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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녀 “어느 순간부터 할머니가 제일 편해요”

1인 32역, 김성녀 연기생활 30년의 자부심! <벽속의 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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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수록 ‘내가 이 작품을 얼마나 더 할 수 있을까’ 생각해요. ‘10년은 채우겠지’ 그럼 3년 남았다고 생각하는데, 또 주위에서는 일흔까지는 하라고 하시더라고요.


“첫사랑을 만나는 기분이랄까요? 2005년 초연 때 마땅한 제작사가 나타나지 않아 애를 먹었는데 PMC 덕분에 <벽 속의 요정>이 탄생할 수 있었죠. 그 동안 그 영예를 제가 다 받았는데, 7년 만에 다시 PMC와 작품을 하게 돼서 설레요. 또 7년간 대부분 강남권에서 공연을 했는데, 이번에는 연극의 거리인 대학로에서 <벽 속의 요정>을 올리게 돼서 첫사랑 만난 것 같은 느낌이에요.”

<벽 속의 요정> 오픈을 하루 앞두고 공연장에서 김성녀 씨를 만났다. <마당놀이>와 <벽 속의 요정>은 해마다 하겠다던 약속대로, 올해로 7년째 <벽 속의 요정>을 무대에 올리는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내가 이 작품을 얼마나 더 할 수 있을까’ 생각해요. ‘10년은 채우겠지’ 그럼 3년 남았다고 생각하는데, 또 주위에서는 일흔까지는 하라고 하시더라고요. 제가 욕을 하라고 막 웃었는데, 올해 장민호, 백성희 선생님이 <3월의 눈>이라는 공연을 하셨어요. 아흔이 다 된 노배우들의 명연기를 보면서 반성을 많이 했죠. ‘아, 나이를 두고 연기를 마감할 일은 아니구나.’ 제가 85세에 <벽 속의 요정>을 할 수 있다면 배우로서 얼마나 행복하겠어요. 역으로 관객들도 행복하실 테고요.”


각별한 작품이라서 일까? 7년째 하는 작품인데도 그 설렘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사실 설렘보다는 걱정이 태산이다. 마당놀이를 할 때도 간이침대를 두고 틈틈이 쉬는, 무대 뒤 김성녀 씨의 사정을 조금 아는 기자로서도 2달이라는 공연 기간에 걱정이 앞선다.

“제가 가는 곳에는 간이침대가 따라 와요(웃음). 예전에는 일주일에 8회 공연을 했어요. 그때도 녹용 먹고 산삼 먹고 침 맞고 온갖 사투를 벌이며 연기했죠. 그런데 이제 체력이 그나마도 안 돼서 5회로 줄였는데, 그래도 걱정이 태산 같아요. 배우 혼자 2시간20을 끌어가는 작품이 없거든요.

사실 <벽 속의 요정>은 저에게 형벌 같아요, 너무 힘드니까. 그런데 끝나고 나면 관객들의 박수갈채와 환호 속에 영광의 자리에 앉게 되죠. 마치 금메달리스트처럼 극과 극의 감정을 느끼는 작품이에요.”


그렇게 힘든데 무엇이 또 다시 그녀를 무대로 이끄는 것일까?

“나만이 할 수 있다는 자부심이랄까요? 누구나 할 수 있다면 10년을 하겠다는 말도, 형벌이라는 말도 하지 않겠죠. 대체로 나이가 들면 배우의 힘이 아니라 관록이나 느낌으로 무대를 이끌어가는 작품이 많아요. 하지만 연극은 에너지거든요. 이 공연은 그런 에너지가 몇 십 배나 필요한 작품이고, 화술과 노래, 춤을 2시간 동안 아우르면서 ‘배우는 이런 것이야’를 보여주는 것이죠. 어려운 만큼 나만이 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이 있는 것 같아요.”

처음부터 <벽 속의 요정>은 배우 김성녀의 모든 것을 펼쳐 보이기 위한 작품이었다. 또한 배우뿐만 아니라 무대를 만들어가는 모든 스태프들의 관록과 완벽함의 결정체다.

“사실 <벽 속의 요정>은 손진책 씨가 결혼 30주년을 기념해서 선물로 준 작품이에요. 연출보다는 배우가 돋보이는 무대를 만들겠다고, 특별한 세트 하나 없이 배우 혼자 모든 것을 이끌어가도록 만든 거죠. 무척 위험한 시도이긴 한데, 배우로서 저를 좀 인정하고 믿었나 보죠(웃음)? 그래서 ‘김성녀의 <벽 속의 요정>’으로 자리매김했는데, 무대 위에는 저만 서지만, 저 혼자 만들어 가는 것은 아니에요. 대본도 탄탄하고, 간결하지만 연출도 굉장히 치밀하고, 조명, 음향 등 모든 사람들이 관록으로 똘똘 뭉쳐서 완성도 높은 무대를 선보이고 있는 것이죠.”

마당놀이 때의 투박스러움과 달리 <벽 속의 요정>에서는 단아하다. 또 이렇게 대화를 나눌 때는 무척 여성스러운데, 평소에는 어떤가?

“평범한 이웃집 할머니 같지 않을까요(웃음)? 전공분야에서는 카리스마 있지만, 이른바 배우라면 생각나는 외적인 모습에서는 평범한 것 같아요. 사람들도 실제 보는 것보다 무대 위에 있는 모습이 더 예쁘다고 해요. 엄마로서도 정이 있고 순박한 모습보다는 날카롭고 무서운 이미지가 강했는데, 요즘은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우리 아이들이 저더러 귀엽대요. 제가 좀 유해졌나 봐요. 제 안에 있는 그런 다양한 모습이 <벽 속의 요정>에서 32가지 모습으로 응축돼 나오는 것이겠죠.”

여배우로서 나이가 든다는 건 어떤 것일까?


“많은 생각을 하게 하죠. 특히 TV 드라마나 영화를 했다면 내 나이에 맞는 역할만 했을 거예요. 화면에는 주름까지 다 나오니까 회상장면을 연기해도 어색하잖아요. 하지만 연극은 환갑이 넘은 이 나이에도 5살 어린아이로, 꽃다운 처녀로 돌아갈 있어요. 연극은 약속이라서 제가 어린아이 목소리를 내면 관객들도 아이를 연기하는 구나 생각하거든요.

그게 연극의 특권이고, 배우로서 나이를 잊고 얼마든지 변신할 수 있는 무대가 고마운 것이죠. 하지만 나이가 들고 있다는 건 제가 먼저 느끼죠. <벽 속의 요정>할 때 어떤 역할이 좋은지 물어보는 분들이 많은데, 예전에는 노인네 역할이 어색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할머니 역할이 그렇게 편할 수가 없는 거예요(웃음). 그만큼 나이가 들었다는 얘기죠.”


이제 그녀는 배우로서 쌓은 많은 것들을 정리하고 완성해가고 싶다.

“배우는 제 천직인 것 같아요. 제가 가진 역량은 무대에서 가장 어울리고요. 그동안 남이 알아주던 알아주지 않던 배우로서 다양한 변신을 했어요. 춘향이에서 에비타, 아이에서 늙은이, 여자에서 남자까지, 그리고 그걸 토대로 <벽 속의 요정>에서 1인 32역의 모자이크까지 완성했고요. 그래서 이제 어떤 역할을 하기 보다는 무엇을 하더라도 더 깊고 넓게, 그 역할을 잘 표현하는 게 저의 임무라고 생각해요.”

30여 년 연기생활. 그녀가 생각하는 배우는 어떤 사람일까?

“지금까지 이 질문을 많이 받았는데 한 번도 똑같은 답변을 해본 적은 없어요. 항상 생각이 바뀌니까요. 흔히 인생을 연극이라고 하잖아요. 거기에 나오는 배역들은 인물군상을 그대로 표현하죠. 배우는 모든 사람들의 거울이라고 생각해요. 배우를 통해 사람과 삶을 투영하는 것이죠.”

배우 김성녀를 거울에 비췄을 때 그 모습에 흡족할까?

“열심히 살았기 때문에 ‘너 참 열심히 했다’라고 생각해요. 대신 그동안은 강렬하고 냉철하고, 또 강하고 날카롭게 삶을 헤쳐 왔다면, 지금부터는 사랑하고 베풀면서 나이를 잘 들어가고 싶어요. 이제부터는 나를 잘 닦아서 연극계의 좋은 선배로, 덕 있는 대배우로 자리매김했으면 좋겠어요.”


자부심은 다른 사람이 심어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 그렇기에 나이 예순 둘에도 전력 질주하고 있는 배우 김성녀 씨의 거울에는 당당한 그녀가 자리하고 있는 게 아닐까? <김성녀의 벽 속의 요정>이 PMC 대학로 자유극장에서 공연되고 있다. 한 배우의 30여 년 연기생활을 응축한 1인 32역의 모노드라마. 배우에게는 형벌이지만, 관객에게는 그 자체로도 감동이 아닐 수 없다. 물론 85세에도 <벽 속의 요정>으로 무대에 서는 김성녀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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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윤하정

"공연 보느라 영화 볼 시간이 없다.."는 공연 칼럼니스트, 문화전문기자. 저서로는 <지금 당신의 무대는 어디입니까?>,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공연을 보러 떠나는 유럽> ,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축제를 즐기러 떠나는 유럽>,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예술이 좋아 떠나는 유럽> 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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