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쇼생크 탈출 >이었다. 마침내 쇼생크를 떠나 자유를 찾은 앤디 듀프레인(팀 로빈스)이 레드(모건 프리먼)에게 편지를 썼다. 그 편지의 일부.
“희망은 좋은 거예요. 아주 좋은 것 중의 하나죠. 좋은 건 사라지지 않아요.” 좋은 건 사라지지 않아요. 누구나 고개를 끄덕이고 마음에 품음직한 이 말.
많은 사람들의 문화적 감수성을 유지시켜준
< PAPER >도 그렇다. 좋은 건 사라지지 않는다는 말을 16년째 증명하고 있는 이 잡지. 좋은 글, 그림, 사진이 누군가의 생을 풍성하게 만들고, 또 다른 세상을 만나게 해줬다. 누가 부인할 수 있으랴. 16년
< PAPER >가 뚜벅뚜벅 걸어온 길을.
좋은 건 사라지지 않음을 계속 증명해줄 수 있으면 하는 바람이 전달된 것일까.
< PAPER >의 발행인, 김원 백발두령이 첫 책를 내놨다. 16년째
< PAPER >를 만들어오면서 매달 한 통씩 독자들에게 적어 보냈던 편지들에서 자신의 느낌과 생각들이 잘 담겨 있는 글을 간추린 에세이. 백발두령이 가슴에 품고 있었던 꿈 중의 하나가 이뤄졌다. 그 꿈의 제목은,
『좋은 건 사라지지 않아요』(링거스그룹 펴냄).
세상의 모든 백발을 사랑하는 나는 백발두령을 만나기 위해 지난 1일, 서울 홍대부근 상상마당을 찾았다. 거기, 백발돌이 있었다. 예스24와 상상마당이 매달 여는, ‘향긋한 북살롱’의 초대손님으로
『좋은 건 사라지지 않아요』의 저자 김원 백발두령이 자리하고 있다.
키워드로 말하는 백발두령이날 행사는 1, 2부로 나눠 진행됐다. 1부는 칼럼니스트이자 번역가인 이동준 작가(
『베를린 코드』 『연애를 인터뷰하다』)가 나섰다. 백발두령에 대해 몇 가지 키워드로 알아보는 시간.
사진 “나는 사진기를 늘 옆에 두고, 좋은 게 보이면 찍는다. 가슴으로 찍어야 한다.”미친 인맥 유지비결 “나는 늘 좋은 사람은 아닌 것 같다. 착한 사람도 아니고. 경건한 자세를 지니고 있는 거룩한 사람도 아니고. 헌데, 어떤 사람을 만날 때, 내가 어떻게 하면 편안해질까, 좋을까, 에 비중을 둔다. 내가 어떻게 해주면 좋을까를 생각하니까, 사람들이 나에 대해 호감을 갖는 것 같다. 자기만 제일 좋아하는 줄 안다. (웃음) 그래서 그 사람이 좋아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김원이 좋은 사람이라고 얘기하니, 호감을 갖게 된 것이 아닐까.” 사회생활 탐구 “나는 바보처럼 사는 게, 똘똘한 척 사는 것보다 낫다고 본다. 바보들이 세상사는 게 더 편하다. 문제는 사람들이 바보가 되고 싶어 하지 않는다. 똑똑해지면 똑똑해질수록 불편한데.” 낭만이라 적고 현실이라 읽는다. PAPER를 만들기 시작한 후로는 도무지 제 맘대로 할 수 있는 일들이 없어져버렸습니다.(p.105)
“그런 경우를 위해 준비된 사자성어가 살신성인? 젊어서 까불면서 살다보면 나이 들어서 그 대가를 치르게 된다. (웃음) 그러니 젊어서 성실하게 사는 게 손해 보는 게 아니다. 나는 젊어서 너무 까불고 살아서 나이 들어서 고생하고 살고 있다. 그래도 또래 아저씨에 비해 젊게 사는 편이 아닐까 싶은데, 그건 나의 부단한 노력 때문이 아닐까. 아내가 날 지지해줘서 가능한 일이 아닐까.” 만날 술이야. 꿈과 술. “둘 다 몽롱한 거네. (웃음) 술은 고통에서 달아나기 위한 수단에서 시작했다. 술의 시작은 초등학교 때였다. 아버지께서 술은 이런 맛이니 마셔보고, 감을 잡도록 하라고 하셔서 아버지 앞에서 술을 마셔본 적이 있다. 그러다가 중학교 때 수학여행에 가서, 고등학교 때는 세상에 대한 반항심 비슷한 걸로 술을 마셨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마셨다. 젊은 혈기를 마음껏 펼치지 못하고 세상과 타협해야 하는 울분을 삭이기 위해, 퇴근하면 포장마차 가서 소주를 마셨다. 콸콸콸. 10분에 1병? 그걸 2~3병 마시면 정신이 몽롱해지면서 낮에 겪었던 고통이 아스라이 무뎌져간다. 그런 직장생활을 7년 했다.”
“내 꿈은, 청년시절 피카소 정도로 훌륭한 화가가 되는 것이었다. 그림 안 그리는 사람을 어찌 화가라 하겠나. 7년 동안 그리 살다가 내 꿈을 실현하겠다는 생각으로, 월급 많이 주는 직장을 그만두고 그림 공부하겠다고 프랑스로 갔다. 1살 난 갓난아이가 있는 채로. 그랬는데, 프랑스 유학을 가서 꿈이 무너졌다. 통쾌한 거다. 평생 꾼 꿈이 폭삭 주저앉는데, 멋지다. 내가 꾸던 꿈이 이런 거였구나. 그 꿈이 무너지면서 새로운 꿈이 도달하더라. 나는 젊은 친구들 만나면, 넌 꿈이 뭐냐, 고 묻기를 좋아한다. 꿈은 우리가 살아가는 에너지다. 바뀔 수도 있고. 나는 꿈이 처참하게 무너진 경험이 있는데, 뿌리는 남아 있어서 또 다른 싹이 터서 꿈이 되는 것 아닐까.” 백발 두령의 참모습을 엿보는 시간
2부는 박상준 작가와 김원 두령의 대담. 서울 부암동에서 작은 커피하우스(유쾌한 황당)를 운영하면서 집필활동(
『구석구석 제주 올레』,
『엄마, 우리 여행가자』)을 계속 하고 있는 박 작가가 붙인 2부의 제목은 ‘나, 원 참(나, 김원의 참모습을 볼 수 있었으면).’
“나를 어떻게 소개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는 백발 두령에게, 박 작가가 물었다.
가장 뻔뻔하다고 생각하는 점은?“내가 뻔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점이 뻔뻔하다.(웃음)” 주량은? “취기가 오를 때까지 마신다. 취기는 잘 안 온다.” 좌우명은?“전력투구!” 낯선 사람을 만나면 상대방 취미를 물어보는 것으로 인사를 나눈다고 했다. 똑같은 질문으로, 취미는 뭐냐? 낮잠과 술은 특기로 분류하겠다. (웃음) “취미가 뭐냐고 물어보고만 살았는데... 취미가 뭐냐고 묻는 게 취미다. (웃음) 여행, 음악. ” 여러분들께선 처음 만난 분들과 어떻게 인사를 나누시나요? 저요? 저 같은 경우는 그냥 무턱대로 상대방의 취미를 물어보곤 한답니다. 그 사람이 어떤 취미를 가지고 있는지를 알게 되면, 그 사람을 이해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거든요.… 저는 ‘취미’가 곧 그 사람의 인생을 좌우하게 되는 거라고 오래 전부터 믿고 있는 사람이거든요.(p.107)
책을 내야겠다는 생각한 시점과 이유는? “황경신( < PAPER >편집장)은 책 10권을 냈는데, 15권쯤 냈나? 만날 옆에서 구경만 하고, 출판기념회를 따라가면서 나도 한 권 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5년 전부터 했다. 그럴싸한 글 써놓은 것도 없던 차에, 이지은(편집자)씨가 나타나서, 책을 묶을 수 있지 않겠느냐 꼬드겨서 넘어간 거다. (웃음)”< PAPER >의 김원이 아닌 김원의 페이퍼로 나온 건 다른 느낌이었을 거 같다. “< PAPER >는 여러 명이 합심해서 벽화를 그려낸 것이라고 볼 수 있는데, 내 책도 김원 지음이지만, 혼자 만든 책이 아니다. 편집자의 생각이 담겨 있고, 구성이나 꾸밈에 있어 김수명 북디자이너의 의지가 많이 담겨 있어서 공동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김원 작품이라고 하니, 기분도 좋고, 좋은 건 사라지지 않을 거다. (웃음)”처음 < PAPER >를 냈을 때와 지금 이 책을 냈을 때를 비교하면? “질문이 대따 어렵다. (웃음) 나는 이 책이 좋다. 페이퍼도 좋고.”
캘리그래피가 책의 일부분이다. 김원의 글씨체에는 알코올 냄새가 난다. 막걸리 먹고 취해서 쓴 글씨 같다. 글씨로 나의 표현을 하겠다고 생각한 이유가 있다면? “이번 책에 담긴 글씨는 어느 정도 그림과 맥이 닿아 있다는 느낌이 있다. 특히 선을 쓰는 그림을 좋아하는 편이다. 약간 예술적인 느낌이 있다고 생각하고 작업했다. 글씨에 알코올기운이 담겨 있다는 표현은 정말 탁월하다. 알코올을 수시로 복용하다보니 몸에 남아 있겠지. (웃음) 알코올은 사람의 긴장을 풀어주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책에 19번의 술 이야기가 나온다. 책 제목을 ‘좋은 술은 사라지지 않아요’라고 할 것 아니었나. (웃음) 김원 두령에게 술값이란?“술값은, 네가 내주면 세상에서 제일 좋은 거. (웃음)”복권 얘기도 많이 등장한다. 김원 두령에게 벼락부자란? “꼭 되고 싶은 것. 그럼 상준 씨한테도 혜택이 갈 거다. 술값도 내주고, 좋은 일들을 같이 할 수 있게 될 거다.” 인세가 탐이 나도 그렇지, 꼭 벗어야 했나? 109페이지에 상반신 탈의가 나온다. 김원 두령에게 염색이란? “고뇌하는 청춘의 모습이다. (웃음) 염색은, 죽기 전에는 나에게 일어나지 않는 것.” 김원 두령에게 나이를 먹는다는 것? 어떻게 나이를 먹고 싶나? “나이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먹는 거다. 어떻게 나이를 먹겠다고 결심해도 그렇게 할 수가 없다. 세월이 가면 그냥 나이를 먹는 거다. 그런 것에 대해 따지지 마라. 진심으로 하는 얘긴데, 누구에게나 시간이 흘러가는데, 그 사이사이에서 남들이 캐치하지 못하는 아름다움, 남들이 놓쳐버린 소중함을 잡을 수 있고 껴안을 수 있다면, 소중한 시간이 되지 않겠나.”p.113~208까지 사진으로 때웠다. 사진마다 추천 음악을 달았다. 특별한 이유라도? “풍경에 어울리는 그런 음악? 그 풍경을 바라보면서 이런 마음이 들었을 것 같아, 라는 음악을 소개했다. 아내가 독자들에게 강요하는 것 아니냐 얘기했는데, 뭐 어때, 내 책인데.” 251페이지에 “제가 제 몸속에 들어가 있을 때는 잘 모르겠는데...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라는 부분. 제가 알기로 낙천적, 긍정적 시선을 가진 분인데, 이 부분이 다른 부분과 달리 비관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이 글을 쓴 상황이나 이유에 대해? “아무리 행복을 추구해도 살아도, 고통이 있고, 낙천주의자에게도 어느 정도 비관적인 부분이 있기 마련이다. 통째로 낙관주의자도, 비관주의자도 없다고 본다. 영혼이 내 몸 밖으로 빠져 나가서 하는 걸 내가 어떻게 말리겠나. 신기한 경험인데, 그것에 대한 기록이다. 그때 그런 느낌이 들었다.”
비관할 때, 스스로에게 어떻게 얘기하나?“나는 사람들이 고통스러워하고 슬프고 아프고 화난 거, 이런 것을 싫어한다. 내가 화나는 게 싫다. 나도 인간인데, 화가 나기 시작할 때, 막 이걸 다스린다. 화내지 말지, 왜 이리 화를 내나? 화낸다고 일이 해결되나? 화를 삭여. 그러면서 화를 다스린다. 어떤 분은, 화가 나면 화를 내는 게 정신건강에 좋다 하는데, 나는 어릴 때부터 늘 화가 치밀어 오르면 삭혔다. 왜냐, 화난 상태가 싫어서. 슬픈 거, 외로운 것도 마찬가지다. 내 화는 나만 다스릴 수 있다. 그래서 내가 화가다. (웃음)” 사라진 것 중에, 사라질 것 가운데, 가장 좋은 것, 그래서 오래 지키고 싶은 것이 있다면?“정말로 좋은 것은 사라지지 않는다. 아끼고 사랑하고, 이런 것은 사라지지 않는다고 믿고 있다. 맹목적으로 그걸 진실로 믿고 있다. 어릴 때 가족이 5명이었다. 부모, 큰 형, 작은 형, 나. 그 사람 중 세 명이 세상에서 사라졌다. 그런데 나한테서는 사라지지 않았다. 왜냐! 내 가슴에 있으니까.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지, 없어진 것이 아니다. 내 안에서 존재하고 있다.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들이 우리가 정말 소중하게 생각하는 존재라면 우리 안에 존재하고 있어서 사라지지 않는다. 내 목숨이 끝날 때까지.” 인생을 즐겁게 사는 방법이 있다면? 또 왜, 청춘과 낭만에 가슴 설레지 않을까?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은 대답하기 어렵다. 요즘 드는 생각은, 말장난 같긴 한데, 즐거워지기 위해서 너무 애쓰지 말아야 즐거워질 수 있다. 즐거워지려는 욕구가 과해서 즐겁지 않은 느낌이 오거든. 너무 즐거워지려고 애쓰지 않았으면 좋지 않겠나.
그리고 낭만, 청춘이라는 말에 가슴이 뛰지 않는다면, 청춘이 아니지 않겠는가. 나이와 상관없이 청춘은 우왁, 하고 가슴이 뛰어야 청춘이고, 안 뛰면 안 청춘 아닌가. 포악한 표현이긴 한데, 본인이 청춘이 아닌 거지. 가슴이 뛰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건 훈련이다. 다른 누가 선물로 주는 것이 아니고, 만나지는 것이다.
청춘이 무엇인지를 따지는 사이에 청춘은 간다. 청춘이란, 그냥 사는 것.(p.61)
청춘의 속성에는 고통스러움이 따라붙기도 한다. 발견하는 것, 만나는 것, 즐거움의 실마리를 찾는 것, 그런 운명적인 만남. 그럼 인생이 바뀌거든.” 결국 따지고 보면 ‘놀 수 있는 시간’이란 ‘젊은 날’밖에 없습니다. 젊은 시절에 힘자라는 데까지, 놀고 또 놀아, 후회 없는 인생을 살도록 합시다.(p.105)
어릴 적 꿈과 고등학교 때 꿈과 지금 꿈은? “화가였다. 어려서도, 젊은 시절도, 화가였다. 세상에서 칭송 받는 화가가 꿈이었는데, 프랑스 유학 가서 처참하게 무너졌다. 대신 새로운 꿈이 돋았는데, 그게 < PAPER >로 이어졌다. 그래서 지금까지 < PAPER >를 만들 수 있었다. 여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서 새로운 꿈이 있다면, 역시나 그림을 그리면서 사는 것이다. 꿈이 없었다면 나는 지금 여기까지 못 왔을 것이다. 꿈이 여기까지 나를 데려왔다.”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기회가 닿는다면 박상준 씨와 2시간짜리 이런 자리를 가지는 프로그램을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