까요.”덜 힘든 삶이 아니라 더 나은 삶을 위하여
전업주부는 전업주부대로 워킹맘은 워킹맘대로 고달프다. 다만 매일의 육체적 노동 강도로만 따진다면 평균적으로 워킹맘이 더 고될 것이다. 그러나 힘들다, 힘들다 노래를 부르면서도 일을 계속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가정과 직장 사이에서 문제? 발생하면 최선의 선택이 아닌 쉬운 선택을 하게 된다. 그러나 가정으로 돌아간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될까. 직장이라는 전쟁터를 떠나 안전한 피난처로 여겨지는 가정으로 돌아가봐도, 외양만 다를 뿐 그곳도 치열한 전쟁터라는 것을 곧 알게 된다.
이렇게 답 안 나오는 문제가 있을까. 진짜 어려운 문제다. 완벽한 정답도 없다. 인터뷰를 하는 내내 권경민 작가도 워킹맘들의 고민에 찬 질문을 듣고 한숨을 쉬기도, 공감을 표하기도 했다. 그래도 선택했다면, 포기하지 말자. 정상에 오르기 위해 때로는 가시밭길, 거친 강물을 거쳐야 할 것이다. 낭떠러지도 기어올라야 한다. 많은 엄마들이 가시밭길이 나오면 멀리 돌아가고 절벽 앞에 망설인다. 좋다. 괜찮다. 그래도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이 책도, 이 시간도 고민하고 있는 많은 워킹맘들도 등반의 동료가 되어줄 것이다.
“일하는 엄마의 가장 큰 적은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예요. 아이와 동행하며, 앞에 가는 사람을 인정하며, 나만의 등산 스타일을 찾으세요. 빨리, 더 높이 오르는 것은 워킹맘의 목표가 아닐 거예요. 끝까지 오르는 것, 그게 우리의 성공 아닐까요?”Q & A
임신을 언제 알리면 좋을까.보통 임신 3개월이 되기까지 쉬쉬하는 경우가 있는데, 되도록 빨리 알려라. 임신 초기가 더 중요하다. 이때 평소와 다름없이 일할 수 있음을 알려야 한다. 입덧 때문에 회사에서 일을 마치지 못했다면 집에 가서라도 마무리지어라. 또는 기존의 성과를 다 못해도, 최선을 다한다는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도록 노력해라. 각종 모임이 줄고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므로 힘들기는 하겠지만 오히려 업무에 집중할 수 있는 기간이기도 하다.
아이와 어떻게 소통하는가.집에 있을 때는 매순간 ‘사랑한다’고 말해줄 정도로 아이에게 집중하려 한다. 함께 있는 시간에 몰입하면 ‘엄마가 날 사랑하지 않나봐’ 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아이들의 행동과 잘못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편이다. 그러다 보니, 트러블이 별로 없다.
『뱀의 뇌에 말을 걸지 마라』에 ‘상대방이 흥분상태일 때 말 걸지 말라’는 내용이 나온다. 나도 모르는 새 아이들에게 이런 내용을 실천하고 있더라. 아이들에게 하는 대로 직장에서, 부부 사이에 실천하려고 한다. 아이와의 관계가 역으로 다른 관계에 도움이 되는 편이다.
엄마가 집에 없으면 아이 성적이 떨어진다는 통념이 있다. 칭찬스티커 기록표에서 아이가 상위권이었는데, 내가 숙제를 하나 못 챙겨줘서 막판에 상을 놓친 일이 있다. 개의치 않는다. 전반적으로 잘 자라는 게 중요하지, 상 하나 점수 1점이 중요치 않다. 워킹맘은 아무래도 전업주부보다 학습 정보에 뒤처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대신 아이들이 자립적이 된다. 자기 것을 잘 챙기고, 돌봐주시는 할머니를 스스로 챙겨드리더라. 그런 장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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