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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Q81」은 하루키를 좋아해서 만든 곡”

마이큐(MY-Q)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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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한국에 와서 대형 기획사의 힘을 빌리지 않고, 스스로 활로를 개척해나가며 대중과의 접촉을 시도해오고 있다. 지난해 10월에 발표한 앨범 < For This, I Was Born >을 포함, 벌써 3장의 독집을 냈다.


국내에서 재외 한인 출신 가수의 활동이 정착된 지도 어느덧 20년이 지났다. 이 부분에서 과거와 현재의 차이를 발견한다면, 전에는 단순히 기획사의 픽업이 방법이었으나, 지금은 자발적으로 입국해서 하고 싶은 음악을 하는 이들도 많아졌다는 것이다.

 

마이큐(MY-Q)는 후자에 속한다. 이를테면 그리운 조국에서 음악을 하기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온 청년이다. 그는 한국에 와서 대형 기획사의 힘을 빌리지 않고, 스스로 활로를 개척해나가며 대중과의 접촉을 시도해오고 있다. 지난해 10월에 발표한 앨범 < For This, I Was Born >을 포함, 벌써 3장의 독집을 냈다.

꼼수와 눈치가 정답처럼 보이고, 가수보단 엔터테이너가 대접받는 시장에서 이토록 한 길을 걷기 위해 노력하는 젊은 음악가를 찾기는 쉽지 않다. 그는 자신이 덜 알려진 것에 대해 “처음에는 남 핑계, 환경 탓도 했지만 결국 제 음악이 아직 설득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며 겸손하게 대답했다. 우울한 얘기를 하는 중에도 그의 표정은 밝았다.


영국의 킬 대학교(Keele University)에서 학업을 했는데, 영국 태생인가.
아니요. 제가 초등학교 5학년이었을 때, 가족이 홍콩에 이민을 갔습니다. 그곳에서 고등학교(외국인 학교)까지 마치고 대학교를 영국으로 간 것이죠. 법학과에서 2년 반 동안 공부했습니다. 부모님께서는 공부하기를 원했는데, 제가 워낙 안 좋아했어요. “공부하면서는 음악을 절대 못 하겠다“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래서 최대한 마찰을 줄이는 쪽으로 ”졸업은 마치고 내가 가고 싶은 길을 가겠다“라는 마음으로 학업에 열중하여 대학교에 들어간 것이죠.

얼마나 반대가 심했기에.
아버지께서 워낙 한국적이시고 보수적인 면이 있으세요. 한국에서는 아직 뮤지션이기보다는 연예인으로 보는 시각이 있잖아요. 그런 상황에서 음악을 하는 것이 힘든 것을 아셨던 것이죠. 그래서 늘 음악보다는 공부가 쉽다고 말씀하셨어요. 하지만 2003년 초반에 한국에 들어왔고, 데뷔 앨범 < Style Music >이 2007년에 나왔습니다. 어떻게 보면 짧고, 길면 길 수 있는 기간 동안 포기를 안 하는 모습에 아버지께서도 “이제 친구가 되어 주겠다.”라며 마음을 돌리셨어요.

한국에서 음악을 하게 된 동기는
홍콩에서 펑크밴드를 하다가 ‘삼청교육대’ 이보람 씨의 초대를 받아서 왔는데 깜짝 놀랐죠. 당시가 위퍼(Weeper), 크라잉넛(Crying Nut)이 미니 시디 내고 그랬을 때였어요. 한국에도 이런 깊은 록 문화가 있구나. 그런 모습들에 충격을 받고 이곳에서 음악을 해야겠다는 꿈을 가지고 2003년에 온 것이죠. 하지만, 그 사이에 문화 자체가 너무 변했더라고요. 한국에서 음악 하려면 무조건 기획사에 들어가야겠다고 생각한 것도 그때부터고요. 또 형, 동생 사이의 관계에서 오해도 많이 받았어요. 그 때문에 제 성격이 ‘모 아니면 도’라서 외국 감성을 억지로 짓밟고 완전히 한국적으로 변화시켰죠.

외국에서 체득했던 문화나 사고방식을 굳이 그렇게 바꿔가면서 한국에 맞춰야 했나.
한국에서 공연해도 저희는 완전히 외국인밴드 취급을 받았습니다. “내가 태어난 곳에 이런 모습이 있구나. 아, 나도 포함되고 싶다.”라는 꿈을 가지고 왔는데, 단숨에 무너진 것이죠. 뭔가 시발점을 찾기 위해서 많이 억눌렀던 것 같아요.

하지만, 3집 < For This, I Was Born >(2010)의 앨범 커버에선 아직도 본인의 외국 경험을 간직하면서 음악을 한다는 느낌이 든다.
단순히 멋지게 보이려고 찍은 사진은 아닙니다. 설명해 드리자면, (각 인종의 피사체를 가리키며) 저는 흑인음악 영향도 받았고, 백인 올드 팝의 영향도 받았고, 색감도 비주얼적인 감각을 좋아해서 그렇게 잡은 것입니다. 또 전 한국인이라 가요적 요소도 있기 때문에 짜파게티도 포함시켰구요. (왼쪽을 보면서) 이게 짜파게티예요.


3집을 들어보면 알앤비와 펑크(Punk)가 공존한다. 두 장르는 거리감이 있는데.
외국생활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홍콩엔 다양한 계층이 다 어울릴 수 있는 분위기라는 것이었죠. 흑인음악을 좋아하면서 아빠 몰래 차 끌고 나와 좋은 술 마시는 친구도 있고, 편의점에서 가장 싼 술을 사 와서 밤새 동안 밖에 나와서 남이 보든 말든 같이 기타 치며 날을 새는 친구도 있었습니다. 이런 친구들을 접하면서 음악도 다양하게 좋아했어요. 힙합이나 알앤비, 소울을 넘어 하드코어, 이모코어까지 동시에 갔죠. 아직도 혼란스럽기는 합니다. 앨범을 낼 때도 어떤 장르를 넣을까 많이 고민하고요.

외국 생활을 오랫동안 했으면서 군 복무를 마친 것은 의외다.
국외 시민권자라서 면제자였어요. 한국에서 음악을 해야 하는데 1년 머물다가 6개월 나가 있어야 하는 상황이 제 성향과 맞지 않았어요. 물론 군대를 피할 수도 있었지만, 음악 하면서 자유롭지 못할 것 같았던 것이죠. 뭔가 시작했으면 만족할 때까지 끝을 봐야 하는 성격이기 때문에, “그냥, 갔다 오지 뭐”하고 지원했습니다. 물론 입소대대 들어간 순간 후회 많이 했습니다. (웃음)

제대하고 나서 바로 음반을 냈다.
일병 때 군대 작곡 병으로 차출되었습니다. 다행스럽게 군에 있었어도 음악을 하게 되었죠. 정말 운이 좋았어요. 제가 군에 있을 때 안타까운 사건이 많았는데요. 신보의 ‘천국에서 볼 수 있나요?’라는 곡이 그래요. 여성분들이 들으면 이별 노래로 생각되실 수도 있겠지만, 이 노래는 천안함 사건이 가장 컸어요. 휴가 때 소식을 접하고 정말 충격적이었습니다. 사랑하는 가족이 안타깝게 세상을 먼저 떠났을 때의 슬픔 등을 노래에 담았어요.

3집에 대한 본인의 만족도는 어느 정도라고 자평할 수 있겠는가.
솔직히 1, 2집보다 3집에 욕심을 더 부린 것 같아요. 정말 제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기 때문에 만족하는 편입니다. 그러나 많이 지친 것 같아요. 진실은 결국에 통한다는 사실 하나로 음악을 했는데,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이번 앨범에서 마이큐를 잘 표현한 곡은.
「1Q81」인 것 같아요. 「끝인가봐요」와「이 밤이 끝나기 전에」같은 슬로우 잼 분위기의 곡들도 제 감성을 잘 담아낸 것 같고요. (왜 제목이 「1Q84」 아닌 「1Q81」이냐는 질문에) 무라카미 하루키를 좋아해서 『1Q84』 나오자마자 사서 다 읽었어요. 하루키씨가 1980년대를 산 사람을 스토리화해서 쓴 작품이라 읽으면서 마치 저를 주인공으로 생각했어요. “두 개의 달이 떠있고 우리는 다른 곳에 있지만 서로 공존한다.”라는 주제가 좋았습니다. 곡 제목은 제가 1981년생이고 이름에 큐(Q)가 들어가기 때문에 억지스럽지도 않았고요.


본인의 보컬을 어떻게 생각하나.
원래 노래를 잘하지 못했던 사람이라 랩을 하려고 했어요. 1990년대 랩을 하고 싶었지만, 한계를 느끼고 멜로디를 표현하고 싶어졌습니다. 그분을 폄하하는 말은 아니고요, 유재하 선배님도 들어보면 보컬리스트라고 보기에는 약간 부족하지만, 목소리에 진실이 담겨 있다고 생각해요. 저 역시도 그 톤을 전달하고 싶었기 때문에 알앤비, 소울 쪽으로만 생각하시는 분들에게는 어설프게 들릴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의도하는 바를 조금이라도 이해해주시는 분들은 좋게 들어주셔서 극단적으로 차이가 나는 것 같아요.

보컬에서 프로와 아마추어가 공존하는 느낌이다.
그 부분을 지향하고 있어요. 솔직히 녹음할 때도 노래에 투자를 많이 한다면 보컬리스트로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하지만, 말씀드린 대로 진실성이 떨어질 것 같아서 고민한 것이죠.

음악을 들어보면 왠지 모르게 올드한데..
1970년대의 아날로그 방식이 1980년대로 넘어오면서 디지털 세대로 변화가 많았잖아요. 그 당시 뮤지션은 디지털 악기에 의해 음악이 바뀌는 것에 대한 회사와의 갈등, 팬들과의 갈등 등으로 매우 힘들었을 것이에요. 그런 고민이 1980년대 생인 저에게는 대단해 보이더라고요. 제가 그 당시의 음악을 재현할 실력, 능력도 안 되고, 감히 할 용기도 없지만, 그때의 음악, 더하여 영화 같은 비주얼적인 측면까지 좋아하고 있습니다.


1970-1980년대 아티스트 중에 본인의 음악적 코드에 영향을 준 아티스트, 앨범을 열거한다면.
프린스(Prince)의 데뷔작 < Prince >. 최고입니다. 프린스의 음악을 듣다 보면 랩도 있고, 록도 있고, 소울도 있습니다. 쭉 지켜보면 “펑크(Funk)로 갔구나, 어? 다음에는 미디? 이번에는 포크?” 들으면서 탄성이 나올 수밖에 없죠. 홀 앤 오츠(Daryl Hall & John Oates), 흑인 가족그룹 디바지(DeBarge), 소울 그룹 스위치(Switch), 마이클 잭슨 등도 좋아했어요.

2집 < This Is For You >(2008)의 작업 과정은 어땠나.
1집을 발표한 뒤에 다음 앨범은 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어요. 너무 큰 실패를 맛보고 재정적으로도 마이너스가 돼서요. 같이 음악 하는 형이 싱글을 제안했지만 저는 반대했습니다. 안 해왔던 것을 한다는, 개인적으로 반칙 같은 느낌이 있었던 것이죠. 그러다 곡을 많이 쓴 상황에서 그 형에게 들려줬고, 앨범 제의가 들어오면서 2집을 내게 됐어요. 그때 시장도 안 좋았고, 홍보 방법도 없었기 때문에 결과는 더 마이너스였죠. 하지만 음악의 만족도는 있었어요. 타이틀 곡 「일년후」도 그렇고 「Can't stop here」, 「Hurry up」 같은 곡은 믹싱이 아쉽게 되었지만, 아끼는 곡들이었는데 너무 묻혔죠.

2집에서 「니가 내게 말했잖아」는 홍진경이 「아는 누나」로 다시 불렀다.
지인을 통해서 친분을 맺게 된 후부터 무척 친해지게 됐어요. 홍진경 씨가 음악에 대한 욕심이 많아서 듣는 것도 정말 많이 들어요. 이런저런 이야기 하다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누나, 한 곡 부를래?” 했는데 진지하게 대답하더라고요. 그래서 진행을 하게 됐는데, 누나의 톤이 좋더라고요. 샹송을 했으면 애절한 샹송이 나왔을 것 같은. 우리나라 말로 해서 약간은 웃기기도 했지만, 저는 좋았어요.

앨범에 지속적으로 참여하는 앤드(AND)라는 사람은 누구인가.
앤드 형은 한국에서 음악을 할 수 있게끔 자리를 만들어준 사람이에요. 그 사람을 못 만났더라면 이 자리에도 없었을 것이고요. 미디 음악도 그 형을 통해서 배웠죠. 1집 앨범까지 낸, 노래 잘하는 형이에요.

이효리와의 인연도 있었다.
1집 내고 나서 엠넷 < 오프 더 레코드 > 프로그램의 피디 분에게서 연락이 왔어요. 이효리 씨가 제 음악을 좋아해서 섭외하고 싶다고 했는데 처음에는 난감했죠. 저는 이효리 씨가 높은음보다는 낮은음이 더 매력 있다고 봤거든요. 그러다 수락해서 촬영도 하고 ‘일년후’도 들려줬죠. 그런데 후에 그쪽에서 “조금 어려운 것 같다, 수정할 수 있겠냐?”라고 요청이 왔는데, 거만한 것이 아니라 저는 분명히 작곡자가 아니고 창작자라서 만든 곡을 수정하는 것은 어렵겠다고 말씀드렸어요.

양동근의 「탄띠」에 참여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군대 선임이셨어요. 제 음악을 처음에 들으시더니 인상 찌푸리시면서 “이거 뭐, 여자들이 좋아하는 음악이겠네?”라고 그러시다가 1집의 「She was sexy」를 들으시더니 “이런 음악 뭐 하나 없어?”라고 부탁하셨죠. 물론 평소 양동근이란 뮤지션에 대한 매력도 있었기에 쓰게 되었어요.

한국음악을 본격적으로 듣기 시작했을 때 접했던 음악은 무엇인가.
어떤 분들이 제가 학창시절 때 토이(Toy) 같은 음악을 들었을 것 같다고 하시는데, 사실 드렁큰 타이거(Drunken Tiger) 같은 힙합 쪽으로 많이 들었어요. 직접 사서 흑인음악 좋아하는 외국 친구들에게 추천까지 했을 정도였습니다. 시비 매스(CB Mass)도 1집 때부터 프린팅된 티셔츠까지 입으면서 이게 한국 힙합이라고 들려주었고요. 아마 군 후임인 다이나믹 듀오(Dynamic Duo) 형들이 제대하면 같이 콜라보를 하게 될 것 같습니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빅 팬이기도 했고요. 초기 슬로우 잼 스타일이라고 할 「너에게」, 「너와 함께한 시간 속에서」 같은 곡을 좋아했습니다.


참, 마이큐의 의미는 무엇인가.
제가 본명이 유현석이라서 영어 이름이 ‘마이크 유’였습니다. 그래서 친구들이 자연스럽게 ‘마이큐, 마이큐’라고 부르게 되었죠. 처음에는 너무 힙합 하는 사람 같기도 하고 그랬는데, (웃음) 큐! 사인처럼 나의 시작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데뷔하기 전에 기획사에 들어갔던 걸로 안다.
앤드형의 소개로 대형 기획사 음반 팀에 들어가게 되었죠. 거기서 1년 연습생 하고 나서 깨달았어요. “음악을 하기 위해서는 이게 아니구나, 이건 내 음악의 길이 아니구나.”라고요. 결국에는 결단을 내리고 나오게 되었어요.

지금까지 한국에서 음악을 하면서 가장 즐거웠던 순간은 언제인가.
첫 번째는 1집이 나왔을 때이고요. 두 번째는 네이버 뮤직에서 2008년 7월 첫째 주에 < 이 주의 국내 앨범 >으로 뽑혔을 때요. 인정받아서 그랬다기보다는 사람들과 공유할 가능성이 생겼고, 호평, 악평을 떠나서 심사대에 공식적으로 올랐기 때문에 제가 더 자극받을 수도 있었다고 생각해요. 또 긍정적인 피드백 덕분에 “아, 내가 뮤지션이구나”라는 느낌을 받았던 것 같아요.

반대로 참혹했던 순간은.
1집 내고 난 다음에요. < EBS 스페이스 공감 >에 나가서도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했던 이야기지만 앨범만 내면 게임이 끝날 줄 알았습니다. (웃음) 꿈이 너무 컸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건 저만의 상상이었고 너무 큰 현실의 벽이 있었던 것을 알게 되었죠.

 

1, 2집의 만족스럽지 않은 반응 탓에 재정적으로 어려움이 많았을 텐데.
다행히 군대 가기 전, 동갑내기인 디자인, 사진, 음악쟁이 3명이 모여 『잘 지내나요 청춘』 이란 책을 냈는데, 뜻밖에 잘 되었습니다. 또 입대한 사이 신민아 씨가 영화 < 키친 >에서 제 곡을 어쿠스틱 버전으로 불러줬고, 요조가 피쳐링 해준 것도 있어서 여러모로 거액은 아니지만 혼자 앨범을 낼 만큼만 모아졌어요.(웃음) 덕분에 여전히 마이너스인 상황이지만 음악을 다시 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죠.

자기 음악을 알리는 것에서 어떤 과정을 통하면 효과적일 것이라 생각하나.
장르가 다양하니 음악만 들려줘서는 알릴 수 없다고 생각해요. 저도 모르겠어요. 제 스토리를 조금만이라도 알게 된다면 “아, 이래서 얘가 이런 음악을 할 수 있게 되었구나? 무슨 이야기인지 좀 알겠어.”라고 이해하실 수 있을 것 같지만, 그건 음?만으로 설득시키는 것이 아니잖아요. 제가 속한 환경과 생각을 음악으로만 표현하기에는 약간 부족하니까요.

복고를 지향해오고 있는데 음악을 현대적 사운드로 도전할 생각은 없나.
변명일 수 있지만 제가 지금 환경이 안돼요. 물론 음악에 대해서 아는 것도 별로 없지만, 음악 할 때만은 거만하고 싶어요. 비록 잘 못하더라도 그것마저 없으면 안 될 것 같아서요. 그렇기에 저에게 최상의 투자가 주어지지 않는 이상, 내 작업실에서 미디 사운드와 직접 산 질감 좋은 마이크로 마음을 담는 것이 훨씬 진실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자신의 음악 정체성을 어떻게 정했나.
3집 때는 물 위로 올라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인지도 상승이 아니라 마이큐라는 뮤지션으로서 확실히 자리를 잡아야 한다고 판단했어요. 이루지는 못했습니다. 심지어 제 열성 팬조차도 “오빠, 앨범 나온 줄도 몰랐어요.”라고 하니까요. 하지만, 목적은 정한 것 같아요. 프린스와 같이 장르를 떠나서 미디면 미디, 포크면 포크, 록이면 록 그게 저인 것 같습니다. 실력을 좀 더 다듬어서 일관성 있게 음악 하는 것이 제 목표에요.


인터뷰 : 임진모, 이종민, 홍혁의
사진 : 김민호
정리 : 이종민

글 / 이종민(1stplanet@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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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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