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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떠나 살 곳을 선택한다면 ‘발리’ - 『미칠 수 있겠니』 김인숙

“괜찮아. 세상의 절반은 여자(남자)잖아. 더 좋은 여자(남자), 만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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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 후, 나는 그런 ‘가벼운 위로’가 싫었다. 물론, 그렇게 위로하는 마음, 안다. 그렇게라도 위로하고 싶은 마음.


“괜찮아. 세상의 절반은 여자(남자)잖아. 더 좋은 여자(남자), 만날 거야.”

이별 후, 나는 그런 ‘가벼운 위로’가 싫었다. 물론, 그렇게 위로하는 마음, 안다. 그렇게라도 위로하고 싶은 마음. 하지만, 그런 상투적이고, 가벼운 위로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되레 화가 났다. 그건, 지진을 겪은, 쓰나미에 휩쓸린 사람에게 건넬 위로는 아니었다.

더 중요한 건, 내 사랑에 대한 모독이라고 생각했다. 세상의 절반이 여자(남자)라고? 맞다. 그러나 늘 모든 사랑은 첫사랑이라고 생각하는 내게, 그건 옳지 않다. 세상의 절반은 여자지만, 내가 사랑했던 여자는, 어디에도 없는, 단 한 사람, 유일한 여자다. 절반에서 하나 뺀 여자들에 비할 바 아닌. 그 어떤 지진보다 강한 지진을 겪은 내게, 그 가벼운 위로는 여진을 더하는 셈이었다.

어떤 위로가 필요하냐고? 글쎄, 내가 그 답을 말해줄 턱이 없잖나. 어떤 위로를 건네기 전, 당신이 생각해볼 문제다. 지진이 났을 때, 가장 적절한 위로는 무엇일까. 지난 3월11일, 일본 동북부 지진이 있었다. 그날, 나의 커피 동료는 이별을 겪은 친구를 위로하고자 함께 부산으로 떠난다고 했다. 이별을 겪은 동료의 친구가 겪고 있는 지진 혹은 쓰나미. 나는 그것을 인정해주는 것부터 위로가 시작되는 것 아닌가, 생각했다.

지진(과 쓰나미)을 겪은 사람들이 있다. 지구상 어딘가의 섬에서. 그리고 그 속에서도 사랑은 핀다. 사랑은 그런 것이다. 어떤 재앙이나 역경이 닥쳐도, 올 것은 오고야 만다. 운명이니, 우연이니, 다 필요 없다. 중요한 것은 사랑. 그저, 사랑이 있다는 것.

한 남자가 여자를 어떻게 만났는지, 그리고 둘은 어떻게 사랑에 빠졌는지, 그런 이야기는 진부하기 이를 데 없다.… 그 모든 불분명한 감정과 추상어들을 제외하고 나면 남는 것은 이것뿐이다. ‘한 여자가 한 남자를 만났다.’ 혹은 ‘한 남자가 한 여자를 만났다.’(p.145)

소설가 김인숙의 『미칠 수 있겠니』(한겨레출판 펴냄)였다. 지난 7일, 장대비가 쏟아지는 어느 여름밤. 어쩌면 지구상 누군가는 생의 지진을 혹독하게 겪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그날 밤. 서울 대흥동의 문화공간 숨도에 5명의 독자들이 김인숙을 에워쌌다.

그들은 『미칠 수 있겠니』를 둘러싸고 이야기를 나눴고, 삶의 불가해성을 풀고자 머리를 맞댔으며, 그 죽일 놈의 사랑을 데려다 심문을 펼쳤다. 그 모든 것이, 비 때문이었을까. 하늘이 땅을 사랑하는 방식 중의 하나인, 비. 그 중에서도 여름비는, 지독한 사랑 때문에 발생하는 하늘의 마음에 난 지진이 아닐까.

소설을 쓴다는 것

우선, 한 독자가 포문을 열었다. 산다는 것, 어떻게 고민하고 풀어야 하나? 김인숙의 대답은 명쾌하다. “나도 모르겠다!” 이어지는 토로다. “그걸 잘 하는 사람이면 소설, 안 썼을 것이다. 소설을 쓴다는 건, 질문을 던지고, 대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그녀에게 소설가는 가장 느린 사람이다. 별별 인물, 상황을 등장시키면서 대답을 내리려고 하는 것만 봐도 그렇다. 그런데도, 그럼에도! 답을 내리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다. 그래서 김인숙의 결론은, “과정들이 중요하다.”즉, 질문을 던지는 것이 중요하다. 그 질문이야말로 삶의 한 고비 한 고비를 넘어가게 하? 부분이다.

“때때로, 끝없이 문제제기를 해야 하나? 간명하게 넘어가도 되는 건데, 간단하고 단순한 대답으로 살아가면 편하지 않을까? 생각도 한다. 내가 독자들을 괴롭히는 이유는 뭘까, 이게 과연 옳은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런데, 그냥 그게 내 삶의 스타일인 것 같다. 나는 타인에 대한 관심 때문에 소설을 쓰는 게 아니다.”

그녀의 솔직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본능적으로 타인에게 관심이 없고, 자신에 대해 관심 갖기도 벅차다는 그녀다. 그러면 왜 소설을 써? 하고 물을 수도 있겠다. 한마디로 만남 때문이다. 나에 대한 관심이 다른 사람의 관심과 만날 것이라는.

“소설이 그래서 불친절할 수도 있고, 상냥하거나 부드럽지 않을 수도 있다. 최근 내 소설은 언제쯤 돼야 친절해질 수 있는 걸까, 자문하기도 했다. 생각해보니, 난 친절해질 수 없는 사람이구나, 결론을 냈다. 왜냐, 타인에게 관심이 없는 사람이 타인에게 친절할 수 있겠나. 아마 나 자신에게도 친절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단 생각도 한다.”

발리에서 생긴 일


지난해 이맘때, 그녀는 발리에 있었다. 이 소설의 배경이 되는 곳이, 책에는 그저 열대 섬이라고 나오지만, 실은 발리다. 지난해 5월에 가서 9월에 들어왔는데, 있는 동안, 우기이기도 했지만, 이상기후여서 거의 매일 비가 내렸다. 그래서 이날 비가 오는 것을 보니, 그곳의 비 내리던 풍경이 많이 떠오른다고 했다. 발리의 마당 있는 집의 침대에서 바라보던 비 풍경.

그녀는 그 빗속에 이런 이야기를 구상했던 것이다. “열대 섬에서 벌어지는 지진. 우연히 한 여자와 남자가 만나서 하룻밤을 지낸다. 왜 우리가 함께 잤을까, 묻기도 전에 지진을 겪으면서 ‘아, 그래서 우리가 잤구나’, ‘고독은 무엇이었구나’를 느끼고, 각자의 상처를 극복해 나가다가 마침내 사랑하게 되는 이야기다.”

그렇다고 재난소설 쓰듯이 지진의 끔찍함을 드러내고자 『미칠 수 있겠니』를 썼던 것이다. 지진은, 그저 맥거핀이자, 하나의 메타포였다. “우리 삶에서 지진 같은 순간이 있잖나. 그렇게 지진이 삶의 바닥까지 뒤엎었을 때, (우리가) 대면할 수 있는 건 뭘까.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가, 그런 질문을 던져보고 싶었다. 그래서 지진이라는 가혹한 상황, 매몰된 상황 등 극단적인 상황에 주인공을 내던져봤다.”

김인숙이 물었다. 지진이나 쓰나미를 만나서 살아났다면,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이 뭘까? 가장 먼저는 살았다는 사실의 확인일 테고, 중요한 것은 다음이다. 그녀의 생각은 이렇다. “삶을 긍정하게 되지 않을까.” 살아났다는 것에 대한 고마움이다.

그런데 따져보자. 사실은 불행한 것이다. 더구나 주인공은 여행을 가서 지진을 만났다. 그럼에도 그런 상황에서 살아났다면, 세상에서 가장 운이 좋은 사람처럼 여기지 않을까. 이어지는 것이 미안함. “상처주고, 오해했던 사람, 사랑해야 하는데, 덜 사랑했던 사람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이 튀어나올 것 같다.”

바꿔 생각하면, 그 지진은 단순하게 땅이 흔들리는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실연당하거나, 잘렸을 때, 입시에 실패했을 때, 삶이 지진 같잖나. 그런 경우도 거기서 무너지면 죽는 건데, 그렇지 않았을 때 드는 감정은 무엇일까. 미안함이 아닐까.”

지금 얼마나 미안한지…. 죽어버린 개 한 마리한테까지도 얼마나 미안한지…. 난 알 수 있다고요. 우스운 게 아니라, 미안한 거라고요, 그건…누구나 누구에게든 미안해해야 하는 거라고요, 지금… 왜냐하면, 지금 우리는 이렇게 살아있으니까….(p.192)

미안함. 이 작품을 쓰면서, 그녀를 지배했던 생각이었다. 그래서 이 소설을 연재할 때는 ‘미안하다’는 말이, 지금의 책보다 훨씬 많이 나왔단다. 주인공이 매몰된 상황에서 살아나가기 위해서 애를 쓰면서 한 생각이, ‘그동안 죽고 싶어 해서 미안해’, ‘죽고 싶다고 말해서 미안해’, ‘사실 난 너무 ?? 싶은 거였어’, 이런 얘기를 한다.

“이런 대답을 소설 속 주인공이 할 때, 단순한 상황에서 하면 신파잖나. 이런 상황을 만들자니, 지진 같은 상황이 됐다. 내 마음에서 우러나는 상황이 조금 더 극단적인 상황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손과 손이 맞잡는다는 것


그녀는 자신의 책에도 미안함을 전했다. 사실 책을 낼 때는 이를 오래 마음에 담아놓고 있으면 안 되고, 헤어지는 시점을 잘 잡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었다. 헤어진 연인을 빨리 보내야 딴 남자 만날 수 있다는 핑계. 그런데 이날 문득, 이 책을 다시 생각했다. 보내는 데만 신경을 쓰고 있었는데, 분명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는 자각.

책에는 두 남녀가 지진 때문에 밀폐된 공간에 갇힌 장면이 나오는데, 정신을 차리니, 손잡은 걸 놓지 않고 있었다. 실은, 연재할 때는 그렇게 쓰지 않았다. 책으로 묶으면서 수정한 장면이다.

“다 쓰고 나서 일본에 지진이 났다. 일본 지진이 일어나기 전날, 나는 일본에 있었다. 소식을 듣고는 여러 가지 감정이 들고, 뉴스를 못 보겠더라. 책이 안 나온 상태라 고칠 수도 있었겠지만 너무 마음이 아파 그런 생각도 못했다. 해일이 나서 노부부가 도망을 쳤는데, 안전지대에 도착하고 보니, 그때까지 손을 놓지 않았다는 감동기사였다. 그게 무척 와 닿더라. 본능적으로 안 놓은 거잖나. 얼마나 사랑했던 사이인지는 모르지만, 중요한 건, 그 순간에 그들이 손을 잡고 있었다는 거다.”

격렬한 기침 끝에야 이야나는 여자가 여전히 자신의 손을 잡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여자의 손톱끝이 전부 이야나의 손등과 손바닥에 박혀 있었다.(p.106)

소설의 중요한 모티브가 손과 손이 잡고 있는 사진이었다. “관계는 깨질 수도 있고, 이어질 수는 있지만, 중요한 건, 손을 안 놓을 사람을 만나는 일인 것 같다. 팁을 하나 주자면, 사람을 만날 때는 손을 절대 안 놓을 것 같은, 안 놓칠 것 같은, 그리고 헤어질 때는 손을 놓을 시기를 잘 아는 사람을 만나야 한다. (웃음)”

그 밤, 진의 손에 얹혀져 있던 진의 손, 진이 움켜쥐고 있던 진의 손바닥에 맺힌 땀, 진의 생명선에 맞닿아 있던 진의 운명선, 그리고 힘줄과 핏줄들…. 손을 좋아하는 남자였다. 그녀가 갖고 있는 대부분의 사진이 손과 손이 찍힌 사진들이었다.(p.15)


사랑은 늘, 현재형

이 책을 낸 뒤, 한 기자로부터 이런 이야길 들었다. “사랑이야기면서 그 이후에 오는 사랑이야기 같다.” 김인숙은 부인했다. “나는 ‘이후의 사랑’같은 건 생각하지 않는다. 모든 사랑은 현재형이다. 모든 사랑은 첫사랑이다. 이전의 사랑도, 이후의 사랑도 없다. 그것이 첫사랑이자, 최고의 사랑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무렴. 사랑하는 그 순간만큼, 다른 무엇을 모두 압도하는 것이 사랑이다. 사랑을 비교하는 건 어리석은 짓이다. 물론, 인생이 끝날 때까지 더 빛나는 사랑이 다가올 수 있다. 사랑은 그런 것이고, 그러한 희망이 사랑을 가능하게 한다.

“아직도, 여전히, 죽기 전에 최고의 사랑이 와야 한다. (웃음) 최고의 사랑은 항상 미래형이다. 지나간 시간의 아픔이 지진이었을 테고. 최근에 이다도시 인터뷰 기사를 봤다. 제목이 ‘이혼은 내 삶의 지진이었다’ 였는데, 그걸 보곤, 내 책을 봤나? 그리 생각했다. (웃음)”

다시 말하지만, 트루먼 카포티도 그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세상의 모든 일 가운데 가장 슬픈 것은 개인에 관계없이 세상이 움직인다는 것이다. 만일 누군가가 연인과 헤어진다면 세계는 그를 위해 멈춰야 한다.”

그녀는, 그래서 가벼운 희망, 가벼운 위로가 나쁜 이유를 설명한다. “진짜 위로나 희망은 현실에서 바닥까지 본 다음에 가능하다. 가벼우면 안 된다. 물론, 한 번 큰 지진을 겪으면 여진에 대처하는 자세는 생긴다. (웃음)”

이번 소설에서 그녀가 자신을 가장 많이 투영하고 싶었던 인물이 ‘뢸꾡이다. 어쩌면 무책임할 수도 있었던 인물. 왜냐. “내가 못해봤으니까. ‘살인은 왜 안 됩니까?’ 하면 ‘나쁜 일이니까’, 우리는 그렇게밖에 대답을 못한다. 윤리나 도덕, 건전한 공동체 일원으로서 가져야하는 의식인데, 왜 공동체를 위해 살아야 하나, 공동체 무너지면 나 역시 무너지니까. 남의 시선이 기준이 아니라, 내가 기준이 돼서 할 수 있는 건 뭘까, 그런 욕망을 투영한 인물이다. 타인의 시선을 벗어버린다면, 그런 생각해봤나? 우린, 사는 게 너무 바쁘다. 욕망도, 소망도 사라지고…”

남녀의 이름이 ‘진’으로 똑같은 것에 대한 그녀의 대답. “한 남녀가 만나 사랑에 빠졌을 때, 단 하나 밖에 없는 남자와 여자고, 최고의 사랑인 것 같은 사랑을 한다. 지나면 환상이라는 것을 알지만, 그 상황을 강조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같은 이름으로 지었다.”

하긴 사랑할 때, 우리는 그렇다. 연인이라고 믿는, 믿고 싶은 그 운명의 끈앞에, 작고 사소한 것들이 운명의 씨줄과 날줄로 엮인다. 얼마나 사소한 공통점인지. 별 것이 아님에도, 우리는 우리의 운명을 믿는다.

이름이 같은 사람끼리 연인이 될 확률은 얼마나 될까. 모든 것이 소중하기만 했던 한때, 그 소중함 때문에 온몸이 깃털처럼 흔들릴 때, 진은 그에 관한 모든 것이, 그리고 그들에 관한 모든 것이 꿈같았다. 자신과 같은 이름의 남자를 만난 것이 운명이라고 여겨졌다. 아마도 그렇게 믿고 싶었을 것이다.(p.13)


김인숙이 본 발리


발리는 인도네시아어의 일부다. 그러나 발리는 인도네시아와 또 다르다. 공용어를 쓰긴 하지만, 발리어가 별도로 있다. 종교도 다를 정도니, 발리는 발리일 뿐, 인도네시아라고 말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는 것 같다. 특히, 발리어는 현재 시제로만 이뤄져 있단다. 그러니, “평생 사랑하고, 평생 돈 벌고, 평생 논다. (웃음) 그 사회는 그걸 구분하지 않아도 돌아가는데, 그게 뭘까 질문을 던져보고 싶었다. 그게 우리사회에선 안될까, 질문을 던져보고 싶었다.”

이야나의 언어에는 과거시제가 없었다. 생략이 아니라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이야나의 모든 언어는 현재형이었다. 지난밤에 나는 꿈을 꿔요…. 지난밤에 나는 물속에 있어요…. 내일 밤 나는 꿈을 꿔요… 내일 밤 나는 물속에 있어요…. 관광객들은 시제가 없는 이야나의 언어에 흥미를 보였다.(p.60)

그러면서 최근에 인도학과 교수로부터 들었다는 윤회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물론 믿거나 말거나, 농담이거나 말거나. 인도학과 교수에 의하면, 곤충은 곤충의 종으로, 사람은 사람의 종으로만 윤회한다. 그렇다면 인구는 어떻게 된 거냐. 사람은 과거로도, 미래로도, 원하는 대로 태어난다는 거다. 그녀는 그것이 재밌었다. 그게 사실이든 아니든, 내가 윤회한다면 어디로 갈까 하는 생각. 그런 얘기, 소설이 쓰고 싶어지기도 했다. 혹시 모른다. 김인숙이 파고든 윤회의 세계. 과거로도 미래로도 태어날 수 있는 사람이 주인공인.

캐릭터도 현실감을 잡아주는 인물이 필요해서, 만이라는 인물이 나왔다. 소설을 쓰기 위해서 발리를 여러 번 오고가면서 들었다. 만의 캐릭터는 현지인에게서 들은 실제로 있는 캐릭터다.

“진짜 그런 사람이 있다. 서양에서 온 노부인의 수양아들이 돼서 모신다. 유산을 상속받기로 약속한 채. 현지인이 그걸 당연하게 얘기를 하는데, 깜짝 놀랐다. 현지인 표정이 참 태연하고 맑았다. (웃음)”

그녀는 발리를 좋아한다. 한국을 떠나 살 곳을 택하라고 한다면, 발리란다. 이유는 전통이 보존돼 있으면서 외지인들을 위한 편의시설이 잘 돼 있기 때문이다. 관광으로 먹고 사는 사람들이라, 편의시설을 다 해놓고, 전통을 팔아야만 하는 사람들이라 더 악착같이 전통을 지킨단다. 어쩌면 ‘발리에서 생긴 일’이 언젠가 또 나올지도 모를 일이다.

마무리의 시간. 김인숙은 65억 명에게 지진이 일어나고 있는데, 세상이 어떻게 굴러가고 있을까, 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래, 이 세상 65억 명의 사람에겐 65억 개의 진실이 있는 법이고, 지진도 제각각일 텐데. 삶은 늘 부조리와 섞인다. 그런데도 유지되고 지탱된다. ?차피 굴러갈 세계, 적극적인 자세와 긍정하는 차원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녀는 권한다.

“인생은 사소한 것으로 출발해서, 후벼 판다. 나는 독자들을 불편하게 만들고 싶다. 그게 옳다고 생각한다. 시간을 때우길 원하는 그런 책도 있겠지만, 이 책을 읽고 불편하고 힘들었으면 좋겠다. 바닥까지 내려갔을 때, 사소한 위로와 또 다른 위로가 있지 않을까. 물음표, 말줄임표가 나오니까, 계속 하는 거지. 그래야 할 것 같다.”

오늘 당신의 지진은 어떠했나요. 쓰나미에도 잘 버티고 견뎠나요.

언젠가 우리도 저렇게 늙어가겠지. 진이 말했을 때, 또 한 사람의 진이 가만히 손을 잡았다. 세상이 언제나 그 오후처럼 평화롭지는 않을 것이다. 많은 일이 일어날 것이며, 그중의 어떤 일은 감당하기 어렵게 가혹하기도 할 것이다.(p.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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