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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이 내 시집을 읽어주면 좋겠다” - 문학동네 시랑사랑 ‘시, 그것이 어떻게 빛나는지’

태풍이 지나간 자리, 반짝반짝 빛나는 팔월의 시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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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의 여름밤, 태풍이 훑고 지나간 서울 홍대 부근 산울림소극장. 태풍이 할퀴고 간 자리를, 마음을 달래줄 수 있는 건 무엇일까.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 詩가 그렇다.


태풍이 왔다. 비를 동반한 태풍이 지상을 훑고 지나갔다. 태풍이 오면 사람들은 움츠러들고, 때론 피해가 발생한다. 누군가의 마음에도 태풍이 훑는다. 마음은 움츠러들고, 괴롭다. 태풍이 바깥세상에만 오는 것은 아니다. 마음에도 태풍이 닥친다. 어느 태풍이든 원했기 때문이 아니다. 태풍은 말없이 오고, 말없이 지나간다. 태풍은 자신의 길을 갈 뿐이지만, 태풍에 할퀸 사람들은 말없이 괴롭다.

그런 태풍이 지나간 자리, 태풍이 지나가도 태풍이 지나간 흔적은 남는다. 그건 무엇으로도 되돌릴 수 없다는 뜻이다. 지난 8일의 여름밤, 태풍이 훑고 지나간 서울 홍대 부근 산울림소극장. 태풍이 할퀴고 간 자리를, 마음을 달래줄 수 있는 건 무엇일까.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 詩가 그렇다. 완치나 치유는 불가능하지만, 시는 태풍이 지나간 자리를 ‘어른스러운 입맞춤’으로 감싸주는 얼마 되지 않은 무엇일 것이다.

‘방독면’이라도 쓰지 않으면 견디기 힘든 참혹한 태풍이 분 세상에, 어딘가로 떠나고 싶어 ‘터미널’을 찾고 싶은 사람들에게, ‘읽자마자 잊혀져버려도’ 시는 필요한 무엇이다. 8월8일, 8명의 詩(인)는 그래서 팔(8)자려니. 태풍이 불었던 사람들에게, 詩. 8명의 시인이 들려준 팔월의 詩.

조인호『방독면』 이홍섭 『터미널』 정한아 『어른스런 입맞춤』 성미정 『읽자마자 잊혀져버려도』에, 김경주, 장석남, 오은, 김민정 시인이 모였다. 문학동네 시랑사랑, 그 세 번째 이야기, ‘시, 그것이 어떻게 빛나는지’. 태풍 앞에서도 시가 빛나듯, 태풍이 지나간 마음의 자리에도 시는 빛난다.


특별게스트, ‘옥상달빛’의 음악으로 시작하는 시밤. 「어나더데이」와 「행복의 나라로」가 시처럼 울려 퍼진 밤에, 신형철 문학평론가가 시인, 독자들과 시를 나눴다. “시를 읽고 글을 쓰는 사람이지만, 시집이 잘 안 팔리는 지금을 개의치 않는다. 너무 많이 읽으면 시를 읽는 사람의 희소가치가 떨어지니까. 내가 왜 시를 좋아하느냐면, 우리가 하는 일이 다 비슷한데, 읽는 거라도 다 달라야하지 않을까. 시는 읽는 사람에 따라 해석, 감상이 달라지는데, 시를 읽는 순간만큼은 혼자가 될 수 있는 느낌도 있어서 좋아한다.”

당신의 마음에도 태풍이 스쳐갔다면, 팔월의 시들이 당신에게 갔으면 좋겠다. 태풍이 지나간 내 마음의 자리엔, 「愛人」이 토닥토닥. “…책상은 나를/ 제 다리 밑에 숨겨줍니다/ 거기서 손가락 빨며 눈 빨개지도록 웁니다” 아무렴, 시는 태풍을 달랜다.


강릉 친구 같은 시인과 느리고 빈틈 있는 시인


1부는 이홍섭 시인과 장석남 시인, 정한아 시인과 오은 시인이 함께 한 시간.

장석남 시인과 이홍섭 시인과 어떻게 만났나?

(장석남, 이하 석)
2년 쯤 있으면 만난 지 30년이 된다. 고등학교 3학년 때, 모 대학의 글 쓰는 모임에서 처음 만났다. 이 시인은 강릉이고, 나는 인천인데, 심정적으로 가깝게 지냈다. 방학 때면 강릉에 가서 술도 마시고 이야기도 나누고. 그렇게 30년가량 만나고 있다.

시집 타이틀을 ‘터미널’로 했다. 건조한 제목인데, 어떤 의미로 붙였나?

(이홍섭, 이하 섭)
박형준 시인이 해설을 잘 해놨더라. 터미널과 정거장을 잘 구분해서. 정거장은 시간이 연속적으로 흐르는 곳이고, 터미널은 만나고 헤어지는 장소고. 터미널이 사람의 살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는 장소라, 그걸 집약해서 그렇게 썼다.

“정거장이 일상의 지배를 받는 공간이라면 터미널은 존재의 지배를 받는 공간이다. 정거장에서는 시간이 연속적으로 흐르지만 터미널에서는 시간이 불연속적인 흐름을 이룬다.”( 『터미널』 , p.94)

「터미널5」「등대」 같은 시가 좋았다. 뭔가를 후회하는 정서가 있고, 와 닿았다. 강원도에서 태어나서 계속 살고 있나?

(섭)
한 80%가 후회에 대한 시다. (웃음) 시가 가진 낭만성 같은 것도 추억이나 후회를 감싸고 가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자라면서 강원도를 떠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서울에 갈 기회가 있었는데, 강원도에서 직장을 선택해서 살고 있다. 대학원 시절을 빼고는.

언제 처음 시를 썼나?

(섭)
꿈이 원래 화가였다. 초등학교 때부터 고2까지 미술부를 했다. 고등학교 때 어떤 분이 아팠는데, 그림으로 표현하려고 했는데 색으로 표현이 안 되는 거다. 덜컥 겁이 났다. 평생 그림을 그려야하는데, 이게 안 되면 어떡하나. 그때 글로 쓰니까, 내 느낌이 표현이 되더라.

장석남 시인은 이홍섭 시인을 곁에서 보니 어떤 사람인가?

(석)
참 강원도 친구다. (웃음) 강원도 중에서도 ‘강릉 친구구나’하는 느낌을 끊임없이 환기시킨다. 그런 면이 갑갑할 때가 있다. 시를 보면, 강원도 식의 의자가 있다면 어떤 의자일까 궁금할 때가 있다. 오래된 의자인데 지루하지 않고, 늘 반질반질한 대를 이어서 온 시를 쓰는구나. 얼핏 보면 맑은 것 같은데, 곁에 두면 훈훈하고, 자세히 보면 어떤 디자인적 요소가 있는. 그런 시인이란 생각이 든다.


정한아 시인은 2006년 등단해서 5년 만에 첫 시집을 냈다. 소감이 어떤가?

(정한아, 이하 아)
발가벗고 광장에 나간 기분? (웃음) 딱 찍어서 얘기하긴 힘든데, 시를 읽는 게 재밌고, 끓어오르게 만드는 느낌이 든다. 고등학교 때 80년대 시를 읽으면서 많이 그랬다. 나는 섬세하고 감수성을 건드리는 식의 디테일을 다루지는 못하는 것 같다. 힘에 대한 동경이 늘 있었고, 돌이켜보면 철학을 전공한 것도 그런 맥락인 것 같다.

(정한아 시인, 「타인의 침대」 낭독 뒤) 시를 쓴 계기나, 쓸 때의 마음 같은 게 있다면?

(아)
지옥 같은 상태에서 쓴 시다. 표제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제목이 다른 분의 시와 비슷해서 표제로 못 넣었다. 세상이라는 것이 자기가 만들어놓은 대로 굴러가는 것이 아니라 남의 침대에서 자듯이 불편하고, 진짜를 요구하는 사람들에게 좌절이나 절망을 안겨준다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에 골몰해 있을 때, 지옥 같은 기분으로 썼다.

함께 동인을 하면서 지켜본 정한아 시인은 어떤가?

(은)
정한아 시인의 완전 팬이다. 정한아 시인은 느리다. 머리는 빨리 돌아가는데, 반응 속도랄까, 뭔 말을 하면 알아들을 때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 내가 장난을 잘 치는데, 정한아 시인은 잘 속고, 구멍이 있고 빈틈이 있는 여자다. 공부를 많이 했지만. (웃음)

정한아 시인은 학자의 길을 가면서, 비평도 쓰고, 시도 쓴다. 읽고 쓰는 게 삶이다. 이럴 때는 읽고 쓰는 게 참 행복하다, 지긋지긋하다는 느낌을 받는 때가 있을 것 같은데..

(아)
안 읽어도 되는 걸 읽을 때가 좋고, 안 써도 되는 걸 쓰고 있을 때가 두 번째로 좋고, 써야 하는 글을 써야 할 때가 힘들고, 읽어야 하는 글을 읽어야 할 때가 가장 힘들다.




이홍섭 시인은 다음 계획이 있다면?

(섭)
이번 시집을 6년 만에 내놨는데, 다음 시집은 건달풍으로 내려고. (웃음) 빨리 다음 시집을 냈으면 좋겠고, 이번 시집처럼 골 빠지게 내지 않았으면 좋겠다.

시를 쓸 때 가장 중요한 게 있다면 한 마디 부탁한다.

(섭)
난 아직도 시가 완만하게 좋아진다거나 그런 것 같진 않다. 시가 계단처럼 좋아진다는 비유를 자주 한다. 야구로 치면 돌직구를 던지는 오승환처럼, 그게 시의 장르의 벗어날 수 없는 속성이 아닐까. 에둘러 돌아가는 장르가 아니라서, 시는 굉장히 힘든 장르다. 이젠 나이도 들어서, 약간 편해진 것도 같은데, 시가 계단처럼 나아지는 거라서, 매번 낼 때마다 어디까지 가는 진 모르겠다. 시를 공부하는 분들은 그런 생각 않고, 많이 쓸 때는 돌직구 던지듯 자꾸 던져야 힘이 붙어서 오랫동안 좋은 시를 쓸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장석남 시인에게도 묻고 싶다. 시에 대해 최근 하고 있는 생각이 있다면?

(석)
쉽게 말하면, 종이를 펴놓고, 한 줄씩 차례대로 써 내려가는 거다. 한 줄이 또 한 줄을 낳고. 시를 쓰려는 사람들은 한꺼번에 쓰려는 욕망이 있다. 한 줄씩 쓰면 될 것 같다.

마음 다섯의 시인과 김정일 위원장을 만나고 싶은 시인


2부는, 성미정 시인과 김민정 시인, 조인호 시인과 김경주 시인이 함께 한 시간. 김경주 시인이 조인호 시인의 「최종병기시인훈련소」를 낭독하고, 맞춤형 퍼포먼스로 문을 열었다.

성미정 시인은 네 번째 시집이고, 조인호 시인은 첫 시집이다. 소감을 듣고 싶다.

(성미정 시인, 이하 미)
이런 자리는 처음이다. 조금 기쁜데, 많이 기쁘진 않다. (웃음) 시집 내느라 다른 분들이 많이 수고하셔서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조인호 시인, 이하 호) 시집 나온 지 두 달 반 됐는데, 이전과 달라진 건 딱히 없다. 어머니, 여동생, 여자친구가 나보다 더 기뻐해줘서 그런 것을 보면서 흐뭇해하고 있다.

김경주 시인은 어떤 인연으로?

(김경주 시인, 이하 주)
시 이전에 축구를 같이 했다. 조인호 시인이 필드에서 출중한 실력을 자랑한다. (웃음) 조인호 시인 또래는 조인호 시인의 시집이 빨리 나오길 기다렸다. 최근에 받아본 시집 중에 가장 뜨거운 마음으로 받았다. 첫 시집이 줄 수 있는 매혹을 많이 담고 있고, 시 쓰는 분들에게 많이 권하고 있다. 굉장히 기쁘다.

김민정 시인은 성미정 시인과 어떤 인연인가?

(김민정 시인, 이하 민)
무척 좋아하는 시인데, 『대머리와의 사랑』을 보고 이렇게 시를 써도 안 혼나나, 라고 생각했다. (웃음) 성미정 시인의 시집을 만들고 싶었다. 사석에서 언니라고 하는데, 언니가 신사동 가로수길에서 남편과 함께 장난감 가게를 한다. 내 시의 자유스러움, 천진난만할 수 있는 용기를 주신 분이다. 시집을 내자고 했을 때 흔쾌히 그러자고 해서 고마웠다. 기분이 우울할 때, 밑줄을 그어가며 읽는, 좋아하는 언니다.



시집 보면 동화책, 장난감 얘기가 있다. 일본어 얘기도 있고. 장난감 가게와 관련이 있나?

(미)
관련이 많다. 장난감을 좋아하고, 일본어를 3개월 동안 배웠는데, 대화하면 70~80%를 이해한다. 지금은 영어를 배우고 있다. 영어가 딸리는 것 같아서. (웃음)

시인의 말에, 올해로 마음 다섯이 되었다, 고 했다. 어떤 뜻인가?

(미)
다른 사람들과 나눌 수 있는 마음이라고 하면, 전형적인가? 다른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면서 다섯 개의 마음 정도는 쓸 수 있지 않나 해서 써봤다. 시간이 지날수록 늘어날 거라는 생각이 든다. 약간 다중인격 같은 생각이 드는데, 그런 건 아니고. (웃음) 나는 소심하고 신중한 편인데, 시를 쓰면서 용감해졌다고나 할까. 이번에 시를 쓰면서 많이 느꼈다.

예전에 쓴 시를 많이 읽나?

(미)
꺼내서 보진 않고 계기가 돼서? 다른 책 읽느라 내 시를 읽을 시간이 없다. 시를 쓴다는 게, 뭔가 불편한데 떨어져 있는 느낌? 세 번째 시집 쓸 때 바닥을 쳤다. 김민정 시인도 세 번째 시집이 별로라고 얘기해주고. (웃음) 시가 묘한 게 있다. 제대로 쓰고 있는 것 같지 않은데, 내가 어떻게 하는지도 모르고, 자기검열이 필요했는데, 그런 말 해줘서 고마웠다.

『방독면』 은 총 4부로 구성이 돼 있다. 하나의 서사를 담으려고 했다는데, 설명을…

(호)
서사라기보다 훈련단계라고 생각했다. 4단계를 거치며 스스로에게 ‘최종병기시인’이란 칭호를 부여했다. 4단계까지 완독해 주신 독자에겐 ‘최종병기독자’라는 칭호를 부여하겠다. 최종병기훈련소의 훈련병은 나 혼자다. 오늘로서 김경주 시인이 명예회원이 됐다. (웃음)


재개발지역, 타워골리앗 등이 나오는데, 어떤 점에 신경 써서 읽으면 좋을까?

(호)
쇠파이프에 집중해서 읽어주면. (웃음) 청계천에 있는 물류창고에서 짐을 날랐던 적이 있었다. 휴식시간이 오면, 담배를 피면서 건너편 재개발 지역에 우뚝 솟아있는 크레인을 멍하니 바라봤다. 그러다 인부들이 파업을 했다. 다 모여 있는데, 타워크레인 기사분만 묵묵히 일을 하고 있었다. 지상의 인부들이 파업에 동참하라고 돌을 던졌는데, 안 내려오더라. 크레인의 위용이라고나 할까, 그분의 깡다구랄까. (웃음)

시를 읽으며 도대체 어떤 책을 읽고 영화를 보면 이런 문화적인 감수성이 생겼을까 궁금했다. 자양분이 됐던 선배 시인이나 예술가가 있다면?

(호)
시집 작업을 하면서 시인을 떠올리진 않았다. 내가 떠올린 이미지 중의 하나는, 북쪽에 있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었다. 선글라스와 곱슬머리를 끊임없이 상기하면서. (웃음)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대면해 본적 없지만, 시집을 내면서 가장 간절히 원했던 것이 김 위원장이 내 시집을 읽어주는 것이었다. 기회가 왔으면 좋겠다. 할 이야기도 있고. (웃음)

시를 쓰겠다고 한 시점이나 계기가 있다면?

(호)
딱히 잘 하는 게 없었다. 시를 쓰는 건 일종의 미션인 것 같다. 어느 시점에 써야겠다는 마음을 갖기보다 시가 나에게 어떤 의미가 될 수 있는지 끊임없이 상기를 하는 편이다. 스스로에게 매일 미션을 던지는 놀이를 한다. 암호명을 하나씩 부여한다. 일상에서 밀접하고 현실적인 것을. 다른 시인들이 그런 단어를 호명해주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 분노를 느끼는 편인데, 쇠파이프를 다른 시인들도 사랑해주시고 호명해줬으면 좋겠다. (웃음)

성미정 시인의 다음 시집 언제쯤? 시 쓰고자 하는 독자들에게…

(미)
계획은 없고, 쓰고 싶으면 열심히 쓰고, 쓰기 싫으면 안 쓰려고. (웃음) 시를 쓰려면 자기가 쓰는 어법, 말투를 눈치 안보고 쓰는 게 중요한 것 같다. 문창과 등에서 교육 받은 시를 보면, 시를 이렇게 쓰나?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자기 생긴 대로 쓰면 좋을 것 같다.


Q&A


어떻게 호기심을 유지하면서 사는지?

(섭)
주로 방안에서 지내는데, 갑자기 바다나 산에 갈 때가 있다. 가고 싶어서가 아니라, 내 몸에서 뭔가 떨어졌구나 하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정지한 느낌이 들 때, 몸이 자동으로 반응을 해서, 바다나 산으로 간다. 아니면 며칠 동안 술을 먹는다거나. (웃음) 내게 호기심은 몸이 자동 반응을 해서 바깥으로 나가게 되는, 그런 거다.

어떤 감정일 때, 시가 잘 쓰이나? 살면서 가장 강렬했던 감정이 언제였고, 시로 표현했나?

(아)
기분이 지옥 같을 때? 어렸을 때 습작기에는 적당히 우울한 상태가 시 쓰기 좋은 정서를 만들어줬다. 그런데 그 사실을 알고 나니,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더라. 다른 시인은 모르겠는데, 시를 쓸 때 전혀 다른 방식으로 쓸 때가 있다. 어떨 때는 한 덩어리로 시 한편이 나올 때가 있고, 도 닦듯이 한 자 한 자 쓸 때가 있다. 두 시는 굉장히 다르다. 한 가지 정서 상태에서만 시를 쓸 수 있다고 하면 시가 그 정서 상태의 표현이 될 텐데, 다행히 그렇진 않은 것 같다. 다만 행복할 땐 시를 쓰는 것 같지 않다.

(미) 질문에서 벗어난 얘긴데, 새벽에 혼자 조용히 있을 때 잘 써진다. 강렬한 감정을 느꼈을 때, 첫 번째 시집 낼 때, 그때 느낀 강렬한 감정을 시로 일주일 안에 축약했던 것 같다.

시인이 바라보는 세상은 어떤가?

(호)
솔직하게 참혹하다. 특히 지금 내 또래, 20대나 30대 초중반 사람들, 청춘이라는 시간을 지나가는 친구들이 그 전 선배들이나 아버지, 삼촌 세대보다 더 참혹한 세상에 살고 있다고 느낀다. 이 세상을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지는 이홍섭 시인께서. (웃음)

(섭)사는 게 간절한 것이구나. 생로병사도, 매 순간 사는 것도 간절한 것을 요구하고 있구나, 생각한다. 간절함과 무게를 같이 가려고 하니까, 골이 빠진다고나 할까. 그렇다고 계속 그렇게 갈 순 없고. 어떨 때는 건달풍으로 가서, 그래야 다음 시집도 쓸 수 있고, 진퇴를 잘 해야 오랫동안 시도 쓰고 생명도 부지할 수 있다. 사는 건, 나갔다 퇴로하고, 그러다 갈 때까지 가보는 게 아닐까. 나는 그렇게 지금까지 살아오고 있다. 나중은 몰라도.

조인호 시인에게 시는 어떤 존재인가?

(호)
존재하지 않은 어떤 불가능인 것 같다. 적어도 내가 생각하는 세상에서 시가 어떤 역할하고 있는지 생각해보면, 시는 고유의 역할을 하고 있지 못하다는 생각을 한다. 시인으로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을지 고민하는 편이다. 섣부른 판단이거나 우습게 들릴 수 있지만, 시는 이 세상에서 아직 존재하는 것 같지 않다. 시가 있다면 세상이 이렇진 않을 것 같다. 다른 자리에서 시를 쓴다는 표현을 하지 않는다. 그런 고민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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