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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모든 거리를 가로수길처럼 바꾸자” - 『서울은 도시가 아니다』 이경훈

걷고 싶은 맛이 나야 서울은 도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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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고 싶은 거리’를 처음 접했던 건 이십대 초반이었다. 그전까지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내 이십대 민무늬 정신에 주름을 새겨준 고종석 선생의 파리 예찬 이유 중 하나였다.


‘걷고 싶은 거리’를 처음 접했던 건 이십대 초반이었다. 그전까지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내 이십대 민무늬 정신에 주름을 새겨준 고종석 선생의 파리 예찬 이유 중 하나였다. 걷고 싶은 거리를 지녔다고 했다. 궁금했다. 걷고 싶은 생각을 부르는 거리라니. 고향 부산에서도, 서식지 서울에서도, 그런 느낌, 가져보질 못했다. 되레 그곳들은 걷기를 포기하게 만드는 곳에 가까웠다.

고종석 선생은 『도시의 기억』에서 다시 파리를 꺼냈다. “파리는 걷기를 유혹하는 도시였다. 오밀조밀한 볼거리들만이 아니라, 그 도시의 공기 전체가 걷기를 유혹했다.” 그는 파리를 허송하면서 도시 한쪽 끝에서 맞은 편 끝까지 걷는 날도 있었다고 했다. 해찰하며 느릿느릿 걸었다고 했다. 내가 파리를 가고 싶은 이유는, 그 느낌을 가져보고 싶기 때문이다.

서울 곳곳에 ‘걷고 싶은 길’이 만들어졌고 만들어지고 있다. 서울시는 이를 통합해서 관리하겠단다. 헌데, 그 말이 애매하다. 시민들이 걷고 싶은 것인지, 시민들에게 걷고 싶어지도록 만들겠다는 것인지. 불과 몇 년 전부터다. 자동차에 점령당해 걷기 힘들게 만들어 놓을 땐 언제고, 다시 걷기라니. 문제는 걷기 혹은 보행환경에 대한 진단과 해결보다 거리 특성화나 디자인, 보도 포장 교체 등 보여주기 식 사업에 치중한다는 거다. ‘디자인 서울’의 일환이다.

최근 영국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트 유니트(EIU)가 세계 140개 주요 도시를 대상으로 살기 좋은 도시를 조사했다. 서울은 58위였다. 1위는 호주의 멜버른이었다. 서울 순위가 그만하면 선방한 게 아닌가 싶은데, 평가 기준에 ‘걷기’는 들어간 것 같진 않다. 걷기 환경이 서울과 판이하게 다른 뉴욕도 56위였으니까.

이 말을 꺼낸 건, ‘도시’에 대한 새로운 사유 덕분이다. 서울은 도시가 아니다. 웬 도발적이고 섹시한 멘트냐고 하겠지만, 책 제목이다. 이경훈 국민대 건축학부 교수의 주장이다. 그럼, 서울이 도시가 아님 뭐냐, 반문하겠지만, 『서울은 도시가 아니다』를 읽고 나면,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뭣보다 서울이, 도시가 새롭게 보인다. 서울이 도시겠거니 살았는데, 도시와 서울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하게 된다. 그만큼 책이 주는 충격이 만만찮다.

도시를 판별할 수 있는 좋은 예가 있다. 뉴요커의 표본처럼 각인된 <섹스 앤 더 시티>. 캐리가 구두에 유독 꽂히는 이유는 뭘까? 마놀로 블라닉의 명품적 권위? 패션의 종결은 구두라서? 천만에. 이 교수는 구두가 걷기와 연관돼 있음을 알려준다. 멋진 구두로 거리를 폼 나게 걷고 또 걷는 일. 도시의 본질이자, 도시성에 대한 애정이다. 즉, 걷기야말로 도시 생활의 필수이자 상징이며 기쁨이란다. 그래서 묻는다. 당신의 서울은, 걸어 다닐 만합니까?

서울은 도시가 아니다』로 내겐 ‘서울 삼부작’이 결성됐다. 서울에 산다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 『당신의 서울은 어디입니까?』(황두진 지음), 서울의 역사와 시공간에 대한 인문학적 탐사를 내건 『서울은 깊다』(전우용 지음)에 이어 서울의 도시적 성격을 해부한 책이 결합됐다. 지난달 29일, 서울 정독도서관에서 열린 『서울은 도시가 아니다』 저자 강연회는 그래서, 서울을 사유하는 자리였다. 아무 의심 없이 서울을 도시라고 여겼던 당신에게 가하는 낯설게 보기. 서울이 달라 보일 것이다. 당신의 세계가 좀 더 넓어지고 당신의 감각이 좀 더 열릴 것이다.





도시, 걷는 것에서 비롯된다

걷기는 도시라는 공적 공간을 즐기고 공동체에 참여하는 가장 중요한 방식이다. 벤야민은 “도시는 이야기책이며 걷기라는 언어로서만 해독이 가능하다”고 했다. 『걷기의 역사』의 저자인 솔닛은 “도시를 점유하는 방식은 걷기”라고 단언한다.(p.244)

이 교수에 의하면, 도시성의 최전선은 ‘걷기’다. 헌데, 걷고 싶은 것에 대한 오해의 지점이 있다. 길과 거리에 대한 구분의 모호함에서 비롯된다. 어떻게 다를까? 이는 ‘다르다’와 ‘틀리다’를 구분하지 않는 우리의 언어적 몰이해와도 연관된다.

“길은 목적지향적 통로이나, 거리는 길의 일종이나 걷는 과정이 훨씬 더 중요한 도시의 영역이다. 영어로 보면, 길은 로드(Road)고, 거리는 스트리트(Street)다. 그런데 우리는 길과 거리를 구분하지 않고 혼용해서 쓴다. 뭘 까다롭게 그러냐고 하는데, 길과 거리를 섞어 쓰는 건, 단순한 용어상의 혼용일 수 있지만, 도시에 대한 몰이해를 나타내는 방증이다.”

길이 이동과 도착이라는 목적 지향에 충실하다면, 거리는 경험이라는 과정 지향적 성격을 띤다.(p.12)

그렇다면 서울에서 ‘도시적 걷기’를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장소는 어딜까? 이 교수는 ‘가로수길’을 든다. 길과 거리를 명확히 두자면, ‘가로수거리’가 돼야 할 그곳. 압구정동 로데오길과 폭이 같음에도, 두 거리는 차이가 크다. 어떤 점에서?

“가로수길에는 없는 것 두 가지가 있다. 먼저, 차가 인도에 주차하지 않는다. 인도 폭이 넓지 않아 차가 올라오기 애매하고 가로수가 촘촘하게 있어서 주차할 수가 없다. 둘째, 공원이 없고 상점이 연속돼 있다. 대표적인 도시 거리의 모습이다. 거리는 자연보다 상점이 중요하다. 그래서 700m를 걷는 동안 힘들지 않다. 쇼윈도의 구두를 보고 카페 손님을 보는 동안 가로수길이 끝난다. 그 두 가지 외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블로그 등을 통해 가로수길에 대한 감상을 보면, 많은 경우 이렇게도 말한다. “외국 같아요.” 진짜 외국 같아서일까. 이 교수는, ‘도시 같은 것’을 ‘외국 같은 것’이라고 혼동하는 것은 아닐까, 라고 지적한다. 그는 뭣보다 대부분의 서울을 점령하고 있는 자동차에 대한 불만을 토로한다. 자동차를 서울을 ‘도시’에서 멀어지게 하는 중요한 요인의 하나로 꼽는다.


“가로수길을 보면 건물, 사람, 자동차의 순이나, 대부분 서울의 거리는 건물, 자동차, 사람, 자동차로 혼란스러운 것이 문제다. 중요한 건 인도에 차가 있는 게 불법이다. 법을 지켜달라고 요구해야 한다. 작은 짐 정도는 끌고 걸을 수 있어야 도시다. 유모차를 끌고 갈 수 있는 것이 진정한 도시의 모습이다. 가로수길에서 유모차를 만났는데, 가로수길이 없었으면 이 책은 부정적인 일색이었을 거다. (웃음)”

서울은 자동차에 의해 살해된 도시’라는 프랑스 사진작가 얀 베르트랑의 말처럼 서울에서 걷기란 고행에 가깝다. 인도가 없는 좁은 이면도로에서는 차에게 길을 내주고 눈치를 보며 걸어야 한다. 인도가 비교적 넓은 대로에서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자동차가 인도에 올라와 주차하려고 낑낑거리고 있어서 차를 피해 조심히 걸어야 한다.(p.24)

그는 최근 조선일보 ‘한국 대표 건축물’의 탑5로 선정된 서울 장충동 웰콤시티(광고회사) 건물의 모습도 예를 들었다. 나름 문화적인 기업건물임에도, 건물 앞에는 차가 버젓이 주차한다. 차와 사람과의 관계가 여전히 반도시적임을 보여주는 행태다. 건물, 자동차, 사람, 자동차의 배열이 여전하다. 서울에서 걷기 위해서는 자동차의 눈치를 봐야 한다. 끔찍한 일이다.

마을버스. 서울 곳곳에서 볼 수 있는 ‘특산품’(?)이다. 이것 역시 걷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마을버스는 걷는 게 어렵다보니 만들어졌다.

“책 나오고 항의를 많이 받았다. 마을버스를 어쩌란 말이냐, 하고. (웃음) 마을버스를 없애자는 게 아니고, 반성을 해보자는 거다. 책은 8가지 서울의 반도시적인 요소로 구성돼 있다. 8개 요소를 다 없애자는 게 아니라 병의 증상이 있으니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증상을 없애기 위해 병의 근원을 찾아 없애는 것이 중요하다. 걷는 도시로 만들어달라는 주장으로 읽어줬으면 좋겠다.”

정말로 해야 할 일은 서울에 더 많은 가로수길을 만드는 것이다.… 자동차를 피해 조심스럽고 불편하게 걸을 필요가 없는 안전한 거리는 상점의 쇼윈도와 어우러져 지루하지 않은 ‘진짜 도시의 거리’를 만든다.… 나는 서울의 모든 거리가 가로수길처럼 바뀌길 바란다. 가로수길과 같은 ‘우리 동네’에서 이웃들과 인사하며 지내는 삶을 꿈꾼다. 진정으로 걷고 싶은 거리, 진정으로 살고 싶은 도시를 말이다.(p.43)


도시, 상업시설은 필수다


도시성을 드러내는 중요한 지표 중의 하나는, 상업시설이다. 도시라는 단어 자체만 봐도 그렇다. 도읍 (都)에 시장 (市), 즉, 행정과 상업이 합쳐진 것이 도시다. 고로, 상업도시라는 말은 없다. 도시라는 말에 상업이 내장돼 있으니까. 도시는 곧 ‘상업성’의 다른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상업성이라는 말에 묘한 거부감을 가진다.

“기본적으로 거리에 볼거리가 있고, 그 볼거리가 상업시설이라고 보면, 우리의 이중적인 모습을 돌아봐야 할 것 같다. 버스를 타면 안내멘트에 광고가 묻어나올 정도다. 그런데도 ‘상업’하면 굉장히 부정적이다. 충분히 물신주의에 젖어 있으면서도, 상업이라고 말하면 착하지 않은 그런 느낌을 갖는다.”

온갖 광고와 욕망이 집약된 물신주의가 팽배한 도시임에도 안 그런 척 근엄한 표정을 지으려는 가식이 서울을 망치고 있다.(p.35)

상업성에 대한 이중 잣대는 녹지율로도 연결된다. 서울의 녹지율은 30%로, 공원도시라는 런던(12%)의 2배가 넘고, 한강까지 합하면 35%에 가깝단다. 이른바 ‘친환경’에 대한 강박 때문이다. 환경에 가까운 것임에도, 우리는 그것을 자연에 가까운 것으로 착각한다.

“도시에는 도시환경에 맞는 건축과 조경이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친환경은 친자연이다. 나무 심자는 거다. 나무가 거리를 걷게 하는지, 도시를 활동하고 생동하게 만드는지, 다시 생각해야한다. 우리의 이중적인 태도 때문에 상업성에 대해 망설이게 한다. 개발하면, 관주도다보니 친환경 아파트와 문화시설, 공원을 넣는 게 공무원들에겐 정답이다.”

그는 뉴욕지하철의 개찰구와 우리나라 지하철 개찰구를 함께 보여주면서, 비교해볼 것을 권했다. 자본주의의 성채, 뉴욕에 비해 우리나라 지하철의 개찰구에 더 많은 광고가 있다. 오죽하면 비어있으면 비어있다고 광고까지 할 정도다. 이 교수는 그것을 ‘품위의 문제’라고 했다. 그것은 곧 삶의 질과도 통한다. 정작 상업성이 있어야 할 곳은 나무나 공원으로 채우고, 그렇지 않아야 할 곳은 광고로 도배질한다. 아둔한 처사다. 시민들의 미감을 해치는 행위다.

상점에 대한 오해 역시. “뉴욕은 지하철을 마감하지 않는다. 24시간 다닌다. 대신 새벽에는 1시간에 1대씩 띄엄띄엄 다닌다. 지하철을 지키는 것은 역무원이 아니다. 상점(가게) 주인이다. 도시에서 상점의 역할을 보여준다. 상점은 도시를 지키고 상징한다.”

그러나 상점이 모인 쇼핑몰은 상업시설임에도 도시와 맞지 않는 공간임을 지적한다.

“쇼핑몰은 지극히 미국적인 발명품으로 가짜 도시처럼 만든 것이 쇼핑몰이다. 쇼핑몰은 도시와 어울리지 않는다. 거리를 흉내 내고, 도시처럼 보이고 싶어 한다. 전원에나 어울리는 상업시설인데, 그걸 도시에 만드니 도시는 피폐해진다. 대표적인 것이 코엑스몰이다. 각종 상업시설이 있고, 주차장이 완비돼 있으니, 주변 거리는 남아 있을 게 없다. 거기 인도를 봐라. 걷는 사람이 얼마나 되나. 쇼핑몰에 대한 잘못된 생각이 서울을 위기로 몰아가고 있다.”

맨하탄의 메이시스 백화점에는 주차장이 없다. 아니, 백화점에 주차장이 없다고? 한국에선 말도 안 된다고 하겠지만, 백화점이나 고급호텔도 다 그렇다. 그렇다면 쇼핑은 어떻게? 걸어서 한단다. 쇼핑백은? 들고 간단다. 자동차를 타고 쇼핑을 가고 백화점이 세일하면 교통 마비되는 것. 도시로선 매우 잘못된 일이다.

광장도 비슷한 맥락에서 접근할 수 있다. 이 교수는 시청 앞 광장을 문제 삼았다. 광장주변에 상점이 없다는 것. 거리가 상점으로 이어진 길이라면, 광장은 상점으로 둘러싸인 공터여야 한다. 중국의 천안문 광장, 러시아의 붉은 광장은 제외하자. 도시의 광장이려면 그래야 한단다. 그리고 서구의 광장이 카페나 기념품 가게로 둘러싸여 있는 풍경을 보여준다.


도시, 방음벽으로 울타리를 쌓다


서울에 혹은 근교에 살고 있다면 주변을 한 번 둘러보라.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것 중의 하나가 방음벽이다. 이 교수는 8가지 도시 방해요소 가운데 꼭 없애할 요소로 이것을 꼽았다.

“도시의 건축적 정의는, 사적인 이익을 조금 양보하면 훨씬 더 큰 공공 이익이 돌아온다, 이다. 헌데 방음벽은 반대다. 공공은 난 모르겠으니 나 좀 살자, 다. 조용하게 살겠다는 주장이다. 경부고속도로 주변에 아파트가 들어서 민원을 제기하면 구청에서 방음벽을 지어준다. 그러면서, 서울은 2중3중의 철벽선이 됐다. 지나가는 사람의 권리, 도시 공공재로서의 풍경이 없다.”

그는 방음벽의 진짜 문제는 학교에 있다고 지적했다. 학습 환경을 조성한다는 이유로 설치된 방음벽이, 유태인 격리지구인 게토(ghetto)를 연상시킨다는 것. “역사의 아이러니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침공한 뒤, 게토를 만들어 그들을 격리시켰다. 재밌는 문구가 이 장벽에 있었다. ‘두려움은 장벽을 만들고, 희망은 다리를 만든다(Fear builds walls, hope builds bridges).’ 방음벽은 정말 생각해 봐야 한다.”

오늘날 전 세계를 통틀어 팔레스타인과 서울에서만 살아남은 장벽은 우리가 사는 곳을 게토로 만들고 있다. 높은 장벽으로 외부와 단절하는 중세의 게토를 자발적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서울에서 그토록 높은 벽을 쌓아 막는 까닭? 어쩌면 소음 때문이 아니라, 타인과 스스럼없이 지내는 도시 생활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때문이 아닐까?(p.93)


도시, 공유공간이 필요해~


도시성의 중요한 포인트 중의 하나는 공유공간이다. 이 교수에 의하면, 뉴욕의 아파트는 아주 좁다. 때문에 밥은 식당에서, 빨래는 빨래방에서, 야구경기는 바에서, 해결한다. ‘홈(Home)’이라고 할 만한 것이 도시 곳곳에 퍼져 있다. 그러다보니 바깥에 있는 지저분함에 대해 지적하고, 서로 규율을 해서 도시가 아름다워진다.

이렇게 최소화된 개인 공간은 역설적으로 도시 전체를 ‘나’와 ‘우리’의 공간으로 생각하게 한다. 그들은 아파트보다는 한 도시에 산다고 하는 표현이 더 적합하다. 도시 전체를 자신의 공간으로 확장하며, 자연스레 공공의 공간에 대한 관심과 애정으로 나타난다.(p.125)

그러나 서울은 그렇지 않다. 우리는 공유공간의 기회를 숱한 ‘방’에 뺏긴다. 가령, 노래방에 가는 건, 아는 사람과 함께다. 뉴욕에서 브런치를 먹는다는 건, 이웃과 사귈 수 있는 계기가 되나, 우리는 과시적이거나 그것이 뉴욕 라이프인양 경험하는 것에 불과하다.

“서울에서 혼자 살아본 사람은 알지만, 혼자 식당가기 굉장히 부담스럽다. 혼자 가면 사회적으로 문제 있는 사람이 아닌가 하고 쳐다보는 것 같다. 유일하게 혼자 갈 수 있는 식당이 기사식당이다. 그 외에는 식당에 가서 이웃과 교류하고 새로 만나고 사정을 듣고 말하고 하는 일은 서울에서 불가능하다. 그게 방의 문화다. 반면 상업시설은 접촉의 기회를 준다. 상업시설이 공유공간의 기본이며 도회적 만남을 재촉한다.”

이 교수는 이밖에, 한국에서밖에 볼 수 없는 새집증후군의 원인으로 습식 건물로 지어진 건축구조에서 찾는다. 초강력접착제에 기댈 수밖에 없고, 건물의 수명은 짧아진다. 건축계의 반성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언급했다. 겨울이면 등장하는 루체비스타도, 그만큼 전구를 받쳐줄 건물이 없음을 보여주는 일종의 환각이라고 덧붙였다.

“서울이 도시든 아니든 중요하지 않을 수 있는데, 가장 큰 것은 오해다. 도시가 아닌데, 완벽한 도시라고 생각하는 오해가 더 무섭다. 서울에 문제가 있으면, 도시의 문제여서, 도시에 살아서 그렇다고 뒤집어씌우는 게 문제다. 도시와 자연은 동등하다. 선과 악이 아니다. 도시는 사람이 애써 발명했고, 좋은 면도 많다. 누구도 서울에서 살라고 강요하지 않았을 거다. 교육, 경제, 문화 등의 기회가 있어서 서울에 산다. 그런데 우리는 도시에게, 넌 왜 자연스럽지 않니, 라고 말한다. 그건 여자에게 왜 넌 남자답지 못하니, 라고 얘기하는 것과 같다.”

한 독자는 그랬단다. 서울에 살면서 전셋집에 산 기분이었고, 언젠가는 돌려줘야 할 집인 것 같았다고. 많은 서울 사람들이 그런 것 아닐까. 살고 있지만, 내 것이 아니라서 고치고 싶진 않은. 그러나 지금 사는 곳이 중요하다. 이 교수는 권한다. “여기를 아름답게, 인간답게, 걷기 좋게 만드는 방법밖에 없다.” 우리의 서울, 우리의 도시를 다시 생각해 볼 이유다.


Q&A


반포대교 분수를 환각의 일종이라고 생각한다. 물고기들은 얼마나 괴롭겠나 생각이 들고, 자전거도로를 만들어 즐겁긴 한데, 나쁜 면은 없을까, 걱정도 된다. 어떤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도 있겠으나, 서울시가 경관이라는 것에 대해, 경관이 중요하고 삶의 질을 이끌 수 있겠다고 인식했다는 측면에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방법이 문제다. 강변에 카페나 분수를 만드는 엽기적인 생각들이 있는데, 전문가와 상의하면 어떨까 싶다.”

공무원이다. 걷고 싶은 거리를 조성하기 위해 가? 신경 써서 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

“첫째는 법대로 하는 게 중요하다. 인도 주차 단속이다. 재밌는 건 차도에 불법 주차하면 걸리는데 인도에 올려놓으면 괜찮다. 그걸 법대로 해야 한다. 그게 가장 가까운 길이다.”

건설회사에 다닌다. 우리 사회가 개발과 보존 사이에서 갈등이 일어나는데, 어떻게 보나?

“내 범위에서만 말하겠다. 동대문운동장 보존 및 디자인 플라자 논쟁에 관련된 적이 있었는데, 박살이 났다. (웃음) 동대문운동장은 별로 보존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다. 콘크리트 습식으로 지어졌고, 5차례나 증축이 돼서 보존 가치가 있는지 의문스러웠다. 트랙 같은 건 의미가 있을 수 있겠지만. 우리나라에서 모든 법률의 상위는 민원이다. 우리도 도시적 쾌적함이 자연의 쾌적함만큼 동등한 가치가 있음을 보여주는 동네를 만들어야 한다. 공공의 이익을 위해 작은 사적인 이익을 희생할 각오가 모든 문제의 해결점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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