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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째 일본 요리사 집안 장남의 좌충우돌 서울 진출기 - 『오기하라 상, 잘 먹겠습니다』

“책을 만들면서 관심을 둔 건, ‘누구나 이런 음식을 만들 수 있을까?’ 그리고 ‘바로 만들어서 먹을 수 있을까?’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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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도 없고 걸려오는 전화 한 통 없는 주말 오후.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밥통을 열어보니 밥알이 화석이 되어 있다. ‘짜장면이나 시켜먹어야지’하는 생각에 집어든 중국집 전단에는 친절하게도 ‘배달은 두 그릇부터’라고 적혀 있다. 언제부터 세상인심이 이리 각박해졌단 말인가!

약속도 없고 걸려오는 전화 한 통 없는 주말 오후.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밥통을 열어보니 밥알이 화석이 되어 있다. ‘짜장면이나 시켜먹어야지’하는 생각에 집어든 중국집 전단에는 친절하게도 ‘배달은 두 그릇부터’라고 적혀 있다. 언제부터 세상인심이 이리 각박해졌단 말인가!

‘그냥 굶을까?’ 싶은 생각과는 달리, 내 눈은 바쁘게 냉장고와 찬장을 두리번거리고 있다. 하지만 정답은 뜻밖에 책장에 꽂혀 있었다. 『오기하라 상, 잘 먹겠습니다』


토요일 오후 2시, 점심이라기엔 다소 늦은 시간. 기자처럼 소심한 사람이 혼자 식당에서 밥 먹기 뭐할 때, 찾아 들어가는 시간이다. 하지만, 이 시간 신사동에 위치한 ‘네꼬 맘마’는 손님맞이에 분주하다. 오늘이 바로 ‘네꼬 맘마’의 총주방장인 오기하라 셰프가 독자와 만나는 날이기 때문이다.


오기하라 치카시. 그는 일본 규슈의 한적한 도시 가마(嘉麻)에서 태어났다. 4대째 요릿집 니혼요리 오기하라의 장남으로, 여러 료칸에서 전통 일본요리를 연수했고 요리학교 나카무라 요리사전문학교에서 공부했다. 당연히 가업을 이어주리라 믿었던 부모님의 굳은 믿음을 져버리고 2005년 겨울, 가방 하나 달랑 들고 야반도주하듯이 서울행 비행기를 탔다. 그렇게 서울의 강남에서 7년을 요리에 전념해온 그가 올해 여름 아름다운 한국인 아내와 결혼했다. 그리고 그의 첫 번째 요리책 『오기하라 상, 잘 먹겠습니다』를 발간했으니 경사가 겹친 셈이다.

“일본요리가 어려운 요리가 아니라는 걸 알려 드리기 위해 책을 만들었습니다. 책을 만들면서 관심을 둔 건, ‘누구나 이런 음식을 만들 수 있을까?’ 그리고 ‘바로 만들어서 먹을 수 있을까?’였어요”

오늘 ‘독자와의 만남’은 총 2부로 구성된다. 1부에서는 요리 강연회와 함께 작가와의 즐거운 토크가 이어지고, 2부에서는 돈부리 시식이 있다. 꿀꺽~!

“제 요리책을 보시고 세 번 정도 하시면 충분히 요리하실 수 있을 거예요. 첫 번째는 연습이고요. 두 번째 할 때는 자신이 붙고. 세 번째는 맛있게 드실 수 있지 않을까 해요.”


제1부 : ‘채소 절임’ 요리시연과 도시락 담는 법


‘채소 절임’은 계절에 맞는 채소를 얇게 썰어서 숙성시키는 것이 비결!


훈남 오기하라 셰프의 등장에 갈채를 보내는 여성 독자들. 시작부터 분위기는 후끈 달아올랐다. 채소 절임의 특징은 집에서 남은 채소들로 간단히 해먹을 수 있는 저칼로리 요리라는 것.

“채소는 최대한 얇게 써는 게 좋아요. 그래야 간이 들어가고 숙성 시간이 짧아져요.” 유심히 지켜보던 독자가 “과일 같은 것도 넣나요?”라고 물었다.

“좋은 아이디어예요. 다양한 시도를 해보는 게 좋아요. 특히 계절에 맞는 채소를 넣는 게 맛있게 먹는 비결이에요. 이번 채소 절임에는 유자를 넣어봤어요. 보시는 게 유자 껍질이에요. 그리고 나서 소스와 채소를 봉지에 넣고 잘 흔들어서 하루 정도 냉장고에서 숙성시키세요.”



♧ 일본식 채소 절임 레시피 (본문 p63)

재료 - 오이 60g, 인삼 20g, 가지 30g, 배추 100g, 셀러리 30g, 무 60g, 다시마 불린 것 10g, 양배추 60g, 기타 계절 채소, 비닐봉지 큰 것 1개
소스 - 기꼬만 간장 묽은 맛 10cc, 설탕 10g, 청주 50cc, 소금 2g, 식초 5cc, 혼다시 2g, 깨 간 것 약간.

만드는 법
1. 소스를 냄비에 넣고 한소끔 끓인 뒤, 차게 식혀둔다.
2. 채소는 씻어서 물기를 빼고 얇게 채 썬다.
3. 커다란 비닐 봉투에 채 썬 채소를 넣고 차갑게 식힌 소스를 넣는다.
4. 비닐 봉투의 입구를 꼭 묶고 3분 정도 두어 맛이 푹 배게 한다.
5. ④를 볼에 담아 냉장고에서 1시간 정도 두었다가 그릇에 담아낸다.

Tip! 냉장고에 보관할 수 있는 기간은 최대 일주일 정도. 만든 지 2~3일째 가장 맛이 좋다.



아직 숙성 전의 채소 절임이었지만, 맛을 본 독자마다 만연한 화색이 감돌았다. “정말 맛있네요. 그치요?”란 말을 시작으로 서로 어색해하던 여덟 명의 독자들이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요리란 그런 것인가 보다. 서로의 어색한 분위기를 녹여주고 대화를 이끌어 내는. 이어서 오기하라 셰프에 대한 질문이 쏟아져 나왔다.

오기하라 셰프님은 한국 요리를 좋아하시나요?
한국에 와서 6개월 정도는 매워서 못 먹었어요. 신라면도 못 먹었지요. 하지만 지금은 잘 먹어요. 특히 잡채가 제일 좋고요. 고추장찌개도 맛있어요. 주로 남해요리를 좋아해요.

집에서도 주로 요리사님이 요리하시나요?
집에서는 많이 안 해요. 주말에 한 두 번 하는 정도에요.

사모님의 요리에 만족하세요?
음……. 잘하긴 해요. 제 아내는 경상도 사람이에요. 그리고 장모님이 경상도에서 한식 가게를 하세요. 그래서 아내도 기본적인 것들은 다 하죠. 물론 입맛에 안 맞는 부분도 있죠. 맛있을 때는 맛있다고 말하고 먹고요. 맛없을 때는 그냥 조용히 먹어요(웃음).

한국에서 요리하겠다고 생각하시게 된 계기는?
한국에 처음 왔을 때, 음식에 대한 한국인들의 열정에 놀랐어요. ‘이 나라에서 요리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주변에서는 만류도 많았어요. “왜, 한국이냐!”, “일본인은 일본에서 요리해야지!”라는 말을 많이 들었죠. 물론 자신의 나라에서 요리하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다른 나라 사람에게 자국의 요리를 알려주는 게 더 만족스럽게 생각됐어요. 그리고 실제로 요리를 알려주는 재미와 매력에 빠지게 되었죠.

책이 또 나오나요?
독자분들이 원하시면요(웃음).

한국 요리와 일본 요리의 차이는 무엇인가요?
일본은 간장의 풍미가 강하고 한국 요리는 된장의 풍미가 강해요. 그에 따라 입맛도 다르죠. 그래서 간을 맞출 때 그러한 입맛의 차이를 유념해서 음식을 만들어요. 전통 일본 요리법에서 간장을 줄이고 된장을 늘이는 식이죠.

주로 대중적인 일본요리를 만드시는데요, 전통 일본요리를 하고 싶지는 않으세요?
본래 제 전공이 가이세키(일본 전통 정식요리)에요. 그러다 보니 전통 일본식에 대한 욕심도 있지만, 가장 중요한 건 손님이 맛있고 부담 없이 드실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게 요리사에게는 가장 큰 성공이고요.

가게 이름이 왜 ‘네꼬 맘마’에요?
오랜만에 고향에 내려갔어요. 그리고 그곳의 작은 서점에서 요리책을 펴보게 되었죠. 요리책에 네꼬 맘마가 소개되어 있었어요. 생각도 못했지요. 일본에서는 대충 한 끼를 때우기 위해서 간단하게 비벼서 먹는 걸 ‘네꼬 맘마’라고 하거든요. 그래서 그전까진 네꼬 맘마가 요리라는 생각을 전혀 못했어요. 하지만 그때 ‘아~! 요리라는 게 특별한 게 아니구나! 이런 것도 요리가 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네꼬 맘마’라는 덮밥가게를 하게 되었어요. 간단하지만 맛있고 누구나 부담 없이 먹으며 행복해질 수 있는 요리를요.


도시락은 균형의 미를 살려, 먹기도 좋고 보기도 좋게 만든다!


이어서 오기하라 셰프가 꺼낸 것은 도시락! 동시에 독자들이 꺼낸 것은 핸드폰! 새록새록 도시락의 추억을 떠올리며 독자들은 사진 찍기에 열을 올렸다. 요즘 아이들은 몰래 도시락 까먹는 재미 모르겠지?

“일본에서 도시락을 담을 때는 색상이나 배치도 중요시해요. 이왕이면 균형이 맞고 보기 좋게 담으려고 하죠. 여기에 후리가케(밥 위에 뿌려먹는 가루로 된 식품)를 더하기도 해요.”

미리 만들어 놓고 먹으면 좋은 반찬은 무엇이 있을까요?
저는 소고기 감자 절임 같은 걸 만들어 놔요.

유명한 요릿집 아들이었으니까, 도시락도 휘황찬란했겠네요.
제가 학교 다닐 때는 꼭 전날 식당 메뉴가 도시락에 들어가 있었어요. 좀 서운하기도 했지만, 친구들은 무척 부러워했죠.

일본에도 솥밥 같은 게 있나요?
네. 닭고기를 넣어서 집에서 간단하게 해먹기도 하고, 특히 요즘 같은 가을엔 밤을 넣어서 해 드시면 좋아요. 간도 청주나 간장이 아닌 소금만 약간 뿌려주는 정도면 충분하죠.

‘네꼬 맘마’에서 준비 중인 신메뉴가 있나요?
후쿠오카의 지역색이 묻어나는 음식을 많이 만들어볼까 해요. 이번 달부터 겨울메뉴가 추가돼요. 그중에 일본식 곱창전골이 맛있을 거예요.

셰프님은 술을 잘 드세요?
제가 일본에서는 술을 잘 마시는 편이었어요. 그래서 한국에 와서도 주는 대로 마셨었죠. 소주 세 병을 마신 기억이 있는데, 다음날 눈떠보니 압구정 로데오거리에 누워 있었어요. 충격적이었죠.

4대를 이어온 전통 요릿집의 장남인데, 집안의 반대는 없었나요?
반대하셨죠. 절 죽일 정도로 반대하셨어요. 하지만 제가 한국인을 아내로 맞아 결혼하게 되고, 결혼식에 온 부모님께서 한국 분들을 보시고는 마음이 바뀌셨어요. 한국 분들이 저에게 잘해주는 걸 보시자, 반대하셨던 걸 후회한다고 하셨죠. 한국 분들의 따듯한 마음 씀씀이가 저희 부모님의 마음을 녹게 했어요.

처음 한국에 오셔서 힘들지 않으셨어요?
제가 아무런 연고도 없이 가방 하나 덜렁 들고 한국에 왔거든요. 말도 안 되고. 돈도 없고. 무작정 한자로 되어 있는 간판이 보이면 찾아 들어가서 일 시켜달라고 했어요. 그렇게 해서 알게 된 분들이 운 좋게도 좋은 분들이었고, 그분들의 소개를 통해 점차 제 요리를 알리게 되었어요.

한국에서 고생했던 것 중에 기억에 남는 일은요?
제가 겨울에 한국에 왔는데, 너무나 추운 거예요. 제 고향인 후쿠오카는 겨울에도 따듯하거든요. 강남에 가려고 했는데 지하철을 반대로 타서 엉뚱하게 수원에서 내려야 했어요. 말도 안 통하는 곳에서 떨면서 헤맸던 게 기억에 남네요.

추억의 음식이 있나요?
음……. 한국에 와서 저를 처음 받아준 가게의 이모가 해주신 음식을 잊을 수가 없어요. 오들오들 떨면서 앉아 있는 저에게 따듯한 콩나물국을 만들어주셨어요. 한 모금 넘기는 데 눈물이 핑 돌았어요. 제가 맛 본 최고의 음식입니다.


제 2부 : 돈부리 시식


짜잔~! 드디어 즐거운 식사시간! 분명 오늘을 고대하며 다들 점심을 굶고 왔을 터. 여기저기서 벌써 침 넘어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오늘의 요리는 일본 대중요리의 진수라 불리는 덮밥요리 ‘돈부리’다. ‘가츠돈’이라 불리는 돈가스 덮밥과 ‘가이세돈’이라 불리는 회덮밥 중에 원하는 메뉴를 선택해서 먹었다. 그리고 환한 대낮이었지만 맥주도 한잔! “낮인데 괜찮겠냐?”고 묻는 기자에게, 맥주가 어디 술이냐며 “보리차 대신 집에서도 즐겨 마신다”는 호탕한 yes24 독자들. 비밀이지만 기자도 취재를 멈추고 함께 한잔했다.

식사를 마친 독자들에게 시식 소감을 들어보았다. 갖은 시식회는 모조리 섭렵했다는 냉정한 독자들의 평가! 음……. 제 점수는요!

박주희(30, 인천 부평구) - “제가 먹어본 돈가스 덮밥 중에 단연 최고였어요. 치아 고정을 하고 있어서, 질긴 걸 잘 못 먹는데, 돈가스가 너무 부드럽고 맛있었죠. 단골 될래요!”

김정현(41, 은평구) - “전 회덮밥을 먹었는데요. 일본말로 ‘우마미’(감칠맛)라고 하나요? ‘회’의 풍미가 따듯한 밥알에서도 사그라지지 않고 풍부하게 입안을 감싸요. 달짝지근하면서도 부드러운 맛이 일품이네요.” (『오기하라 상, 잘 먹겠습니다』에는 다양한 돈부리 레시피가 담겨져 있다.)

이어서 배부른 독자들의 입에서 오기하라 셰프에 대한 칭찬이 오갔다. “정말 대단한 용기를 지니신 분 같아요.”, “엄청난 미남이세요!”, “다음에는 꼭 같이 한잔해요!” 등. 시식회가 끝나고 가게 앞에서의 기념촬영도 한 컷!


처음으로 돌아가서, 약속도 없고 전화도 없는 쓸쓸한 주말. 기죽어 있지 말고 『오기하라 상, 잘 먹겠습니다』를 펼쳐보는 건 어떨까? 이 책의 조리법은 명쾌하고 간단하다. 그러면서도 한 끼를 남부럽지 않게 먹을 수 있는 요리 비법이 담겨 있다. 물이 끓는 시간 동안 오기하라 셰프의 좌충우돌 진출기를 읽는 즐거움까지. 그러다 친구에게 전화가 온다 하더라도 당신은 약속을 거절하고 혼자 요리하기를 자청할지도 모른다. “오늘은 내가 요리사!”라는 말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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