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가 4대 비극을 쓸 수 있었던 배경 -『청소년을 위한 셰익스피어』 권오숙
셰익스피어도 대중작가였다
『햄릿』,『오셀로』,『로미오와 줄리엣』,『리어 왕』 ,『십이야』 등 38편의 ‘신화’같은 희곡을 남긴 셰익스피어. 그러나 그의 개인적인 기록은 많이 남아있지 않다.
『햄릿』, 『오셀로』, 『로미오와 줄리엣』, 『리어 왕』, 『십이야』 등 38편의 ‘신화’같은 희곡을 남긴 셰익스피어. 그러나 그의 개인적인 기록은 많이 남아있지 않다. 본격적으로 연극 무대에 뛰어든 것은 1580년대 후반으로 추정될 뿐, 1592년까지 그에 대한 기록은 전혀 남아 있지 않다. 셰익스피어의 런던 생활과 관련된 최초의 언급은 1592년에 대학 출신 극작가인 로버트 그린이 그를 두고 비방한 것으로 보이는 글귀를 통해서이다. 이를 통해 당시 셰익스피어가 대학 출신 작가들의 시샘을 살 만큼 인기 있는 극작가가 되었음을 짐작할 뿐이다.
셰익스피어와 관련된 다양한 저술활동을 펼쳐온 저자는 그의 개인사보다 중요하고 확실한 건 셰익스피어의 희곡 작품이라고 말한다. 또한 셰익스피어는 “시대를 대표하는 대중 작가였으므로 너무 학문적인 분석만 하는 것은 경계해야할 것”임을 일러두었다. 저자는 “셰익스피어란 이름은 모두 알겠지만, 그의 작품을 제대로 읽은 사람은 많지 않다”며 “유명세에 비해서 많이 읽히고 있지 않은 셰익스피어를 잘 만날 수 있도록 소개하는 것이 오늘 이 자리에 의미”라고 말했다.
셰익스피어가 살던 시대
영국은 섬나라인 까닭에 이탈리아에서 14세기에 시작된 르네상스 운동이 대륙에 비해 수십 년 늦게 전해졌다. “이때 오비디우스, 베르길리우스, 세네카, 플루타르코스 같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 작가들의 많은 고전들이 영국에 소개”되며 “그들의 작품들을 훌륭한 글쓰기의 모범”으로 삼았다. “셰익스피어도 지대한 영향을 받습니다. 셰익스피어의 많은 작품이 그들의 작품에서 비롯되기도 하였고 그들의 극작 스타일을 따라 썼을 뿐만 아니라 작품 곳곳에서 인용하기도 했습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은 엘리자베스 1세의 사망을 전후하여 극의 분위기가 크게 바뀐다. 나라가 안정되고 국력이 신장되던 기간 동안에는 희극을 썼지만, 여왕의 집권 말기인 1601년에 쓰인 『햄릿』을 기점으로 제임스 1세 시대에는 주로 비극 작품을 쓰게 된다. 저자는 “셰익스피어의 문학적 감수성이 암울한 시대적 배경에 영향을 받아 4대 비극과 같은 위대한 걸작들을 탄생시킨 것”이라고 설명한다. 공교롭게도 당시 셰익스피어가 살던 시대의 사회적 갈등이 위대한 극이 탄생할 수 있는 좋은 배경이 되어 준 것이다.
“셰익스피어가 활동하던 당시에는 지금처럼 멋진 무대 장치도 없었고, 정교하고 사실적인 무대 배경도 없었습니다. 자연 채광 외에는 다른 조명도 따로 없었죠. 그래서 햇빛이 있는 밝은 대낮에 극이 공연되었으며, 사실적인 효과보다 관객의 상상력에 많이 의지해야했습니다. 극중에 폭풍우가 치는 날씨나 전투 장면 등, 다양한 장면을 표현할 때는 배우의 대사만으로 관객의 머릿속에 상상력을 불러일으켜야 했죠. 셰익스피어의 대사가 현대 독자들에게 다소 장황하게 느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지금은 다양한 연극적 효과들로 나타낼 수 있는 것들을 모두 대사로 전달하다보니 배우들의 대사가 길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죠.”
셰익스피어 비극의 세계
셰익스피어는 38편에 이르는 많은 극을 썼지만, 무엇보다도 사회 질서가 무너지고 등장인물들의 삶이 극심한 혼란에 빠지는 비극 장르에서 최고의 걸작을 남겼다. 따라서 후대에 사람들은 그의 비극 중 대표작 네 편을 가리켜 ‘4대 비극’이라고 부른다. “셰익스피어는 사회를 무너뜨리는 원인으로 인간의 본능과 격정 등을 제시하며, 그것들에 대해 치밀하게 탐구해 나갔어요. 파국 속에서도 새로운 사회 질서에 대한 가능성을 제시하면서 막을 내리는 것이 셰익스피어 작품의 특징입니다.” 그가 쓴 비극은 지나친 욕망이나 권위 의식, 질투심 등에 의해 비극적 상황을 초래한 등장인물들이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닫고 참회의 죽음을 맞이하면서 결말을 맞이한다. 저자는 “셰익스피어 비평가인 브래들리는 셰익스피어 비극의 궁극적 힘이 도덕 질서를 회복하는 데 있다고 보았다”는 말을 소개했다.
“셰익스피어는 이처럼 다스릴 수 없는 인간의 본능과 격정을 비난하는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연민 어린 눈길로 바라봅니다. 또한 혼돈의 세계 속에서도 인간의 본성을 지키고자 애쓰는 주인공들을 통해 인간성의 고귀함을 보여주죠. 이로써 ‘햄릿’, ‘리어 왕’, ‘맥베스’, ‘오셀로’ 같은 고귀한 존재들이 파멸에 이르는 과정을 지켜보며, 그들의 문제를 곧 우리 자신의 문제로 귀결시킴으로써 진정 올바른 삶은 무엇인지를 생각해 볼 기회를 갖게 되는 것이죠.”
플롯으로는 셰익스피어를 읽을 수 없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셰익스피어를 말하면 4대 비극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하지만 셰익스피어는 비극보다 희극을 많이 썼다. 저자는 “그의 비극들이 심오한 인생에 대한 성찰이 담긴 문학의 원형과 같다”면, “극으로서 진가를 발휘하는 것은 단연 희극”이라고 말한다.
“지적인 성찰을 담아내기 위한 긴 대사가 대부분인 비극들은 관객들에게 다소 지루한 감이 있지만, 기지와 재치가 넘치는 대사들로 가득 찬 희극들은 활력과 생동감이 넘치기 때문이죠. 따라서 셰익스피어가 극작가였다는 사실을 염두 해둔다면, 일반적으로 높이 평가받는 비극들에 비해서도 그의 희극들이 지닌 가치는 절대 폄하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희극과 비극의 차이는 무엇일까. 단순하게 구분할 수는 없지만, 극 안에서 인간의 본성이 웃음거리가 되느냐 아니면 심각한 파멸의 원인이 되느냐에 따라, 크게 희극과 비극으로 나눌 수 있다. “희극에도 비극에서처럼 사건의 발단이 있고 무질서가 팽배해지며 삶이 뒤죽박죽되는 갈등 단계가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주인공들이 죽는 것으로 끝나는 비극과 달리, 희극에서는 모든 갈등이 원만히 해결되고 행복한 결말을 맺는 것”이 특징이다. 셰익스피어는 여러 종류의 희극을 남겼는데 이중 대표적인 작품은 낭만 희극으로 분류되는 『한여름 밤의 꿈』과 『베니스의 상인』, 『말괄량이 길들이기』, 『십이야』, 『헛소동』등이 있다.
셰익스피어는 비극과 희극 외에도 열편의 사극을 썼다. 셰익스피어의 사극의 특징은 “역사적 사실에 얽매이기보다 극적 효과를 최대화하기 위해 역사를 과감하게 변형했다”는 것이다.
“셰익스피어는 빌려온 이야기에 자기만의 색채와 시적 언어, 그리고 주제를 돋보이게 해주는 이야기들을 덧붙여 한층 더 재미있는 극으로 만들어 내곤 했습니다. 그는 이런 사극들을 통해 주로 정치의 본질적 문제를 탐구했지만, 그와 함께 특정한 정치적 상황에 처한 인간의 행위도 예리하게 묘사했죠.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리처드 3세』, 『헨리 4세』, 『줄리어스 시저』등이 있습니다.”
셰익스피어의 극의 핵심은 플롯에 있지 않다. 왜냐하면 그가 쓴 많은 작품이 전설이나 신화에서 이야기의 뼈대를 가져오거나 차용해 완성된 작품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플롯만 제시해 주는 요약본을 읽은 것으로는 셰익스피어 작품을 읽었다고 말할 수 없을지 모른다.
“셰익스피어의 진정한 가치는 그런 플롯 속 등장인물들이 겪는 끝없는 마음 속 갈등과 고뇌, 그런 감정들을 하나하나 풀어내는 보석 같은 대사들, 다양한 이야기들의 유기적인 짜임새에 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것들은 요약본을 통해서는 경험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제 강연과 이 책의 목적은 독자로 하여금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직접 읽도록 유도하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햄릿의 슬픈 사연과 로미오와 줄리엣의 애달픈 사랑, 악한으로만 알려진 샤일록이 당한 서글픈 인종 차별에 대해 독자들이 직접 읽어보길 권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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